66화. 축제의 끝
“허…….”
로마르니의 잇새로 감탄 비슷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기야 놀랄 만도 하겠지.
빛의 마나가 사라진 지도 어언 수십 년.
마탑주인 그라면, 지금 내가 펼친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단번에 알아봤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고 조금은 허리를 꼿꼿이 펼 생각이었는데,
“너 돌았냐?”
“…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후레자식아. 누구는 못 죽여서 가만히 내버려 둔 줄 알아? 그리 답도 없이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면, 심문은 어떻게 할 건데?”
“…….”
“진짜 목적이 뭔지, 뒤에 누가 있는 건지. 뭘 알아나 보고 죽여야 할 것 아니야, 임마!”
털푸덕!
때마침, 신체의 절반을 잃은 인영이 모로 쓰러졌다.
그러고도 모자라 ‘파스스’ 하고 모래로 화해가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살려둔다 한들, 어차피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요.”
“뭐?”
“이거, 진짜 본체가 아니거든요.”
말을 마친 내가 지금 막 모래로 변해가는 발치의 다리를 ‘툭’ 하고 건드렸다.
“본체가 아니라니…? 설마, 분신?”
“분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 비슷한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만한 힘을 지닌 존재가 본체도 아닌 고작 분신이라고?”
“이만한 힘을 지닌 존재가 이리 대놓고 공개된 장소에서 행패를 부린다는 게 더 말도 안 되지 않을까요?”
“그건…….”
잠시간 인상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고민하던 상대가 이내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댄다.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
그는 뛰어난 재능에 비해, 생각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이라 알려져 있었다.
기사였다면 그저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찬 단순 무식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마법사였다.
그저 그의 성격 자체가 생각하는 걸 귀찮게 여길 뿐이다.
“…이놈은 크로커 가문의 차남이 아니야. 그 증거로 ‘마기’가 느껴졌지. 너는 이것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더 알고 있는 거지?”
찰나 내 몸이 움찔 떨렸다.
실로 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음이었다.
마탑과 제국은 ‘한통속’이다.
명확한 물증은 없지만, 그간의 행보로 보아 심증만은 확실했다.
한데, 그런 그들이 칠악과 제국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
“…….”
이 경우에는 두 가지다.
일부러 모르는 척 떠보는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마탑 전체가 제국과 결탁한 건 아니라는 것이거나.
만약 상대가 다른 탑주였다면, 당연히 전자를 의심했을 테지만,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말했지. 만약 도움을 구할 생각이라면, 전투의 마탑주 정도는 믿을 만할 거라고.’
물론 그렇다고 밑천을 다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타인의 말만으로 대상을 판단하기에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으니까.
“…3년 전입니다.”
“뭐…?”
“칠악. 그중에서도 ‘럼프’라는 이름을 가진 흉악한 놈이 왕국의 수도 인근에서 모습을 드러냈죠.”
“……!”
이미 들은 얘기가 있는지 로마르니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물론, 그 역시 죄악이 각성한 사실까지는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그 럼프라고?”
“확실합니다. 럼프가 종주로 삼은 식탐의 죄악에는 여러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먹어 치운 대상의 능력을 일부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포식’. 마찬가지로, 먹은 대상의 시신을 이용해 일시적인 언데드 상태로 만드는 ‘식이 인형’.”
“……!”
내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로마르니의 동공이 거칠게 요동쳤다.
식이 인형.
빼앗은 시신의 능력은 물론이고, 일부 본체의 권능까지 사용할 수 있는 가체(假體).
그저 사기적인 이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식이 인형은 유지 시간이 영구적이지 않았다.
분명한 제한 시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의 이 시신이 그 식이 인형이다?”
“네.”
“마탑 한복판에 칠악이 나타났다는 거냐? 그거야말로 진짜 농담만도 못한…….”
“일국의 심장에서도 나타났는데요, 뭘.”
“……!”
“물론 아카데미 때와는 달리, 이곳은 칠악에게도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이 더러 존재하지만요. 미치지 않고서야 본체로 직접 난동을 부리는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는 않겠지요.”
“그런…….”
꾸물.
순간 내 몸이 흠칫 떨렸다.
어느새 발치의 시신은 대부분이 소멸되고, 사지를 잃은 몸통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한데, 갑작스레 그 몸통 주변이 꿈틀거리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재생?”
“…아니요.”
이 또한 언젠가 한 번 경험했던 능력이다.
식탐의 또 다른 권능.
제 몸에 과부하를 걸어 일대에 광범위한 피해를 끼치는 그 이름.
폭살(爆殺).
“…물러나세요.”
“또 뭔…….”
“아, 설명할 시간 없다구요. 사람들 피신시켜요. 최대한 빨리!”
“……!”
***
꽈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탑의 일개 층 전체가 통째 날아가는 소리였다.
그 충격으로 대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던 결계가 산산이 부수어졌음은 물론, 외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직각으로 꼿꼿이 서 있던 탑이, 살짝이나마 눈에 보일 정도로 기울어졌으니까.
“대, 대체 이게 무슨…….”
그 모습을 탑 바깥에서 바라보던 스실라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비단 대연무장뿐만이 아니었다.
마탑의 내외부는 열두 탑주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결계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걸 통째 뒤흔들 위력이라면, 최소 7써클 마법은 되어야 흉내라도 내볼 수 있었다.
“…마기!”
순간 전신으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에 스실라가 곧장 땅을 박찼다.
빠르게 3층 입구까지 도달한 그녀가 처음으로 본 광경은,
“…윽.”
한 폭의 지옥도였다.
무너진 잔해에서 핏물이 번져 간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나마 멀쩡한 다른 층들에 비해 3층은 전체가 온통 잿더미였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스실라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세인트의 날개, 그 성스러운 치유의 움직임이여…….”
치유의 마법은, 달리 복구의 마법이라고도 불렸다.
물론, 사제들의 신성 마법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상처 입은 부위의 자가 재생률을 수천, 수만 퍼센트 끌어올려 단숨에 회복시키는 것이 신성 마법의 기본이었다.
일종의 초재생.
그에 비해 치유 마법의 기본은 원상태로의 ‘복구’다.
말 그대로, 특정 공간의 시간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스실라의 또 다른 이명이 ‘시간의 마법사’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둘 중 어느 능력의 가치가 더 높은지는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다.
각각 명확한 장단점이 존재했으니까.
“이곳에는 로마르니가 있었을 텐데 어찌 이런…….”
마나를 아낌없이 분출해 내면서도 스실라는 마음속의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만한 대범위라면 제아무리 그녀라도 무리가 갈 법도 하건만, 무너진 잔해들은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제야 아래에 깔려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큭, 이게 뭔 꼴사나운 모습인지.”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사람들을 다 피신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보냐!? 나니까 이 정도로 피해를 막은 거지!”
곧이어 익숙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스실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지금 막 잔해 한편에서, 로마르니와 언젠가 본 적 있는 평범한 외모의 청년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신체는 뿌연 흙먼지로 가득했다.
“로마르니! 괜찮아요?”
“…스실라?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희미한 마기가 느껴져서 와봤는데 이 꼴이네요. 근데… 지금은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역시 본체가 아니었나?”
와락 인상을 찌푸린 로마르니가 힐끗,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 예의 평범한 외모의 녀석이 제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혹, 개막전의…?”
“그래. 문제는 이 자식, 빛의 마나를 사용했어.”
“……!”
스실라의 눈이 대번에 동그랗게 뜨여졌다.
“비, 빛의 마나요?”
“놀랍지? 나도 경악스러울 지경이야. 시간만 있다면 당장에 이것저것 캐물어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런…!”
무어라 말하려던 스실라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마침, 거대한 마나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다른 탑주님들도 오시는 모양이네요.”
“빨리들도 오시는군, 젠장.”
“…….”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스실라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단 빛의 마나에 대해서는 우리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해요.”
“그건 왜…….”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반문하려던 로마르니가 곧 입을 다물었다.
상대의 표정이, 왜인지 한껏 굳어 있었으니까.
단언컨대 로마르니는 언제나 미소로 일관된 스실라의 저런 얼굴은 처음 봤다.
더욱이 그녀는 염화와 빙결 다음으로 오랫동안 탑주의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었다.
같은 직책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탑주에 오른 로마르니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지.”
“고마워요, 로마르니. 그리고…….”
이내 스실라가 다른 한쪽을 돌아봤다.
“분명 세타라는 이름이셨죠? 괜찮으시다면, 세타 님도 제 말을 따라주세요. 결코 본인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
우뚝.
한줄기 바람이 이러할까?
날듯이 뛰던 세디스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췄다.
예의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던 길.
그 중간 즘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건… 스승님!”
잠시 신경을 집중하던 세디스가 빠르게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무척이나 익숙한 반라의 사내가 이곳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엉? 세디스?”
사내가 코앞까지 도달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언제 여기 오신 거예요?”
“뭐야, 세타가 말 안 하디?”
“세타요?”
고개를 갸웃하는 세디스를 보며 반라의 사내, 에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됐다. 그보다 너도 느꼈냐?”
“마기 말씀이시죠?”
“그래.”
“네. 아주 미약하게지만요. 확실히 ‘바람’은 감지 능력이 뛰어나네요.”
“그게 바람의 위대함이지.”
피식 웃음을 터뜨린 에이스가 곧 인상을 굳혔다.
“그보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너는 이대로 연합으로 복귀하거라. 마법 대전은 이만 중도 포기하도록 하고.”
“그게 무슨…?”
“뭐, 세타 녀석과 달리 너는 어차피 제 실력이나 시험해 보자고 참가한 대전이잖냐. 딱히 아쉬움 같은 건 없을 텐데?”
“그, 그치만…!”
세디스가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아무리 욕심이 난다지만 대놓고 황제의 포상이 탐난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더욱이, 연합은 이미 제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던가?
“끙…….”
그럼에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랜달의 팔찌’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아쉬워도 참아라. 어차피 이대로라면 마법 대전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세디스가 기함을 토했다.
“뭘 그리 놀라? 당연하지 않느냐? 마탑 한복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그것도 마법 대전이라는 축제 기간에. 뒤에서는 무슨 구린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저 고매하신 어르신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더군다나, 지켜보는 눈이 이토록 많은 상황에서?”
“아… 그렇겠네요.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축제는 끝이다. 지금부터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 거야.”
이윽고 말을 마친 에이스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저 멀리 하늘 높이 희뿌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제4마탑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