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가짜(3)
‘내가 먹어치웠거든.’
오직 그 말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점차 내 눈이 붉게 충혈된다.
구태여 내가 마법 대전에 참가한 이유는 모두 학장 할아버지를 위해서였다.
한데, 그런 그분은 이미…….
“…….”
입술이 터지고, 이내 비릿한 혈향마저 느껴졌다.
침착하자.
상대는 내 평정심을 흔들어 놓기 위해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내 속마음까지 꿰뚫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아니, 아니다.
그건 그저 내 바람이다.
그리 생각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확신하고 있지 않던가?
지금 느껴지는 이 어마어마한 땅의 울림.
피부 가득 느껴지는 대지의 마나만큼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빌어… 먹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의문의 조각들이 완전히 합쳐졌다.
내 눈앞의 존재는, 3년 전 ‘그날’의 덩어리가 분명했다.
다만, 느껴지는 힘은 그때와 비할 바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거다.
너무 단기간에 상대가 강해졌으니까.
아이리스의 지식은, 그 이유 또한 내게 친절히 알려주고 있었다.
첫째로 계약.
흑마법사를 포함하여, 마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행하는 일이 마족과의 ‘계약’이었다.
보다 상위의 존재와 계약할수록 가용할 수 있는 힘의 범위도 차원이 달라졌기에,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양질의 재물을 바치려 했다.
소위 마족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문제는, 이 또한 일종의 재능이라는 사실이었다.
정작 해당 마족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면, 수천의 재물을 바친다 한들 계약은 성립될 수 없었으니까.
실제 최상위 마족과의 계약을 원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하위 마족과 계약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고생은 있는 대로 다 하고 말이다.
흑마법사들이 괜히 중급 이상의 마족과 계약하는 일을, 익스퍼트의 재능이라 비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는 직계 권속이 되는 일이다.
격이 높은 마족일수록, 휘하에 둘 수 있는 피계약자들 또한 많다.
특히나 마왕급 정도 되는 존재들이라면, 백 단위의 권속을 두는 것도 가능했다.
허나, 본체의 권능을 일부 직접 받아 쓸 수 있는 ‘직계’들은 또 달랐다.
그 마왕조차, 중간계의 직계 권속은 고작 다섯을 두는 게 전부였으니까.
3년 전의 럼프가 바로 이 단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한다.
최후의 1인.
오직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본체를 ‘직접’ 받들어 완전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마왕의 기억까지 공유하는 또 하나의 생명체.
마계가 아닌 중간계에 존재하는 이면의 본체.
비록 그 힘을 본체의 10퍼센트도 발휘할 수 없는 이곳이라 할지라도.
…차이는 격이 달랐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다시 한번 땅이 떨어 울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크로커 가문의 차남도, 3년 전의 럼프도 아니었다.
학장 할아버지의 원수.
만악의 근원인 칠대 죄 중 하나이자 ‘식탐’의 주인인 벨제바브 그 자체였다.
***
쿠궁! 쿠구구구궁!
굉음이 울려 퍼진다.
쩌적, 쩌저저적!
그 충격은 이내 대연무장의 바닥에 균열을 일으켰다.
더 나아가, 삽시간에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꺄아아아아악!”
“이, 이거 괜찮은 거야?”
“어째 결계가 위태위태한 것 같은데…….”
그 말대로였다.
결계 외부에, 눈에 보일 정도의 실금이 가 있었으니까.
무려 5써클 이하의 마법은 무리 없이 흡수하는 대마법 전용 결계가.
“킥…….”
그럴수록 럼프의 미소도 점차 짙어졌다.
폐부 깊숙이 찌르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공포, 혼란, 두려움…….
감정은 곧 힘이다.
그 무형의 에너지를, 럼프는 남김없이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는 확실히.
그는 그렇게 살아왔고, 마침내 정점에 올랐다.
3년 전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본체의 기억과 일부 힘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는 지금.
중간계에서 그와 맞설 수 있는 존재는 몇 되지 않았다.
“멈춰라!”
이곳은 ‘전투’라는 과분한 이름을 가진 제4마탑.
상석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럼프의 눈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족히 2미터에 이를 듯한 커다란 키에, 회색으로 변색된 한쪽 눈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악의 종자 따위가 감히 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려?”
악의 종자란, 달리 흑마법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너도 먹어줄까?”
허나, 럼프는 도리어 즐거웠다.
새로운 먹잇감은 언제나 환영이었으니까.
곧이어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오만’이 기억을 공유한다.
상대는 7써클 마스터.
더불어, 전 대륙 상위 8번째 마법사.
그토록 풍미가 있었던 대지의 늙은이보다, 무려 5단계나 높은 먹잇감이다.
“흣…….”
이건, 참을 수 없었다.
스팟!
일순간 럼프가 땅을 박찼다.
목표는 눈앞의 그.
절로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이 탑의 주인이다.
쾅!
“크으…….”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고작해야 단순 무식한 육탄 공격이었을 뿐이다.
한데, 전신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파지직!
양손을 맞잡아 상대를 저지하는 한편, 곧 로마르니의 머리 위에 큼지막한 대검이 생성되었다.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가 이러할까?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나의 대검은, 극도로 끌어올려진 절삭력으로 단숨에 상대를 두 동강 낼 듯싶었다.
허나,
까아아아앙!
“……!”
놀랍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의 단단함이, 지금껏 경험해 본 종류의 것들과는 궤를 달리했으니까.
“무슨 이런 일이…!”
더욱이, 충돌 직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약된 마나가 흩어졌다.
마치 얼음이 물로 화하듯이.
그 상태로 치열한 힘겨루기가 이어지기를 3분여.
언젠가부터 로마르니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일까?
하지만, 정면승부라면 언제나 로마르니가 적을 압도했다.
기사의 꽃이라 불리는 마스터조차 그와는 힘겨루기를 꺼리건만.
“젠장!”
결국 로마르니는 스스로의 실책을 인정했다.
처음만 하더라도 대지와 모래 계열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꽤나 특이한 흑마법사라 생각했다.
흑마법사라고, 일반적인 마법을 아예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에, 마법의 위력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사실도 방심을 더했다.
지금 느껴지는 대지진은 6써클 마법 어스 퀘이크로 추정되나, 그 위력은 실로 보잘것없었으니까.
일반적인 어스 퀘이크라면, 대연무장이 아니라 마탑의 바닥을 통째 갈라놓았어야 정상이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알려주면 순순히 먹힐 테냐?”
“…큭.”
순간, 새빨갛게 미소 지은 럼프가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이 실로 기괴스러웠다.
외형은 아직까지 스물 전후의 청년에 불과한 그의 입이, 단숨에 제 얼굴만큼이나 커졌으니까.
문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허나, 로마르니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상대를 똑바로 마주 바라봤다.
바로 그때.
“……!”
순간적으로 로마르니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찌 대처할까 고민하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탓이다.
상대의 등 뒤로 한 인영이 조심스레 접근한다.
그의 기억 속에도 있는, 무척이나 평범한 외모를 가진 아이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입 모양만으로 이리 말해오고 있었다.
‘쉿.’
***
같은 시각, 제4마탑과 가장 가까운 제3마탑.
쿠궁!
한차례 땅의 울림이 느껴졌다.
“무슨…?”
극히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진동에 유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와아아아아아!”
“아무나 이겨라!”
그 반증으로, 다른 관중들은 아직도 대전 집중에 한창이었다.
다만…
“…응?”
한 사람만큼은 예외였다.
지금 막, 심각한 얼굴로 탑의 출입구를 나서는 여인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으니까.
유리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 여인은 이 탑의 수장.
그 이름도 유명한 치유의 스실라였다.
“뭔 일 있나?”
극도로 호기심이 일었지만 여기서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이 그녀의 대전이었으니까.
“…쟤는 또 어디 가는 거야?”
한데, 진동을 느낀 이가 또 있었다.
예의 세타의 친우라는 녀석.
이미 제 대전을 끝낸 세디스도 지금 막 출입구로 치달아 달리고 있었다.
“끄응…….”
그 순간, 왜인지 유리나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도 모자라 가볍게 손부채질까지 해대기 시작했다.
“…아씨. 괜히 오해하게 만들어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이상야릇한 상상들을 애써 지워내면서.
***
- 애송이. 너는 물러나라!
마치 머릿속에 직접 대고 말하는 듯한 전언(傳言) 마법에, 잠시 흠칫한 내가 곧 입을 뻐끔거렸다.
‘제가 저걸 좀 압니다.’
- …뭐?
‘일단 한번 맡겨보시죠.’
상대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지는 것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허나 곧 그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빛의… 마나…?”
예의 상대,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가 처한 상황조차 잊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명백한 상대의 실책이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여기서 정신이 흐트러지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
파직! 파지지지직!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빛’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몇 안 되는 자연계 마나였다.
거기에 물리력을 더하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3년 전이야 마기와 상극이라는 사실만으로 적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저 괴물에게는 어림도 없다.
홱!
그제야 낌새를 눈치챈 것일까?
럼프의 새빨간 눈덩이가 이쪽을 향했다.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운 모습이었다.
분명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상악의 절반이 날아가 언데드와 다름없는 외형이었으니까.
이미 들켰으니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좀… 부탁드립니다.”
“뭐라고?”
“엄호 좀…….”
“멀어서 잘 안 들려. 크게 말해!”
순간 내 이마 위로 희미한 십자마크가 아로 새겨졌다.
“엄호 좀 해달라고, 이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
팡!
로마르니를 빠르게 밀쳐 내고,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럼프가 이쪽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그제야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마르니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서 한 자루의 대검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런 젠장…!”
번쩍!
로마르니가 텔레포트를 이용해 나와 럼프의 중간을 가로막아 섰다.
직후, 두 존재가 거칠게 충돌했다.
콰아아앙! 주르르르륵.
그 충격으로, 로마르니의 신형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앞으로 대략 10초.
“아직 멀었냐아아아아아아!?”
“조금만 더요!”
“망할…! 뭔 썅놈의 힘이… 이 따위로 무지막지한 거냐고!?”
상대의 정체를 예상조차 하지 못하는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순간에도 로마르니의 신형은 후방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마스터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가졌다 알려진 그를 생각하면,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숙여요!”
“뭣…!”
“머리통 삭제되기 싫으면 숙이라고!”
“아니, 저 어린놈의 새끼가 아까부터 진짜!”
성난 표정으로 내 쪽을 돌아보던 로마르니가 곧 찢어져라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곤 황망히 땅을 굴렀다.
결론적으로 그건,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훨씬 탁월한 선택이었다.
“……!”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사라진 녀석과.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내 손을 떠난 어른 몸집만 한 마법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허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내 패악적인 마법에 럼프의 신체 절반이 통째 날아가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