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64화 (64/251)

64화. 가짜(2)

“2황자와 접촉했어.”

“……!”

수정구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유 연합의 수장이기도 한 세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미쳤냐!?”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아니라 저쪽에서 먼저 접근해 왔으니까.”

“뭐? 설마 그가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나 말고, 우리 제자한테 볼일이 있어 보였거든.”

직후 에이스의 부연설명이 이어지자, 그제야 세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썩을 자식. 처음부터 그리 얘기하던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그래서 황자는? 실제로 보니까 좀 어떻든?”

“기감으로 느껴지는 특이점은 없었어. 만약 2황자가 정말로 더블 워커라면 그 흔한 마기라도 내풍겼을 텐데도, 그런 건 전혀…….”

“…다르게 얘기하면, 십이월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황자의 능력이 완벽하다는 뜻이잖아. 아냐?”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에이스가 곧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마족이 맞다는 가정하에서겠지.”

“…….”

“뭐, 당장 황자가 무언가 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쪽은 나한테 맡겨둬 봐.”

그는 확신했다.

현시점에서 제국은 누구나 다 아는 마탑의 후원자였다.

더욱이 올해는 무려 황제가 직접 큰손을 자처하고 있었으니.

그런 상황에서 2황자가 독단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보다, 연합은 어때?”

“…아! 지금 막 스란 쪽에서 전서가 왔더라? 나를 건국 기념 연회에 초대하고 싶다나 뭐라나.”

“뭣…!”

이번에는 에이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연회라니?”

“공왕이 직접 사과하고 싶대.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기간 동안, 우리 연합을 상대로 행해진 그 부조리들에 대해서 말이야.”

“설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겠지?”

“믿음은 안 가지만, 반응은 해줘야지. 무려 공왕이 직접 보낸 초대장이잖아?”

“하지만…….”

세논이 에이스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이 사실은 다른 나라의 고위급 인사들도 모두 알고 있어. 연회에 초대를 받은 건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니까.”

“그쪽도 쉬이 허튼 짓은 하지 못할 거다?”

“그래.”

그제야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고민하던 에이스가 말을 잇는다.

“…정이 갈 생각이라면, 밑에 애들도 꼭 데리고 가.”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알아. 대장이 진심으로 상대하면 어지간한 마탑주 둘이 한 번에 덤벼도 어찌하지 못하겠지.”

공식적으로 마법사 서열 1위부터 상위 12위까지는 각 마탑의 주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허나, 최소한 에이스만큼은 안다.

그 서열은 틀렸다.

마탑에 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마법사들 중에는, 그보다 더한 괴물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당장 눈앞에 있는 자신의 상관만 봐도.

“그래도 내 말대로 해. 구린내가 풀풀 나니까. 통신용 수정구도 꼭 챙겨 가고.”

“…참나. 누가 보면 네가 내 남편인 줄 알겠다?”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냐.”

이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은 세논이 가볍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 알았어. 걱정하지 마.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

같은 시각.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취하고 있는 이는 또 있었다.

“4차전 승리 축하해.”

“이게 뭐라고 축하까지야. 이제 200강쯤이나 되려나.”

“하긴, 그간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거저먹기는 했지?”

“…너어는 말을 해도 꼭…….”

순간 무어라 말하려던 유리나가 입맛을 다셨다.

“…쩝. 됐다, 네 비뚤어진 성격에 축하가 어디냐. 더 보란 듯이 팍팍 이겨줘야지.”

“훗. 앞으로도 자신은 있다는 거네?”

“말해, 뭐해.”

“상대가 그 제노스 델 카이클이라도?”

재차 실비아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유리나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어. 자신 있어.”

“흐응~”

“뭐냐, 그 기분 나쁜 콧소리는?”

“그냥. 지금 네 모습이 평소보다 묘하게 날이 서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게 제노스 델 카이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나가 속으로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모난 성격만큼이나 실비아는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돼, 됐고. 그쪽 일이나 신경 써. 당장 이곳 분위기만 해도 걸리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무슨 뜻이야?”

“으레 그렇듯, 고위급 인사가 이 정도나 모이면 한마디 정도는 할 법도 한데…….”

“……?”

“최소한 이 주변에서 테라의 내전에 대한 얘기는 아무런 언급조차 없어. 그 점이 거슬린다고.”

“…뭐, 마탑도 위치가 있으니까.”

“마탑뿐만 아니라, 다른 타국인들을 포함해서 말이야.”

“…….”

그제야 실비아도 인상을 굳혔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테라의 내전은 전 대륙을 강타한 충격적인 소식 중 하나였다.

비록 국가 간 다툼이 아닐지라도 평화의 시기가 도래한 이래 처음 발발한 대규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으니까’ 따위는 이유조차 되지 않았다.

내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으니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야?”

“내 느낌은 그래.”

“느낌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나도 알아. 그냥,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뜻으로 한 얘기야. 이런 쪽으로는 네가 나보다 나을 테니까.”

“…….”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실비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내가 한번 알아볼게.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오냐.”

“마법 대전은 계속 참가할 생각이지?”

“어. 뭔 일 있으면 연락해. 바로 달려갈 테니까.”

“그래, 그럼. 남은 대전도 열심히 하고…….”

“아, 잠깐만.”

“……?”

곧바로 통신을 끊으려는 실비아를 유리나가 다급히 불러 세웠다.

말할까 말까.

방금도 봤지만, 상대는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막상 털어놓자니 오해라도 할까 봐 우려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계속 신경 쓰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고민 끝에, 이윽고 유리나가 조심스레 운을 땠다.

“너 혹시… 세타 쿤 이그니스에 대해 좀 아는 것 있냐? 가령 평민이 어떻게 성을 가지고 있는 건지… 라던가.”

“…….”

***

“연합과 제국을 대표하는 유망주들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제국 쪽이 우세하겠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 반대겠지? 개막전의 일도 있었으니까.”

활짝 열린 감각이 이런 목소리들을 전해왔다.

허나, 정작 개막전 때와 달리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 그때 그 녀석이 아닌 거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더 큰 문제는, 상대의 기척이 언젠가 꼭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

허나, 상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이쪽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께름칙한 감각.

마치 수 천 마리의 개미가 전신을 타고 오르는 듯한 기분.

그 서늘한 분위기 속에.

“시작!”

사회자가 대전의 개시를 알렸다.

“데저트 웨이브.”

“……!”

직후, 모래의 파도가 나를 향해 덮쳐 왔다.

데저트 웨이브.

4써클 유저는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마법.

저걸 시전어만으로 발현해낼 수 있다는 건, 상대가 최소 5써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의미였다.

‘착각이었나?’

다시 봐도 내가 아는 데저트 웨이브가 분명했다.

만약 껍데기만 같은 존재였다면, 지닌바 실력까지 저럴 수는 없겠지.

투둥!

그렇게 생각하며, 파동 두 개를 연달아 쏘아 보냈다.

덮쳐오는 모래더미와 파동이 정면에서 충돌한다.

그 결과.

펑!

폭발을 일으킨 모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니야.”

그럼에도 내 표정은 도무지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세상에는 실로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했으니까.

걔 중에는, 대상의 모양과 외형은 물론이고, 능력까지 복제할 수 있다 알려진 마족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존재를 하나 알고 있었다.

‘더블 워커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미숙하다.

더블 워커가 무서운 점은, 대상의 습관과 기억조차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이만한 이질감을 느끼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데저트 윈드.”

휘오오오오오!

재차, 내 주변으로 모래의 소용돌이가 생성되었다.

사막의 폭풍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 알려진 6써클 마법 대저트 스톰과 달리, 위력은 보잘것없는 3써클 마법.

하지만 효과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윽…!”

삽시간에 모래의 알갱이들이 내 시야를 가려왔다.

차마 눈을 뜨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나는 육신의 감각을 활짝 개방시켰다.

쉼 없이 몰아치는 모래 바람을 뚫고 나지막한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넌 내 소중한 먹잇감이야.”

“…먹잇감한테 잡아먹히고 싶어서 환장했나.”

특별히 곤란하다고까지 할 상황은 아니었다.

내 주력이나 다름없는 바람 계열 마법 한 방이면, 이까짓 모래더미는 금세 날려 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태 숨겨온 것이 아까워 그러지는 못했다.

‘상대의 가면부터 벗겨낸다.’

스팟!

순간적으로 내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시야가 가려졌다 함은, 외부 또한 마찬가지인즉.

단거리 이동 마법, 텔레포트를 시전함과 동시에 내 신형이 상대의 등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꾸드드드득.

연이어 내 등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주변의 공간이 급격하게 일그러졌으나, 녀석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파동 마법을 주먹에 직접 시전하고.

적이 회피할 공간을 미리 선점한다.

그리곤 그 힘으로 있는 힘껏 상대를 후려친다.

“……!”

그제야 낌새를 느꼈는지, 홱 하고 고개를 돌리는 상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데저트 쉴…!”

쩌어어어어엉!

허나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내 주먹은 그대로 녀석의 안면부에 작렬했다.

***

고작 쉴드 마법을 펼쳐 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가짜 몸으로는 그 정도로밖에 반응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상악의 3분의 1이 통째 날아갔다.

후둑, 후두둑.

마치 모래와도 같은 퍼석한 피부가 연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드러난 것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백 개의 송곳니였다.

“킥… 키키키키키킥…….”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본체의 권능을 받들기 전인, 과거의 ‘그날’과 완벽하게 오버 랩 되고 있었다.

그때도 저 애송이에게 회심의 한 방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어찌 된 일인지 상대는 그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단번에 꿰뚫어 봤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낼름.

존재가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핥았다.

크로커 가문의 차남은 그 주력만큼이나 식감이 푸석했다.

딱 모래를 씹는 느낌이랄까?

허나, 저 녀석은 달랐다.

주르륵.

과연 어떤 맛일까?

벌써부터 입에서 군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반드시 먹는다…….”

크로커 가문의.

아니, ‘칠악’의 럼프가 크게 한 걸음 내딛었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은 음식의 맛을 향상시킨다.

공포, 좌절, 절망, 그리고 분노 따위의 감정들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럼프가 지금 상대에게 알려줘야 할 진실은,

“이봐.”

“……?”

“대지의 마법사는 죽었어.”

“……!”

“내가 먹어치웠거든. 보여줄까?”

쿠궁! 쿠구구구구궁!

순간, 대연무장의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지반에 충격을 가하여 진동을 일으키는 대지계 마법, 어쓰 밤.

그 위력은 미미했으나 럼프가 목적한 바는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

어느새 상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크크크크크크.”

내면에서부터 치솟는 만족감에, 럼프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