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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63화 (63/251)

63화. 가짜(1)

마법 대전이 개막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쫘아아악!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연검.

일명 스네이크 소드를 휘저은 세디스가 미소 지었다.

“세타 녀석, 벌써 3차전까지 통과했단 말이지?”

“젠장!”

“나도 질 수야 없지.”

“이거 규칙위반 아니야? 왜 검사가 마법 대전에 참가해선 이 지랄인 건데!?”

세디스의 3차전 상대가 재차 고성을 내질렀다.

뭐, 이해는 간다.

기실 세디스의 존재는 개막전만큼이나 세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내 첫 시합 못 보셨나 봐? 나는 검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법사이기도 한걸.”

“빌어먹을, 너무 불공평하잖아! 핸디캡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야? 마법을 쓰는 검사랑 일대일로 어떻게 이기라고?”

“그쪽 마음은 알겠는데, 이 세상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거야.”

말을 마친 세디스가 이내 캐스팅을 시작했다.

“테슬리온의 바람이여…….”

곧 한줄기 기분 좋은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세디스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져 갔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법을 쓰는 검사.

다시 말해, 세디스는 마검사였다.

이론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이런 일을, 그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모두 타고난 ‘체질’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세디스는 누구와 같은 대단한 특이 체질은 아니었다.

두 개의 그릇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하복부의 마나 홀과 심장의 써클은 반드시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정상적인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애당초 시도조차 해보지 않을 일이었다.

허나 세디스는, ‘불가피한’ 이유로 그 미친 짓을 시도했다.

아니, 시도 당해졌다.

‘…생각하지 말자.’

순간적으로 옛 기억이 떠오른 세디스가 쓰게 미소 지었다.

아무튼 그는 스스로가 결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으니까.

체질은 타고났으나, 재능은 그렇지 못했다.

비교적 커다란 복부의 홀에 비해, 심장의 써클은 기껏해야 3개의 고리가 전부였다.

하기야 마법 대전 참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내가 제노스 델 카이클이나 세타만 한 재능을 가졌다면, 그 저주받은 날 폐기 처분되는 일 또한 없었을까?’

“으아아아아아아아!”

“…….”

순간 귀청을 때리는 괴성에 세디스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눈앞에서 얼음의 송곳니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얼음 계열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4써클 유저.

1차전에서 빙결의 마탑주를 흠모하노라 당당하게 밝히던 상대는, 스란 공국 출신의 20대 마법사였다.

이름은…

“…뭐더라?”

휘리릭! 투두두두두두둑.

마치 채찍과도 같이 늘어난 검이 유려하게 휘돌았다.

무려 십여 개에 이르던 얼음의 송곳니들이, 그 가벼운 동작만으로 단번에 두 동강이 났다.

그러고도 검은 힘을 잃지 않았다.

쫘아아악악!

“……!”

마치 채찍마냥 눈앞의 바닥을 할퀴어대는 검의 모습에, 예의 스란 출신의 상대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아깝다. 힘이 조금 부족했나.”

“이… 괴물 같은 자식!”

“괴물? 진짜 괴물은 아직 보지 못했나 보네.”

“큭…….”

“이즈음에서 항복하시지? 이번에는 안 빗나갈 것 같거든.”

“자, 잠깐!”

“……?”

“자유 연합에서 왔다지? 조직이 많이 힘든 것으로 아는데, 너무 여유가 넘치는 것 아닌가?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도 이런 시기에 마법 대전이라니, 제정신이느냔 말이다!”

“…….”

상대가 뻔한 도발을 걸어왔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년 전, 공국에서 세금을 대폭 상향 조정한 이후부터, 연합과 공국은 지속적으로 기 싸움을 벌여왔다.

연합은 과도한 세율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텼고, 이에 공국은 다방면에서 연합을 압박했다.

단순히 경제적인 불이익을 너머, 연합으로 들어갈 의뢰를 중간에서 가로챌 정도였다.

중요한 것은, 요 근래 그 기나긴 기 싸움에 큰 변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무려 식물인간 설이 돌던 공왕이 장장 3년 만에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다.

“뭐,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차츰 건강을 회복하고 계신 공왕께서는, 예전부터 공명정대하시기로 유명하셨잖아? 생각이 있으시다면 작금의 상황을 바로 잡으려 하시겠지.”

이어지는 세디스의 말에 상대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혀졌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나?”

“응?”

“최근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흔히 폭풍전야라고들 하지. 큰일이 있기 전의 고요함 말이야.”

“…뭔가 알고 있는 거야?”

“글쎄. 내가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이라도 당장 대전을 포기하고 조직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라는 충고뿐이다.”

“음…….”

의도가 눈에 보였지만, 그렇다고 그냥 흘려듣기에도 힘든 발언이었다.

“이왕 충고해 주는 거, 인심을 좀 더 써보시는 건 어때?”

“큰일은 한 번에 터뜨려야 충격도 배가되는 법이다.”

두루뭉술한 답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진짜 뭔가 있는 건가?

“…쯧.”

역시, 고민해 봤자 떠오르는 건 없었다.

순순히 알려줄 상대도 아니었고.

그렇다면…

“우우우우우우우!”

“가만히 서서 속닥속닥 뭐 하고 있는 거냐!? 둘이 연애라도 하냐?”

“빨리 싸워라!!!”

때마침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일단 맞자.”

“뭐…?”

“줘 패놓고 심문이라도 해보지 뭐. 혹시 알아?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내 물음에 답해줄지.”

“……!”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실력이 더 늘었잖아?”

“뭐야, 보고 있었어?”

“어. 특히 바람을 마치 신체 강화 마법처럼 응용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었어.”

지금 막 3차전을 치르고 내려서는 세디스를, 나는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물론 정상적인 대전은 아니었다.

후반부터는 오직 일방적인 구타만이 이어졌으니까.

아예 무기조차 내려놓은 세디스는 실로 무자비하게 상대를 밟아놓기 시작했다.

심지어 ‘항복’이라고 외쳐 대는 상대의 목소리를 단숨에 바람으로 흩어놓으면서까지.

“뭔 악감정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냐?”

“…아니.”

“뭐야, 이겼는데 표정은 또 왜 그러는데?”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세디스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해 보였다.

“세타.”

“응?”

“보통 식물인간으로 3년 정도 누워 지낸 사람이라면, 정신이 멀쩡할까?”

“음…….”

잠시 고민하던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식물인간이 되어 봤어야 말이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장장 3년이나 사경을 헤맨 사람의 심신이 정상일 리가 없을 테지만.

“아닐걸?”

이내 토해지는 내 대답에 세디스의 인상이 더더욱 굳혀졌다.

“역시 그렇지?”

“뭔데? 뭐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

“…그럼 한 가지만 더.”

내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디스가 재차 물었다.

“한 번에 대륙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그러니까 가령 전쟁 정도 되는 큰 규모의 사건이 터지게 되면, 대륙 전체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지겠지?”

“……!”

순간 내 내면에서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식물인간.

지금 막 세디스와 ‘어떤’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스란 출신의 상대.

그리고, 전쟁.

이윽고 내 잇새로 ‘혹시나’ 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거 혹시, 공왕이랑 제국 얘기야?”

***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줄곧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세디스와의 대화는 그만큼이나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으니까.

‘제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건가? 은밀하게 내전에 개입한 일 외에는, 여태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두 스승님은 제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 왔다.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그분들은 알고 계신 듯했으니까.

이에 대해 물을 때면 두 분은 항상 ‘어린 애는 알 필요 없다’며 은근히 얼버무리시곤 했다.

한데, 공국의 일개 남작에 불과한 세디스의 상대조차 무언가를 알고 있을 정도라면,

‘…최근 황자의 움직임도 그렇고, 가능성은 충분해.’

더욱이 2황자는 테라의 내전에 개입한 사실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계획했던 일이 진행 중이던가.

알아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지.

달리 얘기하면, 한낱 애송이에 불과한 내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마법 대전만 생각하는 거야. 더욱이 이곳에는 스승님도 계시니까.’

애써 상념을 털어낸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쩝. 머리 좀 굴렸다고 벌써 배가 고프네.”

하기야 점심 이후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직후, 1층으로 내려온 내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홀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유리나였다.

“언제 와 있었대?”

“…….”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나도 간단하게 요깃거리나 주문하고자 했는데…

“……?”

무언가 분위기가 묘했다.

일평생을 눈칫밥으로 살아온 나는, 곧 그 어색함의 진원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왔는데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바로 눈앞의 아가씨가 문제였다.

“저기요?”

“…….”

“앞에 계신 아가씨, 제가 알고 있는 그분 맞죠?”

탕!

순간 유리나가 소리가 날 정도로 쥐고 있던 식기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밥 먹는데 더럽게 쫑알대네.”

“어… 미안.”

“니가 개야? 아니지. 개도 사람이 밥 먹을 땐 안 건드린다던데.”

“…….”

“흥.”

오늘따라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리나가 곧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갔다.

“…왜 저래.”

물론,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딱히 실수한 일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전이 발발한 이후 같은 노선을 걷게 되면서 그 미친 계집애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더니.

혹,

“…아. 그 병까지 옮으면 피곤해지는데…….”

지금 유리나의 뒷모습은, 나로 하여금 아카데미 시절의 실비아를 무척이나 떠오르게 만들었다.

***

“나도 이제 지한테 신경 쓰나 봐라.”

거칠게 방 안으로 들어선 유리나가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머리맡에는 어제 읽다 만 책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마탑의 모든 시설들은 외부인에게 철저히 비공개되지만 딱 한 곳.

각 탑의 1층에 자리한 공용 도서관만큼은 외부에 개방을 허락했다.

물론 마법서 따위는 하나도 없고 일반 서적들만 가득한 장소였다.

시간이나 죽일 겸 도서관에 들렀던 유리나는 그곳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이름하여…

<내일은 나도 연애 고수>

“…으흠.”

딱히 그 녀석과 연애 따위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목차들이 유독 시선을 잡아끌었다.

- 첫걸음, 상대방이 나를 의식하도록 만들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모르게 세타를 신경 쓰는 자신의 모습에 유리나는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했다.

하여, 이제는 그 녀석 또한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한번 두고 보라지.”

실로 오래간만에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였다.

***

4차전이 예정된 마법 대전 8일 차 오전.

“후우…….”

미리부터 대연무장에 오른 나는 간단하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지금까지 있었던 대전들을 다시 복기하면서.

내 2차전 상대는 뇌전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였다.

물론, 다루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주력인 만큼 경지는 3써클 유저에 불과했다.

승부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싱겁게 끝났다.

상대가 최초 뇌전 마법을 펼치는 타이밍에 맞춰, 주변으로 아쿠아 볼 서너 개를 던져 줬을 뿐이니까.

마침 상대의 속성을 미리 파악한 것이 빛을 발휘한 경우였다.

내가 드락서스와 같은 ‘파동’ 계열의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상대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 즈음하여, 내가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멀티 마법사라는 소문이 났고.

3차전 상대였던 배틀 메이지는 보다 신중하게 내게 접근했다.

물론, 제노스라는 괴물을 코앞에서 경험한 나였기에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런 그에 맞춰 이쪽은 정석 그대로 상대해 줬다.

철저하게 거리를 내어주지 않고, 파동을 이용한 원거리 마법만으로 대전에 임했으니까.

참고로, 파동은 배틀 메이지와 상극이었다.

시야에는 제대로 잡히지도 않으며, 파괴력 하나만큼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동 사이를 헤치고 근접전을 펼쳐야 하는 배틀 메이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승님께 호언장담한 대로 10초 승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내 4차전 상대는, 예의 그 삭막했던 녀석.

분명 모래의 마법사로 유명한 크로커 가문의 차남이라고 했던가?

“안녕? 일전에 한번 봤지?”

움찔.

허나, 정작 녀석과 다시 마주한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너… 그때 그 녀석 맞아?”

같은 사람이 만나 싶을 정도로 상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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