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관심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염화, 초월, 빙결을 위시한 주최 측 열두 마탑주는 물론이고, 각국의 수많은 고위 인사들까지.
지닌바 지위는 제각각이나, 지금 이 순간 그들 모두가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요. 저희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거겠죠.”
십이지왕 중 비교적 젊은 두 수장.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의 말을, 재생의 마탑주 스실라가 받았다.
현재 두 사람의 얼굴은,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사람처럼 충격으로 가득했다.
입으로는 연신 방금 있었던 대전을 분석하면서.
“마법사가 방금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려면, 최소 2가지 보조 마법을 동시에 제 몸에 중첩시킬 수 있어야 해. 물론, 그건 나와 같은 배틀 메이지들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하지만 막상 승부는 저기 계신 트라오레 가문의 자제분과 똑같은 파동의 마력으로 결정지었죠.”
“다시 말해, 최소 보조 마법과 파동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트리플 캐스터라는 건데.”
“실로 어마어마한 재능이에요. 더군다나 파동을 파동으로 밀어낸다는 그 과감한 결단력은, 도무지 저 나이로 생각할 수조차 없구요.”
칭찬을 넘어선 극찬이었으나, 이번에는 로마르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은 여기에도 있잖아.”
“네? 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여인, 스실라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페르?”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에 웬 꼬마가 하나 앉아 있었다.
외형은 어린아이이나 알맹이는 반백을 훌쩍 넘긴 존재.
이들과 같은 열두 마탑주 중 하나, 아타락시아 페르잔이었다.
“…….”
허나, 정작 시선을 받은 그는 다른 일로 골똘히 상념에 빠져 있었으니.
“페르. 제 말 듣고 있나요?”
“아, 나 불렀어?”
“…아까부터 좀 이상하시네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
“……?”
고개를 갸웃하는 스실라를 향해 아타락시아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신경 쓸 것 없다고. 그보다, 저 녀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가?”
“네.”
“쟤, 나랑 같은 부류야.”
“같은 부류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친구가 그러더라고. 저 평범해 보이는 놈이 후천적 마나 각성자라나 뭐라나.”
“……!”
“보니까 주력도 이쪽 계열이네.”
그 충격적인 발언에, 관심 없는 척 귀를 기울이던 다른 탑주들조차 두 눈을 부릅떴다.
전투 능력만 따지면, 여기 있는 십이지왕들 중에서도 능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그였으니까.
더군다나, ‘초월’이라는 주력은 현재 대륙에서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유일무이했다.
“저, 정말요?”
“아마도?”
“세상에…….”
토끼 눈을 뜬 채 멍하니 입을 벌리는 그녀와는 별개로.
일국의 고위 관계자들 또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저 아이, 정체가 뭐야?”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자유 연합 소속이라고 합니다.”
“집단 말고, 국적이랑 가문은?”
“아직까지는 밝혀진 바가 없는 듯합니다.”
“은밀하게 한번 알아봐.”
“그 말씀은…?”
“돈이든 작위든 마법사들이 환장을 하는 아티팩트든, 뭐라도 좋으니까 한번 꼬드겨 보라고. 혹시 또 모르잖아.”
“명 받들겠습니다.”
각국 고위 인사들 주변으로 이런 분위기가 점차 팽배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물론, ‘제국’ 또한.
“저 녀석…….”
무려 황제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초거물급 인사가 중앙 연무장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제국에서도 가장 고귀한 피를 지녔으며.
신분을 떠나서도, 일국 제일의 지략가라 불리는 존재.
그런 대단한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 있었던가?”
***
파동의 마나는 이미 가공된 힘을 또 한 번 재가공하여 이용해야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그만큼 다루기가 까다롭고, 마나 또한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써클당 만들어낼 수 있는 파동의 최대 한계치가 1개라는 점만 봐도,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물론 개수와는 별개로 써클이 올라갈수록 파동의 위력은 천차만별이었다.
이 분야의 대가라 불리는 트라오레 후작은 마나를 이용해 바다의 해일도 일으켰으며.
작게는, 원거리에서 적의 몸속 ‘수분’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지만, 나 자신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아이리스의 두 번째 조각을 미리 해방시키지 않았다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이렇게 되면, 세 번째부터는 또 어떤 지식들이 잠들어 있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
“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순간 지금 막 연무장 아래로 내려서는 나를 향해 유리나가 물었다.
“뭐가.”
“고작 낙제생 주제에, 아카데미 때보다 더한 괴물이 되었잖아?”
“나 대단한 거 이제 알았냐?”
“그건 모르겠고, 확신은 드네.”
“……?”
“네 주력은 역시 불꽃도 파동도 아니었어. ‘초월’이지.”
“…….”
“표정 뭔데. 왜, 아니라고 하게? 건너 들은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성격만 봐도 그래. 고작 친우의 제자라는 이유로, 그 괴팍한 인간이 너를 거들떠나 봤겠냐? 똑같은 후천적 마법사에 똑같은 주력. 그러니까 만나준 거겠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했지만, 이런들 또 어떠하리.
“뭐, 그렇다고 치자.”
“엥? 뭐냐, 묘하게 사람 열 받게 만드는 그 반응은?”
“오해야. 내가 지금 정신이 좀 없거든. 그럼 이만.”
상대가 무어라 생각하든, 나는 여기서 노닥거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꽤나 거창한 데뷔전을 치러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하여, 나는 곧장 숙소로 발길을 돌리려 했다.
“야! 내 시합은 안 보고 갈 거냐?”
“어차피 네가 이길 건데 뭘.”
“어?”
“아니야?”
찰나 움직임을 멈춘 유리나가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맞지.”
“그치? 간다.”
“분명 맞기는 한데… 기분은 영 좋지가 않네.”
“엉?”
“그냥 그렇다고.”
직후 ‘팩’ 하고 고개를 돌린 유리나가 도리어 내게서 먼저 멀어져 갔다.
“쟤 왜 저래?”
허나,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
한편, 같은 시각.
또 다른 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제10마탑, G조 1차전.
개막전만 아니었다면, 뭇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을 전투가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후우…….”
그 당사자인 3써클 마스터, 타바코가 ‘꿀렁’ 마른침을 삼켰다.
맞은편에는 한 자루의 무기가 이쪽을 겨눈 채였다.
“…씨발.”
그건 기마병들이나 쓸 법한 ‘창’이었다.
평소였다면 코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둔해 빠진 장병기 말이다.
실상 거리만 내어주지 않으면 기마병 따위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으며.
만에 하나 접근을 허용하더라도, 창은 그 크기만큼이나 느려 터져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쥔 ‘상대’였다.
“와라!”
순간 눈앞의 잘생긴 청년을 향해 타바코가 도발적으로 외쳤다.
소문에, 그의 움직임은 어지간한 기사를 방불케 한다고 했다.
일단 대전이 시작되면 마법을 캐스팅할 틈조차 주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 실력으로 어설프게 피하는 건 무리다. 하니, 내가 잘하는 걸 하자. 막아내는 거야. 더도 말고, 처음 공격 딱 한 번만.’
회피도 불가능.
선제 공격도 불가능.
그런 거라면 주력을 살려 공격을 막아낸다.
‘최선의 공격은 방어다’라는 말이 있듯.
최초 내질러지는 저 창을 막아내고 빈틈이 생기는 그때, 카운터를 노리는 거다.
자신은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대륙 제일의 ‘쉴더’를 꿈꾸는 마법사였으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투-확!
“……!”
상대는 그런 타바코의 예상을 산산이 깨부수었다.
배틀 메이지니까 창을 쥐고 돌격해 올 거라고?
아니!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녀석은 그저 손에 쥔 창을 집어 던졌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액!
“…이까짓 거!”
마나로 만들어진 창이 낭창이며 쇄도해 왔다.
일견 보기에도 패악적이며.
마스터의 그것처럼 무수한 잔영까지 만들어내는 실로 괴랄한 창이었다.
허나, 어설프게 물러서지는 않겠다.
이만한 위력을 가진 창이라면, 분명 대부분의 마나가 고갈되었을 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파스스.
“……!”
순식간에 접근한 창이, 마침내 두터운 쉴드를 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그 모든 감각이 ‘실제’라고 말해주던 창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바스라졌으니까.
실을 감춘 허.
다시 말해, 허상이다.
주르륵.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목덜미에 드리워진 서늘한 감촉이 말해준다.
‘진짜’는 뒤에 있다고.
“져, 졌다.”
결국 타바코는 빠르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상대.
대륙 제일의 괴물, 제노스 델 카이클은 그만큼 ‘격’이 다른 존재였으니까.
휘리릭.
“…수고하셨습니다.”
곧장 창을 거둔 제노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비교적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끈 G조 1차전은, 개막전만큼이나 허무하고도 압도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아니, 따라오지 못했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귀찮은 일을 피하고자 탑을 가장 먼저 떠났다.
그 뒤로도 인적이 드문 길만을 골라 움직였으니까.
마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는, 인비저빌리티를 시전할 정도로 세심한 노력까지 기울였다.
한데도,
스르륵.
“…….”
내 눈이 점차 깊게 침체되어 갔다.
꼬리가 붙었다.
그것도 최소 열 이상은 되는 꼬리가.
문제는, 그중 하나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라는 사실이었다.
“설마 해묵은 앙갚음이나 하시자고 제 뒤를 쫓는 건 아니실 테고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9상업지구 인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황자께서 제게는 무슨 볼일이신지요?”
내 물음에, 2황자 스노비 벨 그레이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 목숨을 취하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
“……?”
자연스레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무엇이?”
“황자께서 존칭을 쓰실 만한 분이라면, 저로서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호오?”
“저는 그분께 딱히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이어지는 내 말에, 스노비 2황자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물론이지.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다.”
“……!”
농담하는 건가?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륙의 정점.
한데, 그런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니.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너뿐만 아니라 그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대체 그게 누구이기에…….”
“그는 내 동료이기도 하다.”
“……!”
자연히 마음속으로 경계심이 떠올랐다.
나를 죽이고자 하는 이와 한통속이라고?
이 말인즉, 상대 역시 좋지 않은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뜻이 아닌가.
“괜찮다. 나는 그와 생각이 조금 다르니까.”
“……?”
“제안을 하나 하겠다.”
밑도 끝도 없는 황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재차 귀청을 때리는 그의 목소리는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 상황에 무슨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테라의 운명을 네게 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