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개막전(3)
개막전 당일.
모든 마법 대전은 각 마탑 내부에서 치러졌다.
가로세로 길이가 무려 50m에 이르는 대연무장.
그것이 6개까지도 들어설 수 있는 층의 넓이가 내부 진행을 가능토록 만들었다.
하여, 주최 측은 아예 3층과 4층 전체를 마법 대전을 위한 공간으로 준비해 둔 상태였다.
3층은 대전장으로.
4층은 층간 바닥을 허물어,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관중석으로.
그리고 그 개막전이 예정된, 제1마탑 3층.
“보물이 뭔지는 알아봤어?”
한쪽 구석에서 드락서스가 물었다.
“10대 보물 중 마법사와 관련된 아티팩트는 총 5개야.”
“근데?”
“그중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보물은 단 두 개뿐이고.”
퍼석한 피부와 더불어, 일견 삭막해 보이기까지 한 동료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나는 무려 드래곤의 지식이 잠들어 있다 알려진 미친 목걸이지만… 그걸 소지하고 있던 대지의 마법사가 죽었으니, 이제는 신도 그 행방을 알 길이 없지. 이미 그와 함께 지저 세계로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랜달의 팔찌야.”
“……!”
순간 드락서스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그, 그랜달? 인류 최초의 9써클 대마도사라는 그?”
“응. 죽기 전 그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드락서스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의 힘이 가장 강했던 고대시대.
그 시대에서도 정점에 서 있던 이가, 대마도사 그랜달 테오르니였다.
당대를 살아가는 마법사들에게 있어 그 이름은 이제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샌드! 팔찌와 관련하여 알려진 능력은?”
“믿기지 않게도, 모든 마법의 위력을 본래보다 1써클 가량 더 증폭시켜 준다고 해.”
“……!”
사실이라면, 가히 드래곤의 지식에 필적하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미안한데, 우승은 너한테도 양보 못 하겠다.”
“나도 너라면 상관없어.”
“어? 진짜?”
“친구잖아.”
“…….”
일순간 드락서스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무심코 나온 본심이었는데, 설마 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직후,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져 갔다.
속으로는 자신 또한 아버지만큼이나 친구를 잘 사귀었다고 생각하면서.
“이 짜식…….”
“다만 나는 제노스 델 카이클, 그 괴물이 마음에 걸리네.”
“제노스 델 카이클? 걘 걱정하지 마. 내가 이길 거니까.”
“무슨 자신감이야?”
“녀석은 배틀 메이지잖아. 파동을 주력으로 삼는 나와는 상성이 좋지 않아. 따로 준비한 것도 있고.”
“…….”
전투 마법사가 파동과 상성이 좋지 않았던가?
순간적으로 이런 의문도 들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일 이는 또 아니었기에, 이내 샌드가 양어깨를 으쓱했다.
“다행이네. 문득 든 생각인데, 네 첫 상대가 방금 말을 들었으면 섭섭해 했겠다.”
“내 첫 상대…? 설마 그 평민 놈을 말하는 거야?”
“그리 무시만 하지는 말고, 최소한의 주의는 기울이는 게 좋을 걸.”
“왜?”
“세타라는 그 평민. 시험장에서 마나구를 부수어 버렸다는 소문이 있거든.”
“마나구를 부쉈다고?”
이어지는 샌드의 말에 드락서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구의 내구성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외부적인 충격으로는 흔적조차 나지 않으며, 마력은 최대 7써클까지도 능히 버텨냈다.
결국, 세타라는 그 평민 놈이 7써클 이상의 마력을 지녔거나.
그도 아니면 일반적인 평균을 훌쩍 상회하는 순도 높은 마나를 품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마나구가 불량품이었나 보네.”
그 어느 쪽도 신뢰가 가지 않는 드락서스로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주최 측에서 다시 시험을 치르게 하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럼 1차전에서 나랑은 왜 붙겠냐? 마나만 따지면 최소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윗줄의 실력자라는 건데.”
“뭐…….”
그제야 샌드가 인상을 풀었다.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기는 했지만, 신빙성이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마탑의 영웅 만들기야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시건방진 연놈들한테는 절대로 안 져. 차라리 상대가 제노스 델 카이클이라면 또 모를까.”
“하긴, 우연이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쟈벨린이 죽을 때까지 놀려댈 거야.”
“두고 봐. 초장부터 개 박살을 내줄 테니까.”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본데?”
때마침 중앙에서 개막전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말대로, 꼭 우승해.”
샌드의 응원에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준 드락서스가 이내 중심부를 향해 움직였다.
***
“야.”
멈칫.
지금 막 연무장에 오르려던 나를 유리나가 불러 세웠다.
“왜.”
“이겨라.”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쓸데없는 연애질할 생각하지 말고.”
“…뭐?”
“고위 마법사가 되면, 자연스럽게 애인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다 그러는 거야, 임마.”
일순간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멍청히 서 있자, 유리나가 계속 말을 잇는다.
“크흠, 내가 오해해서 괜히 두 번 상처를 줬을까 봐. 너 말고도 그 나이에 모태솔로는 세상에 넘쳐나니까, 기죽지 말라고.”
“…….”
“또 지고 나서 나 때문이라느니 하는 핑계도 대지 말고.”
어딘가 익숙하다고 했더니…….
이내 아카데미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내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을 믿냐? 너도 머리털 빠지고 혼자 살겠네. 라이언 테일러 선생님처럼.”
“진짜 죽을래? 누굴 누구랑 비교해?”
“큭큭… 아무튼, 걱정해 줘서 고맙다. 그럼 이만.”
“자, 잠깐!”
말할까, 말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뭣 마려운 표정을 짓고 있던 유리나가 이내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댄다.
“야, 세타.”
“말해. 듣고 있으니까.”
“…그때 내가 얘기했지? 마탑의 제안을 거부했다가 피를 본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고.”
“아, 그랬지.”
“그거 내 할아버지 얘기야.”
“…어?”
이건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자연스레 눈이 크게 뜨여졌다.
“네 할아버지라면… 전대 불꽃의 마법사?”
“혹여나 고위 관계자의 눈에 띄더라도, 어지간하면 돌려서 말 잘하라고.”
“…….”
“뭐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나에 대한 걱정과 신뢰가 방금의 한마디에서 모두 느껴졌으니까.
자연스레 내 입가가 완연한 호선을 그렸다.
“잘하고 올게.”
“당연히 그러셔야지.”
그와는 반대로, 시크하게 대꾸하는 유리나의 귀는 언젠가부터 붉게 변해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나가 가득 담긴 사회자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텅 빈 대연무장 위에 덩그러니 서 마주하고 있는 나와 상대.
그리고 그런 우리를 내려다보는 무수한 시선들.
곳곳에 박힌 라이트 구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물속에라도 들어온 듯, 청각은 하염없이 웅웅거렸다.
그리고,
“제14회 마법 대전, 그 역사 깊은 개막전을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성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이런 자리는 처음인지, 상대 또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 바로 간다.”
그 최초의 감정을 떨쳐 내려는 양, 녀석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리곤 외부로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써클을 휘돌렸다.
곧 푸른 마나가 분출되고.
그 마나는 이내 공간마저 일그러뜨렸으며.
삽시간에 호수 위에 떨어진 조약돌처럼 주변을 향해 번져 나갔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감각만으로도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
우웅! 우우우웅!
마나가 물리력을 가진 파동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한 나는 생각했다.
‘총 4개… 아니, 내 등 뒤에서 접근하는 은밀한 기운까지 다섯.’
이만한 에너지를 동시에 다섯까지.
최소 5써클 마스터라는 뜻이다.
“내가 만든 파동은 총 4개. 하나하나가, 바위마저 으스러뜨리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일단 적중당하게 되면, 장기가 통째 사라지는 충격을 받게 될 거야.”
미리 준비된 증폭 마법을 타고 녀석의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졌다.
나만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코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5개를 만들어놓고 4개는 무슨.
하지만, 뒷얘기는 진짜였다.
파동.
물체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에너지.
동대륙에서는 이 힘을 이용하여 ‘발경’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술까지 발명해 냈다고 한다.
직접 당해본 어느 기사는, 창자가 통째 뜯겨 나가는 고통이라고.
내부부터 가해지는 충격은 그만큼이나 위력적이라는 뜻이겠지만…
“뭐, 어쩌라고.”
“……!”
솔직히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접촉과 동시에 내부를 파괴하는 기술.
다르게 얘기하면,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구라는 티 안 나게 쳐야지.”
“헉!”
순간 상대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경지는 5써클 마스터.
즉, 녀석이 만들어낼 수 있는 파동 또한 5개가 최대.
다시 말해, 상대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약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방심이었다.
대게 비슷한 실력자를 상대로, 마법사는 2할의 마나를 숨겨두는 것이 기본이었으니까.
녀석은 그 기본을 무시하고, 가장 크고 위력적인 마법으로 단숨에 나를 제압하려 했다.
이것만큼 멍청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변수에 대응할, 단 한 줌의 마나조차 남겨두지 않았으니.
스팟!
물론 나는 눈앞의 방심을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 무슨…!”
어느새 등 바로 뒤까지 접근한 은밀하기 그지없는 파동의 힘.
나는 망설임 없이 돌아섰고, 그것을 향해 내 고유의 마나를 쏘아 보냈다.
기와 기의 충돌.
결과는, 폭발이다.
펑!
“……!”
폭발이 만들어낸 반발력을 이용해 나는 힘차게 도약했다.
내부로는 심장의 써클을 거세게 휘돌리면서.
“쉽게 가자고.”
“뭣…!”
안에서부터 터뜨리는 파동의 에너지가 있듯.
반대로, 침투 전 외부 단계에서 물리력을 가할 수 있는 파동 또한 존재한다.
충돌 직후 발생하는 강렬한 힘.
나는 그걸 적극 이용할 생각이다.
“미친…!”
상대가 채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전에, 마나를 가득 머금은 내 손이 상대의 신체에 맞닿았다.
여기서 또 한 번.
펑!
“컥!”
내 가벼운 손동작에 상대는 무려 수십 미터나 날아가 처박혔다.
어디로?
딱 연무장 범위를 벗어난, 귀빈석 앞까지.
“…….”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라고는 믿기지 않는 고요한 침묵 속.
“생각보다 위력이 세네…….”
짐짓 크게 중얼거린 나는, 능청스레 토끼 눈을 떴다.
이건 우연이다.
설마 이런 결과가 나타날 거라곤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그렇게 어필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저 높으신 분들의 표정을 보건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빛만으로도 나를 잡아먹을 듯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