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대륙 마법 대전(1)
대륙 마법 대전.
제국이 주최하는 뭇 검사들의 축제이자,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기사 대전과 달리.
한편으로는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 이 이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마법 대전이라는 명칭 자체가, 기사 대전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은 큰 공통점이 있었으니.
일종의 ‘등용문(登龍門)’이었다.
기사 대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
그게 누구든 제국의 자랑스러운 기사가 될 수 있노라.
이것은 무려 황제가 직접 내뱉은 말이었다.
그에 비해 마법 대전은?
‘소속’이 없어야 한다는 제약이 붙기는 하지만, 실력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마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출신 성분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같은 듯 보여도 이 둘은 완전히 달랐다.
제국은 눈치 보지 않고 합법적으로 타국의 인재를 빼앗겠노라 만천하에 천명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에 비해 마탑은,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키겠다는 의지의 피력이었으니까.
요약하자면 마탑에서 주최하는 마법 대전에 참가코자 하는 자는, 소속된 ‘집단’이 없어야만 했다.
출신 국가는 무관했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와 집단은 별개였으니까.
하여, 지금 막 제1마탑에 도착한 이 여인에게는 거리낄 게 없었다.
“지식의 보고, 마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혹, 마법 대전의 참가 희망자십니까?”
“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없네요.”
“내일이 접수 마지막 날이니까요. 접수 첫날인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곳 전체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아하.”
“그럼 간단하게 명부를 작성하겠습니다. 실례지만 혹, 어디서 오셨는지요?”
“일단 테라 왕국 출신이기는 한데요. 제가 떠돌이라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물론 소속된 집단은 없구요.”
‘테라’라는 말에, 접수대에 앉은 사내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저 단순하게 마법 왕국이라는 테라의 명성 탓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문제 있나요?”
“아닙니다. 접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마탑은 최소한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이곳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겸하고 있습니다.”
“아, 알아요. 마나 측정 테스트 말씀하시는 거죠?”
“예. 참고로 올해의 마법 대전은, 이미 실력 있는 분들이 대거 참가를 희망하셨기에, 2써클 마스터 아래의 마법사 분들은 정중하게 접수를 반려시키라는 탑주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그것 마음에 드네요. 어중이떠중이는 탑 차원에서 사전에 자체적으로 걸러내 주신다는 뜻이잖아요?”
“그, 그야…….”
설마하니 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는 듯, 접수대의 사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인임이 분명한 눈앞의 로브인은, 상당히 앳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덥석.
“지금 바로 시작할게요.”
곧 지체 없이 눈앞의 수정구로 손을 뻗은 여인이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일명 마나 측정구로 불리는 이 물건은, 그리 복잡한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사용자의 마나 수준에 따라 단순히 해당하는 색깔을 발현해 내는 게 전부인 도구였으니까.
가령 1써클 마나는 흰색을.
2써클은 노란색.
3써클은 초록색.
4써클은 보라색.
5써클은 푸른색.
6써클 이상은 적색을 띄우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다.
우우웅!
잠시간 공명음을 토해내던 수정구는, 놀랍게도 눈부신 ‘푸른빛’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 정도.”
“헉!”
“…면 되죠?”
이윽고 예의 여인이 로브 아래로 기고만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실력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허나,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얼핏 봐도 접수대 근처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저 고매하신 탑주님들은, 쉬이 참가자들을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여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저 엉덩이 무거운 인간들이 직접 관심을 보이게 만들자고.
마법 대전에서 4강 안에 든 참가자들에게는, 각기 자신들이 원하는 탑주와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원한다면 해당 탑에 소속될 수도 있었고 말이다.
다만, 소위 말하는 3대 마탑은 예외였다.
그곳에 소속될 수 있는 영광은 오직 당해 마법 대전의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만 주어졌으니까.
‘뭐, 어차피 올해 우승자는 나일 테지만.’
그럼에도 여인은 확신했다.
세간에 알려진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이미 대부분 소속된 집단이 있었다.
특히, 5써클 이상 마법사들 중 소속이 없는 이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 마법 대전의 우승자 타이틀은 그녀의 것이 될 거다.
딱히 의심 살 일도 없을 테지.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라는 거지.
초야에 묻혀 있던 마법사가 정체를 숨긴 채, 마법 대전에 참가하는 일은 종종 있어온 일이니까.
그녀의 이름은 유리나 벤 아리에나.
마법 왕국 테라의 최상위 유망주이자,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네 자릿수에 불과한 5써클 마스터였다.
***
테라의 수도 왕궁.
지금은, ‘반군(反軍)’의 본거지가 된 이곳.
오직 국왕만이 앉을 수 있는, 비어 있는 왕좌를 한 사내가 바라본다.
그리곤, 그 상태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제노스.”
“예, 공작님.”
“둘만 있을 때는 아버지라 부르거라.”
“…예, 아버지.”
“참 많이도 돌아왔구나. 저 자리를 위해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나는 대략적인 감조차 잡히질 않아.”
금발에 금안을 가진 제노스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사내가 곧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기기 위해,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
“…원군입니까?”
“아니, 명분이다.”
“…….”
“황자의 암살 미수 사건은 내전의 작은 불씨에 불과했고, 우리 집안의 내력은 그 불씨에 뿌려진 기름이었지. 허나, 그럼에도 명분이 부족하다. 그것이 세간에서 우리를 ‘반군’이라 손가락질하는 이유다.”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가문의 비사를 세상에 낱낱이 알린다면 분명…….”
카이클 공작이 더 듣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그럴 수 없지. 그건 상대의 목을 옥죄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크나큰 치부이기도 하거든.”
“…….”
“또한, 초창기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데에, 간자들의 힘이 컸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
조금만 조사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제국의 간자들은 생각보다 다방면으로 나라에 침투해 있으니까.
제국의 오랜 노력 끝에, 변절한 자들만 수백.
허나, 카이클 공작은 그들 모두를 품에 안았다.
그의 계획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제국파’라는 이름 아래, 간자들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는 기록조차 되지 않지. 아니, 후세에 다시없을 역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
“네 첫째 어미를 가둔 나를 원망하느냐?”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닐 텐데. 그래도 네게는 잘해주지 않았더냐? 하면, 내가 왜 그녀와 결혼하였는지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나만큼은 내 누이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네 첫째 어미는, 현 황제가 보낸 내부의 감시자였으니까.”
상대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마치 독백처럼 중얼거린 카이클 공작이 먼 곳을 바라봤다.
“제노스.”
“예.”
“어차피 3개월 동안 발이 묶이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하니, 너는 이 길로 마탑으로 가거라.”
“…….”
“가서 타국에 보여주거라. 테라에는 큰 문제가 없음을. 지금 이 승기는 제국의 개입으로 이룬 것이 아님을. 그 누구도 허튼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
여전히 말이 없는 상대를 보며 카이클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힘든 부탁을 하여 미안하다. 내전은 최대한 빨리 종식시키도록 내 노력하마. 차후에 변절자들도 확실히 처단할 것이다. 친구들과 오랫동안 싸움을 이어가는 너 또한 마음이 좋지는 않을 테니…….”
허나, 이번에는 제노스에게 반응이 있었다.
특유의 무심한 눈빛으로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제게 친구는 없습니다.”
***
유리나가 테스트를 치르고 있는 순간과 같은 시각.
제1마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제2마탑.
“흐아아아암~”
이곳의 접수대를 맡고 있는 지코는 삭신이 다 쑤셨다.
소위 연구가 취미인 제1마탑의 마법사들과 달리, 제2마탑은 ‘베틀 메이지’의 본고장이라고도 불리는 장소.
개중에서도 치고받는 근접 박투술을 선호하는 지코에게, 접수대 일은 하나의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지루하네. 이 짓거리도 내일이면 끝이기는 하다만…….”
순간, 앉은 채로 엉덩이를 벅벅 긁어대던 지코가 멈칫 했다.
지금 막 탑의 입구를 통해 한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그를 본 순간, 지코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람의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다.
한데 방금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얼굴도 평범, 체격도 평범, 복장도 너무나 평범 그 자체였다.
오늘 길거리에서 마주쳤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할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짐작하건대, 저런 상대에게 재미라고는 쥐뿔도 느낄 수 없었다.
될성부른 떡잎은 겉에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지는 법이니까.
“에휴, 내 팔자야. 어디 다른 인간 없나?”
시선을 돌려봤지만, 탑 내부에 남아 있는 몇몇 이들을 제외하면 접수대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마감일이 코앞이었기에, 찾아오는 이들 자체도 흔치 않았을뿐더러.
차라리 한 명만 독박 쓰고, 교대로 쉬자는 의견에 가장 격렬히 찬성했던 이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으니까.
“이쪽으로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제발.”
속으로 다른 용무가 있어 온 것이기를… 하고 기도해 봤지만, 그 평범한 놈은 역시나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그것도, 그의 눈앞에 있는 수정구에 시선까지 고정한 채로.
“쯧. 마법 대전 때문에 오셨소?”
“아… 네. 여기가 접수대 맞나요?”
“거, 막바지에 좀 쉬려니까 아직도 뒷북을 치시는 분이 계시네.”
“제가 좀 늦었나 보네요.”
“말해 뭐해. 후딱 해치우고 끝냅시다. 근데, 정말로 마법사요? 딱 보니 비리비리한 게 그래 보이기는 하다만…….”
그에 비해 말을 건네는 지코는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할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몸집은 우락부락하고 수염까지 기른 것이, 꼭 한 마리의 멧돼지를 연상케 했으니까.
“마법사니까 여기 왔겠죠?”
“헹, 그러쇼? 어디서 오셨는데?”
“제 행색이 그리 의심스러운가요?”
“아, 오해는 마시고. 그쪽뿐만 아니라, 으레 다른 이들한테도 다 물어보는 거요. 명부를 작성해야 하거든.”
말을 마친 지코가 손안의 두꺼운 양피지 뭉치를 들어 보였다.
“이게 다 올해 마법 대전 참가를 희망하는 마법사들이요. 제2마탑에 접수된 인원만 이 정도지.”
“제가 오해했네요. 저는 자유 연합에서 왔습니다.”
“자유 연합? 국가가 아니라? 그럼 자유 연합 소속이라는 건가?”
지코가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 예의 평범한 외모의 사내가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곳에서 은혜를 입었지만, 소속 마법사는 아니었습니다. 따로 입단 시험을 치른 적이 없거든요.”
“…그럼 뭐, 연합에 딸린 식솔쯤 되신다는 뜻인가?”
말이 식솔이지.
한마디로 하인 정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곧 지코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간혹 이런 놈들이 있다.
아카데미 개 3년이면 지식을 읊는다고, 자신 또한 뭐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녀석.
인생 한 방을 외치며, 혹여나 자신에게도 재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놈.
이미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시도해 보려는 한심한 작자들 말이다.
지코 입장에서야 딱히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 앞에 있는 물건은, 이런 놈들을 위해 준비된 마나 측정 도구였으니까.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걸러졌다.
백이면 백, 반드시.
“바로 해보면 될까요?”
“해보쇼. 몸 안에 있는 마나란 마나는 모조리 쏟아부어야 할 거요. 흰색이나 옅은 노란색이 나오면, 더 대화도 섞지 않고 내보낼 테니.”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짤막하게 대답한 상대가 곧 수정구 위로 손을 가져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코의 얼굴에는 비웃음만이 가득했다.
지금껏 셋 중 두 명 꼴로 이 기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내쫓기곤 했으니까.
더하여, 그 일만큼은 지코를 즐겁게 했다.
간혹 다시 해보면 안 되겠냐며 생떼를 쓰는 이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것은, 요즈음 지코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한데,
우우우우우웅!
“……!”
얼마 지나지 않아 지코는 ‘흡’ 하고 헛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그건 흥미롭게 이쪽을 예의주시하던 다른 몇몇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탑이 만들어낸, 족히 수만 골드를 호가하는 회심의 역작이.
그 단단하기 그지없는 아티팩트가.
쩌적! 쩌저저적!
지금 저 비리비리하기 짝이 없는 사내의 손안에서 천천히 금이 가고 있었으니까.
단언컨대, 이런 현상은 마나 측정 도구를 도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거 듣기로 분명 색깔을 발현한다고 들었는데…….”
“어, 어, 어…?”
멍하니 입을 벌리는 지코를 보며 예의 평범한 사내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그러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혹시 불량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