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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50화 (50/251)

50화. 3년의 다짐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내가 양 발바닥을 맞붙인 요상한 자세로 앉아 있는 이곳은, 자유연합 내에 위치한 소연무장이었다.

‘진짜’ 제자가 되기로 한 이후, 세논 스승님의 가르침은 줄곧 여기서 진행되었는데,

“어쭈, 한숨?”

“아니, 이거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겁니까? 벌써 몇 시간째 명상만 시키시는 거냐구요.”

“불만이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어 보이던가. 너, 연공법 수련 제대로 해본 적 없지?”

해보긴 해봤다.

학장 할아버지는 내게 당신의 연공법마저 아낌없이 베푸셨으니까.

허나, 제대로 운용해 본 적은 없었다.

분명 상품임이 분명한 연공법임에도,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곤 했으니까.

“알진 모르겠다만, 네가 익힌 연공법. 너와는 상성이 좋지 않아. 그것도 상당히.”

“그래서 이런 명상을 시키시는 건 알겠는데요. 라이트면 라이트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라이트가 대체 뭔지 알아야 시도라도 해볼 것 아닙니까? 그냥 연공법의 운용 방법 자체를 가르쳐 주시던가요.”

“그래서 그 방법을 지금 가르치고 있잖아. 이딴 집중력으로 마탑은 지랄. 차라리 똥개 새끼를 데려다 키워도 이것보단 낫겠네.”

순간 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그건 스승님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미친‘개’시라고…….”

나는 봤다.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승님의 이마에 아로새겨지는 희미한 십자 마크를.

“그냥 집어 치워라.”

“…예?”

“지난 일주일간 네놈을 가르치면서 내가 느낀 게 뭔 줄 아냐?”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세논 스승님이 일침을 가했다.

“재능만 믿고 설치는 천둥벌거숭이.”

“…….”

“노력이라고는 쥐뿔도 할 줄 모르는 애송이.”

“…….”

“그 게으르고 나태한 성격부터 고쳐먹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을 거다. 알긴 아냐?”

“…….”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데, 그게 잘못된 건가?’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전생은 무려 ‘드래곤’이 아니던가?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남들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능히 정점을 바라볼 수 있는 압도적인 재능.

“표정 보니 알 만하다. 말해야 내 입만 아프지… 이게 다, 네가 ‘진짜배기’들을 만나보지 않아서 벌어지는 현상이겠지. 상황만 이렇지 않았다면, 진즉 적당한 곳에 던져 놓고 오는 건데…….”

“…스승님께서 착각하고 계신 겁니다.”

“착각은 뭔 놈의 착각?”

“저도 노력하고 있다고요.”

조금은 진지해진 내 표정을, 세논 스승님이 빤히 들여다봤다.

그러기를 잠시.

“지랄.”

“…….”

“진짜 지랄 났네. 노력? 그걸 노력이라고 하면, 네 다른 스승이 해온 일들은? 너, 에이스 녀석 손바닥 본 적 없지?”

있을 리가.

내가 동성애자라도 되지 않는 이상, 다 큰 남정네의 손바닥을 들여다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아. 됐고, 목표한 바를 이루고 싶으면, 죽을 만큼 노력해라.”

“…네.”

“안 그러면 너, 진짜 대륙 어딘가에 파묻힐지도 모른다?”

“…네?”

설마 스승님씩이나 되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건 아닐 테고,

“지금 네 고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거든.”

“……!”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향해 스승님이 재차 물었다.

“이런 초국가적인 혼란기에, 이따위 노력으로 3년을 보낸다고 네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냐?”

그리곤 내 정신을 번쩍 일깨우는 마지막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또 당할 거야?”

“……!”

***

테라의 마법사 아카데미.

현재 그곳엔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방학이 한창이었으니까.

한데,

“갑자기 웬 호출이실까나?”

한 교실만큼은 생도들이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모를 가진 두 소녀가.

“용건이 있으니까 불렀겠지?”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있지. 그것도 꽤나 심각한 문제가.”

실비아의 대답에, 걸터앉은 책상에서 내려서던 유리나가 움찔 몸을 떨었다.

“무슨… 문제?”

“폐하께서 결단을 내리신 모양이거든.”

“구체적으로 말해 봐.”

“설령 짐이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되더라도, 썩은 살을 도려내고 나아갈 것이다.”

“……!”

“이게 오늘 있었던 중앙 회의에서, 국왕 전하가 보인 의지였어.”

“그 말은…?”

실비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최악의 경우 ‘내전’이 발발하겠지.”

“내전…!”

기함한 유리나가 입을 벌렸다.

과거의 테라는 대대로 왕권이 강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욱이 기존의 국왕파니 귀족파니 하는 권력 구도 또한 최근 완전히 재편되었다.

예의 제국의 2황자라는, 스노비 벨 그레이스가 왕궁에 등장하고 나서부터.

백작 이상의 고위급 귀족들은 7할이 친 제국을 외치고 있었고, 오직 그 이하의 중소 귀족들만이 국왕의 의지를 지지하고 있었다.

걔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한 가문을 꼽으라면, 후작가의 양대산맥인 아이작 가(家)와 론지에 가였다.

물론 아직 사견을 내어놓지 않고 있는 3대 공작가의 가주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작 후작과 론지에 후작은 각기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는데.

제국을 따르는 것만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아이작 후작과 달리, 론지에 후작은 대대로 왕가를 섬겨온 공신 가문이자 반 제국파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만에 하나 내전이 발발한다면 나라는 문자 그대로 두 쪽이 날 것이며.

세 공작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판이하게 달라지게 될 것이 자명했는데…….

“너희 집은 당연히 국왕 폐하를 지지하는 쪽이지? 가주님이 그분의 매제시니까.”

“글쎄…….”

참고로 실비아의 세드릭 가문 또한 대표적인 국왕파 가문이었다.

실비아의 친모이기도 한 아이리 공주가, 현 국왕의 여동생이었으니까.

고작 공작가의 여식인 그녀가 왕과 독대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보다, 내 용건은 이거야.”

“어?”

“최근 카이클 공작님이 아리에나 가문에 방문했었다지?”

“……?”

잠시 고민하던 유리나의 머리 위로 이윽고 느낌표가 떠올랐다.

“…아! 그랬었지.”

“뭐라고 하시던데?”

“그야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용건이 있었으니 나야 잘…….”

순간, 말을 잇던 유리나가 멈칫했다.

“…혹,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래.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나는 진짜 모른다니까?”

“…….”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유리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실비아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뭐? 그래, 너 바보 맞다.”

“하?”

“나보다 성적 안 좋잖아.”

“이게 갑자기 왜 시비질…!”

“그러니까 말해 봐. 너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똑똑한 내가 거들어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

찰나 실비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잠시 후.

“…재수 없는 건 여전하네.”

“칭찬 고맙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첩보가 있어.”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좋은 첩보와 안 좋은 첩보가 하나씩 있다… 라는 패턴이 대부분이던데.”

실비아가 긍정의 표시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부터 들을래?”

“좋은 얘기부터.”

“인버스 가문이 국왕 폐하의 뒤에 설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

“오!”

유리나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일단은 아리에나 자작가 또한 세드릭 가문과 같은 국왕파 노선을 타고 있었으니까.

“역시 인버스 공작님은 생각이 제대로 박히신 분이야. 암. 제 정체성을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 또한 없는 법.”

“…….”

허나 그런 그녀와 상반되게, 침묵을 지키는 실비아의 표정은 더없이 나빠졌다.

그러자 유리나도 ‘딱’ 하고 입을 다물었다.

상대의 반응에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니까.

“설마… 아니지?”

유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설마가 맞아.”

“……!”

“절망적인 소식은, 카이클 가문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거야.”

***

테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대전.

설령 집채라도 십수 개는 들어설 수 있을 듯한 그곳 한복판에서, 한 사내가 고개를 조아렸다.

문자 그대로, 온몸으로 존경을 표하면서.

“신, 스노비 벨 그레이스. 지엄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

허나, 정작 인사를 받는 당사자는 무표정했다.

예를 떠나, 자식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심했다.

그럼에도 스노비는 그게 당연하다는 양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근자에 내리신 명에 대한 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일어나 고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스노비가 마치 다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였다.

“폐하께서 예상하신 대로, 그들은 ‘역린’을 품고 있었습니다.”

“……!”

아주 잠깐 일부 귀족들이 술렁였다.

황제는 여전히 무감정한 눈빛으로 스노비를 응시했다.

이제, 무수한 시선들이 그 하나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제국의 뭇 영웅들은 눈빛으로 ‘그게 사실이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음이었다.

실로 살 떨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으나.

“…….”

스노비는 도리어 허리를 더 꼿꼿하게 세웠다.

얕보이면 단숨에 뜯어 먹히는 곳.

그것이 이 나라 제국의 황궁이었으니까.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폐하.”

그때, 제국의 한 귀족이 앞으로 나섰다.

“최근 2황자 전하의 행보로 외부의 시선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조금 더 주의를 살피심이…….”

스르릉.

부지불식간 황제가 검을 뽑았다.

우우웅!

곧 그 위로 오색찬란한 한줄기 빛이 덧씌워졌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오러였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언제부터 제국이 남의 시선을 의식했지?”

“폐, 폐하.”

“내게 나약한 부하는 필요 없다.”

서걱!

“……!”

참격이 공간을 격하고, 나선 귀족의 목을 베어냈다.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 놀라운 무위를 떠나, 인재를 끔찍이 아끼기로 유명한 황제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제 부하를 즉결 처형시킬 줄이야!

“…….”

허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지금 막 목숨을 잃은 에스트 백작은, 이웃 나라 드레이크 왕국의 간자로 꾸준히 의심을 받고 있던 인물.

하여,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 황제께서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허튼 마음을 품지 말라고.

“스노비.”

“예, 폐하.”

“테라보다는 아직 다른 세 왕국이 더 신경 쓰인다. 하니, 그쪽은 이전대로 네게 맡기겠다.”

“…….”

“할 수 있겠지?”

재차 고개를 조아린 스노비가 길게 읍을 했다.

“명만 내려주신다면, 제가 모두 처리하겠나이다.”

“믿겠다.”

***

오늘따라 유난히 밤하늘이 반짝였다.

유리나가 전해온 이야기들은 줄곧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아리에나 영지에서 발견된 시신들.

그건 분명, 예의 두 개의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칠악의 흔적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 있었으니, 학장 할아버지도 반드시 살아 계실 터.

‘…그래도, 아직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내가 당신의 자식임을 천명한 지금은, 그분에 대한 견제가 훨씬 더 심해질 것임을.

내 존재 자체가 그분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하니, 그에 걸맞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제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여, 당당하게 당신의 앞에 서야만 했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나도 진지하게 임해야겠지?”

주변은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오직 귀뚜라미들만이 울어대는 대륙의 중심지에서, 나는 각오를 다 잡았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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