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41화 (41/251)

41화. 수련(1)

이번 사건의 진원지, 아리에나 영지.

“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왕궁이 아니라, 당장에 가문으로 호출된 유리나는 발만 동동 굴려대고 있었다.

“조금 진정하시지요, 아가씨.”

“걔네들,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요. 현 국왕 폐하는,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시하시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칠악이 그곳에서 무슨 꿍꿍이를 품었는지’가 아니라, ‘왜 우리가 그곳에 있었는지’부터 따지고자 하신다면요?”

“걱정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으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치만…….”

“더욱이 제페르 전 가주님이 실비아 양과 함께 가셨으니,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가문 내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온 노집사의 말에, 이내 유리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빠… 크흠. 아버지가 저를 호출하신 이유도 이 일 때문이겠죠?”

“글쎄요.”

“왜 여태 반응이 없으신 걸까요?”

“곧 부르실 겝니다. 아직 먼저 방문하신 손님과 용무가 끝나지 않으셨거든요.”

“손님요?”

똑, 똑, 똑.

때마침, 노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방 안으로 들어선 이는 그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제노스? 쟤가 왜 여기에 있어요?”

“제노스 도련님도 그 손님 중 하나시니까요.”

“그럼 방문한 사람이라는 게…?”

“예. 카이클 공작 각하십니다.”

당황해하던 유리나가 그제야 홱 고개를 돌렸다.

“야, 제노스! 이 시국에 카이클 공작님이 우리 아버지를 왜 만나?”

“그런 걸 나한테 물어봐야…….”

“진짜? 진짜 몰라?”

“…평소 관계가 각별하신 두 분이 만나시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인가?”

“그래서 내가 ‘이 시국’이라고 했잖냐. 더군다나, 폐하께서 중앙의 모든 고위 귀족들을 소집하신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그 일과도 아예 연관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긴 하더라.”

“흐응~?”

상대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까?

어딘가 모르게 심통 맞은 표정을 짓고 있던 유리나가 순간 묘한 콧소리를 냈다.

“입단속 교육을 제법 철저하게 받았나 봐?”

“입단속이 아니라, 정말 모르니까.”

“근데 너 긴장해야겠더라.”

“…긴장?”

고개를 갸웃하는 제노스를 향해, 유리나가 싱긋 미소 지었다.

“내가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건 알지?”

“어. 크리스 형을 구했다지? 안 그래도 아버지께서 칭찬하시더라. 장한 일을 했다고.”

“그런 거 말고.”

“……?”

“내가 거기서 무얼 봤는지 알면, 아마 너도 깜짝 놀랄걸?”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이 나라에, 너를 능가하는 천재가 나타난 것 같거든.”

“그것 참 좋은 소식이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제노스를 보며, 유리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반응 뭔데? 안 궁금해? 그게 누군지?”

“딱히. 나라에 인재가 많아지면, 그것만큼 경사스러운 일도 또 없으니까.”

“…쳇. 재미없는 놈.”

흥미를 잃었는지, 유리나가 곧바로 김빠진 얼굴을 했다.

허나,

“…세타 쿤 이그니스를 말하는 거겠지?”

그런 그녀의 표정은 얼마 가지 않았다.

“오, 뭐야? 관심 없는 척하면서 다 알고 있잖아? 짜식 음흉하긴.”

순식간에 접근한 유리나가 팔꿈치를 이용해 제노스를 마구 찔러댔다.

“나도 듣는 귀가 있으니까. 그 칠악을 상대로 선전했다고…….”

“진짜 대단했다니까? 환수. 그중에서도 화염 계열 마법사로 각성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걔,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더 희귀한 무언가를 주력으로 얻은 게 틀림없어. 그러니 그 수십 년 묵은 마귀들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겠지.”

“…직접 붙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도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마귀들에게.”

“헹. 그러셔? 네가 실제로 보지 않아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그들이 얼마나 어마 무시한 마기를 뿜어대는데?”

“결과는 실제로 붙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럼 내기하자. 난 네가 10분 컷 당한다는데 내 전 재산을 건다.”

이런 가벼운 대화와는 반대로, 가주 집무실 내에서는 썩 심각한 내용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리에나 자작.”

기다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제노스와 무척이나 닮은 분위기를 내풍기는 금발의 미중년이 입을 열었다.

한데, 그 상대.

이 방의 주인인 것이 분명한 적발의 중년 사내는, 어딘지 모르게 병약해 보였다.

낯빛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살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의자에 앉은 그의 하체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다리 쪽은 여전히 반응이 없나?”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까요.”

“포기는 무슨… 왕국의 촉망받는 인재로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자네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야.”

“지나간 과거는 가슴에 묻으라고들 하죠? 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다.”

“고작해야 일개 행정가로서의 삶 말인가?”

“그 일개 행정가가 존재치 않으면, 이 나라 전체가 제 작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로 건넨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카이클 공작님.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혹, 제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

이어지는 적발 사내의 물음에,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카이클 공작이 이윽고 대답한다.

“나와 함께 가지.”

“…일전의 제안입니까?”

“그래.”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공작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걸, 스승님도 허락지 않으실 거구요.”

“상황이 변했지 않나?”

움찔.

순간 작게 몸을 떠는 상대를 보며, 카이클 공작이 계속 말을 잇는다.

“그분은 이미 명을 달리하셨네.”

“……!”

“죽은 이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있나?”

찰나 눈을 크게 뜬 적발 사내가 ‘콰득’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니 살아 계실 겁니다. 반드시.”

“…대륙의 아래. 소위 지저 세계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설령 살아 계신다 해도…….”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

굳은 표정의 적발 사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카이클 공작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유지스.”

“…예, 공작님.”

“네 뜻은 잘 알겠다. 하면 이번에는 제안이 아닌 부탁을 하나 하지.”

“부탁… 말씀이십니까?”

카이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데리고 잠시 이곳에서 피해 있게. 필요하다면 남부의 내 별장이라도 빌려줄 테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곳에서 피해 있다니요?”

멍하니 반문하는 상대를 향해, 카이클 공작이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마친다.

“친우가 크게 다치는 모습. 적어도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아.”

***

나는 지금, 학장실 밑바닥을 뒤지고 있었다.

출입은 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침 방학이라 인적이 없기도 했고.

이곳으로 드나들 수 있는 여분의 열쇠를, 학장 할아버지께서는 항시 내게 맡겨왔으니까.

다만,

“…락 마법?”

유일하게 실금이 간 책상 아래의 대리석 바닥.

그곳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락 마법이 걸려 있었다.

비밀번호는 총 네 자리.

대리석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바닥 위로 떠오르는 숫자들을 맞추어야 락이 풀리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왠지 직감적으로 이 번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203.”

철커덕!

소리 내어 숫자를 누르자, 예상대로 잠금이 해제되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1203.

12월 3일.

그날은, 학장 할아버지와 내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꽈아악.

가까스로 떨어지려는 눈물을 참아낸 내가, 곧장 대리석 바닥을 뜯어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수 년은 족히 버텨낼 수 있을 듯한 금괴가 세 장.

그리고, 내용물을 전혀 알 수 없는 손바닥만 한 아공간 주머니가 하나.

이것들을 꺼내 보기에 앞서, 나는 품 안에서 학장 할아버지가 남긴 푸른 봉투부터 꺼내 보였다.

덥석.

그 안에는, 단 한 장의 양피지가 들어 있었다.

‘세타는 보아라~’로 서두를 시작하는 그 양피지는, 몇 가지 사실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아이리스의 조각에 대한 비밀.

당신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국가 간의 관계.

더 나아가, 세상에 밝혀지면 대륙 전체가 뒤집힐 놀라운 극비 사항들까지.

“……!”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양피지를 모두 읽어 내렸을 때.

부르르르르.

내 전신은, 숨길 수 없는 떨림으로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

스란 공국 수도에 위치한 자유연합 본사.

그곳에서도 두 번째로 높은 인물의 집무실 수정구에서, 실로 오래간만에 반응이 있었다.

반짝, 반짝.

“응?”

지적인 이미지를 더하는 은테 안경에, 금발 머리칼을 깔끔하게 올려 묶은 세실리아가 고개를 갸웃하곤 그쪽으로 다가갔다.

곧 그녀가 마나를 불어넣자, 수정구 위로 익숙하고도 평범한 사내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 너는 분명 아카데미의…?”

- 직통 주파수를 주신 줄 알았는데, 비서실 연락처였던 모양이네요.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려고 하거든요. 한 3일 동안만 그곳 게이트를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제 할 말만 이어가는 예의 사내아이를 보며, 세실리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게이트를 열어달라니?”

- 자유연합쯤 되는 곳이면, 자체 게이트도 하나는 보유하고 있을 거잖아요?

“그, 그렇기는 한데. 나도 이유를 알아야 위쪽에 요청을…….”

순간 더듬더듬 반문하던 세실라아의 표정이 확 하고 밝아졌다.

“…혹시! 일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니?”

- 네. 저 좀 키워주세요.

“어머. 잘 생각했어! 에이스 님이 돌아오시는 즉시 전달할게! 잠시 자리를 비우셨거든.”

-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물론이지. 근데… 이렇게 갑자기 마음먹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세실리아의 물음에, 수정구 너머의 사내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 복수를 해야 하거든요. 겸사겸사 몇 가지 여쭤볼 것도 있고요.

“복수…?”

나직이 중얼거리던 세실리아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동기 부여가 확실하다면, 그만큼 실력도 급성장하게 될 테니까.

상대가 말한 복수를,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좋아. 같이 열심히 해보자! 에이스 님이 말씀하신 네 재능이라면, 아카데미 최상위권도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방학 동안은 이곳에 계속 머무를 거라고 전해드리면 되는 거지?”

세실리아의 예상과는 달리, 상대는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응? 아니라고?”

-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을 때까지. 그러니까, 최소 3년은 연합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3, 3년!?”

이번에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아카데미는, 이제 다니지 않을 생각이거든요.

“……!”

***

구름 한 점 없는 어두운 밤.

사박, 사박, 사박.

극소수만이 존재해야 할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였다.

미리 언질이라도 받은 것일까?

강당의 참사 이후, 경비가 대폭 강화된 아카데미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목표물은?”

“이쪽입니다.”

후미 상급자의 물음에, 앞서 걷던 두 사내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곧 전방에서, 완전히 불이 꺼진 3층짜리 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혹여나 누군가 막을 가능성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관계자들도 대부분 외부로 나간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곳에 남은 건, 그야말로 최소 경비 인원이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미리 매수해 놓은 상태구요.”

“녀석은 분명 남아 있는 거겠지?”

“예. 조사한 바로, 그 아이는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멍청한 놈.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분께 찍히다니…….”

잠시 주변을 살피던 상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진입한다.”

스르륵.

건물에 들어선 직후, 헤매지도 않고 똑바로 3층 복도 끝에 당도한 그들은, 이윽고 한 방문 앞에 섰다.

그리곤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실력이 일정 경지에 오른 그들은 곧 느낄 수 있었다.

비어 있는 침대 반대편으로, 분명히 자리한 하나의 기운을.

“…덮쳐!”

벌컥!

명과 동시에 빠르게 문을 열어젖힌 두 사내가, 잠들어 있던 인영을 이불 채로 들춰 맸다.

“뭐, 뭐야? 당신들 뭔데? 이것 놔. 놓으라고오오오오!”

그리곤, 의미 없는 외침을 뒤로한 채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상대가 목표한 아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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