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수기의 숲(2)
처참했다.
세상에 귀신이 있다면 저런 몰골일까?
머리는 온통 풀어 헤쳐져 산발이었고.
옷가지들은 아래위 할 것 없이 찢어지고, 구멍마저 숭숭 뚫려 있었으며.
예의 도화지를 연상케 하던 그 희고 깨끗하던 피부는 알 수 없는 오물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내 눈앞의 상대가 짐짝처럼 짊어지다시피 한 사내는…
“크리스 론 인버스…?”
왕국 제일의 기재이자 바이커의 친형.
그 정체를 확인한 나는, 기어이 입을 벌리고 말았다.
“너, 세타 쿤 이그니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질문의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는…….”
내 물음에 그제야 무언가가 생각난 듯, 유리나의 얼굴 위로 다급함이 떠올랐다.
“이 사람 좀 맡아줘!”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숲 한복판에서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어. 다른 두 사람이 위험해!”
“……!”
얼떨결에 짐짝(?)을 넘겨받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데스 나이트?
설마 내가 아는 그 마계의 최상위 마물?
“자, 잠깐만!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데스 나이트라니?”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이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마물이라지만, 그 ‘칠악’의 힘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아마도 소환 계열의 네크로맨시겠지.”
역시나 이론 일등인 것일까?
이전부터 느꼈던 바지만, 다방면으로 여러 지식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그녀였다.
허나,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두 사람이 어디 마탑주라도 돼? 혼자 가서 뭘 어쩌겠다고!”
움찔.
현실을 일깨우는 내 말에, 몸을 돌려 나아가던 유리나의 걸음이 비로소 멈춰 세워졌다.
“…혹시 통신용 수정구 가지고 있어?”
“나한테 그런 고급 아티팩트가 있을 리가 없잖아.”
“진짜 미치겠네.”
“그보다 소환 계열의 네크로맨시라니. 설마 언데드 소환술사를 말하는 거야?”
“…식탐의 주인이야.”
“식탐의 주인…? 다른 칠악이 또 나타났다고!?”
내 놀라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 전 강당에서 참사를 일으켰던 둘은, 분명 ‘시기’와 ‘나태’라고 했으니까.
한데 이번에는 식탐이라니.
이렇게 되면, 한 공간에 무려 칠악 중 셋이 나타났다는 의미가 된다.
가히 일개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한데, 왜일까.
“칠악은 저들이 원하는 것이 있는 장소라면, 설령 제국의 황궁이라도 침입한다고 알려진 집단이야. 아마도 이곳에, 저들이 원하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겠지.”
“…….”
유리나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뒷말은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이유를 알 수 없게도.
“거기가 어디야?”
“…어…?”
“어디냐고!”
“……!”
상대를 향해 윽박지르는 내 눈은, 어느새 속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분노로 인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
쩡! 쩡! 쩌어어어엉!
새까만 흑검이 허공을 가른다.
머리와 손목, 심장 따위와 같은,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리며 찌르고 베어 온다.
일 합.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이 합.
“…큭.”
공세가 이어질수록, 그것을 막아내는 루나는 답답함만이 가중되었다.
지금의 그녀로서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까마득한 벽.
이것이 ‘마스터’였다.
하물며 체력 또한 무한대인, 지치지도 않는 최악의 상대.
그럼에도 루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몸을 돌려 도망친다면, 그 이후의 일은…
까득.
작게 이를 간 루나가, 불길한 상상을 떨쳐 내곤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곳에, 실비아가 숨을 헐떡이며 널브러져 있었다.
마나 탈진 현상.
단기간에 고써클의 마법을 삼중, 사중으로 쏟아부은 행동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그 결과, 루나는 잠시나마 데스 나이트와 대등하게 검을 겨룰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
그녀는 안다.
지금 육체에 걸려 있는 갖가지 보조 마법은, 곧 그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당초 지금 실비아의 실력으로는 최대치가 3분인 지속 마법들이었다.
그걸 무려 5분 이상이나 끌어 왔으니.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정진하여, ‘단계의 벽’을 뛰어 넘었더라면…….”
이런 가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역시, 루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었으니까.
그건 한 사람의 일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막아낸다.”
슈가아아아아악!
순간, 루나의 전면에서 반월형의 검기가 쇄도해 왔다.
공간을 격하고 ‘기’를 쏘아 보내는 신위는, 오직 마스터만의 전유물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물이 가진 육신의 원주인 또한 그 경지에 올라섰다는 의미일 터.
스팟!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야말로 작정을 했는지, 반월 뒤에 몸을 숨긴 데스 나이트가 땅을 박찼다.
검기를 막아내든, 그것을 흘리든.
그 직후에는 저 무시무시한 흑검이 날아들 것이다.
일 초를 다시 수십 등분으로 쪼갠 찰나의 찰나.
마치 주마등처럼, 루나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때,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이런 개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토록 갈망하던 단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덧없군.’
쐐액! 꽈아아아아앙!
검기를 후려쳤는데, 마치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으로, 루나는 기운을 다했다.
문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은 혼신의 일격이었기에,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부르르르르.
그 반증으로, 검을 쥔 두 팔은 쉼 없이 떨려대고 있었으니…
“…….”
루나는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다.
비록 의미 없는 개죽음일지라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깜깜한 어둠으로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평소 그녀가 생각해 오던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기사라함은, 죽어서도 제 목을 벤 상대는 똑똑히 기억해야 했으니까.
‘그게 이런 마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쩔그럭.
곧 눈앞으로 들이닥친 마물이 팔을 추켜올렸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그 검을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터엉!
“……?”
이윽고 흑검이 루나의 육신을 반으로 갈라놓기 직전, 거짓말처럼 데스 나이트가 움직임을 멈췄다.
더 나아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새빨간 두 눈두덩이는, 어느새 빛을 잃고 꺼져 가고 있었다.
이건, 술자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일어나는 현상일 터.
“……!”
곧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녀의 감각에, 두 개의.
아니, ‘세 개’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중 하나는, 분명 일전에 그녀 또한 직접 마주한 바 있는 마나였다.
“세타 쿤 이그니스…?”
***
이상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칠악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내면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때야 일시적인 착각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식탐의 죄악…….”
내 뒤로, 배경들이 빠르게 뒤바뀌어 갔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광풍에, 산천초목들이 놀라 출렁였다.
어느새 유리나는 저만치 멀어져 보이지도 않았다.
‘무슨 놈의 속도가…!’라고 소리치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으니까.
“…분명 ‘럼프(Lump)’라는 이름이었지?
”
순간,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허나,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인 양 매일같이 꿔대던 그 꿈.
그것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홱.
발은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내 시선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어느새 두 시야는 한 마리의 매라도 된 것마냥 활짝 트여져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강대한 두 개의 힘이 느껴졌다.
“…….”
그럼에도, 그쪽은 깔끔히 무시하고 눈을 감는다.
시야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에 몸을 맡긴다.
주변의 기운 그 자체를 느끼는 거다.
저 멀리, 뒤쪽의 기운이 둘.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희미한 기운이 하나.
예의 쉼 없이 충돌하는 커다란 두 개의 기운까지.
허나, 내가 찾는 건 거기에 있지 않았다.
보다 은밀하고 불쾌한.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 어색하고 이질적인 기운을 찾아내는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이윽고 눈꺼풀을 들어 올린 나는, 특정 장소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눈은 마치 파충류의 것을 연상케 하고 있었으나,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오직 시야가 닿는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암석 더미였다.
커다란 바위 여러 개가 쌓여 마치 코끼리를 방불케 하는.
한데도, 그것을 발견한 나는 심장의 써클을 활짝 개방했다.
휘오오오오오!
곧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이내 미증유의 힘이 내 손바닥 끝으로 모여들었다.
곧이어 나는 그것을 정확히 암석 더미 방향으로 겨누었다.
예의 코끼리 바위의 ‘머리’ 부분을 향해서.
퍼어어엉!
미리 메모라이즈 해둔 마법이, 마침내 내 손바닥을 타고 쏘아져 나갔다.
압축된 마나는, 말 그대로 공간을 짓이겨 놓았다.
주변의 대기를 통째 터뜨려 버리는 마법, 윈드 붐.
고작 2클래스 마법에 불과했으나, 불가사의하게도 내 바람 계열 마법은 그 위력이 남달랐다.
풀썩!
곧 육중한 무게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머리 쪽의 바위가 지면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곤, 연이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저, 저게 뭐야?”
뒤늦게 당도한 유리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짐짝은 어디 내팽개치고 왔냐고 묻고 싶었으나, 구태여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낼름.
지금 눈앞에 있는.
족히 제 팔뚝만 한 길이의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아대고 있는 덩어리는, 쉬이 한눈을 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어린 일족을 집어삼킨 놈. 최초의 용살자.”
움찔.
내 마나를 느낀 것인지, 덩어리가 곧장 반응했다.
- 호오? 이런 오지에도 내 존재를 눈치챌 수 있는 존재가 있던가?
마치 머릿속에 직접 대고 말하는 듯, 웅웅 대는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 하기야 안다고 달라질 게 있겠냐만은…….
“무슨 뜻이지?”
- 키히히히히. 무슨 뜻이긴. 너 따위로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지.
스아아아아아!
“……!”
그 말과 동시에, 강대한 무형의 힘이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대지가 검게 물든다.
생기로 가득하던 산천초목들이 색을 잃고 시들어 갔다.
암흑 필드.
특정 공간을, 마계의 환경과 똑같이 만드는 칠죄종 고유의 힘.
파르르르르.
유리나의 몸이 거세게 경련을 일으킨다.
더 나아가, 새하얀 흰자위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어지간한 인간들은 감히 마주 볼 수조차 없는 힘.
그래.
저게 ‘진짜’였다.
고작 흉내나 내는, 사역마 따위가 아니라.
“이쪽은 실체가 직접 나선 거였나…? 이제야 갑작스러운 그 감정도 이해가 되는군.”
- 너… 어떻게 인간이 죄악의 힘을 버티는 거지? 그것도 나 럼프의…….
“럼프? 네 진실 된 이름은 따로 있을 텐데?”
- ……!
크게 동요하는 상대의 기색이 느껴졌다.
이왕 내친걸음.
생각과 동시에, 내 입은 상대의 진짜 이름을 내뱉는다.
칠죄종의 일인.
드넓은 마계의 일곱 지배자 중 하나인, 녀석의 이름을.
“벨제바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