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매의 눈(2)
루나 틴 론지에.
이 이름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계기는, 무려 ‘제국’의 관심을 받아서였다.
달리 마법 명문이라고 불리는 테라 왕국이다.
오직 마법만을 최고로 치며, 그 외의 분야들은 잡스럽다며 하찮게 여기는 곳.
마법 만능주의.
기사들의 볼모지.
검사의 무덤.
이 모두가 테라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나라는 매해 실력 있는 마법사 유망주들은 배출해 내면서, 기사 유망주는 단 한 사람도 배출해 내지 못했다.
장장 수십 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던 차에, 근래에 들어서야 혜성같이 등장한 한 명이 여인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론지에 후작가의 셋째인, 루나 틴 론지에였다.
마법의 쓰임새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론지에 가문은, 마법을 이용한 정보 산업으로 크게 번영을 이룬 곳이었다.
기본적인 토대는 어디까지나 마법에 있었기에, 가문 내에서 검술 따위에 관심을 가지는 루나는 천덕꾸러기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가문에서.
아니, 마법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멸시하는 이 나라에서 인정받게 되는 대사건이 있었으니.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
그녀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황제’였다.
제국의 일인지상.
명실상부 대륙의 정점에 오른 사내.
기사의 나라답게, 제국은 3년마다 ‘무술 대전’을 개최해 왔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 호성적을 거둔 이는, 제국의 이름으로 큰 상을 내렸다.
그 상에는 영지와 작위도 포함되었기에, 평민조차도 실력만 있다면 단번에 제국의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
불과 열일곱의 나이로 유망주 급 국가 대항전에 참가한 루나 틴 론지에가 거둔 성적이 무려 ‘4강’이었다.
아쉽게 준결승전에서, 당시 대항전의 우승자였던 제국 최고의 유망주를 만나 패하고 말았지만, 그 이야기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길이 화자가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꺾은 상대들 중에는, 가히 제국에서조차 명문가라 손꼽히는 집안의 자제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황제가 직접 나서 귀화를 권유했겠는가.
“다시 묻겠다. 세타 쿤 이그니스. 무엇을, 얼마나 더 알고 있는 거냐?”
“음…….”
마땅히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상대가 그 루나 틴 론지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으니까.
참사가 일어났던 아카데미의 강당에서 기괴한 고양이 가면을 쓴 무리가 내 시야에 잡힌 것도.
그중 한 사람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여기 왕궁 한가운데에서 맞닥뜨린 일도.
왕 바로 옆에서 소곤거리던 그 한 사람이 실은 공주였다는 엄청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전부 우연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전후 정황이 이러한데 이 정도 추측도 하지 못하고서야 말이 되겠는가?
명색이 왕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테라 아카데미 생도인데.
솔직히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내가 왜 이런 추궁 아닌 추궁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가?”
“……?”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잖아. 그쪽.”
내 말에 찰나 멈칫한 상대가 이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지?”
“지금은 정체를 숨겨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 그저 공주님의 호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써오던 것이 습관이 되었을 뿐.”
이윽고 말을 마친 그녀가 그대로 가면을 벗어젖혔다.
그러자 상당한 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흑요석을 그대로 때려다 박은 듯한 두 눈동자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릿결.
유일한 단점이라면, 그 새까만 눈동자에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내 손으로 직접 시험해 보면 되겠군.”
“엉? 시험?”
“세타 쿤 이그니스. 대련 삼아 나와 한번 겨뤄보자.”
“……!”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여졌다.
아니, 갑자기 말이 왜 그렇게 되는데?
“자, 잠깐.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의뢰라는 것 말인가?”
“어! 착각하나 본데, 나는 손님으로 이 자리에 온 거거든?”
“사실이다만. 의뢰를 하는 것이야 네 마음이다. 허나,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판단한다.”
“무슨 그런…! 여긴 손님 대우가 뭐 이래? 사장 어딨어!?”
“이쪽의 대답은 간단하다. 의뢰비는 네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 네가 나를 이긴다면 원하는 정보를 주겠다.”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그녀 본인도 꽤나 양심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 박자 늦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돈은 따로 받지 않겠다.”
“어? 공짜?”
내 반문에, 루나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아티팩트가 있다면 그 또한 이용해도 관계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내 신체 중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네 승리다. 이러면 어떤가?”
“진심?”
“진심이다.”
“이래 놓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내 가문을 걸고 맹세하지.”
“그러시다면야.”
기사라는 족속들은 제 목숨보다 명예를 중시했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마나 홀을 휘돌렸다.
발걸음은 지체 없이 뒤로 물리면서.
그 제노스라면 모를까.
기사를 상대로 정면승부는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하군.”
“……!”
허나, 허를 찌르겠다는 내 계획은 곧 산산이 부수어졌다.
이 원리 원칙자에게 으레 있는 방심 따위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상대가 귀신처럼 접근해 왔다.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날래고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볼 내가 아니었다.
“어스 플립!”
“……!”
쩌저저적!
갑작스레 들썩이는 땅거죽에, 상대가 가볍게 비틀거렸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세간에는 화염계 마법사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빛 계열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모두 드러난 마당이니까.
이 정도쯤은 예상 범위 내라는 뜻이겠지.
한데, 내 계획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파이어 볼!”
미리 메모라이즈해 둔 두 번째 마법을 연이어 쏘아 보내자, 그제야 상대의 동공이 잘게 요동쳤다.
“더블 캐스팅…?”
휘리릭!
곧이어, 루나의 몸이 공중에서 급히 회전했다.
이번에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움직임이었다.
제법 큰 동작이었음에도 접근해 오는 속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으니.
타앗!
지면 위로 착지하는 동시에, 상대가 재차 땅을 박차려고 했다.
허나,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미끌.
“……!”
일순간 루나가 ‘흡’ 하고 두 눈을 치켜떴다.
몰래 펼쳐 둔 그리드 마법이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트, 트리플…!”
“아니, 쿼드도 가능한데?”
“……!”
바로 앞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 얼음장 같은 얼굴 위로 쩌저적 금이 간다.
설마하니, 헤이스트를 이용한 내가 이토록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사의 접근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금기를 깨고, 도리어 먼저 다가서는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예상치 못했겠지.
이게 다 또래 중에 괴물 같은 녀석이 있어서 한 수 배워둔 거다.
“내 승리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토끼 눈을 뜬 상대에게 크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딜!”
“……!”
그 와중에도 몸을 한 번 더 비트는 루나의 몸동작은 실로 놀라웠다.
미끄러운 지면이 아닌, 제 왼쪽 발등을 지지대 삼아 또다시 몸을 휘돌리려 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드러난 결과는 나나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끄덩!
“어?”
“에?”
근접전에 익숙지 않은 나는, 내가 펼친 마법에 내가 걸려드는 멍청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말았으니까.
설마하니 이것까진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뜨는 상대의 얼굴이 시야로 들어온다.
곧이어…
덥썩!
무언가 꽉 차는 듯한 손아귀의 감촉과 동시에.
콰당!
내 안면은, 볼썽사납게 흙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
칠악의 이인.
세상에는 시기의 지로시와 나태의 레이지라고 알려진 두 사람이 주변을 둘러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성한 나무밖에 없는 깊은 숲속이었다.
“이 풀떼기밖에 없는 곳에서 장사판을 벌인다는 거지? 아르바스 놈들의 머릿속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이지.”
“왜? 조용하니 딱 좋은데.”
“잠만 퍼질러 자는 너한테나 그렇겠지. 이런 델 누가 알고 와?”
쿵!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지로시가 그 큰 대낫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리곤, 그걸 등받이 삼아 곧장 몸을 기대앉았다.
“킁. 최소 반나절은 남았는데, 뭘 하면서 기다리라는 건지.”
“맨날 피, 피 거리면서 노래만 부르지 말고. 너도 잠이라도 좀 자. 그러니 얼굴이 점점 못생겨지지.”
“너도 그리 이쁜 건 아니거든? 쭈글탱이 할망구 주제에.”
“죽어?”
“흥.”
한차례 콧방귀를 낀 지로시가 팩하고 고개를 돌렸다.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채 그런 그를 바라보던 레이지가 이내 미소 지었다.
“흐응. 네가 제법 흥미를 가질 만한 얘기를 해주려고 했더니. 이리 나온다면 나도 뭐…….”
“뭔 놈의 흥미?”
“아이리스의 조각을 모으고 있는 사람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졌다고 하네?”
벌떡!
거짓말처럼 지로시의 커다란 체구가 일으켜 세워졌다.
“뭣? 그게 누군데?”
“사과부터.”
“그딴 건 나중에 할 테니까…!”
“그럼 나도 말 안 해.”
“크흠. 미, 미안하다.”
“사과가 별로 마음에 안 드네?”
“미안합니다.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우신 나태의 여왕 레이지 님.”
“좀 낫네.”
‘깔깔깔’ 하고 웃음을 터뜨린 레이지가 그제야 나른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설마 구라는 아니지?”
“내가 거짓말을 왜 해? 누구처럼 질 떨어지게.”
“아 좀!”
“흐으응. 마음이야 조금 더 골려주고 싶지만, 이즈음 할까? 곧 리더도 올 테니까.”
“대답은?”
“아즈문 사트리노야.”
순간 지로시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아즈문 사트리노라면… 그 근육질 할방구?”
“아마도 맞을걸?”
왜인지 ‘뿌득’ 이를 가는 지로시를 향해, 레이지가 계속해서 말한다.
“그가 사라진 5조각 중 4조각을 모은 사람이라고 하네. 한데, 이번 아르바스의 경매상에는 아이리스의 마지막 조각이 출품된다지?”
“그러니까, 그 근육 할방구가 이곳에 온다는 뜻인가?”
“가능성은 높지 않을까?”
쩔그럭.
레이지의 대답에, 지로시가 그 큰 대낫을 뽑아 들었다.
“어머. 그 흉측한 걸로 뭘 어쩌려고?”
“내 축제를 망친 놈은 그냥 두지 않아. 그 누구라도.”
“복수?”
“복수라… 그런 고상한 건 잘 모르겠지만…….”
순간 비죽이 미소 지은 지로시의 입가로, 점차 새빨간 무언가가 번져 갔다.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지금 내가, 그 할방구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