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9화 (29/251)

29화. 매의 눈(1)

누군가가 말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라고.

지금의 내가 딱 그랬다.

“네가 누구라고, 애송아?”

“애송이 아니고요. 마법사 아카데미 생도라니까요?”

“그러니까 애송이 맞잖아.”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눈앞의 털복숭이 아저씨가 주변을 둘러본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막 내가 도착한 이 술집은 전체 테이블의 절반 이상이나 들어차 있었다.

그들 모두가, 테라산 특유의 녹맥주까지 손에 쥐고서.

“거, 누구야? 술 마시러 오면서 자식 놈 달고 온 사람이?”

곧 건물 가득 울려 퍼지는 우렁찬 목소리에, 남정네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제파. 네놈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내가 딸딸이 아빠라는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혹시 또 모르지. 술만 취하면 딱따구리가 파놓은 나무 구멍에도 허리를 놀려대는 놈이니…….”

“뭐야! 내가 언제!?”

“너 빼고 다 알걸?”

장소가 장소였으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이런 종류의 농지거리는 기본이었고.

“주인장! 애새끼랑 그만 놀고 여기 안주나 하나 가져다주지?”

“놔둬 봐. 잭스두가 사실은 그쪽(?) 취향이었던 걸지도 모르잖아. 남의 혼삿길 망쳐 놓고 원망이라도 들을 셈이야?”

“엥? 그래서 저 친구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던 거였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차마 듣고 있기 힘든 더러운 음담패설들도 연이어 귀청을 때렸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한 번은 참았다.

지금 아쉬운 건 나였으니까.

“애송아. 여기가 어딘지는 아니?”

“술집이잖아요. 수도 제8구역 32번지에 있는.”

“그래. 방금 네가 얘기한 제8구역 32번지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잘은 모르는데, ‘매의 눈’에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이쪽으로 가라고 하던데요.”

일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뭐라더라. 정보력 하나만 따지면, 매의 눈이야말로 왕국 제일이라던가?”

굳어가던 예의 험상궂은 아저씨의 인상이 그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냐?”

“소문이 그렇던데요.”

“학교에서 애들은 안 가르치고, 그런 헛소리나 떠들고 다닌다는 말이지?”

“학교가 아니라, 말씀하신 ‘애들’한테서 나온 소문이에요. 그거.”

“…그래?”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눈치는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고 아예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거다.

이건 꽤나 신빙성 있는 출처였으니까.

왕국의 내로라하는 귀족가 자제들이 대거 모여 있는 아카데미가 아닌가?

그 귀족들이, 통칭 ‘매의 눈’의 주 고객층이었고 말이다.

“…아무렴, 이런 꼬맹이 혼자 뭘 할 수 있다고…….”

“네?”

“혼잣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너 같은 어린애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야.”

“저 돈 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드르륵.

순간 털복숭이 아저씨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홀 구석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딸딸이 아빠라고 소리치던 예의 그 사내였다.

“잭스두. 언제까지 핏덩이 하나 데리고 그러고 있을 거야? 장사 안 할 거야?”

쿵, 쿵, 쿵.

곧 육중한 땅 울림과 함께, 딸딸이 아저씨가 이쪽으로 다가섰다.

한데, 가까이서 보니 그 위압감이 사뭇 대단했다.

외형만 놓고 보면 꼭 한 마리의 멧돼지를 방불케 했으니까.

이런 아저씨가 나무 앞에서 혼자 그 짓(?)을 하고 있었다고 상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이 애송아.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여긴 너 같은 꼬맹이가 올 만한 곳이 아니라잖아.”

“싫은데요.”

“뭐?”

“과하면 독이 된다고. 젖만 먹어대다 아저씨처럼 되면 어떡해요?”

“크하하하하하!”

당돌한 내 말에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던 한 사내가, 딸딸이 아저씨의 성난 눈초리를 받곤 곧장 입을 다물었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아나…….”

휙!

솥뚜껑만 한 상대의 손이 의미 없이 허공을 갈랐다.

“어쭈. 피해?”

“더 한 것도 할 수 있는데요?”

“뭐?”

우우웅!

나는 구태여 입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한 차례 휘돌린 홀의 마나를, 천천히 하체 아래로 내려 보낸다.

얼굴 변형을 하듯 부드럽게 감싸 안는 것이 아닌, 송곳처럼 그 힘을 발끝으로 집중하면서.

그리고, 상대의 뒤꿈치와 충돌하기 직전에 부드럽게 마나를 뿜어낸다.

한순간 균형을 잃도록, 가볍게 어깨빵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툭. 콰당!

“……!”

놀라 두 눈을 부릅뜬 홀 내의 사내들이 분분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문자 그대로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가 ‘툭’ 하고 어깨를 치니, 멧돼지 한 마리가 ‘픽’ 쓰러진 격이었으니까.

“보통 꼬맹이가 아니었구나.”

“네놈. 혹시 검은 달 쪽에서 온 놈이냐?”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상, 두 발로 걸어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를 산 모양이지만, 구태여 바로 잡을 생각은 없었다.

이런 장소야말로, 힘의 논리가 그 어느 곳보다 지배적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또 있었다.

다 큰 성인 십수 명이 나를 향해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음에도, 딱히 무섭지가 않았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일 대 다수의 싸움을 벌인다면, 마법사인 내게 상당히 불리할 것이 분명함에도.

이유는 단순했다.

‘그날’ 이후,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이고 신체 또한 상당히 가벼워진 느낌이었으니까.

‘해볼까?’

항상 표본이 중요했다.

허나, 몸이라고는 쥐뿔도 쓰지 않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자란 내가 무얼 보고 배웠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있었다.

마법사였으나, 정통 마법사는 아닌 녀석.

오직 선택받은 이들만이 꿈이라도 꿔볼 자격이 주어진다는, 대륙 최고의 ‘배틀 메이지’ 유망주.

‘제노스 델 카이클. 그 녀석의 움직임을 떠올려 보는 거야.’

휙! 휙! 휙!

차례로 주먹 세 개가 내 볼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볍게 몸만 비틀어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낸 결과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내들을 보며, 나는 곧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진짜로 할 수 있으니까.

그저 착각이 아니었으니까.

신이 난 내가, 기세를 타고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리려는 순간.

“그만.”

“……!”

“거기서 조금만 더 행동하면, 당신이 원하는 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재차 홀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내 몸이 그대로 멈춰 섰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내들 또한 움직임을 멈추곤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새까만 고양이 가면을 뒤집어쓴 예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한 이들의 ‘상급자’라는 사실이.

“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저씨들도 됐어요.”

“예?”

“저 사람… 제 손님이에요.”

“……!”

그 순간 사내들의 눈이 이전과는 비할 바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 수 있었다.

바래 마지않던 상황이, 비로소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

“이쪽으로.”

검은 고양이 여인을 따라 후문으로 들어서자, 자그마한 녹색 정원이 나타났다.

이름 모를 넝쿨들로 뒤덮인 담이, 철통같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놀라운 점은,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그 담을 통과하자, 다시 또 커다란 정원이 내 눈앞에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시각을 속이고, 내부의 넓이마저 제어하는 이중 마법.

이만한 범위에, 이 정도나 되는 고위 마법을 펼쳐둘 수 있는 집단이라…….

괜히 왕국 제일의 정보 조직이 아니었다.

“저기.”

“……?”

“그쪽이 그렇게 대단해?”

“…….”

“아니, 아까 보니까 저 아저씨들 전부 그쪽한테는 껌뻑 죽는 것 같길래.”

찰나 침묵을 지키던 검은 고양이 여인이 그제야 짤막하게 대꾸했다.

“…어디서 봤다고 반말?”

“너도 지금 하고 있네. 반말.”

“…이죠?”

“아니 뭐, 딱 보니까 내 또래인 것 같은데…….”

“…….”

“아니면 말고요.”

내 태도가 꽤나 성가셨는지, 앞서 걷던 여인이 몸을 돌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죠?”

“매의 눈 지부 중 하나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는데.”

“있는데는…….”

“요.”

“…정보가 필요하다는 뜻인가요?”

“물론.”

“대가는?”

“이 아가씨도 겉모습으로 사람 판단하네. 나 돈 있다니까?”

짤랑.

쇳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들어 흔들자, 상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정보는?”

“허?”

“뭐?”

‘요’라는 말은 끝끝내 삼키는 것을 보니, 이 얼음장 같은 아가씨도 성질이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물론 이런 모습에 굴할 내가 아니었지만.

“첫째로 칠악 개개의 능력.”

“기본적인 특성이라면 문제없고. 다른 건?”

“둘째는 소위 10보라 불리는 보구들의 정보. 그중에서도 이번 아르바스의 경매상에 출품되는 유물급 보물들을 중심으로.”

“어렵지 않군.”

“마지막으로, 아즈문 사트리노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들.”

멈칫.

말미에 이르러서야 상대의 전신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당신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멍청한 건가?”

“응?”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의뢰를 함부로 하는 거지?”

“그런 의뢰라니?”

“방금 한 말. 특정 세력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얘기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내 어깨가 가볍게 으쓱여졌다.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다른 누구보다 입이 무겁기에 오늘날 매의 눈이 왕국 제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보를 사고파는 영리단체. 수지타산만 맞다면야…….”

“한두 푼에 왔다 갔다 하는 조직이었다면, 내가 말한 매의 눈은 이 자리에 없겠지?”

“…….”

그제야 입을 다무는 상대를 향해, 이내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이유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나도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움찔.

찰나 몸을 떤 상대가 태연하게 내 말을 받아쳤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내가 아무런 믿을 구석도 없이 이런 델 혼자 왔을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물론.”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루나 틴 론지에. 공식적으로는 명실상부 왕실 제4기사단 부단장이자, 둘째 공주님의 개인 호위. 그리고, 이곳 매의 눈 간부잖아?”

쿠구구구구구!

마침내 내가 말을 마치자, 주변으로 싸늘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그 진원지.

예의 검은 고양이 여인의 전신에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온 결과였다.

“…무엇을, 얼마나 더 알고 있는 거지? 세타 쿤 이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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