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포상
“전설?”
실비아의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은 있을 법한 호랑이 어르신.
딱 그런 느낌이랄까?
“들으셨다시피, 저는 후천적 마나 각성자입니다.”
“그런데?”
“저 말고도 한 분 더 계시지 않습니까? ‘주력’에 구애를 받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
예의 호랑이 어르신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네놈이 아타락시아 페르잔과 같은 재능을 타고났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대해 답변드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실로 우습군. 비록 나이는 어려도, 그놈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괴물이다. 한데, 너 따위 하찮은 핏덩이와 비교를 해?”
명백한 무시였다.
하기야,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의 호랑이 어르신 입장에서야 나는, 고작 손자뻘도 되지 않는 일개 아카데미 생도일 테니까.
그렇다고 남 좋은 일은 다 해놓고 이런 취급을 받고 있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면 제가 어떻게 화염계 마법은 물론이고, 지금은 대륙에서 자취를 감춘 빛 계열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건…….”
이번만큼은 상대도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직접 답하고도, 이보다 완벽한 변명거리는 없노라고 나는 확신했다.
지금의 내 상태는, 이것 말고는 현재의 마법 체계로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열두 마탑의 수장 중 하나, 초월의 마법사 아타락시아 페르잔.
그에게 ‘초월’이라는 칭호가 붙게 된 이유는, 순전히 그의 전투방식과 관련이 깊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아타락시아 페르잔 또한 주력이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모든’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 원리는 나도 모른다.
정작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
그가 아니더라도, 제 약점일지 모르는 정보를 세상에 함부로 공개하는 이가 어느 누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그런 특이 체질을 가진 존재가, 한 세대에 둘도 아니고 셋이나 공존할 수 있다고?”
“네? 셋요?”
“믿을 수 없다!”
내 반문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홀로 중얼거리던 노인네가 일갈했다.
이리 설명해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나라고 방법이 있을까.
“그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설명은 다 드렸거든요. 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사실, 내게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의무 따위는 없지 않은가?
내가 구태여 초월의 마법사까지 거론하며 구구절절 얘기들을 늘어놓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로 인해 곤란한 처지를 겪고 있는 학장 할아버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었으니까.
“너는 아직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요. 저는 설명 다 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멈춰라!”
쿠구구구구구구!
“……!”
순간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갑작스레 전신을 옥죄어오는 무형의 기운.
근육이 놀란다.
마나가 움직임을 멈춘다.
그에 따라 내 얼굴도 서서히 굳어갔다.
“이게 무슨…….”
“듣자 하니 네놈은 평민이라지? 감히 귀족을 능멸한 죄는, 이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해도 억울함이 없을 터.”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대체 누가 누구를 능멸했다고?
한데, 이런 내 속내와는 달리 분위기가 요상했다.
도리어 이게 당연하다는 듯,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언반구 대꾸도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유리나만이,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큭…….”
곧 내 잇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일정 경지에 이르면 기운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더니, 직접 당해보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귀족이 뭐라고?
‘감히 시답지도 않은 인간의 잣대를 내게 들이밀다니…….’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예의 그 느낌.
살기가 치밀어 오른다.
당장에 이 압박감을 벗어던지고, 눈앞의 노인네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싶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그 정도 일은 아무것도…
덥썩.
“……!”
순간, 거짓말처럼 치밀어 오르던 살기가 가라앉았다.
어느새 전신을 옥죄던 무형의 기운도 깔끔하게 사라진 뒤였다.
힐끗 시선을 내리자, 무척이나 단단해 보이는 손등이 내 어깨를 살며시 감싸 쥐고 있었다.
“귀족은 아니지만, 제 가족입니다. 제페르 님.”
“아즈문…?”
“보호자가 버젓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토록 아이를 몰아세울 수는 없는 법이지요.”
고약한 노인네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보호자니 가족이니,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지? 설마 이 녀석이 자네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예.”
학장 할아버지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은, 나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면서.
“세타는 제 가족이 맞습니다.”
“사제 간의 관계를 운운하는 것이라면…….”
“아니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재작년부터 공식적으로 제 ‘양아들’이 되었지요.”
“……!”
그 놀라운 얘기에, 나는 그만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
테라의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쪽 숲.
“빌어먹을, 오래간만에 피 맛 좀 진득하니 보는가 했더니…….”
“그만 좀 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이놈의 수장이 문제야. 매사에 너무 신중해. 가끔은 행동을 보여줘야, 우리가 살아 있음을 세상이 알 것 아니야?”
연이어 투덜거리는 지로시를 향해, 레이지가 나른한 표정으로 말한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그놈의 이유가 뭐냐고?”
“아르바스의 경매상에서, 10대 보물 중 하나가 나올 거라는 얘기가 있거든.”
지로시의 안색이 거짓말처럼 일변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응. 그러니 대공도 화가 나지 않겠어? 그토록 찾던 물건이 코앞에 있는데, 너는 엉뚱한 곳에서 이런 영양가 없는 짓이나 해대고 있으니…….”
“당장 가보지.”
제 몸집보다 더 큰 바위 위에 철퍼덕 널브러져 있던 지로시가 곧장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시간 좀 남았거든? 그리고 뒷일은 어쩌게? 그 부학장이라는 사람, 제법 곤란해 보이던데?”
“알게 뭐야? 제가 싼 똥이니, 제가 알아서 치우겠지.”
“진짜 정 없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나긋나긋한 레이지의 목소리에, 지로시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
일대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대학살극이 벌어진 지도 며칠.
그 일로 방학식은 어영부영 끝이 났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마나 겨루기니 하는 애들 재롱잔치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왕국. 아니, 대륙 전체가 그야말로 난리가 났으니까.
칠악이 나타났다는 건,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급력이 있었다.
아카데미를 넘어 왕국 차원에서 사건의 원흉을 조사할 진상단을 파견하는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려 ‘왕궁’으로 호출되었다.
학장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사건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표면적인 이유는 더 큰 피해를 막은 것에 대한 공로 치하라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장 할아버지는 내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했다.
그리고 대망의 당일.
“아카데미의 영웅들이 모두 모였군.”
수많은 가신들이 양옆으로 줄을 잇고 있는 기다란 길의 끝.
척 보기에도 ‘짐이 왕이요’라고 써 붙여 놓은 듯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일행들의 가장 후미에서, 나는 원래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부복하고 있었다.
까딱했다간, 이번에는 왕족모독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으니까.
더러워서 평민은 살 수 있겠나 싶겠지만, 이건 내가 귀족이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라의 정점이었으니까.
곧 자질구레한 인사치레가 끝나고, 이내 개별적인 공로 치하가 이어졌다.
“제노스. 그리고 크리스. 벌써 가문을 통해 들었겠지만, 너희들에게는 분명 마음에 들 만한 포상을 내릴 예정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말로 이미 얘기가 되어 있는지, 두 사람이 가타부타 다른 말없이 깊게 고개를 조아렸다.
“제페르 경도 고생 많으셨소.”
“아닙니다, 폐하.”
“실로 든든하겠군. 손녀가 이토록이나 잘 성장해 주었으니. 왕국을 지탱하는 세 가문 모두 이리 훌륭한 후계들을 두고 있으니, 내 진심으로 질투가 나려고 하오.”
그 말대로, 모아 놓고 보니 3대 공작가의 후계들이었다.
한데, 왜일까?
내뱉는 말과는 달리, 왕이라는 아저씨의 표정이 그리 좋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윽고 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아즈문. 거기 있는 녀석이 소문의 자네 아들인가?”
“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카데미 제일의 꼴통 낙제생이라고 들었는데… 실로 궁금하군. 대체 어느 정도의 잠재력이 있기에, 자네가 그토록 감싸고도는지.”
그러면서 힐끗 옆을 돌아본 그가 소곤거렸다.
“과연, 네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이유가 있었구나.”
“으흠!”
감히 왕의 앞에서, 요상한 고양이 가면을 뒤집어쓴 인영이 짧게 헛기침을 했다.
목소리를 낮춘다곤 했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다 들리는데.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했나?”
“예, 폐하.”
“대충은 들었다. 꽤나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지?”
“아닙니다.”
나는 겸손의 의미로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왕국의 홍복이로군. 이런 인재들이 짐과 함께하고 있으니. 내년의 국가 대항전은 가히 기대가 커.”
“모두 폐하의 은덕이십니다.”
귀족들의 뻔한 반응을 한 귀로 흘린 사내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말이 나온 김에.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기는 하다만, 너는 국가 대항전에 대해 알고 있느냐?”
“국가 대항전… 말씀이십니까?”
“그래. 국가 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매해 행해오고 있는 행사지.”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단순히 친목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작금과 같은 평화기에, 타국의 국력을 짐작하는 데 그보다 좋은 방법도 없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주최가 ‘제국’이 아닙니까?”
“뭐라?”
“여러 왕국들의 기를 죽이는 데 그보다 괜찮은 방법 또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귀족들이 노성을 터뜨렸다.
“감히!”
“저 어린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충분히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으나, 상석의 사내는 진하게 흥미가 동하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만하라.”
“폐, 폐하.”
“제법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구나. 그래. 이미 아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대항전은 성인부와 유망주부로 나뉜다.”
내친걸음, 내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최대 4명까지. 올해부터는 네 옆의 크리스 론 인버스가 나이가 차 빠지게 되면서, 마침 한 자리가 비게 되는 상황이었지. 원래는 아이작 가문의 후계가 참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이작 가문의 후계라면, 스네이크를 말하는 것이리라.
“듣자 하니, 네가 교내 랭킹전에서 그 녀석을 꺾었다지?”
“큭…….”
순간 안전이니 하는 말들을 가장 크게 외쳐 대던 작자가 이를 갈았다.
구태여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저 사람이 아이작 후작이겠지?
“하여, 금번의 네 활약을 감안하여 네게 썩 괜찮은 제안을 하고 싶은데.”
“예?”
“나는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거든.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고요한 침묵 속, 사내가 계속해서 말한다.
“만약 네가 이번 활약에 그치지 않고, 내년의 국가 대항전에서마저 눈에 띄는 호성적을 보여준다면…….”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예의 왕이라는 작자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내 친히 네게 작위를 내리고 싶은데.”
“……!”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귀족들이 놀라 펄쩍 뛸 만큼, 충격적인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읊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