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칠악의 질투
마기(魔氣).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성력(聖力)을 사용한다.
하면 마기는?
단순하게 흑마법사들이 주력으로 삼는 기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흑마법사들이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전제가 되는 조건.
오늘날, ‘흑마법사’라는 이름은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으니까.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스왈로우 제국에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멸마(滅魔) 정책이었다.
마를 멸한다.
이름 그대로, 제국은 마기를 사용하는 이들을 보이는 족족 죽여 없앴다.
감금도 아니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한 즉결처형.
절로 입이 벌어지는 이 강경책으로 정책이 시행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흑마법사들은 완전히 말살되어졌다.
이는, 제국의 눈치만 살피던 각국의 왕들이 적극 협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륙 그 어디에도 흑마법사들이 숨을 곳은 없었으니까.
이에, 위기감을 느낀 마계의 존재들.
그 자존심 강한 일곱 마왕들이, 은밀히 그들의 권속을 중간계로 내려 보냈다.
무려 반세기 이상, 일곱 권속들은 힘을 받들 제물을 찾아 헤맸고.
마침내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존재들을 발견했으니.
그들이 바로 지금의 칠악(七惡)이었다.
“누, 누구…….”
서걱!
강당 주변을 지키던 경비병이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등은 살짝 굽은 듯싶었지만 족히 2미터에 이르는 큰 키는 체구가 주는 위압감을 상쇄시킬 수 없었다.
더욱이 사내가 손에 쥔 그 끔찍한 무기란…
“크크크.”
예의 등이 굽은 사내가 혀를 내밀어 애병의 날을 핥았다.
금세 비릿한 혈향이 입 안 가득 퍼졌지만 사내는 그 또한 즐거웠다.
그건 달리 ‘사신의 낫’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무구도 마찬가지였는지, 날은 금세 피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너도 즐거운 것이냐? 하기야, 이게 얼마 만에 벌이는 외도던가?”
“이 미친…!”
부하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경비대장은 경악했다.
여기가 어디던가?
대테라 왕국의 수도 한복판이다.
그중에서도 보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카데미였고.
판단은 신속했고, 행동은 빨랐다.
“위쪽에 보고해라. 최대한 빨리! 즉각 알람 마법을 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나와 괴인을 막는다!”
“명 받들겠습니다!”
순식간에 일백에 이르는 경비병들이 모여들었다.
과연 정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땡, 땡, 땡, 땡, 땡, 땡!
요란하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등이 굽은 사내가 새빨갛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마기를 끌어 올린다.
뭉클거리며 피어오른 불길한 기운은 코어를 지나 천천히 그의 두 팔을 감싸 안았다.
곧이어…
“시끄럽군.”
스팟!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기다란 은빛의 실선이 그려졌다.
단 한 번의 베기였다.
허나, 허공으로 떠오른 둥그런 물체는 십여 개를 훌쩍 넘었다.
순식간에 무려 절반의 인원이 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경비대장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는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으아아아아악!”
“괴, 괴물!”
혼비백산한 경비병들이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물론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사내가 아니었다.
서걱! 서거거걱!
그는 날만 3미터에 육박하는 초거대 낫을 횡으로 휘둘러 나머지 경비병들마저 모조리 도륙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사내는 거침없이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쾌락에 눈이 멀어 공을 그르칠 수야 없었으니까.
벌컥!
곧장 건물의 출입문을 열어젖히자, 돔형의 계단식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직선의 길 양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알람 마법이 울려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설마하니, 아카데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야 없겠지. 일단은…….”
찰나 말끝을 흐리던 사내가 눈을 빛냈다.
아직도 앞 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그곳.
내부 중앙에, 인질로 삼기 적당한 먹잇감이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소녀는 멍하니 빈 허공만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저게 좋겠군.”
콰아아아아앙!
타이밍 좋게, 후문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 그 또한 일을 시작한 것일 터.
“꺄아아아아아아악!”
쐐애애액!
귀청을 때리는 비명소리와 동시에 사내의 신형이 무대 한복판으로 쇄도했다.
순식간에 그곳에 당도한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목표한 소녀를 붙잡으려 했다.
“……!”
눈만 꿈뻑 뜬 채 제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있는 꼴을 보아하니, 계획은 그대로 성공하는 듯싶었으나…
쩌어어어엉!
“……!”
결과적으로, 목표한 바는 이룰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도 놀랐다.
설마하니, 이런 새파란 애송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막아설 핏덩이는 존재치 않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
상대는 고작해야 약관을 넘기지 않을 듯한 두 사내아이였다.
그것도 둘 다 상당히 잘생긴.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관해서는 썩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던 그는 곧장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군.”
생각은 그리하면서도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감정 그대로, 양 입가로는 비틀린 미소를 한껏 베어 문 채.
***
흠칫.
“왜 그래?”
“아, 아니…….”
유리나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했다는 얘기를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한데, 착각이 아니었다.
쉬이익!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들리지 않을 소음이었다.
허나, 그 소리를 감지한 즉시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바로 인근까지 다가온 녀석처럼.
“……!”
일순간 나와 제노스의 눈이 마주쳤다.
그게 신호였던 것일까?
“비켜!”
“엇…….”
바보 같은 소리를 내는 나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선 제노스가 마나를 뿜어냈다.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전방의 허공을 향해서.
쩌어어어어엉!
“…큭!”
곧이어 마나로 이루어진 칼날과 시꺼먼 대낫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었는지, 제노스의 잇새로 고통 어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호오?”
지금 막 나타난 정체 모를 괴인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재미있군.”
“누구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예의 괴인이 힐끗 유리나 쪽을 바라봤다.
괴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 작은 행동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부르르르.
그가 내뿜는 기운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일까?
유리나의 신형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이래서야 도움은 바랄 수 없다.
더욱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악!”
“……!”
후문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으스러뜨리며 길길이 날뛰는 그것.
크기 5미터에 육박하는 육중한 몸집에, 드래곤을 꼭 닮은 머리를 목 위에 달고 있는 이족의 마물.
언젠가 책으로도 본 적 있는 그 모습에,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리저드 킹…? 어째서 저런 게 아카데미에…….”
“사, 살려줘어어어어!”
“……!”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리저드 킹은 눈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짓이겨 놓았다.
나약한 인간의 육신은 갈가리 찢겨 나갔고.
시뻘건 내장은 삽시간에 강당 내부를 뒤덮었다.
당장 후문 부근이 그러할진대, 비어 있는 정문마저 마물에게서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니.
이곳은 이제 한 폭의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우욱…….”
가장 비위가 약한 유리나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설상가상으로, 점차 내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각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괴인이 내뿜는 기운은, 지금의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가만히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장에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었다.
“나, 나도 도울게…!”
“됐어. 넌 빠져 있어.”
가까스로 입을 연 유리나를 힐끗 돌아본 제노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녀석은 제법 버틸 만한 모양이다.
하기야 그 명성도 자자한 테라 최고의 유망주였으니.
“그래. 너는 빠져 있어. 내가 제노스를 도우면 되니까.”
“너도 빠져!”
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실비아가 무대 아래에서 외쳤다.
“어?”
“어딜 저 써클 화염계 쩌리 따위가. 제노스한테 방해만 된다고! 너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하잖아!”
수준 차이를 거론하는 것이라면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왜 기분이 나쁘지?
내게 일침을 가한 실비아가 곧장 제 주력인 보조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 양옆의 노인과 사내도, 금세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제노스를 거들었다.
“걱정할 것 없어. 우리 할아버지니까!”
“그런 거였어?”
이제야 저 계집애의 자신감을 알 것 같았다.
“너희 둘은 저쪽이나 도와주던지!”
언젠가부터 강당 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마물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얼핏 봤는데, 걔 중에는 학장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실력이 뛰어난 어른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명실공히 아카데미의 2인자인 부학장님도.
‘…그런데 저 노인네는 왜 저렇게 설렁설렁 움직이지?’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으나, 상념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귀찮군. 다 꺼져라!”
후우우웅!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이, 당장이라도 내게 들이닥칠 듯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무슨 놈의 무기가 저따위로 무지막지해?”
“천연으로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입자여.”
내가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제노스는 분주하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영창까지 읊조리면서.
저런 종류의 이동 캐스팅은 타고난 재능이다.
심지어, 영창으로 보아 그 대상이 되는 마법 또한 우라니움 블레이드였으니.
‘…가만. 우라니움 블레이드?’
무언가 이상하다.
인체에 유해한 독성 물질을 한껏 내포하고 있는 우라니움 블레이드는, 경량화 마법을 함께 펼치지 않고서는 결코 들어 올릴 수 없다.
5클래스 마법인 우라니움 블레이드와 2클래스 경량화 마법을 함께 펼쳐 내려면, 유저(User) 수준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고.
최소한 마스터(Master)라면 또 모를까.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쩌엉! 쩌엉! 쩌어어어엉!
내 생각과는 별개로, 제노스가 새로이 등장한 두 조력자와 함께 거칠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처음만 하더라도 가소롭다는 양 받아치던 괴인도 어느새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쪽이 유리한 것은 절대 아닌 듯했지만.
괴인의 정체는 알 수 없어도, 그 실비아의 할아버지를 상대하면서도 꽤나 여유가 있어 보였으니까.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아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
‘그날’과 똑같은 무언가가 내면에서 느껴졌다.
- 상대가 내뿜는 불쾌한 기운은 ‘마기’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와 상성이 되는 기운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최적의 시기를 포착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괴인의 허를 찌르는 거다.
마침내 나는 머릿속에서 그에 합당한 지식을 찾아냈고.
“…대천사가 지닌 깊은 성흔이여…….”
내가 배운 바 없는 영창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