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1화 (22/251)

21화. 얼굴 천재(1)

“혹시 파트너라는 게 저기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유리나가 미치지 않고서야.”

“동감이야. 둘 다 얼굴도 못생긴 데다, 내세울 것도 하나 없는데?”

“없긴 왜 없어? 그래도 바이커 론 인버스는 괜찮지. 가문이 빵빵하잖아. 옆에 있는 애도 과거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 위명도 자자한 후천적 마나 각성자고.”

“엠마. 그리 후한 평가를 내릴 것 같으면, 네가 한번 꼬셔보는 건 어때?”

“응~ 니 남친.”

이런 종류의 얘기들이 연신 내 귀로 아프게 틀어박혔다.

듣자듣자 하니까 저것들이 진짜.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잘생겼지 않았나?”

“……?”

순간 옆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 얼굴 위로 황당함이 깃들었다.

“뭐라고?”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기분 나쁘군.”

“이것도 정상이 아니네.”

“그러니 유리나 벤 아리에나도 내게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니겠어?”

갈수록 태산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대로 두면 끝을 모르고 미쳐 날뛸 것 같아, 나는 짧고 굵직하게 딱 한마디만 내뱉었다.

“너 못생겼어.”

“훗. 그런다고 사실이 달라지는 건…….”

“쥐새끼 닮았다고.”

“…농담이지?”

“진짠데. 하나 더 팩트를 바로 잡자면, 쟤는 네가 아니라 나한테 볼일이 있는 거일걸?”

“…….”

곧바로 입을 다문 바이커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먼젓번에 얘기했었지 않나?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받았다고.”

“그 헛소리가 사실이라고?”

“응.”

“상대는 무려 저기 있는 유리나 벤 아리에나고?”

“그렇지.”

“지랄.”

욕까지 내뱉는 것을 보니, 내 팩트가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자식, 안 믿을 거면 물어보지나 말던가.

꼴사납게 투닥거리는 우리의 행태와는 별개로,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이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리나는 여태 그 모습 그대로였으니.

“…진짠가?”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더 말해 무얼 할까.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자연히 알게 될 텐데.”

“다 좋은데. 네 말마따나 정말로 사실이면 어쩌려고?”

“뭘 어째?”

“너 춤출 줄 모르잖아?”

이번에는 바이커가 내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거절하면 된다느니 하는 그런 멍청한 대답은 하지 마라.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왜?”

“왜긴 왜야. 여자 쪽에서 먼저 춤을 신청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걸 거절하는 건 대단히 큰 실례니까. 기본 소양 아니야?”

여기서 소양이라는 건, 소위 귀족 사회의 예법을 말함이다.

무릇 사내라면, 레이디에게 무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그 웃기지도 않는 예법.

그딴 거 알게 뭐야?

애당초, 나는 완전한 귀족도 아닌데.

“거절한다면?”

“…어디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썩 볼만은 하겠군. 생도들의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강당에 모인 귀족들만 어림잡아 수백은 될 테니…….”

“…하.”

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귀족들에게 찍혀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건,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이 문제는 근본적인 부분부터 집고 가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일단 대화라도 해봐야겠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판단을 마친 나는, 이윽고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꽈악.

순간 유리나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예의 그 녀석을 발견한 직후였다.

서서히 사그라들던 짜증이 다시금 치솟아 올랐음은 덤이다.

‘나 왜 이러지 진짜.’

또래 동급생 하나에게 이토록이나 감정의 변화를 느끼다니!

평소의 자신답지 않았다.

그 대응조차 유치하고 치졸했고.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정작 스스로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냥 이즈음하고, 녀석이 감추려고 하는 비밀을 폭로하는 선에서 끝내 버려?’

상대의 본모습은 오직 자신밖에 몰랐다.

사실 지금도 어떤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마물과도 같았던 ‘그날’의 외형.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짐작 하건데, 아마도 환수류.

그중에서도 불과 관련된 환수 그 자체가 되는, 초 희귀 주력 마법사로 각성했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책들을 뒤져 봐도 그 이상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날의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자연스레 상대의 진짜 얼굴도 생각이 났다.

‘…진짜 짜증나.’

솔직히 말해, 그 얼굴은 유리나의 스타일이기는 했다.

바로 그 부분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였다.

단언컨대, 그녀는 결단코 얼빠는 아니었으니까.

“물어볼 게 있는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선 예의 그 녀석이 무어라 말하려고 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최초에 목적한 대로 골탕 정도는 먹여줘야 성에 찰 것 같았으니까.

마침 타이밍도 좋았으니.

“어쩌라고.”

“응?”

“너한테 볼일 없거든?”

홱.

유리나가 찬바람이 일 정도로 쌩하니 몸을 돌렸다.

완전히 벙찐 얼굴이 된 상대를 뒤로 한 채로.

***

아카데미의 방학식.

자질구레한 인사말과 장기들이 대거 몰려 있는 전반부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그 첫 무대는 바야흐로 생도 무도회.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생도들이 속속들이 무대 위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두 여인이었으니.

“시, 실비아! 혹시 파트너가 없으면 나랑 춤추지 않을래?”

“미안.”

“그럼 나랑은…!”

“마음은 고마운데 진짜 미안해. 이미 파트너가 있어서 말이야.”

뭇 사내들의 대쉬를 연이어 뿌리친 실비아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무대 위 중앙.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 있는 제노스 근처로 여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안 될 걸 알면서도 내심 선택받기를 바라는 거다.

까득.

“건방진 것들…….”

“실비아!”

멈칫.

재차 움직이려던 실비아도, 이번만큼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 네가 어떻게…….”

“레이디 세드릭. 제게 그대와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너… 다 나은 거야?”

“이 정도야 끄떡없지.”

붕대까지 칭칭 휘감은 채 등장한 스네이크를 보며, 마치 똥이라도 씹은 듯한 얼굴이 된 실비아가 황급히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이제 상대는 한낱 낙제생에게마저 패한 머저리가 되었지만.

그 머저리의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왕국의 실세였으니까.

‘적당히 둘러 거절해야겠어.’

판단을 마친 실비아가 이윽고 입을 열려는 순간.

“실비아.”

“아, 제노스…!”

“아버지 연회식 때는 고마웠어. 약속을 지키려고 왔는데, 이미 파트너가 있었던 모양이네.”

“그런 거 아니야!”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가온 제노스를 보며, 실비아가 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고개를 돌렸다.

“보다시피 사전에 약속된 게 있어서! 미안해, 스네이크.”

“…….”

엉거주춤 서 있던 스네이크가 그제야 작게 이를 갈았다.

때아닌 볼 거리에 다른 생도들은 신이 나 눈까지 반짝였다.

“풋.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 지금 까인 거지?”

“그런가 보네. 호호호!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지? 단기간에 이미지를 너무 망가뜨리고 있잖아.”

“뭐 어때. 그 낙제생도 있는데.”

“아… 그 설레발?”

“반응 진짜 대박이었잖아.”

“전날에 그런 꿈이라도 꿨겠지 뭐. 우리 입장에서야, 나름 재미는 있었잖아?”

허나, 이들은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설마하니, 그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또각.

때마침 한줄기 구두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진다.

소리의 주인공.

천천히, 세타의 코앞까지 다가간 유리나가 곧 새빨간 입술을 열었다.

“나랑 춤춰줄래?”

“……!”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부릅떠졌다.

“저게 뭔…!”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실비아였다.

어느새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쾌감도 잊은 그녀가 떡하니 입을 벌렸다.

대체 왜?

유리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설쳐 대는 꼴이 같잖아, 지극히 경멸했다.

허나, 그런 마음과 이 일은 별개였다.

제아무리 재능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몰락 귀족이라지만, 그래도 ‘급’이라는 것이 있지.

“미친 건가…?”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따라 중얼거리는 스네이크를 일별한 실비아가 한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 녀석.

“저거… 진짜로 뭐 있는 거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실비아로서는 그저 답답함만 쌓여갈 뿐이었다.

***

“쟤가 저 미녀의 파트너야?”

“뉘 집 자식인지 참 곱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안목은 영…….”

“파트너가 어디 명망 높은 집안의 자제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가족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한 귀로 흘린 유리나는 가만히 세타의 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황당하네.”

“춤은 출 줄 아나 모르겠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뭐가?”

“왜 애꿎은 나를 괴롭히는 거냐고.”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유리나의 눈썹이 역으로 휘어졌다.

사실 그녀라고 스스로의 외모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더 자존심이 상했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외모에 대한 그 자신감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으니까.

당장 속내가 이러했으니, 입 밖으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왜? 이왕 주목받기 시작한 거, 이참에 극대화시키면 더 좋잖아?”

“누가 그런 걸 원한다고…….”

“아~ 너무 내 생각만 했나? 하긴, 귀족도 아닌 네가 이런 종류의 춤을 알 리가 없는데. 내 실수였네.”

“…….”

유리나의 말에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세타가 이윽고 반문한다.

“주목받는 걸 극대화시킨다고 했지?”

“…어?”

“영문은 모르겠지만 나를 돕겠다고 하니, 나도 그 호의를 받들어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겠네.”

“무슨 뜻이야?”

“추자고. 춤.”

그 말과 동시에 세타의 얼굴 위로 옅은 빛이 어린다.

그리고 조금씩 변해가는 외모.

언젠가 본 적 있는 그 얼굴에, 일순간 유리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왕 아카데미 최고의 미녀에게 선택받은 것, 이 얼굴이 더 낫겠지?”

“너…?”

“춤이라면 조금은 알아. 그리 잘 추지는 못하지만.”

“그, 그게 아니라, 그 얼굴… 숨겨오던 것 아니었어? 왜 이 시점에서 드러내는 건데?”

이어지는 유리나의 물음에, 세타는 그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글쎄. 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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