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0화 (21/251)

20화. 여덟 신성

대륙에 오랜 평화가 도래한 이래.

당대의 스왈로우 제국은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가히 일인 군단이라 일컬어지는 십이월과 십이지신의 과반수가 제국 소속이었으며.

단순하게 영토만 따져도 광활한 이그란트 대륙의 4분지 1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허나, 개개의 실력만 놓고 비교한다면 결코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난세는 영웅을 낳고, 평화는 모리배들을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는 최소 7클래스 마스터 수준에는 이르러야 십이월에 들 수 있었다.

기사 또한 오러 마스터(Master)에는 완벽히 들어서야 십이지신의 끝자락에나마 발을 들일 수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달콤한 영광에 취한 뭇 강자들은 오만하고 불손해졌다.

절대의 권력 아래 스스로를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실력은 퇴보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발걸음은 일신의 쾌락만을 뒤쫓았다.

그에 비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유망주들은 또 달랐다.

세상은 그 어린 이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제국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근 수백 년 이내에, 당대만 한 유망주들을 보유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제노스 델 카이클을 포함한 대륙의 여덟 신성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 테라에는 또 한 명의 떠오르는 별이 존재했으니.

“크리스 경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질문이 이상한데. 마치 내가 이곳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었는데…….”

뭐라 말하려던 실비아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있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으니까.

찰나 고민하던 그녀가 곧 빙 돌려 말했다.

“듣기로, 아주아주 바쁘시다고 들었거든요.”

“아무렴. 무려 대륙의 떠오르는 신성이 아니더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노인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

“그 호칭은… 시간이 너무 흘렀습니다. 제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요.”

“그게 어디 내 생각이라더냐? 난 어디까지나 세상의 평을 그대로 전했을 뿐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제 나이가 벌써 스물하나입니다.”

실제로 대륙의 여덟 신성 중 크리스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진즉 신성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내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만한 유망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당대의 신성들은, 문자 그대로 ‘역대급’이라 칭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여전히 겸손하시네요.”

“이건 겸손도 뭣도 아니다. 사실이니까.”

“그런가요?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졸업생인 크리스 경이 아카데미에는 왜 오신 건데요?”

“그건…….”

찰나 크리스가 머뭇거렸다.

자신의 물음에도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실비아의 눈꼬리가 곧 의심스럽게 변했다.

“혹시…….”

“……?”

“동생 때문에 오신 것은 아니시겠죠?”

그 말과 동시에 크리스의 짙은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내게 동생이 있었던가?”

“네? 아…….”

“마침 아르바스의 경매상이 이틀 뒤 이곳 인근을 지난다는군. 겸사겸사 은사님들께 인사도 드릴까 하여 방문한 것뿐이다.”

“아르바스의 경매상…….”

물론 그 얘기라면 실비아도 잘 알고 있었다.

아르바스의 경매상.

대륙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갖가지 희귀한 보물들을 사고파는 매우 은밀한 집단.

그 유명세와는 달리 대륙에 아르바스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것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다.

3년 전, 현 십이월이자 안개의 기사 로마니아가 갑작스레 사라진 3대 귀검을 들고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답이 되었나?”

순간 싸늘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그제야 실비아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

“진심으로요.”

“하아. 내가 조금 예민했군. 나야말로 미안하다.”

멋쩍은 표정을 짓는 실비아를 향해 이번에는 크리스가 물었다.

“하면, 나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제노스 델 카이클이 5클래스 초입에 들어섰다는 얘기… 사실인가?”

“…….”

지금 이 순간, 실비아는 생각했다.

역시나 자신의 예상대로라고.

이 자존심 강한 사내가 유일하게 라이벌로 의식하는, 저보다 어린 인물.

제노스 델 카이클.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잘생긴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제노스는 과연 상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실제로 이 둘이 맞붙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게 될까?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실비아 그 자신이라면?

‘상상만 해도…….’

부르르르.

일순간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묘한 열기에 잠시 전신을 떨어대던 실비아가 이내 입을 열었다.

“글쎄요.”

“글쎄라니… 같은 동급생인 너도 모른다는 뜻인가?”

“정확한 경지야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본인밖에 모르는 것 아닐까요?”

잠시 고민하던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

“그런데…….”

“응?”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그러더라고요.”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보며 기어이 실비아가 마음속 ‘그 말’을 끄집어냈다.

“테라 제일의 유망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제노스 델 카이클’이라구요.”

“……!”

***

새까만 밀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인영이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예의 인영의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맞은편에 자리한 인물은 분명한 아카데미의 부학장, 멀리건 토르비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찍 도착했군.”

“일이 있어 조금 서둘렀습니다. 혹, 그사이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까?”

인영의 물음에 멀리건 토르비욘이 고개를 주억였다.

“연락은 왔네만, 성에 차지는 않네.”

“예?”

“이래서는 안 되는데…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이제 조급해진 게지.”

손톱을 이용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들겨대던 그가 곧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한번 엎고 가야겠어.”

“그건…?”

“소환의 돌이라고 하네. 혹 들어봤나?”

“……!”

소환의 돌이라는 말에, 인영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소환의 돌!?”

“그것도 무려 상급의 물건이네. 물론 최상품보다야 못하겠지만…….”

“그, 그런 걸 대체 어디서…?”

인영이 이토록이나 놀라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 눈앞에 있는 소환의 돌이었으니까.

마계의 물건이기도 한 그것은, 이름 그대로 ‘무언가’를 소환해 낸다.

짐작대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마물을.

“괜찮겠습니까?”

“소환의 돌이 무서운 이유가 뭔가? 마나는 소량이면 충분하고, 흔적조차 쉬이 남기지 않아.”

“출처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못 해줄 것도 없지. 작년 아르바스의 경매상에서 얻었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인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면, 아르바스의 경매상에서 대륙의 금지품들도 취급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구태여 대륙 전역을 쫓겨 다니며 장사를 할 이유도 없겠지.”

“노, 놀랍군요.”

“마침 이틀 후면 이곳 인근 영지를 지난다는 정보가 있어. 관심 있으면 한번 가보게.”

“참고하겠습니다. 한데, 그걸로 무얼 어떻게 하시겠다는 얘기신지요?”

“이미 말했지 않나? 한번 엎고 가야겠다고.”

“예? 그 말씀은…?”

재차 이어지는 인영의 물음에, 멀리건 토르비욘이 실로 섬뜩한 말들을 중얼거린다.

“여러 가족들이 모인 아카데미 한복판에 상급의 마물이 등장했네. 과연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그리고 그 책임은 또 누가 지게 될까?”

***

아카데미의 강당은 아침부터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지금 이 순간에도 생도들의 가족이 속속들이 이곳에 도착하고 있었으니까.

“괜찮나?”

“뭐가?”

“상대적 박탈감이라던가, 뭐 그런 걸 느끼는 건 아닌가 해서.”

“그러는 너는?”

“어?”

“나야 애당초 올 사람이 없는 거지만, 너는 있는데도 오지 않았잖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훗. 사내대장부가 어찌 그런 사소한 일에 일일이 연연할까?”

그리 말하며 어깨를 펴는 바이커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애써 강한 척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녀석을 봐온 나는 안다.

뭐, 딱히 그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더라도, 바이커의 시선은 연신 강당 출입문을 힐끗거리고 있었지만.

“그보다…….”

“……?”

“마나 겨루기, 정말로 참가할 생각이야?”

내 물음에, 순간적으로 바이커가 움찔 몸을 떨었다.

마나 겨루기는, 이름 그대로 마나를 이용해 생도들 간에 힘 싸움을 벌이는 무대였다.

오직 2:2로만 진행되었기에 팀을 이뤄야만 참가할 수 있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바이커는 다름 아닌 내게 팀전을 제안했다.

꼴등이 함께해 주면 자신이 기대하는 바가 배가된다나 뭐라나.

“물론.”

“괜히 해준다고 했나.”

“뭐야, 혹시 걱정되나?”

“그런 건 아니고.”

“너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전부 다 내가 할 테니까.”

참고로 마나 겨루기는 데스매치였다.

두 참가자가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힘겨루기는 계속된다는 뜻이다.

나는 바이커가 이토록이나 자신 있어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마법적 이해도라면 몰라도, 순수하게 마나의 절대치만 놓고 따지면 그 실비아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이 녀석이었으니까.

하기야, 어렸을 때부터 명문가의 갖가지 영약들과 비급서들을 취하고 자랐을 테니 당연한 거겠지만.

“긴장 풀어. 어차피 마나 겨루기는 방학식 후반부니까.”

“긴장 안 했거든.”

사전에 접수된 장기들을 그대로 선보이는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즉석에서 참가자를 받아 진행된다.

후반부라고 해봐야, 마나 겨루기와 생도 무도회가 전부였지만.

그중에서도, 예의 무도회에 참가를 원하는 생도들은 벌써부터 턱시도나 드레스 따위를 차려입고 나왔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웅성웅성.

“…응?”

갑작스레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나와 바이커가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우리는 보았다.

지금 막 출입문을 통해 들어서는, 마치 불꽃과도 같은 새빨간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명의 여인을.

“유리나 벤 아리에나…?”

“대, 대박.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저 왈가닥이 드레스라니. 웬일이지?”

아이들의 웅성거림은 점차 커져만 갔다.

마침 근처에 있던 라이언 테일러 선생님이라고 반응에 예외는 없었다.

“드레스가 참 예쁘구나.”

“감사합니다.”

“한데, 항상 편한 옷만을 고집하는 네가 드레스라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 물음에 유리나는 생긋 미소 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양 대답했다.

“그냥, 이번만큼은 꼭 함께하고 싶은 파트너가 있어서요.”

그리 말하면서 한쪽의 구석진 곳을 쳐다보는 그녀.

뭔데.

왜 이 시점에서 이쪽을 보는 건데?

곧 유리나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리와 동떨어져 있는 우리를 향했다.

“…….”

고요한 침묵 속, 집중된 시선을 받은 나와 바이커는 그저 멋쩍은 표정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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