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6화 (17/251)

16화. 랭킹전 종료

실비아는 화가 났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제 모습은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살아온 16년 평생, 그녀가 이런 수모를 당해본 경험이 있던가?

단연코 없었다.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없어야만 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세타 쿤 이그니스읏…!”

또 한 번 그 이름을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이제는 절대로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 그놈.

특징이라고는 없는 ‘평범함’ 그 자체인 예의 얼굴을 한가득 떠올리며, 시선은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머지않아,

“…찾았다.”

실비아의 입가로 싸늘한 미소가 번져 갔다.

있었다.

대연무장 아래.

자신의 이런 반응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 멍청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놈.

뭉개 버릴 것이다.

철저하게 부숴 버릴 것이다.

다시는 이런 시건방진 생각은 하지 못하도록.

두려움에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도록!

“…당장 올라와.”

그 말과 동시에, 놈이 머쓱한 표정으로 제 머리를 긁적여 댔다.

“어… 왔어?”

“나를 랭킹전 상대로 지목했다지?”

“그게,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거든? 일단 내 얘기부터 들어봐.”

“그 입 닥쳐.”

“응.”

연무장 위에는 올라섰으나, 족히 10여 미터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놈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사회자님.”

흠칫.

설마하니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던지, 잠시 물러서 있던 사내가 움찔 몸을 떨었다.

“네, 네?”

“랭킹전, 바로 시작하시죠.”

“그, 그게…….”

저도 모르게 말을 높인 사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관계자 석을 돌아봤다.

역시나, 그들 또한 느끼는 바는 마찬가지였을까?

“저, 저대로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화염계 마법사로 각성했다지만…….”

“괜찮을 리가요. 상대는 그 실비아 스필 세드릭이 아닙니까?”

“이거, 오늘 저희 아카데미에서 송장 하나 치우는 건 아닌지…….”

“그리 걱정되신다면, 마나학개론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말려보시지요.”

“어흠, 그 무슨 섬뜩한 말씀을.”

물론 이처럼 우려를 표하면서도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알면서 저런 위험천만(?) 한 곳에 끼려는 사람이 어느 누가 있을까?

이는, 아카데미 내에서 세드릭 가문의 위상이 어떠한지 아주 잘 알려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으으,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잠시간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보던 사회자가 이내 울상을 지었다.

자칫 처신을 잘못했다간 그대로 독박을 쓰게 생겼으니까.

그런 그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하지 말죠.”

“응?”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힘 조절이 쉽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일어나면,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 그거야 물론이지.”

재차 귓가를 때리는 소년의 목소리에, 사회를 맡은 사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실비아가 아니었다.

“별 같잖은… 알량한 힘을 좀 얻었다고, 모두가 네 발아래로 보이는 모양이지? 그 생각, 지금부터 내가 철저하게 짓밟아주겠…….”

“아니. 그 반대야.”

“…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마나가 오전 같지가 않네? 가진 거라고는 이 몸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멀쩡해야지.”

“너…….”

빠드득.

완전히 자신을 농락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실비아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얼굴로 이를 갈았다.

이에, 세타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졌어.”

“무슨 헛소리야!?”

“다시 말해줘? 항복이라고. 실비아 스필 세드릭, 니가 이겼습니다. 사회자님, 저 기권할게요.”

증폭 마법이 걸린 목소리는 이윽고 바람을 타고 관중석 구석구석까지 전해졌다.

“…….”

그리고, 장내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푸핫!”

관중석 한편에서 대연무장을 지켜보던 에이스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저놈, 생각보다 더 걸작이잖아? 포기해야 할 때는 포기할 줄도 알고 말이야.”

“…그러게요.”

그 말에 동감한 세실리아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참이나 제자리에 굳어 있던 은발의 소녀는, 이제 천지가 떠나가라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어느새 그 상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도망이라도 간 걸까요?”

“크크크. 일단은 제 놈도 살아야 할 테니까.”

“…애들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마음에 들어. 재능은 물론이고, 그 배짱이나 성격까지도.”

잠자코 듣고 있던 세실리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그 아이에 대한 평이 상당히 후하시네요.”

“느낀 그대로를 얘기했을 뿐이야.”

“그래서, 진짜 데려다 키우기라도 하시게요?”

“안 될 것도 없지.”

“네? 벌써 잊으셨어요? 학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그 아이한테서는 관심 끊으라고.”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한 적 없는데?”

“그게 무슨…!”

재차 대꾸하려던 세실리아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됐어요. 말해봐야 나만 손해지.”

“허… 이러면 재미없는데. 세실리아답지 않은걸?”

“어차피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런 것보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한차례 운을 띄운 세실리아가 다소 굳은 얼굴로 묻는다.

“학장님 말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냐니?”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믿어?”

“같은 내용이라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듣는 청자가 받는 신뢰도 다른 법이니까요.”

“그 얘길 왜 나를 보면서 하는 걸까나?”

“오해세요.”

짤막하게 대꾸한 세실리아가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물론 추측이 다소 과하다는 점은 저도 동감해요. 소규모 국지전을 제외하면,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 지도 벌써 100년이 훌쩍 지났으니까요.”

“그건 망국의 후예들. 그러니까 스왈로우에 멸망당한 왕국 군을 얘기하는 거겠지?”

“네. 달리는, 뭇 대륙인들에게 반(反) 제국군이라 칭해졌던 그들이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세실리아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네?”

이어지는 에이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멍하니 반문했다.

상대의 말투에서 무언가 묘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짐작 가는 바가 있지만, 애써 말을 아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말씀해 주세요.”

“응?”

“혼자 안고 가려고 하지 마시고요.”

“…그런 거 아닌데?”

“저, 조금은 신뢰받는 부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했던 말이 있는지라, 잠시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에이스가 이윽고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단순한 내 억측일 수도 있어.”

“상관없어요.”

“세실리아가 감당하지 못할 얘기일 가능성도 크고.”

“그런 부담이라면 더더욱 나누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진심이야?”

“에이스 님도 그렇잖아요? 혼자 끙끙 앓으시는 것보다야, 어디라도 말하는 게 속 편하실 테니까요.”

“그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세실리아의 동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에이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혹시나 내가 잘못되면 진실을 알릴 사람은 분명 필요하니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만약에 말이야.”

“……?”

“현재의 대륙. 표면적으로는 제국의 이름 아래, 일곱 왕국이 힘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힘을 견제하고 있다지만. 실은 그 반대라면?”

“반대라뇨?”

“그 대지의 마법사가 말하길, 테라의 왕정에도 모리배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했어. 이러면 이해가 될까?”

“조금 더 쉽게 말씀해 주세요.”

“지난 100년. 만약 그 시간이 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한 제국의 ‘준비 기간’이었다면?”

재차 귓가로 틀어박히는 에이스의 목소리에, 그제야 세실리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그러니까… 제국에서 테라뿐만 아니라 각국에 간자를 심어놓았다는 말씀이세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너무 나갔어요. 단순한 음모론치고는 스케일이 너무 크다구요!”

“지금은 의심 단계이지만, 분명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그러니 대지의 마법사도 우리 연합주를 만나려는 것 아니겠어?”

말을 마친 에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세실리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디 가시게요?”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야 없잖아?”

“그 말씀은…?”

“최초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 해야 할 일은 마저 하고 떠나야지.”

멈칫.

찰나 움직임을 멈춘 세실리아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생도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 아이라면 쉽지 않을 거예요. 각성한 재능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까요. 당장 학장님 반응만 봐도 아카데미에서 그냥 놓아주려 하지 않을 텐데…….”

“그건 아닐걸?”

“네?”

멍하니 반문하는 세실리아를 향해 에이스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마친다.

“분에 넘치는 재능은 봉오리에 그치고, 주제에 맞는 재능만이 비로소 활짝 개화하는 법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그 녀석은 글쎄…….”

***

마침내 전 생도들의 랭킹전이 끝났다.

이튿날, 최종 성적을 결산하는 중앙 대광장.

이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올해의 화제는 단연 아카데미의 만년 낙제생.

바로, 세타와 관련된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꼴통이 ‘후천적 각성 마법사’라니…….”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최초지?”

“그건 아닐걸? 어중이떠중이로 스러져 간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그래도 몇 명은 있을 테니까.”

“에이… 그래도 그 위명도 자자한 초월의 마법사와 같은 재능인데.”

“무슨 헛소리야? 뒤늦게 각성하면 전부 초월의 마법사처럼 되는 줄 알아? 지극히 드문 일일뿐더러, 그리 각성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대륙인들도 그를 칭송하는 거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보이는 법이다?”

“그거거든. 하물며 날 때부터 노력해 온 천재들을 어찌 이길 수 있을까? 그 낙제생처럼 재수나 다름없는 이번 일은 제외하고 말이야.”

물론 그게 제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꼴지에서 단숨에 7등이다.

그 치기 어린 질투들과는 별개로, 상대와의 상성은 최고.

심지어 그 상대인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은, 눈에 띄게 방심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는 비단 생도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학장실에서도 지금 이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결국 학장님의 말씀이 옳았군요.”

긴 탁자를 중간에 두고, 아카데미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

그중 환영의 마법사, 라이언 테일러가 화두를 던졌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재능만 확실하다면 품고 가는 쪽이 아카데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듯합니다만…….”

“아니. 원칙을 거스를 수야 있겠나?”

“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라이언 테일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초점이 이상한 곳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여 꺼낸 말이네. 세타 쿤 이그니스의 퇴학이 결정된 이유는, ‘재능이 없어서’ 따위가 아니었지 않은가?”

“아…….”

멍하니 입을 벌린 라이언 테일러가 곧 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에 자리한 대부분이 이번 랭킹전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3연속 낙제. 해당 학생은 그 불성실함을 물어 퇴학 처리. 이게 저희 테라 아카데미의 학칙이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학장님?”

마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질책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럼에도 상석의 아즈문 사트리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다른 관계자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떠들어댔다.

“맞습니다. 학칙은 학칙이지요.”

“득보다 실이 많을 듯합니다. 당장은 아깝더라도 미래를 위해 내치는 게 옳은 수순입니다.”

“이번 결과를 세드릭 가문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부학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마지막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

줄곧 침묵을 지켜온 상석의 우측, 백발이 성성한 노인.

마탑 공식 서열 91위에 랭크 된 그는, 학장 다음가는 2인자.

멀리건 토르비욘이었다.

한데, 왜일까?

미세하게나마 그의 동공이 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은.

그런 그를 힐끗 바라본 아즈문 사트리노가 입을 연 것 그 순간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만…….”

“……?”

“저는 이번 랭킹전에 제 목을 걸었습니다.”

“……!”

부학장인 멀리건 토르비욘을 제외한 관계자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학장님의 목을 거시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세타 쿤 이그니스가 올해 랭킹전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저는 학장직에서 물러나기로 미리 약조가 되어 있었지요.”

“그런……!”

전혀 금시초문이었는지,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한데 말입니다.”

“……?”

“이미 말씀드렸듯, 조건이 되는 내용은 세타 쿤 이그니스의 ‘랭킹전 성적’이었습니다. 상성이 어떻느니, 과정이 또 어떻느니 하는 것들이 아니라요.”

“그 말씀은…….”

“예. 결과적으로 세타는 무려 7등인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 생도를 꺾었지요.”

최초 딴지를 걸어대던 중년 사내가 황망한 표정으로 반응한다.

“하, 하지만 학장님. 그래도 학칙이라는 것은…….”

“아직 제 얘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 목을 판 위에 올려두고, 왕정에서는 과연 그와 동등한 무엇을 올려놓았을까… 궁금들 하시지 않습니까?”

“……!”

부르르르.

마침내 아즈문 사트리노가 말을 마치자, 부학장의 전신이 거칠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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