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1화 (12/251)

11화. 각성

아즈문 사트리노.

그는 자신의 눈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수십만 명 중에 13위.

‘대지’라는, 단일의 칭호를 부여받은 위대한 마법사.

그런 그가 7써클에 접어든 이래 실로 오래간만에 의지를 불태웠다.

“시작하자.”

“아니, 다 좋은데 왜 또 백마전의 방인데요!”

아이의 작은 반항에, 아즈문 사트리노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7년차 생도들에게는 이곳이 백마전의 방이겠지만, 졸업 예정생인 9년차 마지막 생도들에게는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거든. 들어는 봤을 테지?”

“서, 설마…….”

“이곳의 핵심은 실체와 같은 ‘환영’ 마법. 너는 지금부터 졸업 예정생들과 같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름하여 거울의 방.”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나 자신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 자고로 최고의 경쟁상대는 제 자신인 법이니까.”

“…….”

너무 갑작스러워 충격이라도 받은 것일까?

상대에게서 한참이나 반응이 없자, 아즈문 사트리노가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여차하면 내가 바로 끼어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아니, 좋은데요?”

“…응?”

“다시 말해, 할 줄 아는 거라곤 고작 얼굴 변형 마법밖에 없는 1써클짜리 허접쓰레기가 제 상대라는 거잖아요. 오크나 트롤 따위가 아니라.”

“…….”

이어지는 세타의 말에 아즈문 사트리노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 자기 비하가 너무 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느냐?”

“현실을 직시하는 거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

“너 자신을 알라.”

“…자만은 항상 경계하라고 누누이 가르치고 있거늘. 그런 부분에 있어서 너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아주 대단한 모범생 납셨어.”

“겸손의 미덕은 기본이죠.”

“쯧, 실력까지 있다면 더 좋았겠건만.”

한차례 혀를 찬 아즈문 사트리노가 곧장 출입문을 가리켰다.

“이제 들어가거라.”

“넵!”

다 죽어가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당차게 방 안으로 들어서는 세타였다.

그 해맑기 그지없는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휘저은 아즈문 사트리노가 이내 설치된 마나석으로 다가섰다.

“필드를 개방하겠다.”

- 언제든지요.

“랭킹전에 맞게, 무대는 중앙 연무장으로 설정할 것이다.”

- 어디든 좋습니다.

“…일전의 일도 있으니, 너무 방심하지는 말거라. 네 말마따나 겸손하라는 뜻이다.”

- 옙! 아주 잘 알겠습니다.

“끙…….”

아무래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아즈문 사트리노가 이윽고 마나를 움직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몇 차례의 공명음과 동시에, 천천히 바뀌기 시작하는 필드 내부.

곧이어, 세타의 앞으로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아이가 나타났다.

“내 짐작이 맞으면 좋으련만…….”

- 우와. 소문은 들었지만, 나랑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에잉! 네이놈, 진지하게 임하지 못하겠느냐!?”

- 오. 곧장 공격할 모양인데요? 풋, 저 서슬 퍼런 얼굴 좀 보라지.

그 말대로, 세타의 모습을 한 환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걸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영창이라도 시전하는지 입은 끊임없이 들썩이고 있었으니.

…잠깐만, 영창?

“영창이라고? 저 녀석의 환영이?”

순간 아즈문 사트리노의 얼굴 위로 크나큰 의문이 깃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장장 십수 년 동안이나 세타를 지켜봐 왔다.

단연코 확신하건대, 저 자신만큼이나 녀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한데, 라이트 마법 하나 제대로 시전해 내지 못하는 놈이 영창이라니?

“…그뿐만이 아니야.”

아즈문 사트리노가 꼭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재차 중얼거렸다.

“마나의 성질이 변했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각각의 마나가 가진 고유의 특성.

그 성질이 완전히 변했다고.

기실,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화(火)가 그와 상반되는 수(水)의 성질로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니까.

고유의 성질이 변했다 함은.

다시 말해, ‘주력’이 되는 마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의미였다.

***

“왜 그러셨어요?”

방으로 들어서는 에이스의 뒤로 재빨리 따라붙은 세실리아가 말했다.

“뭐야, 왜 따라 들어와?”

“궁금하니까요.”

“뭐가? 내 속살이?”

“이상한 농담은 그만하시고요.”

“농담 아닌데? 다 큰 처녀가 남자 혼자 있는 방에 따라 들어온다는 게 무슨 의미겠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됐고요.”

에이스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세실리아가 말한다.

“평소의 에이스 님과 다르셨습니다. 어울리지 않으셨다구요.”

“뭐가?”

“누누이 말씀해 오셨잖아요? 제자는 키우지 않겠다고.”

“아아…….”

이어지는 세실리아의 말에, 에이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욕심이 났거든.”

“욕심이요?”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세타 쿤 이그니스. 테라 아카데미 7년차 생도입니다.”

“그래. 그 세탄가 하는 놈. 분명 ‘써클’과 ‘홀’의 마나가 동시에 느껴졌어.”

“네? 그,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세실리아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마법사가 지니는 심장의 마나 써클.

기사가 지니는 하복부의 마나 홀.

근본 자체가 다른 두 개의 그릇을 한 번에 품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대륙에 새로운 클래스가 판을 쳤겠지.

이런 의문은 그대로 세실리아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검사…?”

“알잖아? 그런 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 비현실적인 얘기를 직접 하고 계시니까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요.”

“그릇을 두 개나 만든 건 아닐 거야. 그건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결국, 심장과 복부 사이를 아무런 제약 없이 넘나들 수 있는 ‘특별한 마나’를 품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잠시 고민하던 에이스가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게, 자세히 살펴보질 못해서 확신을 못 하겠네. 다만 말이야.”

“네?”

“그와 비슷한 특이체질을 가진 사람을 한 명 알고 있거든.”

“……?”

“내 상관.”

“……!”

일순간 세실리아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서, 설마…?”

“그래.”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에이스가 이내 마지막 말을 마쳤다.

“우리 연합의 주인. 그 사람도 똑같거든.”

***

“이 거짓말쟁이 할방구!”

내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뭐? 거울의 방?

나랑 똑같은 환영?

“웃기지 말라고! 나 따위가 저런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콰아아아앙!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압축될 대로 압축된 무형의 구(球)가 바닥과 충돌한 직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대기가 어그러져 있는 듯한 그것.

벌떡!

“윈드 블레스터라니…!”

수차례나 땅을 구르고 일어난 내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압축된 공기가 단순히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윈드 볼과 달리, 적중과 동시에 터져 나가는 윈드 블레스터는 무려 3써클 마법이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주력이 다름은 물론이고, 무려 두 단계나 높은 마법을 사용하는 분신이라니!

“집중, 집중하자. 이걸로 확실해진 걸지도 모르잖아? 그때 일도 그렇고, 어쩌면 진짜로 내게 숨겨진 재능이 있는 걸지…!”

일전의 락은 대지계 마법.

윈드 블레스터는 바람계열 마법이었다.

분명히 서로 다른 속성이었지만, 확실한 건 둘 모두 원소계열 마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중 무엇이면 어떠랴?

만약 쓸 수만 있다면, 신체 변형보다는 압도적으로 나을 텐데.

“…한번 해보자.”

평소와는 달리, 어째서 이런 의지가 샘솟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왜인지.

‘그날’의 일이 있고 난 이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니, 당장 떠오르는 걸 생각해 보자.

눈을 감는다.

들숨은 가볍게.

날숨은 길게.

지금 이 순간, 눈앞의 상대는 머릿속에서 지운다.

침착하게 학장 할아버지에게 배운 마나의 호흡만을 이어 나간다.

후우우우웅!

우측 뺨에서 불과 한 치 옆을 스쳐 지나간 무형의 힘이 살갗을 갈랐다.

허나,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롯이 내 호흡만을 계속해서 찾아간다.

“후우우…….”

파지직!

성과가 있었다.

마나가 반응했다.

고작 하나뿐인 심장의 써클이 요동치고 있음이다.

스르륵.

그제야 나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예의 분신 놈이 이쪽을 향해 쇄도하는 모습이 시야로 틀어박혔다.

양손에는 어그러진 대기를 한가득 그려 쥔 채.

“…썩을 분신 놈.”

하지만, 이번에는 딱히 두렵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

전신으로 샘솟는 이 미증유의 힘이라면, 맥없이 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

“흥흥흥~”

여기,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는 그녀.

유리나는 오늘따라 유달리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금 막 제노스가 개인 가정사를 이유로 랭킹전에 불참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최대 경쟁자가 참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수련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

물론 졸업 랭킹전에서는 결국 붙게 될 상대였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제노스와는 상성이 극과 극이었으니까.

그 녀석은 배틀 메이지.

즉 전투 마법사를 꿈꿨다.

마나의 재능과 육체적 재능을 모두 타고난 사람만이 꿈꿀 수 있는, 선택받은 인물.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이 재능을, 녀석은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한 기사들과의 일대일 대결도 자신 있어 하는 게 녀석이었다.

‘검’만을 고집하는 작금의 기사들과는 달리, 제노스는 무려 수십 가지의 무기를.

실체만 가진다면, 가히 명인의 무기라 불릴 만한 것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잘 훈련된 기사들을 상회하는 움직임마저 선보이면서.

한데,

“신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련을 위해 방 내부로 들어서던 유리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꿈일까?

수백, 수천 개의 돌기로 감싸진 꼬리가 상대를 쓸어간다.

그뿐인가.

마치 맹수처럼 돋아난 저 손톱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크기만 따지면 발톱으로 봐도 무방한 그것이 말 그대로 대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반인반수? 아니, 저건 마치…….”

홀로 중얼거리던 유리나가 세차게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녀가 알기로, 대륙 전역을 뒤져 봐도 저렇게 생긴 맹수는 없었다.

족히 2미터에 이를 듯 길게 늘어진 꼬리.

강철마저 찢어낼 듯한 위압적인 손톱.

결정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확인할 수 있는 돌기 형태의 뿔까지.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드래곤?”

반인반용.

그 모습은, 얼핏 신체 변형 마법의 일종인 듯싶었으나.

단언컨대, 유리나는 저런 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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