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0화 (11/251)

10화. 재능

웅성웅성.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사내의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으니까.

“제, 제자?”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에이스 디 파르마… 그 십이월이 제자라고…?”

최초의 놀람.

그 이후의 감정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었다.

“물론 실비아 스필 세드릭에게 한 말이겠지? 저 정도 재능이라면, 십이월이라고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아니… 나는 그 옆에 남자애한테 말하는 걸로 봤는데?”

“남자애? 누구?”

이런 종류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내 귀로 들려왔다.

의문이 낳은 또 다른 의문.

그 꼬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이었다.

같은 학년 사이에서는 내가 제법 유명인사였지만, 다른 학년의 생도들에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참고로 지금 이 광장에는, 아카데미의 전(全) 생도들이 대거 모여들어 있었다.

올해로 7년차인 내 동급생들뿐만 아니라, 졸업 예정반인 9년차 생도들을 포함해서.

“왜 대답이 없지?”

“…무언가 착오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검사가 아닌 마법사 지망생인데요?”

“마법사라… 그래, 여긴 마법 명문이라 불리는 테라 아카데미였지.”

마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예의 연녹색 머리칼을 가진 미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보는 눈도 많은데 웃옷은 좀 입고 얘기할 것이지…….

“그게 왜?”

“…네?”

“척 보기에도 너는 마법에는 단 ‘일’도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

“…….”

내가 단숨에 상념을 털어낼 정도로 팩트로 후들기는 그.

“맞아요. 걔 낙제생이거든.”

“거봐.”

이번만큼은 동의한다는 듯, 실바아가 밉살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이건 꽤나 입맛이 썼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보면 안다니까? 내가 누군 줄 아는 거야?”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왜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저 같은 걸 제자로 삼으시려는 건가요?”

“뭐야, 삐진 거야?”

“삐진 거 아니고요.”

“미안. 내가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이라.”

“…….”

내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사내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음… 혹시 관심받기 좋아하는 성격인 건 아니지? 아니라면, 일단은 자리를 옮기고 싶은데…….”

“…쩝.”

그제야 내가 작게 입맛을 다셨다.

상대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으니까.

이제 광장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생도들은 물론이고, 마탑을 포함한 다른 외부의 인사들까지도.

하기야 당연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십이월 중 하나가 직접 이곳까지 행차했으니까.

그보다, 계획이 자꾸 어긋난다.

나는 그 초월의 마탑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아무래도, 이즈음하고 내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럼…….”

판단을 마친 순간 입이 움직였다.

“응?”

“…저는 자유기사가 되는 건가요?”

그 전에, 궁금증은 마저 풀고.

이건 아쉬움 따위가 남아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십이월이 아닌가?

10년 이상을 마법만 파왔지만(?), 혹시 또 아는가?

사실은 내가 ‘검술’에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을지.

“그게 뭔 개소리야?”

“예?”

“자유 기사가 우습냐? 어디 체력 훈련이라곤 평생 단 일 분도 해본 적 없는 멸치 놈이, 뭐 기사?”

“…….”

사내가 진심으로 짜증스럽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니, 썩을,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나더러 뭘 어쩌라고?

“현실부터 바로 잡고 가자. 마법사보다 더 가망 없는 게 검사. 그게 작금의 네 상태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도 검사도 아니면 뭐 하라고요?”

“궁금해?”

순간 씨익 미소 지으며 이리 반문하는 그.

“…….”

어느새 주변의 시선조차 잊고, 나는 사내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십이월이고 뭐고, 그 얄미운 얼굴을 한 대 쥐어박고 도망갈까 하는 내면의 충동을 가까스로 눌러 앉히며.

***

“언제까지 따라올 생각이야?”

“이상한 말이네. 누가 보면 내가 너를 스토킹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그럼 아니었어?”

“방향이 같을 뿐이야. 그리고 스토킹 좀 당하면 어때? 나만 한 미인이 상대면, 가문 대대로 영광으로 생각해도 부족할 판국에.”

“…다 좋은데, 이제 이 앞은 남자 기숙사인데?”

멈칫.

내 말에 뒤따르던 실비아가 그제야 걸음을 멈춰 섰다.

“끝까지 따라올 것처럼 행동하더니?”

“…흐응, 뭘 믿고 자꾸 이리 까부나 몰라? 말 좀 걸어주니 내가 친구처럼 보이나 봐?”

“…언제는 같은 반 친구라며.”

“말대꾸도 제법이고.”

“…….”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이상은 위험했으니까.

미친년에게 걸려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당사자인 나만 피곤할 뿐이지.

“…그럼, 나는 이만.”

“왜 거절한 거야?”

곧장 떠나가려는 내게 실비아가 물었다.

“왜라니?”

“분야는 다르지만, 그 이름도 유명한 십이월이잖아? 지금의 네가 아쉬울 것, 단 하나도 없을 텐데?”

“…….”

여기서 대꾸를 안 해주면, 아카데미를 나가는 그날까지 귀찮게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내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그게 왜?”

“어쩌면 내 장래가 결정될지 모르는 일인데, 내용이 궁금하다고 덥석 처음 보는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잖아?”

“의외네? 그 정도로 생각이 깊은 줄은 몰랐는데.”

“생각이 깊고 말고를 떠나 이게 기본이야.”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본의 기준이 다른 모양이네? 그 기본도 모르니까 낙제나 하는 것 아니었니?”

아주 그냥 한마디도 안 진다.

말을 말자.

이 계집애랑 계속 대화를 나눠봐야 나만 손해지.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세타 쿤 이그니스. 1써클 유저. 16세. 현 테라 아카데미 7학년이자 3년 연속 낙제생. 집안은 천애 고아에 평민. 특이사항으로, 귀족에게만 부여되는 성은 물론이고, 그중 고위급들에게만 하사되는 미들네임까지 있지만, 이와 관련해 확인된 바 전혀 없음.”

몸을 돌려 걷던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뒷조사까지 한 거야?”

“이상하잖아? 존재감이 없음은 물론이고, 고적 너 따위가 어지간한 생도들도 설설 기는 그 아이작 후작가의 장남에게 그런 행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고작 나 따위니까 잃을 것도 없는 거야. 더군다나 조금 있으면 아카데미를 나가게 될 텐데 뭐가 걱정이겠어?”

“진심이라면 정말로 멍청한 소리네. 아이작 후작가의 후계에게 찍히고, 이 왕국에서 발 뻗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내가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흥미롭단 말이야.”

“뭐가?”

“처음에는 퇴학의 충격에 살짝 맛이라도 간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거든?”

맛이라도 갔다라…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다만.

그런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자, 실바아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근데 또, 오늘 일을 겪고 나니 아예 믿는 구석이 없는 것 같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무엇보다, 나는 내 감을 믿거든.”

이리 말하던 실비아가.

아니, 미친년이 이윽고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한다.

“너, 어차피 졸업은 물 건너간 거. 이참에 우리 가문 마법사단 테스트 한번 받아보지 않을래?”

“…뭐라고?”

***

저벅, 저벅, 저벅.

어느새 혼자가 된 그녀.

한창 걸음을 옮기던 실비아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재미있어, 세타 쿤 이그니스.”

자신의 제안에 대한 상대의 대답은, 다름 아닌 ‘거절’이었다.

마치 일말의 재고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단호하게 돌아서던 그 모습이 아직도 그녀의 눈에 생생했다.

사실, 세드릭 가문의 마법사단은 그리 쉬이 볼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명실상부 왕국 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력집단.

왕궁의 마법군단을 제외하면, 가히 최고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자신의 가문이라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랬다.

당장 지나가는 생도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모두 머리를 처박고 입단하고 싶노라 대답할 테니.

그도 그럴 것이, 명문이라 불리는 테라 아카데미에서도 한 해에 마탑에 들어가는 인원은 고작 평균 세 명꼴이다.

하면, 나머지 497명은 어디로 향할까?

용병은 애초에 제외다.

마법사를 꿈꾸는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험한 일을 꺼려 했으니까.

같은 이유로, 비교적 최근에 신흥강자로 떠오른 자유연합 또한 마찬가지.

결국, 테라의 국민이라면 왕궁 마법군단이 2등.

명문가의 마법사단이 다음이었다.

그중에서도, 3대 공작가의 마법사단은 여타 집단들과 수준 자체를 달리했으니,

“진.”

스르륵.

작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소리 소문 없이 한 인영이 실비아의 뒤로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미안하지만, ‘이그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가문이 있는지 한 번 더 알아봐 줘요. 그리고, ‘쿤’이라는 미들네임을 하사받은 곳이 있는지도.”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조사 범위를 테라로 한정 짓지 말고, 타국까지 모두 포함시켰으면 좋겠어요.”

“…스케일이 그 정도나 되면, 드는 비용이나 시간도 상당히 소요될 것 같습니다만…….”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딱히 급한 일도 아니고요.”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

“앞서 내리신 명. 올해는 제노스 델 카이클이 랭킹전에 참가하지 않을 듯합니다.”

홱.

이어지는 사내의 보고에, 실비아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게 정말인가요?”

“아시다시피, 조금 있으면 카이클 공작의 생일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랭킹전 기간과는 완전히 겹치게 됩니다.”

“다 아는 사실. 핵심만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졸업생들의 랭킹전과는 달리, 도전자에 한해서 진행되는 일반 생도 랭킹전. 그 때문에, 외부 인사들은 올해도 제노스 델 카이클의 실력을 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제노스에게 랭킹전을 거는 사람은 없겠죠. 그래서요?”

“사실 중요한 건 졸업하는 당해의 랭킹전이니, 이변이 없는 한 올해만큼은 자식의 도리를 다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입니다. 하여, 카이클 가문 쪽으로도 따로 확인을 해봤습니다.”

“철저해서 좋네요. 하기야…….”

흡족한 미소로 말끝을 흐리던 실비아가 한차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지금 내가 남 걱정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지만요.”

“…예?”

“유리나 벤 아리에나. 그 계집애가 나한테 도전할 거 같거든요.”

“……!”

순간 사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 아이가 왜 아가씨께…?”

“그 계집애, 보기와는 다르게 제 주제를 잘 알거든요. 일등인 제노스에게는 아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 그다음이 누구겠어요?”

“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우리 유리나. 이번에는 물 좀 먹겠네?”

“예?”

“일단 참가하겠노라 의사는 전달한 상태인데, 호호호. 저 혼자 백날 기다려 보라지. 마침 핑곗거리도 좋잖아요?”

“…설마 그걸 위해……?”

질렸다는 표정을 짓는 사내를 향해 실비아가 싱긋 미소 지었다.

“카이클 가문에는 적당히 흘려주세요. 세드릭 가문의 장녀인 제가, 뒤늦게 정보를 접하고 부랴부랴 연회에 참석한다고요.”

***

광장의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을 때, 개인 호출을 받은 나는 곧장 학장실로 불려왔다.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들어서는 나를, 학장 할아버지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부르셨어요?”

“일이 있어 호출이 조금 늦었구나. 앉아라.”

“예…….”

“얘기는 들었다. 제법 좋은 제안을 받았다지?”

미처 앉기도 전에 본론을 꺼내는 학장 할아버지를 향해,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거절했느냐?”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지금은 비록 낙제생이지만, 왠지 마법사가 제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내 대답이 꽤나 의외였을까?

일순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학장 할아버지가 이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랭킹전까지 앞으로 딱 3일. 실력에 차도는 있느냐?”

“아니요. 그 이후로는…….”

“흠…….”

짧게 침음을 삼킨 학장 할아버지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너, 분명히 진심이라고 했지?”

“예? 그야…….”

“정체된 재능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방법이 있다.”

“……!”

이어지는 학장 할아버지의 말에,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다만, 죽을 만큼 힘들 거다.”

“윽.”

선례가 있는지라, 나도 모르게 오스스 몸을 떨었다.

“해볼 테냐?”

“그, 그게요…….”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학장 할아버지가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이 분명 3써클 마스터였던가?”

“예? 예에…….”

“또래 중에는 분명 눈에 띄는 성과다만, 만약 성공만 한다면 너 또한 그 정도는 가능할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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