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9화 (10/251)

9화. 내 목의 가치는 얼마요?

휘이이잉!

“……?”

갑작스레 불어오는 바람에, 내 얼굴 위로 의문이 깃들었다.

“꺅!”

“꺅?”

“이이, 미친놈이…!”

곧이어 뾰족한 비명과 걸쭉한 욕지거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이 계집애,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이리 왔다 갔다 해서야…

“어이쿠, 실례.”

“이런 씨 발라 먹어도 시원치 않을 자식이, 조심 좀 하고 다니지 못해!?”

“…….”

순간 주변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뒤늦게 제 실수를 자각한 것일까?

‘합’ 하고 입을 다문 실비아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어린 아가씨가 입이 상당히 거칠군.”

“오해는 말아요. 아침에 먹은 과일 얘기였으니까.”

“분명 말미에 ‘자식’이라는 단어도 들렸던 것 같은데…….”

“어머. 자두를 잘못 들으신 것 아닐까요? 어찌 그런 상스러운 말을!”

…실하다, 추비아.

새로이 나타난 사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애당초 내 실수였으니 사과하지.”

이어지는 예의 사내의 반응에, 실비아의 이마 위로 희미한 십자 마크가 아로새겨졌다.

“사과가 너무 성의 없다고 생각하진 않으신가요?”

“뭐가?”

“방금 제 치마가 다 뒤집어졌다고요. 하마터면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인으로서는 상당히 민망한 꼴을 당할 뻔했는데…!”

“속바지 입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고의도 아니었고.”

“이봐요. 눈앞에서 벌어진 결과를 직시하세요. 지금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사과했잖아.”

“하려면 똑바로 하라고요!”

“허 참, 생긴 대로 까탈스럽구먼. 뭐 볼 것도 없더만…….”

“뭐라고요!?”

뒷말은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였으나, 그걸 듣지 못할 실비아가 아니었다.

가만 보니, 이 아저씨 상당히 호감이다.

하는 짓뿐만 아니라 생긴 것도 마찬가지고.

“죄, 죄송합니다!”

그 순간, 새롭게 나타난 금발의 여인이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어림잡아 170센티미터는 이를 듯한 큰 키에, 쫙 달라붙는 정장을 갖춰 입은 늘씬한 미녀였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잠깐만 비켜 봐요.”

“제,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실비아 스필 세드릭 님.”

“…날 아세요?”

“그럼요. 이곳 테라 왕국의, 아니, 대륙의 이름난 천재를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죠.”

“…….”

“실력뿐만 아니라 성품까지 훌륭하시단 소문은, 이미 저희 연합 내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계집애.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단순했다.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입매가 꿈틀대는 저 꼴 좀 보라지.

제 칭찬에는 아주 껌뻑 죽겠는 모양이다.

“그에 비해, 제 상관인 이분은 저희 조직에서도 아무도 못 말리는 사고뭉치시구요.”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보다, 방금 연합이라고 하셨나요?”

“네? 아…….”

그제야 소개가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금발의 여인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자유연합에서 나온 세실리아 벤자민이라고 합니다.”

“역시…….”

실비아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 서열 13,562위. 연합의 실력 있는 4써클 마스터를 뵙게 되어, 저 또한 반가워요.”

“……!”

이어지는 실비아의 말에, 세실리아가 놀라 토끼눈을 떴다.

“어떻게…?”

“같은 마법사들에 대한 정보야, 모두 이 머릿속에 들어 있답니다.”

“대, 대단하시네요.”

실비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봤다.

“그럼, 이쪽이 그 유명한 에이스 디 파르마이시겠군요?”

“호오? 나는 마법사가 아닌데?”

“상식이죠. ‘십이월’의 여덟 번째. 그 이름값은, 대륙 전체를 떨어 울릴 정도니까요.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존경하고 있어요.”

흔치 않은 실비아의 칭찬에 사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못돼 먹은 성격과는 별개로, 보는 눈은 제법이군.”

“그것도 불과 몇 분 전까지지만.”

사내가 다시 인상을 썼다.

“뭐야, 그럼 지금은 존경하지 않는다고?”

“존경은 무슨. 이런 호색한인 줄 알았다면, 존경이 아니라 경멸을 했을 거예요.”

“경, 경멸?”

“아니면 멸시?”

“이 계집애가 보자 보자 하니까…!”

“아, 착한 제가 양보하죠. 한번 골라보세요. 혐오, 환멸, 천대, 증오, 벌레…….”

“야. 너 방금 나 벌레라고 욕한 거지?”

“어머. 속으로 말한다는 게 그만.”

“감히!”

완전히 불이 붙었다.

그 사이에 낀 우리 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나야 자리를 피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세실리아 씨는 참으로 곤란하겠다.

상관이라는 사람이 애하고 저러고 있으니…….

“저, 저기 봐!”

그런 세실리아 씨를 구한 것은, 언젠가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주변의 상황이었다.

“에, 에이스 디 파르마?”

“연합제일검!”

“맙소사. 대륙의 십이월이 왜 테라 아카데미에…?”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주변의 웅성거림도 커져만 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놀라움.

그 이면에는, 한 가지 의문점도 크게 작용했을 터다.

그는 마법사가 아닌, ‘검사’였으니까.

검사가 마법사 지망생들만 있는 테라 아카데미에 나타났으니, 궁금증이 생길 법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그 ‘에이스 디 파르마’라면.

마법사들에게 십이지왕이 있듯, 기사를 포함한 검사들에게도 뭇 대륙인들이 부르는 칭호가 달리 있었다.

의미는 같다.

현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12인의 검사들.

통칭 십이월.

그중 여덟 번째를 맡고 있는 폭풍의 검사가 바로 그였다.

“이봐.”

“저 말씀이십니까?”

“거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자꾸 말이 다른 곳으로 세는데, 잠시 나랑 얘기 좀 하자.”

“……?”

내 얼굴 위로 자연스레 의뭉이 번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유명인이 내게 무슨 볼일이랄 게 있겠는가?

이 부분만큼은 나와 생각이 같은지, 실비아와 세실리아 씨의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아씨.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적성에 안 맞는데… 뭐부터 얘기를 해야 하지?”

“네?”

“됐고.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그러면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그 어떤 얘기보다 충격적인 제안을 하는 그.

“너, 내 제자 안 할래?”

“……!”

거짓말처럼, 나를 포함한 다른 세 사람의 눈이 부릅 하고 뜨여졌다.

***

여기, 상당히 웅장하고도 화려한 문이 하나 자리해 있었다.

어쩌면 왕국에서 가장 비싼 출입문이 아닐까 절로 생각마저 드는 그것.

“대지의 마법사, 아즈문 사트리노 백작이 입장하십니다!”

그 휘황찬란한 출입문은, 왕궁 시종장의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천천히 열어 젖혀졌다.

그와 동시에,

“어서 오라, 아즈문.”

“…신, 아즈문 사트리노. 지엄하신 테라의 태양을 뵙습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내부의 정경.

수많은 신하들이 양옆에 줄을 잇고 있었다.

그 끝이 향하는 곳에 한 명의 중년 사내가 자리해 있었다.

단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형의 힘이 느껴지는 그.

“타이밍 좋군. 마침 마지막 안건만 남아 있던 참이야.”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됐네. 그대가 바쁜 걸 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옥좌에 앉은 중년 사내.

테라의 현 국왕, 우르고스 칸 테레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이작 후작. 그대가 기다려 마지않던 주인공이 딱 알맞게 도착했군.”

“…황공합니다.”

“정치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 줄은 알지만,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말이야. 빠르게 가자고. 늦은 아즈문을 위해 내 간략히 정리해 줄 테니.”

“…….”

귀족들을 일별한 우르고스 국왕이 이내 정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즈문.”

“…예, 폐하.”

“이들은 자네의 학장직을 파면시키기를 원하네.”

“……!”

설마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얘기할 줄은 몰랐는지, 귀족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폐, 폐하?”

“왜, 틀린 말인가?”

“음… 그것은 아니오나…….”

“아카데미의 학장, 아즈문 사트리노가 입학 비리를 저질렀다. 하여, 그 죄를 물어 맡은 바 직책을 박탈함이 옳다. 이것이 그대들이 내게 건의한 내용의 핵심인 것으로 아는데.”

“…….”

분명 맞는 말이었으나,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그렇노라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은 없었다.

“왜 대답들이 없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한 정리였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귀족들 사이로, 예의 뱀눈을 가진 사내, 아이작 후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게 죄인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폐하?”

“그리하지.”

“그럼…….”

우르고스 국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작 후작이 목청을 높였다.

“죄인 아즈문 사트리노 백작은 들으라!”

“…경청하겠습니다.”

“그대는 생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해야 할 학장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생도에게 수많은 특혜를 제공했다. 이에 대한 죄를 인정하는가?”

“죄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겠지요.”

아즈문 사트리노의 대답에, 아이작 후작이 인상을 찡그렸다.

“우문현답이군. 나는 그대에게 죄를 인정하느냐고 물었소.”

“제 대답은 같습니다. 제게 죄가 있다면, 그에 맞는 책임 또한 지는 게 옳겠지요.”

“책임이라… 그 말은 스스로 학장의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오?”

“물론입니다.”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즈문 사트리노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아이작 후작이 이내 왕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고, 스스로 책임을 지겠노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공도 있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고 사료되는 만큼, 저 또한 기존의 불명예 파면보다는 자진 사임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 선에서…….”

아즈문 사트리노가 아이작 후작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3년 연속 낙제생. 이제는 퇴학 예정자… 저는 세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제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트리노 백작…?”

“그럴 수밖에요. 제 손으로 데리고 온 아이였고. 저로 인해 마법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요. 단순히 제자로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그 낙제생 녀석을 편애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씀이오?”

“편애라기보다는, 그 아이의 잠재능력을 믿었다는 얘깁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궤변이요! 설령 친아들이라 해도, 어떤 제자에게든 평등하게 대해야 할 스승이 그럴 수는 없는 법이오.”

“그러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비록 결과는 낙제였지만, 그 아이의 잠재능력을 믿었다고.”

“그 무슨…!”

“물론, 그 믿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마침내 폭발한 아이작 후작이 고성을 내질렀다.

“사트리노 백작! 폐하의 앞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놓는가!?”

“…이리 말하곤 있지만, 그 아이에게 따로 특혜라 할 만한 무언가를 내준 기억은 없습니다. 도움이 되는 조언 정도라면 모를까요. 아이작 후작님은 대체 무얼 봤기에 저를 이리 몰아세우시는지요?”

“여러 정황이 그리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조언? 그런 조언이라면 다른 생도들에게도 똑같이 해줬어야지!”

“스승이 재능 있는 학생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궤변투성이로군. 재능 있는 학생? 한낱 낙제생이 말인가!?”

“곧 알게 되겠지요. 그 낙제생이, 올해 있을 랭킹전에는 참가할 예정이니까요.”

“뭐, 뭐라고?”

“제 죗값은, 그 결과를 보고 치러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워낙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서일까?

아이작 후작의 얼굴 위로, ‘혹시나?’ 하는 한줄기 감정이 떠올랐다.

그걸 눈치챈 다른 귀족들이 대번에 발광을 한다.

“어디서 개수작이냐!?”

“말이면 단 줄 아는가!?”

외부인사들도 지켜보는 랭킹전이다. 망신도 정도가 있지, 어디 낙제생 따위를!”

“추하오, 사트리노 백작!”

이에, 한차례 주변을 스윽 훑어본 아즈문 사트리노가 옅게 미소 지었다.

“무슨 말들이 그리 많소?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나는 이번 일에 내 목을 내어놓았소.”

“……!”

“그리고 나는 당신들과 같은 정치꾼이 아니오. 마법사지. 1을 주면 최소한 그와 동등한 가치의 다른 1을 받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 나요. 이걸 학계에서는 소위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하지.”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니, 묻겠소.”

“……!”

거짓말처럼 귀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아즈문 사트리노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힘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기에.

그 숨 막힐 듯한 침묵 속.

“그대들이 생각하는 나. 아즈문 사트리노의 목은 얼마요?”

“……!”

“그대들은, 그와 동등한 무엇을 내걸 작정이지?”

이윽고 대지의 마법사, 아즈문 사트리노가 마지막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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