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7화 (8/251)

7화. 알 수 없는 힘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지금 막 ‘필드’를 해제한 아즈문 사트리노와 유리나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안쪽과는 달리, 외부에서는 내부의 상황을 관전할 수 있는 백마전의 방.

한데, 갑작스레 안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그’ 황당무계한 사건이 목격된 직후에.

“분명히 손으로 잡았죠?”

“나도 봤다.”

“말도 안 돼! 오크의 근력은 다 큰 성인 남성의 3배잖아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아이언 스킨(Iron Skin), 그리고 스트랭스(Strength) 정도면…….”

유리나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아이언 스킨과 스트랭스는 2써클에 해당하는 마법. 그 둘을 동시에 펼치려면, 최소 3써클 유저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

“그에 비해 쟤는 1써클 유저. 그뿐인가요? 주력이 신체 강화도 아니고 변형이면서 어떻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마침 저기 나오는구나.”

“……!”

순간 말을 잇던 유리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방 안에 자리한, 필드로 향하는 또 하나의 문.

상대의 말대로 그곳에서 그녀 또래의 남자아이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타 클 로드리게스!”

고함 친 유리나가 후다닥 달려갔다.

“…내 이름은 세타 쿤 이그니스야.”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시치미 떼지 말고!”

예의 사내아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야말로 의문이네. 너나 학장님이 필드를 해제한 것 아니었어?”

“그, 그건 맞는데…….”

잠시 더듬거리던 유리나가 세타를 재차 쏘아붙였다.

“내가 봤거든!”

“그러니까 뭐를?”

“쇠못이 박힌 몽둥이를 맨손으로 붙잡는 거! 그러더니, 오크들이 스스로 뒤로 물러났잖아?”

“…….”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참이나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를 보며, 유리나가 팍 하고 인상을 썼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나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아니. 니가 생각해도 어이없지 않아?”

“응?”

“고작 1써클도 안 되는 아카데미의 낙제생인 내가, 오크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맨손으로 잡아? 그리고 기세만으로 그것들을 뒤로 물리게 만들고?”

“…어?”

한 말이 있는지라 그녀는 상대의 물음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의 핵심은 ‘환영’ 마법. 혹시 그 때문에 헛것이라도 본 거야?”

“아, 아닌데…?”

유리나가 도움을 구하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하, 학장님도 보셨잖아요?”

“음…….”

“에? 왜 대답이 없으세요? 아까는 분명 똑똑히 보셨다면서!”

아즈문 사트리노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글쎄… 내가 그랬던가?”

“…와,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저만 바보로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지금?”

“뭐, 네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 않느냐? 고작 1써클인 세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하! 나! 참!”

아즈문 사트리노의 배신(?)에 완전히 꼭지가 돌아간 유리나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오늘! 거듭 실망이네요. 기가 막혀서 정말. 아무래도 둘이서만 나눌 대화가 많으신 것 같은데, 한낱 바보 멍청이인 제자는 이만 빠져줘야 할 것 같네요!”

“살펴 가거라.”

“응, 들어가.”

마치 그 말만을 기다린 양, 두 사람이 곧장 반응했다.

“이익…!”

쾅!

이내 유리나가 땅까지 쿵쿵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그제야 아즈문 사트리노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뭐가 말씀이십니까?”

“모르는 척하지 말거라. 두 눈은 가릴 수 있을지언정, 마나의 흐름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니.”

“…….”

잠시 말이 없던 세타는, 곧 진정으로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이냐?”

“네. 분명 불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이처럼 멀쩡할 수 있는지도요.”

“…….”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듯, 아즈문 사트리노는 한참이나 상대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각성이라는 게 있다.”

세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각성이요?”

“마법사로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은, 대부분 10살을 넘기기 전에 그 천재성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지. 그게 마나의 발현이든,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매해 10살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나 감응 테스트를 벌여오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 특히, 소위 천재라 불리는 아이들은 그 재능을 눈으로 확연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네 동급생인 제노스는 고작 네 살에 마나구를 떠올렸고, 실비아 또한 여섯을 넘기지 않았지.”

“걔들은…….”

아즈문 사트리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할지 잘 안다. 방금 나간 유리나를 포함해서, 그 녀석들은 국가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천재 중의 천재들이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열넷에 마나를 발현해도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야. 그게 평균이니까.”

“…….”

“한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그가, 곧 묘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당대에 딱 한 명. 평균보다도 더 늦게. 그러니까 너와 같은 열여섯의 나이에 마나를 발현하고도, 위대한 십이지왕에 오른 인물이 있다.”

“……!”

“사람들은 나를 수십만 명 중에 13위라고 추켜세워 주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 십이지왕과 그 안에 들지 못한 마법사 사이에, 얼마나 거대한 벽이 존재하는지.”

전혀 접해본 바 없는 얘기였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멍하니 입까지 벌리고 있는 상대를 보며, 아즈문 사트리노가 재차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는…….”

우우웅!

“……?”

거짓말처럼 주변을 울리는 공명음에, 아즈문 사트리노가 움직임을 멈췄다.

예의 공명음의 진원지가 다른 곳도 아닌 그 자신의 품안이었으니까.

“통신용 수정구…?”

“…….”

귓가를 때리는 세타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수정구를 꺼내 들자, 곧 익숙한 얼굴이 그 안에 나타났다.

“학장님! 어디에 계십니까? 자리에 안 계셔서 곧장 수정구로 연락드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그게, 왕정회의에서 학장님을 지목하여 호출했습니다.”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아즈문 사트리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근래에 회의가 잦군. 조금 있다가 가겠다고 전해주게.”

“안 됩니다!”

“…뭐라고?”

“이번 왕정회의는, 폐하께서 직접 주관하신다는 전갈도 있었습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 합니다!”

“……!”

찰나, 아즈문 사트리노가 눈을 크게 떴다.

“폐하라고…?”

“일단은 곧장 왕정으로 향한다고 말은 전했습니다만…….”

“…바로 가지.”

수정구 속, 사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우웅…….

곧 빛이 꺼진 수정구를 일별한 아즈문 사트리노가 자세를 바로 했다.

“못다 한 얘기는 다녀와서 하지.”

“…예.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음…….”

꾸벅 고개를 숙이는 상대를 잠시간 바라보던 그가 이윽고 자리를 떠나갔다.

***

“…이제 나와.”

쉼 없이 발을 놀려 기숙사 앞에 도착한 내가 중얼거렸다.

“이제 혼자니까 나오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뭐 혼을 불러들이는 아티팩트라도 필요한 거야? 아니잖아. 또 하나의 나. 어둠의 세타. 지금 당장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니까?”

방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미친놈마냥 혼자 이러고 있기를 한참.

덜컥!

“날 불렀나?”

“유우우히!”

나도 알아듣지 못할 기괴한 괴성을 터뜨리자, 지금 막 방에서 나온 녀석이 팔짱까지 끼며 웃어댔다.

“훗… 내가 꽤나 놀라게 한 모양이군.”

“너, 너… 대체 언제 온 거야? 근 3일은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궁금한가?”

몸은 ‘나 마법사요’라고 홍보라고 하는 양 비쩍 마른데다 얼굴까지 완벽한 역삼각형을 이뤄, 마치 생쥐를 연상케 하는 또래 아이.

바이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녀석은 다름 아닌 내 룸메이트였다.

이곳의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2인 1실을 원칙으로 했으니까.

그럼에도 이 녀석이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시기를 보니, 너도 낙제구나?”

“같은 취급은 사양하지. 나는 이번이 두 번째니까.”

“…….”

…도토리 키 재기는.

보다시피, 이 녀석은 나만큼이나 답이 없었다.

학기말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게 되면, 일명 ‘낙제생의 방’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소기의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감금(?)을 당하는 것이다.

뭐,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기숙사는 석차 순으로 방을 배정했으니까.

즉, 500명 중에 499등.

꼴지 바로 앞이 이 녀석이라는 의미다.

한데도 어떻게 기숙사는 들어왔냐고?

“너네 부모님 알면 난리 나시겠다. 이번에야말로 방 빼야 하는 것 아니야? 낙제가 2번이면, 들어올 때 성적도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괘념치 않는다.”

“…정말로?”

“물론.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진짜 힘을 드러내면, 성적 따위는 단숨에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나간 학창 시절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지.”

“…….”

손발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기실 보기에는 어디 하나 모자란 애 같지만, 바이커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녀석이었다.

무려 왕국에 세 곳뿐인, 그 실비아나 제노스 델 카이클와 같은 공작가의 자식이었으니까.

허나, 한편으로는 나만큼이나 불쌍한 녀석이기도 했다.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건지, 스네이크 무리는 유독 바이커를 심하게 괴롭혀 왔으니까.

놈들도 아는 것이다.

이제 가문에서도 바이커를 내어놓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그러는 너야말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잽도 없이 곧바로 훅을 갈기는 녀석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뭐, 그렇게 됐다.”

“…그렇군. 마침 외부 인사들이 속속 광장에 도착하고 있던데, 이참에 그곳에서 새로운 직장이라도 찾아보는 건 어때?”

“외부인사라면… 설마 랭킹전? 그들이 벌써 도착했다고?”

바이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학년 중에는 워낙 눈여겨볼 인재들이 많으니까. 이런 기회에 미리미리 와서 친분을 쌓아두려는 거지. 그편이 훗날 스카우트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테고.”

“그건 그렇지.”

“물론 내가 본신의 실력을 드러내면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될 테지만. 큭큭큭…….”

“랭킹전이라…….”

바이커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외부 인사들이 벌써 도착했다면, ‘그들’ 또한 이곳에 와 있을 테니까.

어쩌면, 오늘 내가 겪은 이 기현상의 정체를 금방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혹여나 학장 할아버지가 내 숨겨진 재능을 먼저 알게 되면, 영영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암, 그래선 안 되지.’

이윽고 판단을 마친 나는 몸을 돌렸다.

“나 잠시만 갔다 올게!”

“…어? 진짜 가려고? 어차피 1써클은 신경도 안 쓸 텐데?”

“혹시 알아? 내 안에도 너처럼 드래곤이 똬리라도 틀고 있을지!”

“…뭐? 야! 뒤늦게 2학년 병이라도 도진 거야, 뭐야!?”

나는 상대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나저나 부럽네, 퇴학은…….”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목소리는, 완전히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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