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6화 (7/251)

6화. 개화

“미쳤나 봐!”

유리나가 기겁하여 소리쳤다.

백마전의 방.

실체는 허상이나, 고통은 완벽할 정도로 현실인 곳.

사용자가 들어서면 방은 또 하나의 필드를 생성한다.

필드는 곧 환경에 맞는 마물들을 토해낸다.

가령 필드가 ‘늪’이라면, 리저드와 같은 늪에 사는 마물들이 등장하는 이치였다.

물론 마물의 숫자는 사용자 임의로 조정이 가능했다.

생도들 모두가 제노스 델 카이클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설치된 마나석으로는 백 개체까지 생성해 내는 게 한계였기에, ‘백마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더불어 백마전의 방은, 내부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었다.

“자살 체험이라도 하려는 거야, 뭐야!? 고작 낙제생 주제에, 한 번에 스무 개체나 생성해 내서 어쩌자고…….”

인상을 찌푸린 유리나가 재차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 면면도 화려했다.

하급이라 불리는 오크가 십수 개체.

중급인 트롤이 세 개체.

심지어 상급 마물 중에서도 악명 높은 그 자이언트 엔트까지 자리하고 있었으니.

가히 아카데미 전체 2위에 빛나는 유리나에게도 버거운 전력이었다.

숫자야 그렇다 쳐도, 상급 마물은 그녀조차 상대해 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필드는 숲. 오크들이야 한 번에 몰살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트롤의 재생력은 꽤나 성가셔. 더군다나 자이언트 엔트는…….”

역시나 모범생인 것일까?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유리나가 한숨을 삼켰다.

“……저 거대한 덩치에 내리깔리기만 해도 피떡이 되겠지. 눈이 퇴화되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려나? 나라면, 다른 것들부터 정리하고 마지막에 숲으로 유인해 단번에 태워 버릴 거야. 하지만…….”

일순간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오스스 몸을 떨었다.

“혹시라도 저 혐오스러운 아가리에 어디 하나 잘못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으으으.”

마치 톱니를 연상케 하는 수백 개의 이빨이 흉흉하게 빛났다.

자이언트 엔트의 무시무시한 치악력은, 바위마저 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어렵겠어. 학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더군다나, 쟤는 고작해야 1써클 유저잖아.”

천천히 마물들에게 둘러싸이는 또래 아이를 향해 유리나가 주먹을 꼬옥 말아 쥐었다.

“신타 콘 푸로스트…….”

***

심장이 거칠게 박동한다.

그리고 한없이 요동치는 두 눈동자.

나는 누구인가?

이곳은 어디일까?

“커어어어어!”

“……헉!”

마물이 내지르는 괴성은 절로 내 몸을 굳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나같이 쇠못이 박힌 몽둥이를 집어 든 마물.

벌써부터 침까지 뚝뚝 떨구며 접근하는 선두의 이족(二足) 돼지.

“오크…….”

쿵! 쿵! 쿵!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거대한 무언가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크가 이렇게 무서운 생물이었나?

파이어 볼 한 방이면,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 나가떨어지는 쩌리들이 아니었던가?

“커어어어어!”

또 한 번의 괴성이 귀청을 때렸다.

“……!”

곧이어,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대체 어느새?

코앞까지 당도한 오크가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꽂는다.

피해야 한다.

저런 것에 적중당했다간, 약하디 약한 내 두개골은 곧장 터져 버릴 테니까.

퍼억!

“……큭!”

머리를 젖혀 가까스로 치명타는 피했다.

허나, 완전히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내 몹쓸 반사 신경은 그대로 우측 어깨를 내어주고 말았으니까.

우직, 우지직!

“크아아아악!”

뒤늦게 엄습하는 통증에,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이 고통.

꿈이 아니었던가?

환상이 아니었느냔 말이다!

아아, 생각났다.

이곳은 백마전의 방.

실체는 허상이되, 고통은 완벽하게 구현해 낸 곳.

허나, 내가 왜 이런 아픔을 느껴야 하는 걸까?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몸은 쉼 없이 뒤로 물러나면서, 마음은 하염없이 누군가를 원망한다.

나를 이 지경에 처하게 만든 장본인.

아즈문 사트리노.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인자했던 얼굴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전신을 내리누르는 공포감과 그에 대한 증오심만이 뇌 내를 가득 매울 뿐.

“꺼내줘! 꺼내달라고!!!!!”

있는 힘껏 고함쳐 봤지만, 의미 없는 외침이었다.

“커어! 커어! 커어어어어!”

도리어 마물들이 큰 소리에 반응하여 더욱 흥분했다.

쐐애애액!

오크의 손을 떠난 몽둥이가 나를 향해 날아든다.

괜찮아, 침착해.

이런 상황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이 정도 몽둥이쯤은 나도 피할 수 있다.

할 수 없어도, 해내야만 한다.

푸욱!

“쿨럭!”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둔중한 몽둥이는 정확하게 내 복부로 틀어박혔으니까.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 점차 의식도 멀어져 간다.

……잠깐만.

차라리 이편이 낫지 않을까?

사용자가 정신을 잃으면 방은 위험을 감지하고 필드를 해제할 테니까.

‘그래, 이대로 기절하는 거야.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일단 방을 나가기만 하면 곧장 아카데미를 떠나는 거야.’

애당초 어울리지도 않는 흰소리를 지껄였던 게 문제였다.

뭐? 랭킹전에서 설욕을 다짐해?

고작해야 1써클도 마스터하지 못한 반 푼이 주제에…….

“커어… 커어어어…….”

어느새 쓰러진 내 주위로 오크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다더니, 이 고약한 성격까지 제대로 구현해 낸 모양이었다.

최대한 고통을 주고 먹이를 잡아먹는 오크 본연의 습성.

기실, 오크들이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이놈들은 먹이를 두드려 팰수록 육질이 연해진다고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대로 내가 기절하는 꼴을 보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꺼내달라고요. 젠장!’

천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며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한심하군.

‘……!’

- 고작 오크 따위가 두려워 징징대는 꼴이라니…….

‘무슨…….’

- 이래가지고 복수는 할 수 있겠나? 쳐 맞기만 할 것 같다만.

환청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직접 들어와 웅얼대는 듯한 목소리.

- 당장 일어나. 자고로 수컷이라면 암컷 앞에서만큼은 약해도 강한 척, 있는 척해야 하지 않겠어?

번쩍!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환해졌다.

***

벌컥!

“학장님!”

제3번방이라 적힌 출입문을 열어젖힌 주홍빛 머리칼의 여자아이가 외쳤다.

“너는… 유리나가 아니냐?”

“당장 멈춰야 해요. 여기가 어디라고 쟤를 데리고 와요?”

“……세타를 잘 알고 있나 보구나.”

“최소한 1써클에 불과한 낙제생이라는 것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죠. 한계를 넘어선 충격은 실체에도 큰 무리를 준다고요. 학장님께서는 모르실 수도 있지만, 20년 전쯤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구요!”

“…….”

어딘지 모르게 흥분해 있는 유리나를 보며, 아즈문 사트리노가 한숨을 삼켰다.

“네 아버지 일 말이구나.”

“……!”

찰나, 유리나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알고…… 계셨어요?”

“내 밑에 있던 녀석의 일을 어찌 내가 모를까?”

“그런데 왜!”

“혹여라도 여기서 잘못된다면…… 그게 저놈의 운명인 게지.”

부르르르.

유리나가 꽉 쥔 주먹을 떨었다.

“운명……. 운명이라고요? 그럼, 제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도 다 운명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

“정말로… 실망이네요. 그런 분으로는 전혀 보지 않았는데.”

여전히 말이 없는 아즈문 사트리노를 보며, 유리나의 눈빛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됐어요. 제가 직접 필드를 해제하겠어요.”

“불허한다.”

“아무리 학장님이라도! 생도의 목숨을 담보로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벌일 수는 없는 법이에요. 더군다나, 그게 운명이니 하는 시답잖은 논리라면 더더욱!”

“…일단 지켜보거라. 여차하면 내가 직접 멈출 테니.”

“아니요! 저야말로 그냥은 두고 못 봐요. 저를 막으신다면, 이대로 상부에 보고할 생각이니까!”

이어지는 유리나의 말에, 아즈문 사트리노가 쓴 미소를 지었다.

“보고라……. 하면 그리하거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진심이세요? 곧 있을 왕정회의는요? 이미 학장님의 해임 안이 건의되어졌다고 들었어요. 여기서 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해임은 확실시 될 거라고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느냐?”

“중요한가요, 그게? 이러시지 말고, 무슨 사고라도 나기 전에 쟤부터 빨리……!”

순간, 재차 채근하던 유리나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흥분하여 보지 못했던 모습이, 그제야 시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곱절은 더 흠뻑 젖어 있는 상대의 등허리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마탑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12년 전. 저 녀석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검은 마물의 숲’에 있었다.”

“……!”

유리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검은 마물의 숲이라니…….”

“그것도, 당시 고작해야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꼬마 아이가 혼자서. 무언가 이상하지 않느냐?”

“고, 고아라고 들었어요. 혹시나 부모님이 버리셨다던가…….”

“아이 하나 버리자고, 검은 마물의 숲 한복판에까지 와서 말이냐?”

“…….”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유리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상했다.

대륙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검은 마물의 숲.

그곳은 인간의 접근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 오랜 금지(禁地)였다.

당대 대륙 제일이라 불리는 제국의 기사들조차 토벌에 실패하여 스러져 간 숫자만 수백을 헤아렸으니까.

5살배기 아이 하나 버리자고, 제 목숨을 걸고 그 위험천만한 장소까지 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나야 가는 길목이었고, 호기심이 더 컸다지만……. 그곳은 지금도 여전히 마물들로 득실거리고 있으니. 그 한가운데 자리한 아이를 발견하곤 얼마나 놀랐겠느냐? 당시에야 워낙 상황이 급박해 보여 물불 안 가리고 다 없애 버리긴 했지만.”

“그, 그래서요?”

“지금은 뭐랄까. 마치 마물들이 아이에게 접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쟤가 인간이 아니다, 뭐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유리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거야 지켜보면 알겠지.”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요.”

아즈문 사트리노가 고개를 저었다.

“내 감. 녀석이 ‘인간’이라는 가정 하에,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

“세타. 저놈은, 역사상 유래 없는 테이밍 마스터의 재능을 타고난 것일 테지.”

“테, 테이밍 마스터라니…….”

유리나가 상대의 말을 멍하니 따라 중얼거렸다.

동물도 아니고, 마물을 길들여?

그것도 일반 마물보다 세 배는 흉포한 검은 마물을?

“……!”

순간 상념을 이어가던 유리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때마침, 백마전의 방 내부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 돼!”

***

쐐애애애액!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 순간, 망막을 가득 메우는 기다란 무언가.

머리를 향해 육중한 몽둥이가 날아들고 있음이다.

허나,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덥석!

“……꾸익?”

오크가 기괴한 괴성을 토해냈다.

내 손에 단단히 부여 잡힌 한 자루의 몽둥이.

나도 놀랐는데 제 놈이라고 오죽할까?

“쯧. 생각보다 더 형편없군.”

한차례 손을 털어낸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한 건, 내 자의로 내뱉은 말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건 내 목소리인가?

내 육성인 듯, 내 육성이 아닌 듯한 무언가.

“대략 1써클……. 참으로 보잘것없군.”

분명 나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내 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의식 자체가 따로 노는 듯한 기분.

내면이 말한다.

육신은 하등한 인간의 것.

심장 어림에 자리한 마나마저 하찮기 그지없다고.

“허나…….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라고도 말했다.

1써클이라고, 다 같은 1써클이 아니라고.

마법의 이해도.

수식의 연산속도.

마나의 활용능력.

그 어느 것 하나, 너와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속삭인다.

주춤주춤.

“크르르르……?”

바뀐 내 분위기를 주변의 마물들도 감지한 것일까?

오크들이 뒤로 물러난다.

이제는 확연히 시야로 들어오는 트롤들마저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앞으로 걸었다.

딱 그만큼, 마물들도 뒤로 물러섰다.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도 매력 없겠지?”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휘젓자, 나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가량의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오크 정도라면 이걸로 충분하겠지. 잘 보고 배우도록.”

들을 사람도 없건만, 홀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나는 곧장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록(Rock).”

뒤이어 펼쳐지는, 1써클 대지 계 마법.

돌을 만들어내는, 아주 간단하고 별 볼 일 없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 손에서 펼쳐진 록은 더 이상 보잘것없는 마법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눈앞의 적들을 둘러싼 그것은, 한낱 조약돌이 아닌 바위였으며.

그그긍! 그그그그긍!

앞, 뒤, 좌, 우.

사방을 둘러싼 예의 바위들은, 긴 고랑을 남기며 서로를 향해 좁혀갔다.

“커어…… 커어어어어어……!”

마물들의 괴성이 또다시 고막을 괴롭게 만들었다.

허나,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제 그 육성에는 즐거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두려움과 공포.

무력감과 절망감.

쫙 편 손바닥이 조금씩 오므라든다.

그럴수록 바위는 더더욱 사방을 압박해 간다.

꾸우욱.

“커어어어어어어어억!”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마물의 비명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마침내 주먹이 완전히 쥐어졌을 때.

퍼어어어어어억!

무언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음과 함께, 한데 뭉친 바위들이 사방으로 진득한 피를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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