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빌어먹을 재능
우웅! 우우우웅!
매년 초를 제외하면 인적이라고는 드문 곳.
아카데미 인근에 자리한 숲속의 빈 공터.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 안에 앉아 있었다.
“헉, 헉… 흐읍…!”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뿐인가?
마치 몸 안의 혈관이라는 혈관은 모조리 불거지는 듯한 느낌.
의식이 몽롱해진다.
이건 꿈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꿈이기를 갈망하는 내 본능일까?
“꼬박 십수 년 만에 드러낸 네 의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았더냐? 정신 차려라!”
“으으으…….”
재차 귀청을 때리는 학장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지금 이 고통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준다.
빌어먹을.
그러게 왜 어울리지도 않게 그따위 쉰 소리를 지껄여서는…
“으아아아아아!”
전신을 옥죄여오는 압박감 속에서, 나는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그럴수록 예의 마법진은 더욱더 강하게 빛을 발했다.
“지금이다!”
“으으으… 예에?”
“네가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펼쳐 보거라. 단순히 위력이 뛰어난 공격 마법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네 머릿속에 떠오른 그 마법을 말이다.”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주르륵.
말을 잇던 와중에,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게 뭐 하는 짓거리지?’ 싶은 이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각각의 마법사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주력’ 마법 재능 테스트 말이다.
‘그놈의 망할 재능이 뭐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마법사들에게는 크게 3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천재와 둔재를 구분 짓는다.
첫째는 마법의 기본이 되는 마나.
여기에는 지닌바 마나의 절대치를 포함하여 순정도까지도 포함된다.
그래서 마나 연공법이 중요한 거였다.
소위 상품(上品)이라 불리는 명문가의 연공법은, 같은 시간 동안 마나를 더 많이.
그것도 훨씬 더 순도 높은 기운을 쌓을 수 있도록 거들어줬으니까.
참고로, 이 마나의 재능은 실비아 스필 세드릭을 따라갈 생도가 없었다.
물론, ‘다’ 잘하는 제노스 델 카이클, 그 괴물 녀석은 제외하고.
둘째는 수식의 연산능력이다.
식(式)이 복잡하고 영창이 길수록,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는 게 마법이다.
이 수식과 영창을 얼마나 짧고, 간결하게 줄일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능력.
쉽게 비유하자면 일종의 인간 계산기다.
1+1이 2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허나, 나누기에 곱셈까지 포함된, 더 나아가 최소단위가 만 단위부터 시작하는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남들은 손가락 하나하나 꼽아가며 곱셈부터 계산해 나갈 때, 소위 천재라는 것들은 머릿속 암산만으로 순식간에 술식을 마친다.
이 연산능력은 단연 유리나 벤 아리에나가 또래 중 제일이었다.
이론천재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셋째는 주력이 되는 마법의 성능, 그리고 상성이다.
아무리 연산능력이 뛰어나고 마나가 넘쳐흘러도 주력이 되는 마법이 쓰레기면 하등 쓸모없었다.
이 또한 예를 들자면, 마법을 펼칠 마나도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캐스팅할 능력도 되는데, 할 줄 아는 마법이 라이트(Light) 하나라면?
어떻게, 빛을 강하게 만들어 상대방을 실명시키기라도 할 건가?
물론 이건 극단적인 예였다.
제아무리 주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보다 두 써클 아래의 마법은 얼마든지 사용 가능한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느냐 하는, 숙련도 문제는 별개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마지막은 처한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변수가 많으니, 따로 최고를 꼽지는 않겠다.
다만,
“헉, 헉. 도무지 안 되겠어요. 제 능력으로는, 마나가 폭주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요!”
내 말에 학장 할아버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예상은 했지만…….”
“이, 이제 그만해도 될까요?”
“눈을 감고, 천천히 마나를 역으로 순환시키거라. 내가 도와줄 터이니.”
어느새 다가선 학장 할아버지가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잠잠해지기 시작하는 몸 안의 기운.
‘마나의 신비’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한 줌도 되어 보이지 않던 내 마나가, 이토록이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네?”
“의미 없는 짓이다.”
“…그 말씀은…?”
“대관절 무슨 바람이 불어 이리 나오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이상은 시간낭비일 뿐이야.”
“끙…….”
아까의 설명을 마저 하자면, 방금 들은 대로 나는 셋 중 어디에도 재능이 없었다.
울고 싶다, 진짜.
나도 알고는 있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른 법이니까.
1서클 마법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놈의 재능이 있겠나?
“…마법이 풀렸구나.”
“…네?”
“네 신체 변형 마법 말이다.”
“……!”
찰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전혀 몰랐다.
하기야 폭주하는 마나 속에,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니…….
“근 3년 만인가? 오랜만에 봐도 놀랍구나. 그 얼굴은…….”
“아, 벌써 그렇게나 됐나요?”
“쯧… 마법이 그 얼굴값의 반만 했어도 대륙을 떨어 울릴 마법사가 되겠거늘…….”
“하하하… 사람이 어디 모든 게 완벽할 수가 있나요?”
멋쩍게 웃어넘긴 나는 주섬주섬 얼굴을 매만졌다.
“그런데 학장님.”
“……?”
“비주력 마법으로는, 가망성이 전혀 없을까요?”
내 물음에 학장 할아버지가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없다.”
“…….”
“낙제생인 너라도 이 정도 기본은 알고 있지 않느냐? 고유의 마나가 선택한 주력 마법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 몹쓸 놈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마법을 사용하려 하면, 마치 댐이라도 된 것마냥 흐름을 방해하려 들지.”
“…….”
“결국, 비주력 마법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써클 자체를 늘려야 하는데… 댐을 강제로 무너뜨리기 위한 조건이 최소 두 써클이야. 다시 말해, 네가 7써클을 마스터한 최고위 마법사가 되더라도, 고작 5써클 마스터를 상대하기도 벅차다는 의미지.”
빙빙 둘러 얘기하고 있지만, 그냥 얼굴 성형술 하나로 만족하고 살라는 뜻이다.
“그렇군요…….”
그리 알아듣고 납득하려 했다.
불과 3초 전까지는.
“허나.”
“……?”
“방금까지 얘기한 건 어디까지나 마법의 기본이론이었고. 그와는 별개로, 나는 네 주력이 단순히 ‘신체 변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방금 못 보셨나?
남들은 하하 호호 웃으면서 받는 기본적인 시험조차 힘겨워하던 내 모습을.
“고작해야 1써클 유저(User). 원래라면 가장 기본기부터 배우고, 그제야 마나라는 것을 느껴가는 시기에, 무슨 놈의 주력이라는 게 있겠느냐?”
“하지만…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고작 1써클로 이만한 성형 완성도… 아니, 신체 변형 완성도를 보일 수도 없을 텐데요.”
“그거야 니가 십수 년 동안 그것 하나만 파왔으니 그런 게지.”
“아까는 재능 없다고 하셨으면서…….”
“없다고 안 했어. 남들 다 하는 이런 평범한 방법이 시간낭비라고 했지.”
학장 할아버지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두 눈으로는 때아닌 의지의 불꽃마저 태워 올리며.
“우선은 네 진정한 주력을 찾아보자.”
“진정한 주력이요?”
“시험은 지금부터다. 사람은 위기상황에서 진짜 힘을 발휘하는 법. 곧장 나를 따라오거라.”
***
아카데미 4층에 위치한 생도 수련실.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 비어 있는 그곳에서 한 소녀가 홀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염화(炎火)의 여왕 아그자하의 애완수여…….”
우웅! 우우웅!
영창이 시작되자 대기의 마나가 요동친다.
“태초에 탄생한 최초의 불꽃. 그 속에서 태어난 초월의 환수여…….”
화륵! 화르르르륵!
마나는 곧 공기마저 불사르는 뜨거운 화염이 되었으며.
“지금 모습을 드러내, 내 앞의 적을 말살해 주기를 원하노니… 파이어 폭시(Fire Foxy)!”
아르르르르!
마침내 화염은 짐승의 형상을 이루며, 세 갈래로 뻗어 나갔다.
소녀를 향해 달려드는, 십수 마리의 마물들을 향해서.
“깨개개갱!”
선두의 코볼트가 단말마 비명을 내질렀다.
그보다 뒤에 위치한 다른 마물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크륵! 크르르륵!”
“커억! 커억!”
“깽! 깨개갱!”
화염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이름 그대로 참상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마물들의 몸에 옮겨붙은 불꽃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꺼지지가 않았으니까.
결국, 그 신체를 완전히 태워 버릴 때까지.
“한 번에 열세 마리 정도인가…?”
예의 불꽃을 뿌려대는 소녀, 유리나가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내 최고 마법으로도 서른셋… 제노스 델 카이클, 그 괴물 녀석은 대체 어떻게 백 마리나 되는 마물들을 모두 없애 버릴 수 있었던 거지?”
텅!
곧 마나석이 작동을 멈추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마물들의 잔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물론 유리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홀로 상념을 이어가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내 성장,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느려. 일정 시기를 기점으로 정체기에 접어든 느낌이랄까… 대체 뭐가 문젠 거야?”
이윽고 유리나가 제 머리마저 쥐어뜯었다.
남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리나에게는 반드시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녀의 가문.
한때는 공작가를 목전에 둔 아리에나 후작가.
허나, 지금은 한낱 자작가에 불과한 그곳.
그렇다고 유리나가 그런 환경을 탓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명문가라는 건, 결국 사람을 따라가는 법이니까.
그 옛날, 화염의 마법사로 이름을 날리던 할아버지가 건재하던 시절처럼.
덜컥.
“…응?”
아무튼, 성장은 핑계였다.
사실은 마수들을 불태우며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유리나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벽을 넘어, 바로 옆쪽에 위치한 수련실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둘씩이나.
“학장님? 그리고 쟤는…….”
안면이 있는 아이였다.
가뜩이나 머리가 좋은 그녀가 아니던가?
같은 생도라는 점은 별개로, 바로 아침에 봤던 얼굴을 잊을 정도로 유리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신타 콘 푸로스트?”
물론, 관심에도 없는 동급생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
지금 나는, 한 공간에 와 있었다.
생도들에게는 ‘4층의 수련실’이라 불리는 이곳은, 그 악명도 자자한 백마전 시험을 치르는 곳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이곳에 올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기, 학장님? 주력을 알아보자고 하시더니 이곳에는 왜…?”
“아까도 말했지 않느냐? 평범한 방법은 시간낭비라고.”
“지금 말씀, 듣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상상이 드는데요?”
“아마 그 상상이 맞을게다.”
“…….”
곧장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나를 보며 학장 할아버지가 말을 잇는다.
“사실, 네가 직접 나를 찾아와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내 눈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절대로.”
“음… 그래도 혹시 아나요? 살다 보면 사람이 틀릴 수도 있는 거고…….”
“하여, 마지막이니만큼, 조금 극단적인 방법을 써볼까 한다.”
“하하, 자꾸 왜 이렇게 겁을 주시는지…….”
“알고 있겠지? 비록 환상이지만, 고통은 실제와 똑같다.”
상상이 현실이 됐다.
그 끔찍하고도 불길한 상상이.
“자, 잠깐만요. 학장 할아버지.”
“설렁설렁하면 절대로 꺼내주지 않을 거야. 하니,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살아남아 보도록.”
“아니, 잠깐만…….”
“진짜로 죽기 싫다면 말이야.”
“야이, 학장 할방구야!!!!”
이내 내 외침은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그리고…
“크르르릉…….”
어느새 완전히 변해 버린 주변 환경 속, 천천히 살기를 흘리며 다가오는 마물들.
오크에 트롤, 심지어 상급 마물이라 불리는 자이언트 엔트까지.
“꼴깍.”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고 했던가?
방년 16세.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할방구는 나를 불구로 만들 생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