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시험
‘…아차!’
욱하는 순간,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미쳤지.
뭐, 랭킹전?
만 명이 어쩌고 어째?
“크크크크…….”
“…….”
“크하하하하하하!”
예상대로 보란 듯 내 앞에서 광소를 터뜨리는 상대.
스네이크 그린 아이작.
순간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그리 만만하게 볼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경지만 따져도 나보다 몇 단계는 높은 3써클 마스터다.
그뿐인가?
테라 왕국의 귀족파를 이끄는 5대 가문.
그중 하나인 아이작 후작가의 장자가 바로 이놈이었다.
후환이 두려워 녀석의 가문까지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기사 가문들이 각각 고유의 오러 연공법을 보유하고 있듯, 마법사 가문에도 마나 연공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각 가문들의 마나 연공법은 극비 중의 극비로 취급되었고.
오직 제 가솔(家率)들에게만 전수되어졌다.
그마저도 직계가 아니라면 완전한 연공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눈앞의 상대는 단순히 경지뿐만 아니라 지닌바 마나의 순정도 또한 나보다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같은 마법이라도, 상급의 연공법으로 쌓은 마나일수록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었으니까.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런 쉰 소리를 지껄이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만… 내용 자체는 썩 마음에 들어.”
“…….”
“혹시나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일을 이리 벌려 놓고 도망갈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곧 한 걸음 훌쩍 다가선 개자식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 왕국… 아니, 대륙 어디를 가든 반드시 찾아내, 내가 손수 갈가리 찢어버릴 테니까.”
“…그럴 생각, 전혀 없어.”
“그러시겠지.”
그제야 씨익 미소 지은 개자식이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래. 아무리 건드려도 반응조차 하지 않던 놈이 이리 나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학장 할방구를 제법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
“나를 즐겁게 해준 대가로,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알려주지.”
아주 비밀스러운 얘기라는 듯, 한껏 목소리를 낮추는 놈.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또 남아 있었던 것일까?
“크크크. 표정 한번 볼만하군. 조금 더 골려주고 싶지만, 약속이니까 얘기해 주지. 그 할방구는 말이야, 곧 있을 왕정회의에서…….”
“한창 얘기 중에 미안한데, 가는 길은 막지 말아줄래?”
“……!”
놈이 워낙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아이들 대부분이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이 등장한 인물은, 좌중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나 벤 아리에나…?”
그 주인공이 현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실비아 스필 세드릭과는 대비되는, 마치 내리쬐는 햇살을 연상케 하는 주홍빛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키도 늘씬하게 빠져 향후 몇 년만 더 지나면 대단한 미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10대 중후반의 소녀.
이전과는 달리 개자식을 제외한 사내놈들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물들었다.
하기야 이게 정상이지.
얼굴이야 둘 모두 왕국제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실비아 스필 세드릭은 이 구역의 소문난 미친년이 아니던가?
유달리 특이한 취향을 가진 눈앞의 놈은 예외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뭐야, 네년. 지금 내가 볼일 보고 있는 것 안 보여?”
역시나, 잠시 눈치를 살피던 개자식이 이번에도 오만하게 지껄였다.
“볼일이라고…? 아~ 혹시 지금 눈앞의 이 양아치 짓을 말하는 건가?”
“야, 양아치?”
“딱히 간섭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야. 최소한 남한테 피해는 주지 않았으면 하는데?”
설마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도 못했다는 듯, 개자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뚫린 입이라고 이년이…….”
“왜, 불만이야?”
“…뭐?”
“불만이면 덤벼. 상대해 줄 테니까.”
“……!”
“왜, 자신 없어? 방금 보니까 얘한테는 엄청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고 있으시던데.”
그러면서 그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는 그녀.
아아.
너무나 눈이 부셨다.
‘그저 빛’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
평소에는 딱히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지만, 이리 좋은 녀석인 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다가갈 걸 그랬다.
“그러니까 네가 이름이…….”
“…….”
“쇼타 콘 엘리자베스?”
…취소다.
니가 더 나빴다, 몹쓸 것.
“…아닌가?”
“…내 이름은 세타 쿤 이그니스야.”
“아… 크흠,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얼핏 들어보니 제법 재미있는 얘기를 하던데. 불만 있음 나하고도 그거 하면 되겠네. 랭킹전.”
나를 일별한 유리나가 다시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년이…….”
“근데 이게 아까부터 어디서 봤다고 년년 거리고 있어? 이 자리에서 확 태워 버릴까 보다.”
움찔.
순간 개자식이 몇 걸음이나 뒤로, 더 뒤로 물러섰다.
나도 봤는데 코앞의 놈이라고 보지 못했을까?
저 진홍의 눈빛 사이로 번들거리는 짙디짙은 살기를.
나와는 확연히 다른 온도 차이에, 그제야 비로소 눈앞의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내게는 비록 몹쓸 것으로 각인되었지만, 그녀는 명실상부 이곳 테라 아카데미의 2인자.
그 제노스 델 카이클 다음가는 ‘포식자’였으니까.
“너… 내게 이러고도 무사히 아카데미 생활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사내놈이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자신 없으면 내 눈앞에서 꺼져. 이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이익…!”
재차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이제는 부들부들 떨어대기만 할 뿐인 개자식.
눈이 부신 그녀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말 끼리끼리 논다더니…….”
한차례 반대편을 힐끗 본 그녀가,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세상에, 실비아? 너도 거기에 있었니?”
“…….”
“있었으면 기척이라도 내지 그랬어. 아니면 방금 온 건가? 마음씨 고운 실비아가 있었다면, 이런 양아치 짓도 가만히 묵인하지 않았을 테니까.”
꽉 쥔 주먹으로 유리나를 노려보던 실비아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경배합니다, 빛이시여.
몹쓸 것이라는 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죄하겠습니다.
“그래? 네 눈에는 그게 그렇게 보였나 보네.”
“어머. 그 말인즉, 알면서도 수수방관했다는 뜻이야?”
“글쎄? 결과보다는 원인이 중요하지 않을까? 요점은 동급생을 괴롭히는 양아치가 아니라, ‘부정입학’ 비리. 이에 대한 생도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는데 말이야.”
“부정입학…?”
자신의 말을 멍하니 따라 중얼거리는 유리나를 향해, 실비아가 입을 가리며 조소했다.
“흐응,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그건 또 몰랐니? 너야말로 제대로 알아보고 끼어들지 그랬어.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스네이크가 얼마나 당황스럽겠니?”
“…….”
“모르면 지금처럼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얼마나 좋아.”
마지막 말은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실비아가 곧장 광장에서 멀어져 갔다.
“가, 같이 가, 실비아!”
“시, 실비아!”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가 제 편을 들어줬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던 개자식이 당황하여 외쳤다.
“너… 두고 보자.”
그리곤 악당이나 남길 법한 대사를 뇌까리며 후다닥 그 뒤를 따랐다.
“…….”
부지불식간 둘만 남게 된 드넓은 광장에는 이내 고요한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저기…….”
“…아.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딱히 너를 도와주려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 이제 수업 시작하니까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착각인가?
일순간, 유리나 벤 아리에나의 얼굴이 옅게 붉어진 느낌이 드는 것은.
“하! 나 참! 얘 좀 봐. 사람 민망하게 만들고 있어. 나, 나도 딱히 생색이나 내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거든?”
“…응. 나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됐고. 나 먼저 간다. 너도 서두르던가 말던가.”
꽤나 부끄러웠는지,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유리나였다.
마침내 홀로 남게 된 나는,
“미쳤지. 어쩌자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여서는…….”
그녀를 따라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애꿎은 머리만 쥐어뜯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개자식에게 자신 있게 한 판 붙자고 말했지만,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일단은 나도 수업을 들어야 하니까.”
그래, 수업.
몰랐다면 모를까.
전말을 알게 된 이상, 학장 할아버지에게 더는 폐를 끼칠 수 없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분에게 영향을 미칠 테니까.
더군다나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의 제1교시는 ‘지각이 곧 지옥’인 실전 마법학이었다.
***
채챙! 채채채챙!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쉼 없이 울려 퍼졌다.
반 아이들 모두가 지켜보는 모의 전투였다.
한쪽은 실전 마법학 담당교수인 환영의 마법사, 라이언 테일러였고.
그 상대는…
휘릭! 휘리릭!
마나로 이루어진 검이 움직인다.
그 검은 어느새 족히 제 신체 길이는 될 법한 창으로 변형되었고.
쐐애애애액!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라이언 테일러의 심장을 찔러 갔다.
파스스.
“……!”
마나를 이용해 무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주인공, 제노스 델 카이클이 일순간 눈을 치켜떴다.
완벽히 찔렀다고 생각했다.
한데, 손안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창이 파고든 것은 허상(虛像)이요.
이를 해냈다고 착각한 제노스에게는 완벽한 ‘틈’이 생겼으니.
화륵! 화르르륵!
그런 제노스의 양옆으로 타오르는 불꽃구가 덮쳐들었다.
“…헉!”
재차 당황했다는 듯 헛바람마저 들이켜는 그.
누가 봐도 제노스의 완벽한 위기였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낸 그 라이언 테일러 교수님조차, ‘끝났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데,
쉬이이이익!
“……!”
되레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라이언 테일러였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람 소리로 착각할 법한 작디작은 소음.
허나, 귀가 아닌 벼려진 육감이 알려준다.
전신을 짜르르 울리는 이 서늘한 감촉은, ‘기회’가 아닌 ‘위기’라는 것을.
퍼석! 콰아앙!
이윽고 두 불꽃구가 맞부딪혔다.
그리고, 충돌 직전에 사라지는 제노스의 신형.
“잔상…!”
그 모습을 발견한 순간, 라이언 테일러가 신음처럼 외쳤다.
방심했다.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 마나의 농밀도가 훨씬 떨어지는 분신.
색감은 흐릿하고 신체의 가장자리는 끊임없이 떨려대, 조금만 자세히 봤더라도 곧장 눈치챌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 이유.
설마하니, 상대가 환영마법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푸욱!
어느새 레이피어로 뒤바뀐 제노스의 마나가 라이언 테일러의 목을 찔렀다.
다가설 때는 깃털처럼 가볍게.
허나, 공격할 때만큼은 벌처럼 매섭게.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 낸, 그야말로 완벽한 한 수였다.
하지만…
“음…….”
반대로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제노스였다.
조용히 앞뒤 목덜미에 드리워진 두 개의 손날.
“…졌습니다.”
파스스!
그 말과 동시에, 레이피어에 관통당한 라이언 테일러의 두 번째 잔상이 사라졌다.
“역시 1등. 훌륭한 한 수였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니. 네 마법 완숙도는 정말이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다. 당장 마탑에서 테스트를 봐도 1만등 안에는 들겠어. 네 졸업식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저 라이언 테일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극찬이었다.
짝짝짝!
천천히 거두어지는 마나방벽 너머로, 아이들이 쉼 없이 박수를 쳐댔다.
“놀지만 말고, 너희도 조금은 제노스를 본받도록 하거라.”
“에이, 선생님. 저 괴물을 저희가 어떻게 따라가요?”
“그건 이 녀석이 수련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일 테지? 제노스가 단순히 재능만 가진 천재였다면, 나도 이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쳇. 누구는 성실도 재능이라던데…….”
“…….”
불만스레 중얼거리는 아이를 일별한 라이언 테일러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럼, 다음은…….”
“제가 할게요, 선생님!”
기다렸다는 듯, 한 여자아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은안의 머리칼이 유독 눈에 띄는 그녀.
“등수대로 나오는 거냐? 아주 초장부터 나를 말려 죽일 생각이구나.”
“호호호. 왜 어울리지도 않는 약한 말씀이세요? 우리가 전부 덤벼도, 환영의 마법사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텐데.”
저, 저, 가식적인 모습 좀 보라지.
어쨌든 유리나는 다른 반이었으니, 등수대로라면 이 미친년 순서가 맞았다.
“이번에도 긴장해야겠군.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전투마법이 제노스라면 보조마법은 실비아를 따라올 생도가 없으니까 말이야.”
“어머. 칭찬 감사해요, 선생님.”
“한마디 덧붙이자면, 너희 둘은 상성이 아주 잘 맞을 거다. 졸업 조별 과제에서 두 사람이 한 팀을 꾸리게 된다면… 썩 괜찮은 그림이 나올 거야.”
그 졸업 조별과제라는 건, 구성되는 팀원이 무작위라는 게 함정이지만.
“정말요?”
그러거나 말거나, 실비아는 진심으로 기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른 쪽을 돌아봤다.
“선생님께서 그러시다네, 제노스?”
“…….”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간드러지는 실비아의 목소리에, 제노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적에 도움이 된다면.”
“섭섭해라. 나는 다른 쪽으로도 친해지고 싶어서 한 말인데.”
“…….”
재차 치근덕대는 실비아를 보며, 아직 미혼인 라이언 테일러가 똥 씹은 표정으로 말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연애는 수업 끝나고 해라. 그리고 이왕이면 졸업 이후에 하면 더 좋고. 너희도 명심해라. 서열 일만 위 정도만 되어도 훌륭한 신부, 남편감들이 아주 줄을 설 테니까 말이다.”
“…….”
지금 이 순간, 아이들 모두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있었다.
예의상 그 누구도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기야, 그래도 사제지간이 아닌가?
버르장머리 없이, 그 말을 필터링도 없이 내뱉을 만한 간 큰 아이가 누가 있겠…
“에이, 그건 아니죠. 선생님은 아직도 솔로시잖아요?”
“…….”
“아무리 서열이 높아도 대머리를 좋아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다구요.”
깜빡했다.
실비아 스필 세드릭.
역시 저 미친년은 논외로 쳐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
나태한 내 성격에 불씨를 지핀 것이 스네이크 무리와의 만남이었다면, 앞선 전투 수업은 그 불씨를 강화시키는 기름이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큰소리만 빵빵 쳐대는 실없는 놈으로 기억되긴 싫었으니까.
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경지는 1써클.
그마저도 최하위 티어로 구분되는 ‘신체 변형’이 주력인 나.
그런 내가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밖에 없었다.
“네가 무슨 일이냐? 직접 나를 다 찾아오고.”
“학장님.”
“…응?”
“저, 다시 한번 시험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시험…?”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학장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 재능 말입니다.”
“…뭐라고?”
“사실 제가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혹시 모르잖아요. 사실은 마법에 숨겨진 재능이 있는 걸지도.”
“…….”
잠시간의 침묵 뒤.
그런 나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던 학장 할아버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 뜬금없구나.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냐?”
“그냥요. 나갈 때 나가더라도, 한 번쯤은 제대로 해보고 싶거든요.”
“제대로라…….”
작게 중얼거리는 학장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가슴속에서 의지가 샘솟고 있었다.
혹시 알아?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일단 하게 되면, 역대급 대마법사의 재능을 개화(開花)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