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카데미의 낙제생
지금 내 앞에는, 통째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문이 자리해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바위’의 문양이 선명하게 양각되어 있는.
아무리 나라도 이전부터 이 앞에 설 때면 주눅이 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방의 주인이 바로 이곳 아카데미의 학장이자 마탑 전체 서열 13위에 빛나는 인물.
‘대지’의 마법사, 아즈문 사트리노의 방이었으니까.
“왔으면 곧장 들어올 것이지?”
“…헉!”
깜짝이야!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자, 척 보기에도 단단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 봐도 참 놀랍다.
저 얼굴에, 어지간한 기사들 후려갈길 정도로 근육질투성이인 이 사람이, 실상은 곧 일흔 살에 접어드는 노인네라는 사실이.
“들어와라.”
“아, 예…….”
엉거주춤 따라 들어가자 학장 할아버지가 곧장 자리를 권해왔다.
“앉아.”
“알겠습니다.”
“차는 필요 없을 테지? 어차피 네놈은 손도 대지 않을 테니.”
“혹시 차 말고 다른 건 있을까요?”
나른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대번에 상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
평소였다면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니, 일단은 이 몹쓸 수마부터 몰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10년이 지나도 변하지가 않는구나, 네놈은.”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던가요?”
“그래, 올해로 열여섯. 네 말마따나, 코흘리개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지. 그 게을러빠진 성격도, 실력도.”
다른 건 몰라도 실력은 조금 올랐는데 말이지.
고작 1서클이지만.
“나가면 뭘 할 생각이냐?”
“정말로 허락은 해주시는 겁니까?”
“학칙은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니까. 나는 이곳의 학장이고.”
“앞에서는 이리 원리원칙을 내세우시면서, 돌아서면 항상 말이 바뀌셨지 않습니까? 특히나 저한테는요.”
꽤나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지만, 마음은 정반대였다.
그 원리원칙을 어기면서까지 한 일이라는 게, 모두 내게는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으니까.
문제는, 상대의 마음이 어떻든 당사자인 나는 이곳에 조금도 미련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 성적도 되지 않는 네가 기숙사에 들어간 일, 예정에도 없던 낙제생들만의 특별 보충수업을 새로이 만든 일… 모두 내 선에서 처리가 가능한 사안이었지만, 이번 건만큼은 예외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학장님께 섭섭해서 드린 말씀이 아니니까요.”
“너를 위해 그런 일을 벌인 거라 생각하는 거냐?”
“예?”
“착각하지 마라.”
“……!”
놀라 토끼 눈을 뜨는 나를 향해, 학장 할아버지가 일침을 가했다.
“책임감 때문이었다. 천애고아였던 너를 이곳 아카데미로 데리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
“내 느낌을 믿었다. 처음 봤던 너는, 대륙의 그 어떤 아이들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원석 그 자체였으니까. 한데 지금의 너는…….”
왜인지 모르게 흥분하여 쏘아붙이던 학장 할아버지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얘기는 이제 되었다. 중요한 건, 한 번 예외를 두면 그 썩은 싹이 결국 전체로 번져 갈 거라는 사실이야. 썩은 싹은 부정(不正)이라는 뿌리를 내리고, 비리(非理)라는 열매를 맺게 되겠지.”
“…….”
“입학과 졸업, 그리고 퇴학.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절대로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재능이 없는 건 죄가 되지 않지만, 노력하지 않는 건 그 자체로 죄악이다. 다시 물으마. 나가서 무얼 할 생각이냐?”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 이름으로 적당한 곳에 추천을 넣어줄 수도 있다. 열심히만 하면, 먹고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그건… 동정입니까?”
멈칫.
찰나 움직임을 멈춘 학장 할아버지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내가 왜 이러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툭 내던지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일인데.
분명, 아카데미 따위가 아쉬워서 이러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너…….”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재빠르게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추천은 됐습니다. 그래도 명문 테라 아카데미에서 수년을 다닌 짬밥이 있는데, 먹고사는 게 문제겠습니까? 정 할 일이 없으면 용병이라도 하죠, 뭐.”
“네 녀석, 용병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나 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또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내려던 학장 할아버지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억겁과도 같은 찰나의 침묵이 이어지기를 잠시.
“…보내주마.”
“…….”
원하던 대답이었지만, 이번에도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네 몸을 훑어봐도 되겠느냐?”
움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으나,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 말대로, 이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예.”
“잠시 실례하마.”
“…….”
훌쩍 다가선 학장 할아버지가 망설임 없이 내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두껍고 단단하기 그지없는 손.
평소에는 그토록 커다랗게 보이던 그것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그것과는 별개로, 아예 눈까지 감아버린 학장 할아버지의 낯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리가 하나. 그마저도 역시…….”
“…….”
내가 그저 고개만 갸웃하자, 그제야 학장 할아버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처음에는 네가 정체를 감춘 이종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무슨……?”
이종족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비록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고 옅은 기운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던 건 내가 지금껏 경험해 본 대륙의 그 어떤 기운보다 순수하고 농도 짙은 ‘마나’였으니까.”
“…….”
“내 상식으로, 인간이 타고날 수 있는 기운은 절대로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보다 마나 친화도가 월등히 높은 엘프. 그도 아니면…….”
순간 말을 이어가던 학장 할아버지가 피식 실소했다.
“…이제 와서 그따위 것이 무슨 상관이던가?”
“예?”
“…아니.”
“……!”
이번에야말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나는 ‘흡’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갑작스레 학장 할아버지가 내 몸을 와락 껴안았기 때문이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연이어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 밑에서, 마음에도 없는 아카데미 생활하느라 그간 고생 많았다.”
“…….”
“힘들면 나를 찾아오거라. 손님이 너라면, 저 문은 언제든 열려 있을 테니까.”
“…학장님.”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나를 떼어낸 학장 할아버지가 곧장 몸을 돌렸다.
“네 퇴학 수속은 내가 직접 처리하마. 한 가지 알고 있어야 할 건, 아카데미의 생도들 또한 폐하의 귀중한 재산이기에, 당장은 떠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네가 양보하거라.”
“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우선적으로 왕실에 계신 수석마법사 님에게도 허가를 득해야 하니… 아마도 한 달은 걸릴 게다.”
“한 달…….”
며칠이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심심하지는 않겠지. 당장 다음 주부터는, 이주 동안 아카데미 랭킹전도 시작되니까. 어차피 너는 참가하지도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그거라도 즐기고 가거라.”
“아, 그러고 보니…….”
“예부터 남의 싸움이 제일 재미있다지?”
랭킹전은, 생도들의 실전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한 아카데미의 교육방식 중 하나였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고.
비록 학기 성적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은연중 저 비공식 랭킹을 시험보다 더 신경 썼다.
점수만 높으면 뭐 하겠는가?
막상 실전에서 맞붙으면 깨지기 일쑤고, 낮은 놈이 높은 놈을 잡아먹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더군다나 외부 인사 또한 많이들 참관하는 랭킹전이기에, 이곳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조기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는 했다.
명망 높은 가문이라던가, 왕실 마법군단.
심지어 십이(十二) 마탑에서까지.
물론 참가는 자유였기에, 나는 단 한 번도 이 랭킹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봐도 될까요?”
“그래, 가봐라.”
“예. 그리고…….”
“……?”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학장 할아버지를 향해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감사했습니다.”
“…….”
그러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왔다.
“세타, 이 녀석아. 나가면 네가 원하는 자유를 얻을 성 싶으냐? 바깥은 그야말로 힘이 전부인 무법천지이건만…….”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는 애써 무시하며.
***
덜컥.
“하아…….”
방으로 돌아온 나는 쓰러지듯 침대 위에 엎어졌다.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자 마음 한편으로 불안감이 뭉클 피어올랐다.
성격상 매일같이 놀고먹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돈’이 없지 않은가.
“용병이라…….”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사실은 허세 한번 부려본 거다.
신체 변형.
수백, 수천 가지의 마법 중 가장 흔하면서도 참으로 보잘것없는 능력.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릇.
다시 말해 마나의 절대치가 낮은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갈고 닦는 것이 이 신체 변형 마법이었으니까.
같은 ‘보조 마법’의 대표 격인 헤이스트나 스트랭스.
세부적으로는 ‘신체 강화’로 분류되는 이런 마법들과는 궤가 달랐다.
유지시간에 비례하여 마나가 소모되는 그것들과는 달리, 일시적으로 물질의 형태만 바꾸는 신체 변형 마법은 마나 소모가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그럼 또 누군가는 말하겠지.
약하디약한 인간의 피육을 강화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육체 자체를 맹수의 그것처럼 뒤바꾸는 편이 좋은 것 아니냐고.
이거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악어의 송곳니를 가진들, 그 치악력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쉽게 비유하자면, 어린애가 제법 날 선 나이프를 쥔 것.
딱 그 정도다.
아니, 차라리 나이프를 드는 편이 나으려나?
그건 적어도 아까운 마나를 소모하지는 않을 테니까.
문제는 또 있었다.
완전히 쓰레기처럼 취급했는데, 사실 이 신체 변형도 사용자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두 팔을 날개로 변형시켜 허공을 자유자재로 노니는 ‘천공’의 마법사 제피로스.
그는 그 신체 변형을 주력으로, 마탑 서열 200위 안에 드는 쾌거를 이루어냈으니까.
“평소에는 생각도 안 했는데, 막상 홀로서기를 하려니까 걱정만 늘어나는 기분인데…….”
차라리 사지 중 하나를 변형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우웅!
순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극히 미약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마법이 시전되기 전의 전조현상.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얼굴’ 전체로 옅은 빛이 번져갔다.
조금씩, 하지만 착실히.
“처음부터 다른 신체 부위를 변형시키는 데 공을 들였어야 했나?”
문득 든 생각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벌써 10년.
아쉽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태생이 귀찮은 내 성격에, 원래의 외모는 너무도 눈에 띄었으니까.
절로 짜증이 치밀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