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프롤로그
권태롭다.
이젠 그 무엇을 하든 일말의 흥미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따분하고 지겨운 일상.
손가락 까딱하는 약간의 행동마저 귀찮은 하루하루.
이제 고작해야 3,000년을 살았을 뿐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곱절은 더 남았건만.
‘차라리 죽을까?’
문득 든 생각에 곧장 고개를 도리질 쳤다.
남은 수명, 대략 7천 년.
신은 내게 영생(永生)에 가까운 저주를 내리면서도, 자의적인 죽음은 허락지 않았다.
‘하면, 유희라도 해볼까?’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본다.
역시나 내키지 않았다.
항상 생각해 왔으니까.
그걸 놀이랍시고, 하등한 것들과 어울려대는 머저리는 되지 않겠다고.
지성이 있는 종족이 짐승들 사이에서 자라나면, 이내 그 무리에 물들어 버리듯.
태생부터 자라난 환경 자체가 달랐다면 또 모를까…….
‘…잠깐.’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번뜩였다.
유희, 그리고 타고난 환경.
스쳐 본 지식조차 절대로 잊지 않는 머리가 알려준다.
그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일족의 지식이었다.
최초 연구자였던 그가, 조금 더 스릴 있는 유희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진 마법.
소울 이스케이프.
이름 그대로, 혼 자체를 전혀 다른 존재의 육신으로 ‘전이’시키는 마법이었다.
하나, 오늘날에는 완전히 사장되다시피 한 마법이기도 했다.
그가 최초로 마법을 펼치고 고작 10년이 지났을 무렵.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이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육신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이된 육신이 잘못될 경우 본체까지 위험해진다던가. 그도 아니면 애초에 돌아올 방법 따위는 고안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어떤 경우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이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
혹여나 선례와 같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최소한 그건, ‘자의적인 죽음’은 아니지 않은가?
펄럭!
생각을 마친 순간, 실로 오래간만에 이 거대한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 버려진 바람의 일족, ‘라그하일’의 레어로 간다.
***
그로부터 다시 300년.
결국 나는 라그하일의 마법을 찾아냈다.
이건 게으르고 나태하기 그지없는 지금의 내게 엄청난 수고스러움이었다.
뭐, 이제 아무렴 어떤가?
중간 중간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은 찾아내고 말았으니까.
남은 건, 어느 하등한 무리에 섞여드느냐 하는 고민만 남은 상태였다.
‘시간조차 아까운 고민이야.’
휘오오오오오오!
거대한 동공 내.
몸 안 가득 휘몰아치는 막대한 양의 마나를 느끼며, 나는 비죽이 미소 지었다.
시끄럽고, 요란스러우며, 제 종족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야만적인 것들.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는 자신과는 달리, 매일같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비루한 존재들.
‘인간.’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