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끝을 보다(3)
이틀간 김창훈은 조용히 휴식을 취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특히 이번 연합군의 총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리플러스는 이틀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김창훈의 말대로 정말로 연합군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인지,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검은색의 안개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면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관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검은색의 안개가 이동하고 있는 곳의 끝에 분명 사신교의 교주가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사신교 교주가 이들을 초대했다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자 리프러스는 소수 정예로 사신교 교주를 죽이기 위한 결사대를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사대를 아무나 뽑을 수는 없었고, 김창훈이 없는 동안 다른 세계의 이들과 쌓은 친분과 각고의 노력 끝에 그들의 본래 세계와도 연락이 닿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더 많은 정보의 교류를 통해 각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전술가들이 모여 결사대의 멤버와 전술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이기 시작할 때. 최악의 소식이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리프러스는 곧바로 김창훈을 호출했고.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다시 움직이기로 결정한 그는 자신을 부르는 리프러스의 호출에 응해서 그녀가 있는 막사로 향했다.
김창훈이 막사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하나같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니 넘어가고. 그보다 분위기가 안 좋군.”
“예.”
“결사대 때문인가?”
“단순히 결사대의 문제라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상황이 바뀌었다니?”
“이걸 봐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막사의 중앙에 있는 구체에서 빛과 함께 허공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우리 뮤 제국에서 만든 정찰기를 통해서 확보한 영상으로, 검은색 안개가 모이고 있는 곳의 모습을 촬영한 겁니다.”
검은색의 짙은 안개만 보이는 지상. 그 위를 움직이고 있는 정찰기. 지상의 모습을 계속 보여 주는 홀로그램을 보며 도대체 뭘 보라고 하는 건지 김창훈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검은색의 안개가 이동하여 나타난 지상에서 무언가 있었다.
“저건.”
“언데드입니다. 그것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언데드들이 지금 저 검은색의 안개 안에 있습니다.”
검은색의 안개가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나타난 지상 위에는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찰기가 고도를 높여 보아도 언데드 몬스터들의 모습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산도, 강도, 들판도 모두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언데드 몬스터들은 자리를 잡은 곳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진격 경로를 계산하면 정확하게 이곳입니다.”
리프러스가 있는 연합군의 중심. 그곳을 향해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초대를 한다고 해 놓고 우리가 안 가니 직접 손님맞이하러 오는 거군.”
김창훈의 말에 리프러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단 1도 없습니다.”
“저 언데드 몬스터들 때문에 날 부른 건가?”
“예. 결사대를 결성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취소해야겠습니다.”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겠네.”
결사대는 연합 최고의 전력들이 모이는 것이다. 초월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최고의 전력이 사신교 교주를 잡기 위해서 돌격을 한다면.
저 엄청난 수의 언데드들이 이곳을 덮쳤을 때, 이곳에 있는 이들은 과연 저 언데드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저 언데드들을 수월하게 막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겠지.”
“예. 그래서 결사대 건은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추가 전력이 더 필요합니다. 각 세계에서 최소 십만 단위 이상의 병력 차출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홀로그램 영상을 증거 삼아서 말이죠.”
“찬성했나?”
“예. 모든 세계가 다 찬성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김창훈 님의 세계인 지구였습니다.”
“지구에서?”
“예. 참 정의로운 분들이더군요. 저런 몬스터들이 날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믿는 것은 아니지?”
“일단 명분은 확실합니다. 그분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제어해 줄 분이 여기 계시는군요.”
“나보고 알아봐 달라는 거군.”
“연합으로 함께한다고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구에서 보낸 전력은 명백히 과잉 전력입니다.”
리프러스가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김창훈은 이제 지구에서 도대체 몇 명의 헌터들이 왔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온 건데?”
“SS등급 헌터 200명, S등급 헌터 9,500명, A등급 헌터 13만 명입니다. B등급 이하 헌터들의 수를 제외하고 이 정도 숫자입니다.”
“SS등급 헌터가 200명이라고?”
“예.”
화신의 등장으로 헌터들의 질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하지만 지구에 SS등급 헌터의 존재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S등급 헌터 위에 존재하는 사람은 김창훈이 유일하였다. 그가 최초로 SS등급이라는 헌터 등급을 만든 사람이고 그 원인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200명이나 되는 SS등급 헌터들이 생긴단 말인가? 지구 전체에 SS등급 헌터 200명이 있다고 해도 믿기 힘든데 지원을 보낸 것이 이 정도 수라면 지구에는 아직 남은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자신이 이곳에서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지구의 일에 너무 무신경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김창훈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서 만나 봐야 할 것 같네.”
“지구에서 온 지원군의 대표들이 이 근처 막사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줄 병사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고맙군. 그리고 결사대에 대한 부분은 네 뜻대로 하도록 해.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나는 사신교 교주를 찾아 갈 거야. 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 영원히 이 전쟁은 끝낼 수 없을 테니까.”
그 말에 리프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훈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김창훈 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김창훈 님 정도 되는 전력을 이곳에 묶어서 운용하기보다는 마음껏 적진을 헤집어 놓는 편이 더 유리할 테니 말이죠.”
“뜻이 통해서 좋네. 그러면 병사를 불러 줘.”
“예. 밖에 병사 들어와라.”
리프러스의 말에 병사 한 명이 들어와 리프러스에게 경례를 하자 리프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분을 지구에서 온 지원군들의 대표들이 머무는 막사로 안내해 주도록.”
“예! 총사령관님!”
그리고 병사의 안내를 받아서 지구에서 온 이들이 머무는 막사에 들어간 김창훈은 익숙한 얼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다양하게 왔네요.”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는구나.”
검성 박연진.
“일이란 일은 다 벌려 놓고 도대체 왜 이제 오는 거냐?”
검황 남궁철.
“저는 최대한 말렸습니다, 총장님.”
가디언의 실질적인 총장 겸 부총장이라고 불리는 프로즌.
“드디어 일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겠군.”
초대 그림 리퍼의 뒤를 이은 2대 그림 리퍼까지. 가디언이라는 조직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강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러 온 것이지. 사신교의 문제는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구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박연진의 말에 다른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교의 위험성은 여기 있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전력은 뭡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에서 20년은 지났습니까?”
“아. 그 부분. 그 부분은 우리들도 참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지.”
남궁철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화신들과 계약을 맺은 이들은 급속도로 강해졌어. 거기에 문화 교류가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성장한 이들도 있더군. 추가적으로 강해진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더 빠르게 성장하기도 했고. 모든 부분이 맞물리면서 지금 지구에서는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진 헌터들이 빠르게 탄생하고 있네. 유례없는 황금기로 부를 정도로 말이야.”
“황금기요?”
“그래. 헌터 황금기. 기존의 재능이 없다는 헌터들도 화신과 계약하는 순간 강해질 수 있게 되었지. 설령 재능이 없다고 해도 극도로 한 노력이 예전보다 더욱 쉽게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어. 그러니 당연히 강해질 수밖에 없지.”
그 말에 김창훈은 프로즌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가디언에 등록된 SS등급 헌터의 수는 총 몇 명이야?”
“제가 마지막으로 파악했을 때, 400명을 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거의 500명에 근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수에 김창훈은 놀랐다. SS등급 헌터의 기준이 SS등급 몬스터를 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지구에는 홀로 드래곤을 잡을 수 있는 헌터가 500명이나 된다는 소리였다.
- 오. 재미있는 이야기네. 쓸 만한 강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 아니야?
천마마저 흥미를 보일 정도로 지금 지구에서는 엄청난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런 병력을 보낸 겁니까?”
“어느 정도 전력의 여유가 되니까. 그리고 기존에 있던 이들이 좀 빠져야 새로운 이들이 치고 올라오지. 여전히 던전은 많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지금은 던전보다 헌터들이 더 많은 상황이야. 아마 우토에서 사신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던전을 두고 헌터들끼리 싸우는 일이 발생했을 정도니까.”
남궁철의 말에 박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헌터들이 강해지고 그 처우도 상당히 좋아졌지. 무엇보다 네 영향이 상당하다.”
“저요?”
“그래. 너의 영향.”
그 말에 김창훈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제가 무슨 영향을 끼쳤다는 겁니까?”
“세계 4대 범죄 조직을 박살 냈지. 도중에 범죄자들 또한 만나면 보는 족족 처리했지. 그 행동에 감명을 받은 헌터들이 많아.”
박연진의 말에 김창훈은 살짝 쑥스러워졌다. 자신의 영웅적인 행보를 보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살짝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김창훈을 보며 남궁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감명을 많이 받았지. 내가 저놈이랑 싸우면 무조건 죽겠구나 하는 감명.”
그 말에 김창훈이 남궁철을 바라보자 남궁철은 웃으며 말했다.
“널 보고 너 같은 영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은 없다. 다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서 순순히 헌터가 된 거다. 너에게 겁먹은 거지.”
남궁철의 팩트 공격에 프로즌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그래도 총장님의 행동을 보며 총장님과 같은 정의를 위해서 움직이겠다고 가디언에 들어와 리퍼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프로즌의 위로에 김창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위로는 안 해도 된다. 어찌 되었든 아군 전력이 크게 늘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김창훈은 막사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