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삼계(三界) 동맹(4)
세리스와 레이드가 합류한 이후로 김창훈은 따로 이동하지 않았다. 이동하지 않아도 죽음의 기운이 알아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계속 몰려오고 있으니 따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김창훈은 계속해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였다. 도중에 천마기 능력치가 1 상승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묵묵히 계속 죽음의 기운을 흡수할 뿐이었다.
김창훈이 죽음의 기운을 계속 흡수하고 있었다면 레이드나 세리스는 달랐다. 레이드는 뉘헬과 함께 움직이며 다른 세력의 지원 병력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그들의 지휘를 위해서 떠났다.
물론 김창훈이 일시적으로 지구에서 오는 병력들에 대한 지휘권을 레이드에게 넘긴다는 위임장과 함께 움직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동맹이라고 하나 다른 세계의 인물이었기에 지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명분과 힘을 김창훈이 실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세리스의 경우엔 김창훈과 같이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계속 꺼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의 기운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연신 감탄하기도 하고 탄복하기도 하며, 동시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여러 감정과 함께 그에 따른 결과들을 하나씩 도출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서, 레이드가 추가 지원 병력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 세리스는 웃으며 레이드와 김창훈을 불렀다.
“드디어 돌파할 방법이 생겼어.”
“돌파할 방법?”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죽음의 기운은 김창훈, 너에게 도움이 되니 계속 네가 받아먹는 걸로 하고. 내가 말한 돌파는 사제와 대사제 같은 이들을 처리할 방법이야.”
그 말에 레이드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대사제를 처리했을 때처럼, 결계를 펼쳐서 죽인 뒤에 그 영혼을 봉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상대가 대사제 한 명이라면 말이야.”
그 말에 김창훈과 레이드의 입이 다물어진다.
“거기다가 분명 사신교의 수장이 따로 있을 거다. 그 수장을 생각하면, 내 결계가 통할 거란 보장은 없어. 대사제도 힘으로 뚫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인물이라면 분명 힘으로 뚫어 버리겠지.”
“그래서?”
“그래서 저들에게 통용되는 하나의 ‘마법’을 만들었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진 능력은 딱 하나. 저들이 죽음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육체를 재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나 이외에 다른 이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지. 사용하기 쉽도록.”
육체재생을 방해한다는 말에 레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레이드의 말에 김창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그놈들을 박살 낸 후에, 네가 봉인하면 되겠군.”
“그렇게 되면 편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편하게 되지 않을 거야. 내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방해’를 하는 거야. 아예 재생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냥 그 속도를 늦춰주는 거지.”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젓는다.
“우리 셋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말에 레이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면 왜 돌파구를 찾았다고 한 건가? 이건 돌파구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상대법이 생긴 것 같은데.”
“분명 그렇지. 하지만 말했잖아. 돌파구를 찾았다고. 내가 아까 말한 마법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든 마법. 그리고 지금부터 알려 줄 건, 그들의 영혼을 봉인하는 마법이지. 물론 다른 마법사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말에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걸 처음부터 말하라고.”
이에 세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말하려고 했어. 너희 둘이 너무 성급해서 그렇지. 내가 만든 이 2가지 마법을 이곳으로 오는 우리 쪽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할 거야. 그리고 그들이 나머지 병력들과 함께 움직이며 사제들을 상대하도록 할 거야.”
“대사제는 우리들이 상대하고?”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사제를 저들이 상대할 수 있다면 문제없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특별한 전력이라도 이곳에 왔나?”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감각에 느껴지는 것은 없어.”
이에 레이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하동문이다. 분명 나쁘지 않은 전력이지만 상대가 우리와 같은 초월자들이라면 저들로서는 부족하지. 버티는 것도 힘들 거다.”
“그러니 당연히 대사제는 우리들이 상대한다.”
세리스의 말에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김창훈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이 다음이 문제군.”
“이 다음?”
레이드의 말에 김창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대로 진격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적들이 오기를 기다리는가.”
그 말에 세리스는 담담히 말을 했다.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편이 최선이야. 지금 이 지역에 각종 마법들이나 결계들을 설치하여서 적들을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으니까. 먼저 움직여서 좋을 것 없어. 무엇보다 저 안에 들어가서 살아남기도 힘들고. 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안개. 그것을 바라보며 세리스가 말하자 레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것이 가득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확실히 장시간 움직이기 힘들겠지. 그리고 저건 살짝만 접촉해도 좋을 것 없는 힘이다. 우리들도 힘든데 저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레이드의 말에 세리스는 다시 김창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지? 저 막대한 죽음의 기운 때문이라도 우리는 움직일 수 없어. 그나마 네가 지속적으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해서 안전해진 이 지역이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야. 그러니 이 이상 벗어나는 것은 사양이야.”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어차피 손해될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죽음의 기운을 계속 흡수한다면 천마기의 양이 늘어날 테니 그에게 손해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여기서 얌전히 적들을 기다리는 것으로 결정이군.”
“그래. 그리고 아마 적들은 우리를 이곳에 장기간 머물도록 두지 않을 거야. 죽음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힘이 웬 이상한 이단 놈에게 갈취되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계속 보고만 있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치고는 너무 얌전하던데?”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거야. 그 광신도들이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신기한 일이니까. 무엇보다 이곳에 거의 100명에 달하는 ‘생명체’가 있단 말이지.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다면 그건 사신교가 아니지. 그러니 안심해. 저들을 다 죽이기 위해서라도 분명 나타날 테니까.”
“그런가……. 그러면 나는 저들을 훈련시켜야겠군.”
“훈련?”
“모두 실력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좀 특별하니까. 저 죽음의 기운에 저항하는 법도 스스로를 깨닫도록 해야 하고.”
그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해. 나는 마법사들에게 마법들을 가르칠 테니까.”
그렇게 두 사람의 역할이 정해지자 김창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면 난 열심히 저 힘이나 흡수하도록 하지.”
그렇게 세 사람 모두 할 일이 정해지자 모두 각자 자신들의 할 일을 위해서 움직였다. 진리의 탐구자들은 세리스에게 마법을 배웠고.
나머지 인원들은 레이드의 지휘하에 죽음의 기운에 저항하는 법과 자신들의 힘과 전투력을 서로 측정하고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함께 힘을 합쳐서 싸울지 토론을 했다.
그런 그들과 다르게 김창훈의 경우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안개에 직접 들어가서 천마기공을 운영하며 엄청난 속도로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 확실히 이 정도 양은 정상이 아니야.
눈을 감고 천마기공의 운영에 집중하고 있던 김창훈이 천마의 목소리에 말했다.
“그렇습니까?”
- 그래. 이 정도면 어지간한 이들을 죽여서 나오는 양이 아니다. 최소로 잡아도 억 단위로 죽였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정말로 이놈들, 저승을 열었을 가능성도 있군.
“저승이요?”
- 명계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고 저승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 그 이외에도 각 세계나 신화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저승의 문…….”
- 그곳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다. 당연히 그곳의 공기는 이 세계와 다를 수밖에 없지. 공기부터 물까지 모든 것이 다 다르다. 혹시 이런 설화가 너희들에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승의 음식을 먹은 자는 저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예. 그런 이야기는 우리 쪽에도 있습니다.”
-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이야기처럼 진짜 저승에 귀속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승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엄청난 죽음의 기운을 담고 있지. 그곳에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것이 에너지가 되지만 그건 산 자에게 그 어떠한 것보다 강한 독이 된다. 그것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거다. 그러니 저승에 머물게 되는 거지.
“이래저래 먹으면 저승에 있는 것은 같네요.”
- 그렇지. 나도 저승에 가본 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도 이 정도로 죽음의 기운이 짙은 곳은 흔하지 않아. 작정하고 만든 장소가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그 말씀은 여긴 작정하고 만든 장소라는 거군요.”
- 특히 저승도 아닌 살아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만든 거라면, 말할 것도 없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인지 조금 신기하기도 하군.
“사신교의 신인 그 사신이라는 존재가 직접 나설 가능성은 없나요?”
- 아니. 그자는 무조건 나섰지. 신적인 존재가 나서지 않고서는 이건 설명되지 않아. 단지 어디까지 나섰는지가 문제지.
“전적으로 협조했다고 하면요?”
- 그렇다면 진작에 이 세계가 난리 났겠지. 아마 그 정도는 아닐 거다. 단지, 일반적인 인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력적이기는 하겠지.
“지금처럼요?”
- 그래. 만약 천마신공을 익힌 네가 없었다면 이 죽음의 기운은 사방으로 퍼졌을 거다. 저 마법사들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지. 어쩌면 다른 세계의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서 사신교와 전쟁을 벌였을 수도 있겠군. 그 결과는 사신교의 승리겠지만.
“사신교의 승리라고요?”
- 죽음이 있는 곳이 그들이 가장 강해지는 곳이다. 다른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나서면 당연히 그 인원이 많아지지. 그러면 더 많은 죽음이 쌓인다는 이야기고, 그 뜻은 사신교가 더 강해진다는 의미다.
“최악이네요.”
- 적으로서 이보다 더 귀찮은 놈들도 없을 거다.
“혹시 이런 비슷한 적과 싸운 적 있으십니까?”
- 있지.
“어떻게 했습니까?”
김창훈의 말에 천마는 웃으며 말했다.
- 그놈들이 장악했던 대륙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니 조용해지더군.
대륙을 가루로 만들었다는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천마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힘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다.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 언젠가 그렇게 될 거다. 그 전에 죽지 않으면 말이야.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창훈은 다시 입을 닫고 천마기공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