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삼계(三界) 동맹(1)
김창훈이 한창 죽음의 기운 흡수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지구의 베이스캠프로 이동한 뉘헬은 곧바로 프로즌과 만나서 협정서를 보여 주었다.
그 협정서를 모두 읽은 프로즌은 한숨을 쉬며 뉘헬에게 말했다.
“이걸, 총장님이 전하라고 한 겁니까?”
“그렇지. 그리고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다.”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은 또 뭡니까?”
“에트린 제국을 만나서 이런 협정서를 작성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 세계와 지구, 에트린 제국. 이 세 곳의 세계가 서로 동맹의 관계를 맺을 것.”
그 이야기를 들은 프로즌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건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겁니다. 오히려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죠. 지금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겁니까? 총장님은.”
“그는 지금 사신교를 막아내는 중이다.”
“사신교요?”
사신교에 대해서라면 그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얼마나 위험한 자들인지, 그리고 얼마나 미친 자들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총장님이 정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우리 세리스 님께서 다시 한번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김창훈과 나는 그곳으로 향했고 예전에 우리가 갔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되어 있더군. 사방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은 검은색의 안개로 보일 정도였다. 거긴 지금 단어 그대로 죽음의 땅이 되었다.”
그 말에 프로즌의 얼굴이 굳어진다.
“김창훈이 나서서 동맹을 맺으라는 이야기도 이들을 막기 위해서다. 그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 지금 그는 사신교가 장악한 하나의 ‘세계’와 싸우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건 무리지. 사신교 측에서도 분명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진 자가 있을 거다. 그것도 다수가 말이다.”
“다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저번에 우리가 갔을 때, 사신교 교주란 자가 신의 힘을 통해서 김창훈과 대등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는 진짜 교주가 아니었어. 어떻게 보면 이 땅에 보내진 선봉대 역할을 하고 있는 자였지. 굳이 말하자면 사신교 우토 지부의 교주라고 하면 되겠군.”
“그 말씀은.”
“본래의 세계에 있는 진짜 사신교의 교주. 그는 분명 그때 싸웠던 사신교 교주란 자보다 강할 거라는 거다. 그리고 김창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거기다가 이곳에 있던 가짜 사신교 교주가 초월자에 대등한 힘을 보여 주었었다. 그러니 진짜 사신교의 교주와, 그 바로 아래 격인 인물들 역시 가짜 사신교 교주와 같이 신의 힘을 빌려서 초월자 수준의 힘을 낼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
“초월자가 다수 있다고 보고 일을 진행하는 편이 맞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래서 김창훈은 동맹을 제시한 거다. 3개의 세계가 힘을 합쳐서 사신교를 막아낸다. 겸사겸사 이 우토에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 외부의 강대한 적이 있다면 내부적으로는 뭉치게 되니까. 그의 말로는 같이 피를 흘린 아군이 동맹이라면 훨씬 더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고 하더군. 최소한 우리 세계의 세력만이라도 말이야.”
“거기에 외부에서의 일이 벌어졌을 때의 대응도 좋아지겠죠.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세 곳의 세계와 동시에 싸우는 것은 모두 거절할 테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나아가서 그는 다른 세력들도 이 동맹에 참가시키고 싶어 한다. 최종 목표는 무력으로 인한 전쟁이나 전투 없이, 외교나 정치로 우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최대한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하더군.”
“말은 쉽네요.”
그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당장 지구에서만 해도 UN이 정식으로 창설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심지어 UN이 창설된 지금에서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 내부의 문제도 이 모양인데 다른 국가도 아닌 다른 ‘세계’와 함께한다?
그 일이 당연히 쉽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프로즌은 김창훈의 뜻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가장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총장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에르틴 제국에 사람을 보내야겠군요.”
“내가 함께 가도록 하지. 나도 함께 가는 편이 그들로서는 더 인정하기 쉬울 테니까.”
“그렇겠죠. 그러면 지구에서 사람을 보내야겠습니다. 일단, 사신교가 있는 곳에 가장 먼저 지원을 보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도 그렇군. 그들이 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지.”
“지금 알려 주시겠습니까?”
“지도 있나?”
“예. 뉘헬 님의 도움으로 만든 지도라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즌이 우토의 지도를 가지고 오자 뉘헬은 지도의 한 곳을 콕 짚으며 말했다.
“여기다. 여기가 사신교가 있는 곳이지. 이곳에서 직선으로 쭉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김창훈을 찾아라. 찾는 것은 쉬울 거다. 검은색의 안개가 나날이 줄어드는 곳, 혹은 검은색의 안개가 어딘가로 움직인다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렇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지금 바로 사람을 좀 보내겠습니다.”
“에트린 제국은?”
“거긴 저와 함께 가도록 하죠. 에트린 제국은 한 번 지구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당한 적이 있으니, 제가 직접 가는 편이 그들로서는 더 신뢰도가 높을 겁니다.”
“그렇군. 그러면 기다리겠다.”
뉘헬의 말에 프로즌은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자신의 방을 나서서 우토에 있는 가디언 본부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프로즌은 급히 고위급 인물들을 모두 불러 모은 후 뉘헬과 했던 이야기를 이들에게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다른 세계와 동맹을 맺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색할 것 없지만 문제는 바로 사신교였다.
“부총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간다고 해서 큰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총장님 수준인 강자들 간의 싸움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매우 적절했다. 김창훈이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그 근처에 있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최소 몇 ㎞는 떨어져 있어야 안전하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이 싸우는 곳에 자신들이 간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우선 상황의 파악입니다. 총장님이 강하다고 하지만 혼자입니다. 그분이 홀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그러니 선발대를 통해서 우리는 먼저 그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총장님과 접촉하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자세한 것은 그 이후에 총장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 말에 모두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였다. 김창훈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상대다. 그러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재 지구에서 여유가 있는 전력이 있나요?”
“예. 어느 정도 있습니다.”
“당장 지구에 있는 가디언에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비상을 선포하고 SS등급 각성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움 요청의 항목은 EX등급의 힘을 가진 초월자들이 우리를 노린다고 하면 될 겁니다. 전투보다는 잔챙이들을 처리하는 것이 이들의 주 목표이며, 동시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에트린 제국으로 가겠습니다. 에트린 제국과 협정을 마무리하고 동맹을 맺으면 그때 에트린 제국의 전력 일부가 이곳으로 올 수 있으니, 그에 따른 대비도 해 주세요.”
“예, 부총장님.”
“그러면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시간이 없습니다.”
프로즌의 말과 함께 모두 밖으로 빠르게 뛰쳐나가 각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고, 프로즌은 뉘헬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회의가 빨리 끝났군.”
“상황이 시급하니 오래 회의를 할 여유가 없죠. 그러면 바로 갔으면 합니다. 에트린 제국으로요.”
“그러지.”
그리고 뉘헬은 프로즌과 함께 에트린 제국의 영역으로 이동하였다. 거기서 프로즌은 곧바로 에트린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된 에메랄드와 만날 수 있었다.
에메랄드는 지구에서 왔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김창훈의 직속 부하라는 사실에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프로즌과 뉘헬이 함께 찾아 온 이유에 대해서 물었고.
그 둘은 자신들이 함께 찾아 온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메랄드는 물론 그녀의 양옆에 있는 신하들까지 모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협정서를 작성하고 동맹을 맺는 것. 그것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일. 오히려 이 우토라는 넓은 세계를 서로 힘을 합쳐서 개척해 나아가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곤란한 일들을 함께 해결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에메랄드의 말에 다른 신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에트린 제국은 야욕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만으로 우토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 김창훈만 하더라도 레이드가 나서지 않는 이상 막을 수 없는 강자이고 진리의 탐구자들에게는 그런 초월자가 3명이나 있다.
그러니 서로 협정과 동맹을 맺고 힘을 합치며 적당히 서로 가져갈 부분만 가져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뉘헬이 이야기한 사신교였다.
“그놈들이 언젠가 사고를 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더 커졌군. 오히려 김창훈 그자가 그들을 한 번 정리한 것이 화를 불렀는가.”
대전에 함께 있던 레이드의 말에 뉘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본래 세계에 있던 진짜 사신교의 사제들이 나타났을 터. 그저 늦고 빠르고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고 자시고 참가해야지. 그놈들의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죽음뿐. 나는 이 제국의 수호검이라고 불리는 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레이드 대공, 그대가 홀로 가는 건가?”
에메랄드의 말에 레이드는 공손히 에메랄드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 저와 같은 초월자들이 모여서 전투를 벌인다면 다른 이들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부의 병력은 그쪽으로 이동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신교는 언데드들을 다루는 기술 또한 능하니 대량의 언데드를 움직여서 다른 이들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적당한 기사단과 마법사단을 움직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폐하.”
레이드의 말에 에메랄드는 프로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식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나 에메랄드 에트린은 그대 가디언과 동맹을 맺는 것을 허락한다. 자세한 내용은 따로 실무자들끼리 만나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도록 하지. 당장은 사신교에 대한 대처가 우선이다.”
에메랄드의 말에 프로즌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에메랄드 폐하.”
“레이드 대공, 그러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먼저 출발하세요. 곧 병사들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러면 가도록 하지.”
그렇게 사신교란 거대한 적을 두고 지구의 가디언, 에트린 제국, 진리의 탐구자. 이 세 개의 세력이 정식으로 동맹을 맺고 함께 싸우기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