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협정(3)
모든 이들의 서명을 받은 협정서를 들고 세리스는 김창훈을 찾아왔다. 김창훈은 서명이 다 되어 있는 협정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로 다 끝난 건가?”
“그래. 이 세계의 초월자인 나, 세리스와 오페니. 그리고 아리스자두니바의 서명이 모두 되어 있어. 이는 정식으로 우리 셋이 이 협정서에 동의한다는 거지.”
“그리고 지구 대표로는 내가 있고.”
김창훈은 모든 서명이 끝난 협정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협정서를 작성해서 그런데, 세리스. 혹시 다른 세력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다른 세력이라고 하면 다른 세계의 이들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들이 갑자기 왜?”
“나는 이 협정서를 다른 세계에도 똑같이 요구할 생각이다.”
“다른 세계에?”
“그래.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의 단체를 만들려고 한다.”
“단체라. 너는 우토에 있는 각 세계를 하나로 묶을 생각이로군.”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이들을 다 하기는 힘들 거야. 특히 사신교. 그놈들이 있는 곳은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그런 놈들이 있으니 나는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사신교를 완전히 멸하겠다는 거냐?”
“굳이 우리가 저들의 세계에서 싸울 필요 없지. 그냥 저들이 우토에서만 활동하지 못하게 하면 그걸로 나는 만족해.”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걸 동의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우토는 넓은 곳이다. 그리고 이 넓은 곳을 정복하려고 하는 야심 있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지. 심지어 다른 세계마저 정복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아리스자두니바의 경우는 조금 케이스가 다르지만 이 녀석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다른 세계를 움직이려고 했으니 말이야. 이런 이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지금 당장 지구에서만 해도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난리치는 놈들이 있어.”
“식민지?”
“아, 쉽게 말하면 다른 곳을 점령하여 그곳에서 철저하게 착취를 하겠다는 말이야. 사람들은 노예로 삼고. 과거 지구의 역사에 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지.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말이야.”
그 말에 세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딜 가나 그런 야만적인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군.”
“인간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지. 오히려 나는 어떻게 이런 세계를 구축했는지가 더 신기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제어가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물론 우리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인간의 욕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걸 순순히 인정하지. 단지 그 욕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쪽으로 돌린 것뿐이다.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는 중이지. 네 말대로 우리가 정말로 완벽한 유토피아였다면 우리가 따로 법관을 둘 필요가 없겠지.”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란 거지. 하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나도 동의해.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토에 제대로 된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야 서로 싸우더라도 바로 전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외교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거 아니야.”
“그렇게 된다면 좋겠군.”
“그렇게 되도록 해야지. 그리고 나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 이 우토에 있는 다른 세계는 지구를 포함해서 총 7곳. 그중에서 나는 2곳과 우호관계가 되었지. 이곳의 경우는 완전히 협정을 맺기도 했고 말이야. 에트린 제국도 협정을 맺으면 2곳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거다. 남은 곳은 4곳인데. 그중 한 곳은 내가 정리했지.”
“사신교를 말하는 건가?”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녀석들은 내가 다 밀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세력은 3곳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거기에 세리스, 네가 도와주었으면 좋겠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들에 대한 정보. 가능하면 직접 만나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너무 과한 것 같긴 하네. 어때? 직접 만나 주는 것도 해 줄래?”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지 마라. 우리는 쉽게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이 진리의 저장고를 지키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의무다. 저번에 너를 만났을 때만 해도 엄청난 무리를 해서 이곳을 떠난 거다. 거기다가 지금 네가 아리스자두니바를 쓰러트린 마당에 나까지 떠나면 오페니 한 명밖에 초월자가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이해해. 그러니까 너에게 직접 만나서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거야. 정보만 달라고 한 이유도 그거고. 뉘헬에게 듣기는 했는데 너라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하지만 그 전에 네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해야 할 일? 설마 또 다른 초월자랑 싸우라는 거야?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아니, 그건 아니다. 하지만 초월자랑 싸울 수도 있다는 부분은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할 일이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사신교를 네가 끝냈다고 했지? 그들이 살고 있는 본래 세계는 가지 않고 이 우토에 뿌리 내린 세력만 처리했다고 했고.”
“그랬지.”
“거길 다시 가서 확인해 봐라.”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왜? 거기에 뭐가 있는 거야?”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너보고 가라는 거다. 그놈들은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는 놈들이다. 그러니 가서 만약 세력을 내리고 있다면 미리 정리하라는 거지. 너라면 이번에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놈들을 막기 위해서 우토의 여러 세력들을 모이도록 할 생각인데. 그걸 나 혼자 처리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당연히 의미가 있지. 거기서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네가 수습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네가 원하는 그 모임이란 것은 아마 만들 수 없을 거다.”
“그 이유는?”
“뉘헬이 어느 정도 이야기해 주었다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사신교만큼 위험한 놈들이 있다는 것을.”
그 말에 김창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부분은 알고 있지. 하지만 그들은 사신교랑 다르게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잖아. 그러니 잘 대화를 하면-”
“그러니 더 질이 안 좋은 거다. 그놈들은 여차하면 바로 우리들을 배신하고도 남을 놈들이니까. 실제로 우리의 지식을 받아 놓고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서 우리가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그놈들은 그런 놈들이다.”
“…그 정도야?”
“에트린 제국. 그리고 우리. 그리고 네가 있는 지구. 이 세 세력을 하나로 뭉쳐서 우토의 세력을 견제한다고 하면 나는 찬성이다. 하지만 나머지 4곳의 세력들 중 믿을 수 있는 이들은 한 곳밖에 없었다.”
“그러면 4:3으로 세력이 갈리는 건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그 말게 김창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봐야겠네. 네 말대로 사신교가 있던 지역으로 가보겠어. 대신 난 길을 잘 모르니 뉘헬을 파견해 주면 고맙겠군. 서로 아는 사이니 움직이기 편할 거야.”
“그러지.”
“사신교의 동태를 확인한 후에 에트린 제국과 만나서 협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다. 그 후에 협정이 정식으로 체결이 되면 나중에 우리 세 세력이 먼저 모인다.”
“세 세력 간의 동맹 결성인가?”
“동맹이라… 그래, 그 편이 모임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부르기 편하고 좋네. 지구, 에트린 제국. 그리고 진리의 탐구자들. 이 셋이 동맹을 맺는 거다. 서로 돕고 서로의 영역과 문화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동맹을.”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트린 제국과 지구에서 그럴 생각이 있다면 우리도 나서 주지. 하지만 우리는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거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그런 일에 관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알고 있어. 애초에 나는 너희들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너희들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서 결정을 내려 줄 테니까. 그리고 다른 세계의 이들도 너희들 말이라면 들어 줄 테니 너희들만큼 일이 벌어졌을 때 중재자로서 나서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이들도 없지.”
“우리가 가장 머리 아픈 부분을 담당하는군.”
“하지만 다른 이들이 그 역할을 했다가는 좋게 끝나지 않을 거다. 서로 힘 싸움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런 개판을 막기 위해서는 너희들만큼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없지.”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슬프군.”
그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고생해 달라고. 어차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서로 적절하게 선을 지킬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동맹을 하려고 하는 거야. 이 우토란 곳은 넓다. 거기에 자신들만의 세계도 있지. 그런데 굳이 무리하게 확장하며 파멸을 불러 올 필요는 없잖아. 오히려 서로 협력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미래지향적이지.”
“꿈과 같은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김창훈, 사람은 3명만 모여도 서열을 정하려고 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다 같이 대등한 동맹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힘으로 서열 정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주어야지. 누가 가장 위에 오를지는 뭐 직접 경험해 보면 알겠지.”
자신 있게 말하는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나도 직접 봐서 인정한다만, 자만하지 마라. 아리스자두니바가 너에게 진 이유도 오만해졌기 때문이니까.”
“참고할게.”
그리고 김창훈은 협정서 한 장을 접어서 자신의 품에 넣은 후 말했다.
“그러면 난 이제 그만 가도록 하지. 아, 뉘헬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바로 출발할 생각인가?”
“너무 오래 자리 비워서 좋을 것 없지. 그리고 이 협정에 대한 일을 가서 설명을 해야 하니, 하루 빨리 움직여야 할 거다. 그래야 다음에 에트린 제국과의 만남도 빨라질 테니까.”
“그런가. 그러면 잠시 기다려라. 바로 뉘헬을 불러오도록 하지.”
잠시 후 뉘헬이 김창훈과 세리스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 뉘헬을 세리스에게 인사를 하였고 이에 세리스는 적당히 인사를 받아 준 후에 말했다.
“그대에게 줄 임무가 있다.”
“말씀하십시오, 세리스 님.”
“이자와 함께 다니며 이자를 도와라.”
김창훈을 도우라는 말에 뉘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 겁니까?”
그 말에 세리스가 김창훈을 바라보자 김창훈은 뉘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간단한 정보들만 주면 된다. 길 안내하고.”
이에 세리스가 뉘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
그러자 뉘헬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임무가 주어진 이유도 궁금한데 혹시 비밀이신가요?”
“아니.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동맹을 만들 건다.”
“동맹이요?”
뉘헬의 말에 세리스가 김창훈이 구상하는 동맹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뉘헬이 김창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해봐야 아는 거지. 그래도 에트린 제국하고 여기는 동맹 맺는 것이 가능하니 일단 그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하려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기쁘게 돕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바로 가볼까.”
그리고 김창훈은 뉘헬과 진리의 저장고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