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또 다른 초월자와의 싸움(4)
침대에 누워 있던 김창훈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으음. 아직도 아프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김창훈. 그런 김창훈을 보며 천마가 말하였다.
- 고작 3일 만에 회복될 만한 부상은 아니었으니까.
“3일이요? 저 3일 동안 잠만 잔 건가요?”
- 그래.
그 말에 김창훈은 놀라며 말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 그만큼 몸에 무리가 컸다는 거다. 수련도 제대로 하기 힘들 거라고 내가 말했던 것은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음.”
김창훈은 천마의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수련을 위해서 이 힘을 다시 사용할 때, 과연 그 수련을 하루 하고 난 후에 얼마나 잠들어 있어야 할까?
‘손해 아닌가 싶네.’
하루 수련을 하고 3일을 생으로 날린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초식 중첩 수련을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꼬르륵.
그때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김창훈은 배를 잡더니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죠.”
- 그래. 하지만 초식 중첩 수련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라.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수련이 아니니까.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창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스트레칭을 하였다.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아팠지만, 그래도 꿋꿋이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이 풀린 김창훈은 방을 나섰다.
넓은 복도에 사람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빛과 함께 김창훈의 눈앞에 세리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공간 이동 마법은 이곳에서 사용 금지 아니었나?”
“뉘헬이 알려 주었군.”
“그래.”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지. 특히 우리 세계의 초월자를 쓰러트린 외부 세계의 초월자가 홀로 다니게 하는 것의 위험을 생각하면 예외적인 상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지.”
“그런가.”
“그보다 몸은?”
“좋지 않아. 엉망이야.”
“그런가. 하지만 너무 억울해할 것 없다. 너랑 싸운 아리스자두니바 또한 요양 중이다. 너와 싸운 피해로 인해서 최소 3개월은 쉰다고 하더군.”
그 말에 김창훈은 피식 웃었다.
“딱히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소식이기는 하군. 그보다 식사를 좀 하고 싶은데.”
“그거라면 내 방으로 가지. 내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나도 거기에 따른 약간의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미로 밥은 내가 사는 것으로 하지.”
“그것 참 고맙군.”
김창훈의 말에 세리스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고 김창훈은 한 발씩 천천히 세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김창훈의 걷는 속도가 정상이 아님을 알고 세리스 또한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천천히 복도를 걸어서 세리스의 방에 도착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여느 때와 같이 거대한 도서관 같은 풍경과 수많은 책들이 김창훈을 맞이하여 주었다.
“여긴 언제 봐도 장관이군.”
“그런가. 저쪽에 앉아라. 그러면 음식을 가져오도록 하지.”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리스가 가리킨 의자에 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온몸이 아파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였다.
- 이래도 초식 중첩을 수련하겠다고?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그저 웃었다. 확실히 지금 상태로 초식 중첩의 수련을 하겠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그동안 천마기를 제외하고는 단 1의 변화도 없던 능력치들이 처음으로 3씩이나 상승했다. 그 대가가 크다고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크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 했다. 심지어 죽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온몸이 아플 뿐이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참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픔이 더 강해지는 것이 전부라면 오히려 너무 값싼 것 아닙니까. 그냥 지금처럼 아프기만 하면 더 강해진다고 할 때, 이 고통을 참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천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으로 이어질 거다.
“이미 충분히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무식하게 행동할 생각은 없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완전한 회복을 이룬 후, 그 후에 다시 할 겁니다. 무리하게 수련했다가 몸이 망가지는 것은 저도 원치 않으니까요.”
-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천마님께서도 도와주시면 됩니다.”
- 내가?
“예. 제 몸이 어떤 상태인지 천마님도 잘 아실 테니까요.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그때 다시 수련을 하고 천마님이 아직이라고 하면 하지 않을 겁니다.”
- 그러니까 내가 네 몸이 괜찮다고 해야 수련하겠다는 거냐?
“예.”
- 내가 계속 안 좋다고 말하면?
“그러면 안 해야죠. 몸이 정말로 안 좋다는 의미니까요.”
- 내가 거짓말을 하면?
“그럴 분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잘도 날 이용하는구나.
“후인이며 제자나 다름없는데, 좀 도와주시죠.”
- 그래. 그 정도는 내가 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명심해라.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초식 중첩 수련은 하지 마라. 그냥 기존에 내가 알려 준 수련 방법이나 열심히 따라 해라.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하나 또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 수련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 호오. 그 말은?
“조금 아프다, 무리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팔이 부서지기 전까지 수련을 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다시 초심을 되찾아야죠.”
그 말에 천마는 웃으며 말했다.
- 천마강림을 사용한 상태에서 초식들의 융합을 무리하면서 할 생각이구나.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죽을 확률도 대폭 올라가겠지. 초식들을 무리하게 융합하다가는 네 몸이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건 천마님께서 적절하게 커트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 쯧. 천하의 천마가 애나 돌보게 생겼구나.
“그래도 오랜만에 생긴 후인이 객사하는 것은 사양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도와주시죠.”
- 지금까지 내가 널 얼마나 도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과거로 회귀도 시켜 주고 필요할 때마다 너에게 깨달음의 전조도 주었다.
“그러면 이왕 도와주신 김에 더 도와주시죠.”
- 뻔뻔한 놈.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김창훈의 말에 천마는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였다. 천마로서도 이대로 김창훈이 스스로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면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무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것은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화신과 대화는 충분히 했나?”
그때 허공에 음식이 담겨 있는 그릇들을 띄운 상태로 천천히 다가오는 세리스. 그녀의 모습을 보며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보다 냄새가 좋군.”
“어딜 가나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 세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요리한 고기 요리들이다. 아마 그대 또한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그리고 탁자 위에 음식이 담긴 그릇들과 포크와 나이프들이 놓여지자 김창훈은 바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말했다.
“이건 지구에서 가져 온 건가?”
“아니, 이 세계에 본래 있던 것이다. 어딜 가나 인간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증거겠지. 물론 그래도 그 세계만의 고유적인 문화나 특성이 있긴 하지만.”
“그렇군.”
그리고 김창훈은 앞에 있는 음식들 중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나이프로 잘라서 포크로 찍어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맛에 놀라며 말했다.
“진짜 맛있네.”
“후후. 물론이다. 내가 직접 한 요리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음식은 정말로 맛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김창훈은 정말로 미친 듯이 음식을 먹었다.
3일을 굶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도중에 세리스가 가져다준 이 세계에서 나는 과일로 만든 과일음료도 먹으며 약 30분간 미친 듯이 음식을 흡입한 결과.
“후우. 잘 먹었다.”
“대단하군. 8인분을 준비했는데 그걸 설마 혼자서 다 먹을 줄이야.”
세리스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음식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과 다르게 김창훈이 홀로 그 많은 음식들을 다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3일 동안 굶었으니까. 그보다 이거 더 없나?”
김창훈이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고기구이 요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세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다.”
“아쉽군.”
“더 먹고 싶은 건가?”
“있으면? 충분히 먹어서 배가 좀 차기는 했는데 배가 부르지는 않아.”
“뭐라 할 말이 없군. 기다려라. 음식을 곧 다시 가져 올 테니까.”
그리고 다 먹은 음식의 그릇들과 나이프, 포크를 허공에 띄워서 방 어딘가로 향하는 세리스를 본 김창훈은 과일 음료를 한 잔 마시며 말했다.
“크으. 맛있네. 오렌지랑 포도를 합친 듯한 혼종의 맛인데. 맛있어.”
참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요리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세리스가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고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 정도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다.”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새롭게 가져 온 고기 요리도 전부 김창훈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정말로… 신기하군. 이 정도면 인체의 신비다.”
세리스가 멍하니 김창훈을 바라보며 말하자 김창훈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정말로 잘 먹었다, 세리스. 만족스러워.”
“하아. 너 홀로 20인분은 먹었다. 도대체 그게 다 어떻게 그 몸에 들어간 거지? 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구나.”
“뭐,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 인체의 신비란 거니까.”
김창훈이 먹은 음식들은 곧바로 소화가 되었다. 그리고 소화되어서 음식에 담겨 있는 에너지는 그대로 김창훈의 몸을 회복하는 데 소모되었다.
그 결과 20인분이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홀로 먹은 것이다. 덕분에 김창훈으로서도 이득은 있었다. 그의 몸이 식사를 하기 전보다 훨씬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배부르니 또 졸리네. 어디서 잠깐 잘 수 있는 곳 없나? 세리스.”
“후우. 저곳에서 자라.”
한쪽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세리스가 말하자 김창훈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대로 침대로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는 김창훈을 보며 세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먹고, 자고 그것이 전부인가. 지금 밖에서 그대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생각도, 고려도 하지 않는군.”
초월자가 쓰러졌다. 그것도 외부 다른 세계의 초월자에게 말이다. 이건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세계의 존망이 달린 문제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느긋하게 밥 먹고 곧바로 배부르다고 자고 있으니 세리스로서는 한숨만 나왔다.
“자고 일어나서 보도록 하지, 김창훈. 그때는 나와 함께 고생 좀 해야겠다.”
김창훈을 데려 온 세리스 또한 그 입지가 상당히 위험했다. 그렇기에 세리스는 자기 홀로 고생하는 이 상황이 상당히 억울했다.
그러니 김창훈이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자신이 당한 이 억울한 상황을 100배로 돌려 줄 것이라 다짐하며 그가 먹은 음식 그릇을 씻기 위해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