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진리의 도시(1)
김창훈의 결정은 당연히 많은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딱히 대책은 없었다. EX등급 몬스터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존재는 지구상에 김창훈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싸우지 않겠다고 한다. 그럼 뭐라고 하겠는가? 거기다가 김창훈이 걱정하는 바도 문제였다. 김창훈이 만약 싸운다고 할 때.
그 여파가 얼마나 퍼질 것인가? 중국에서는 대놓고 흑룡과 김창훈이 싸운 장소를 관광명소로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그 장소는 매우 광범위했다.
심지어 그 흔적들은 하나같이 살벌했는데 흑룡이 자신의 불꽃을 최대로 끌어 올린 곳에서는 아직도 용암이 호수가 되어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김창훈이 한 일격으로 인해서 대지에 깊숙하게 남은 흔적도 많았다. 가장 깊은 흔적은 6㎞까지 대지가 파여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 흔적들이 서울 한복판에 생긴다? 당연히 이건 더 재앙이었다. 그러니 김창훈이 한 결정이 가장 피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것이다.
김창훈의 말대로 그것이 가장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 방법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미리미리 대피하라고 하였고 짐들까지도 다 들고 피할 수 있었다. 도저히 들고 나갈 수 없는 건물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물건들을 들고 대피할 수 있었으니 국가적으로도 개인으로서도 피해가 최소화되는 것이다.
물론 도로나 전봇대, 건문들이나 다리들이 파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부분은 감수해야 했는데 어떤 이들은 이걸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다 파괴된다면 다시 만들어야 할 텐데 그 공사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되는가?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일시적으로 경제의 호황이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나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호황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들에 대해서는 김창훈은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단호하게 한마디만 하였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엉뚱한 이들의 손에 간다면, 그리고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 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그것만 지킨다면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하든 김창훈은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였다. 파라다스가 있는 곳에서 바다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건물들, 그들 모두 대피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짐은 따로 잘 포장해서 우토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근처에 적당한 호텔이나 모텔 혹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여러 시설들에서 지내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가에서 지원을 해 주었고, 김창훈 또한 자신이 죽인 몬스터들의 시체를 팔아서 나온 부산물의 돈으로 일단 이들의 숙식부터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김창훈은 적극적으로 전 세계에 있는 S등급 던전들을 찾아 다녔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던전들을 찾아가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의 씨를 말리고 있었다.
물론 던전 클리어를 통해서 던전을 없애는 것은 덤이었다. 단지 이것을 싫어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몬스터들이 더 강해진 이후로 던전 브레이크가 한 번 발생할 때마다 생기는 피해는 과거보다 더욱 커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김창훈이 알아서 던전들을 다 쓸어준다고 하는데 그걸 거부할 정부는 없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걸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김창훈도 적당히 조절은 했다.
그가 너무 다 잡으면 지구에 있는 헌터들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적절하게 던전들을 클리어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을 때.
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피신했다는 연락이 김창훈에게 왔고. 그는 아프리카에서 다시 한국으로 이동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한 김창훈은 바로 파라다스를 만나서 이제 이동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 그런가.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하지?
“저기 저것들 보이지?”
김창훈은 자신과 파라다스에게서 좀 떨어진 상태로 있는 헬기를 보며 말했다.
“저것들이 앞장서서 갈 거야. 너는 그 뒤를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거야. 일직선으로 가 주면 고맙겠어.”
-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신경 써 주어서 고맙다.
“아니, 나야말로 싸우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야. 건물들이야 다시 건설하면 그만이지만 사람들의 목숨은 아니거든. 너랑 싸워야 했다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했을 거야.”
- 그것도 그렇겠지. 이 도시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으니, 그러면 나는 가겠다. 근처 바다에 있을 테니 심심하면 종종 놀러와 주면 고맙겠군.
“시간 봐서.”
- 그래. 그대나 나나, 시간에 구애 받는 이들은 아니니 말이야.
그 말을 하고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던 파라다스는 그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축이 울리고 주위 건물이나 도로들이 단번에 파괴된다.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벌어지는 이 현상에 대해서 파라다스는 신경 쓰지 않고 앞에 있는 헬기를 따라서 한 발, 한 발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은 그런 파라다스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었다. 산보다도 더 거대한 몬스터가 담담히 움직이는 모습을 언제 또 보겠는가?
그 거대한 몸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멀리 있어도 땅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묵직함에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파라다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하면서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리고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파라다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고 나아갔다. 그리고 멀리 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파라다스의 움직이는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파라다스가 처음으로 물에 자신의 발을 디뎠을 때, 헬기 안에 있던 김창훈이 말했다.
“이제부터 가능한 강을 중심으로 움직이자고, 파라다스.”
- 알겠다.
그 후로 파라다스는 3시간 정도 더 걸었고, 드디어 넓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파라다스가 김창훈에게 말했다.
- 도와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내가 지나간 길이 다 파괴된 것은 미안하다.
“괜찮아. 오히려 경제도 안 좋은 이 시기에 대규모 토목공사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들도 많을 거야.”
- 그러면 다행이다.
그리고 파라다스가 바다 너머로 향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김창훈은 허공을 밟으며 서울에 있는 가디언 본부로 향하는 동안 파라다스가 지나가면서 생긴 거대한 흔적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건물들과 파괴된 도로들을 보며 김창훈은 고개를 저었다.
“복구하는 데 시간 좀 걸리겠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명피해가 없고, 재산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대한 보상을 해 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다시 던전 돌러 가봐야겠네.”
피해 금액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김창훈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인 던전이 있다.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가 돈에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파라다스가 바다로 향한 후 파라다스는 바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서 파라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실에 사람들 중 일부는 파라다스가 지나가는 곳에 미리 와서 파라다스의 모습을 구경하는 관광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민국은 지금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파라다스가 지나간 곳. 그곳을 다시 본래의 상태로 복구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전보다 더 멋지게 그리고 더 튼튼하고 화려하게 복구하자는 말들에 국가에서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당연히 여기에 달라붙는 건설 회사들은 아주 많았다. 그 이외에도 여러 기본적인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기업들도 많았다.
그렇게 기업들이 모이며 돈이 모이자 당연히 사람도 모이기 시작하며 경제성장이 주춤거리고 있던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자본을 김창훈이 대부분 감당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그 영웅이 된 김창훈은 벌써 몇 달째 던전만 도느라 지쳤지만 말이다.
“어우. 힘들다, 힘들어. 과거로 회귀하기 전에도 이렇게 던전을 빡시게 돌아 본 적 없는데.”
- 그거야 당연하지. 회귀하기 전의 너라면 이렇게 던전을 돌기 전에 죽었을 테니까.
천마의 목소리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죠. 그래도 이걸로 해야 할 일은 다 했습니다.”
김창훈이 마련하기로 한 자본금. 그것을 다 마련한 김창훈은 이제 자유가 되었다. 더 이상 던전을 돌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우토’로 가야 했다.
평화로운 지구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우토에 있는 편이 여러 가지로 더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 바로 갈 거냐?
“조금 쉬었다가 가야죠. 우토에서도 당장 급한 일 없으니까요. 급한 일이 일어날 건덕지는 제가 다 치웠지 않습니까?”
사신교를 박살 냈다. 그리고 에트린 제국의 일도 해결했다. 이것으로 지구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 주변에 있는 세력에 대한 가장 위험한 일들을 다 처리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신경 쓰이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트린 제국의 일을 해결했다고 하지만 아직 한 곳. 그가 신경 써야 할 곳이 남아 있었다.
단지, 그곳은 거리가 상당히 멀고 아직 별다른 기색이 없기에 김창훈이 신경 쓰지 않을 뿐이었다.
-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
“예?”
- 세리스가 너에게 한 부탁.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아.”
김창훈은 천마의 말에 세리스가 자신에게 했던 부탁을 떠올렸다.
“최근 일이 정신없이 이어지다 보니 솔직히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 그걸 잊지 말고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 두어야 할 거다. 세리스가 말한 그 부탁을 언제 갑자기 들어주어야 할지 모르니까. 너도 알겠지만 초월자들 간의 싸움이란 것이 워낙 사소한 차이로 결정이 난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도 있어.
“천마님도 그런 적 있으세요?”
그 말에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 전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아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나는 나와 대등한 상대와 싸워 본 적 없다.
“단 한 번도요?”
- 단 한 번도. 싸움이 시작할 당시에는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좀 더 강한 이가 있었지. 하지만 싸움이 지속되면서 결국 내가 더 강해지더군.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강해졌다. 그 결과 나는 결국 나와 싸우던 이들보다 강해졌어. 그러니 지금 이렇게 살아서 너와 대화하고 있는 거지.
“싸우는 도중에 강해진다는 거군요.”
- 타고난 거야.
당당하게 재능이라고 말하는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리고 그것을 둘 사이의 대화는 끝이었고, 김창훈은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