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쓰레기 청소(4)
- 뭘 고민하냐? 싸울 생각이 없는 상대랑 싸울 거냐? 그것도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천마의 목소리에 김창훈은 정신을 차리고 아쿠파를 바라보았다. 아쿠파는 최초로 나타난 EX등급 몬스터다. 당연히 여기서 싸운다면 그 여파는.
‘서울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김창훈은 진중한 눈으로 아쿠파를 바라보았다.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아쿠파가 원하는 것은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바다까지 간다고 해도 저 거대한 덩치가 움직인다면 도시는 당연히 개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네.”
- 이야기?
아쿠파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야기. 먼저 자기소개부터 하지. 난 김창훈이다. 너는?”
그 말에 아쿠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파라다스다.
파라다스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된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파라다스. 네가 원하는 것은 바다로 가는 거야. 그렇지?”
- 그렇다.
“가려고 하는 이유는?”
- 나는 평화를 좋아한다. 굳이 여기서 싸우고 싶지 않다. 바다라면 넓은 곳이니 나 홀로 지내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인간들과 엮이지 않기에도 충분하고.
“좋아. 아주 좋은 놈이네, 너.”
평화를 사랑하는 몬스터. 그보다 더 좋은 존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너도 보면 알겠지만 지금 이곳은 도시 한복판이야. 네가 바다까지 나아간다면 이 도시는 엉망이 될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 없나?”
- 음. 미안하지만 그건 방법이 없다. 나는 하늘을 날 수 없고 내 몸의 크기를 줄일 줄 모른다.
그 말에 김창훈은 혀를 찼다. 가장 좋은 방법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는 거지.’
“좋아, 그러면 파라다스. 일단 이곳에서 가만히 있어 줄 수 있어? 네가 이동하는 거리에 모든 사람들을 대피시키도록 하겠어. 그동안만 가만히 있어 달라고.”
-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긍정적인 대답을 얻은 후 김창훈은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먼저 처리했다. 그리고 바로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면담을 신청했다.
당연히 면담 요청은 빠르게 받아들여졌고,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장관들이 있는 곳에서 김창훈은 파라다스와 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장 가까운 바다까지 가도록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군요.”
“길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파라다스가 나아가면 그게 길이 될 테니까요.”
“대통령님!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저 거대한 몬스터가 나아가면 서울이 엉망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되겠지. 주식도 폭락할 거고. 그래서 어쩔 건데?”
김창훈의 말에 장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럴 때 힘을 쓰라고 가디언이 있는 것이고 국가에서 헌터들에게 그 엄청난 지원금을 주는 거다! 가디언 총장! 자신이 맡은 일을 해라!”
그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내가 싸워도 괜찮겠어?”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 말에 다른 장관이 급히 말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대통령님!”
그 말에 다른 이들이 안 된다고 말한 장관을 바라보자 그는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중국에서 가디언 총장께서 싸운 일을 떠올려 보십쇼! 저 몬스터도 그때 나타난 거대한 흑룡과 같은 EX등급 몬스터입니다!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서울 전역으로 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가 더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중국에서 있었던 김창훈의 전투를 떠올렸다. 그리고 김창훈에게 싸우라고 했던 장관의 얼굴이 가장 하얗게 질렸다.
그 모습을 본 김창훈이 웃으며 말했다.
“싸우라고 한 사람은 당신들이야. 그러니 난 싸우러 간다. 책임은 당신들이 알아서 지라고. 그리고 서울이란 지명은 새롭게 생각해야 할 거야. 오늘 이후로 서울은 지도에서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김창훈이 몸을 돌려서 나가려고 하자 대통령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죠!”
그 말에 김창훈이 대통령을 보자 대통령은 싸우라고 말했던 장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한 소리 말고 당장 여기서 나가! 서울을 다 부술 생각인가, 자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나가라고!”
그 말에 장관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방에서 나갔다. 이에 김창훈은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말대로 하시죠. 그것이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입니다. 다행히 이번에 SS등급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서 SS등급 몬스터 3마리가 나와서 그놈들도 죽였고, 그 이외의 몬스터들의 시체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가 전부 기부하는 것으로 하죠.”
“전부 말씀입니까?”
“예.”
서울이 파괴되면 그 복구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그 복구 비용의 일부라도 김창훈이 대준다고 하면 대한민국으로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허가입니다. 나머지는 제가 기자들을 불러서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니 정부에서는 군대와 경찰들을 움직여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작업을 시작하죠. 집을 잃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지금 그것까지 감안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저 거대한 몬스터가 바다로 계속 가고 싶어 하는데 그걸 계속 막았다가는 멋대로 움직일 테니까요.”
“음……. 방법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저 거대한 놈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할 텐데 있을까요?”
자신의 등에 ‘산’을 두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그런 거대한 몸을 가진 존재를 들어 올린다?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은 그냥 이대로 일직선 방향에 있는 한강 하류로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알아서 바다로 나갈 테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소한의 대화가 통해서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걸 위안으로 삼으시죠. 건물이나 도로나 나중에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한 번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이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문장도 있었다. 사람 좀 죽는 것으로 서울의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보이는데 그 생각 접으시죠.”
김창훈의 말에 몇몇 이들이 몸을 움찔거린다.
“우리, 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이 정부를 좋아하지 않아요. 대통령은 공약 하나 못 지기키고 장관들도 사고만 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해서 뽑힌 것이니 가만히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선 넘지 맙시다. 다 쓸어버리기 전에.”
김창훈의 말에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김창훈은 한다면 한다. 그런 그가 쓸어버린다는 말을 했다면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길 떠난 후에 바로 인터뷰할 겁니다. 그리고 시민들 대피시키도록 하세요. 내가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인터뷰에서 떠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알아서 잘 움직여야 할 겁니다. 광화문에 시민들 모여서 데모하는 것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죠.”
그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창훈은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곧 김창훈에 대해서 성토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권력이 김창훈에게 있어서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지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 말대로 하도록 하죠.”
“후우. 이래서야 정권 재창출은 정말로 너무 힘듭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 죽을까요?”
그 말에 장관들은 고개를 저었다. 김창훈은 한다면 한다. 그가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니 넘지 말아야 했다. 아니면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여차하면 정말로 물리적으로도 죽을 수 있었다.
“우리도 준비하죠. 군부대하고 경찰에 알리세요.”
“예, 대통령님.”
결국 정부는 김창훈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 * *
“이번 일은 최대한 피해 없이 끝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방법을 취할 겁니다. 그러니 서울 시민 여러분들. 불편하더라도 참아주십쇼. 최대한 빨리 복구할 수 있도록 저 또한 최대한 도와드릴 겁니다.”
청와대에서 나온 그 즉시 김창훈은 기자들을 모아두고 인터뷰를 하였다. 아쿠파라고 불리던 몬스터의 진짜 이름이 파라다스라고 일러주었고.
그 파라다스가 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삶. 그것을 위해서 얌전히 바다로 간다는 것에 사람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EX등급 몬스터와 김창훈이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김창훈이 내건 방법이 사람들에게 최선이었다. 여러 가지 시설들이 파괴가 되겠지만 인명 피해는 없다.
파괴된 시설들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김창훈은 이 부분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하였다.
“제가 이번에 잡은 모든 몬스터들의 시체는 이번 피해에 대한 복구비용으로 집행될 겁니다. 그 이외에도 이번 피해 금액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줄 때까지 저는 던전을 돌아서 금액을 충족시켜 드릴 겁니다. 그것으로 이번에 피해를 보신 모든 분들에게 최대한 그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시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건물을 제외하고 자동차, 물건 등등. 빼낼 수 있는 것.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들고 이동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한해서는 ‘우토’ 지역을 개방하여 여러 가지 물건들을 우토에 쌓아둘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토. 그곳은 매우 넓은 곳이다. 당연했다. 하나의 세계니 말이다. 그러니 그곳에 여러 가지 짐들을 쌓아 둔다면 얼마든지 쌓아둘 수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모두 빠르게 움직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창훈은 그것으로 인터뷰를 종료한 후에 바로 파라다스에게 이동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파라다스는 김창훈이 가까이 오자 눈을 뜨며 김창훈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되었나?
“잘 되었다. 단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고맙겠다. 사람들이 대피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 알겠다. 다 되는 대로 말을 해 주면 고맙겠군.
“물론이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 너무 무리할 필요 없다. 시간이야 많으니까. 정 안된다 싶으면 이곳에 있어도 된다.
“이곳에?”
-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 그것만 이루어진다면야 딱히 불만은 없다.
“한 곳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 내가 좋아하는 거다.
그 말에 김창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람들이 너무 혼란스러워 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나중에 바다로 가 주었으면 한다.”
-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나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까. 그럼 기다리겠다.
그 말을 하고 파라다스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김창훈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네.”
이걸로 그동안 신경 쓰이던 파라다스에 대한 처분이 끝났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하며 김창훈은 다시 가디언 본부로 향했다. 한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