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레이드 에트린(1)
잠시 후 준비가 되었다는 레이드의 말에 김창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메랄드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하였기에 레이드는 잠시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미리 준비 중이었던 마법사들과 함께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어딘가로 이동했는데, 이들이 이동한 곳은 어느 한적한 산이었다.
“여기서 하면 되나?”
“그래. 아, 그리고 힘의 사용은 거리낌 없이 사용해도 문제없어. 우리 애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거거든.”
“그런가.”
그리고 김창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천마군림보를 순식간에 전력으로 사용하였다. 김창훈의 주위에 있던 모든 것이 짓눌리며 땅마저 움푹 파였다.
그 강력한 무형지기의 영역 안에 있는 레이드는 웃으며 말했다.
“좋군. 그러면 나도 좀 해볼까.”
레이드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은 후 자신의 몸에서 강렬한 마나를 내뿜으며 김창훈의 무형지기에 저항함과 동시에 싸울 준비를 하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서로 죽이지는 말자고.”
“그러지.”
“그럼 시작하자!”
레이드가 검을 휘두르고 김창훈은 손을 뻗었다. 레이드의 검과 김창훈의 손이 충돌하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주변의 모든 것들이 파괴된다.
“오. 묵직하군!”
레이드의 말에 김창훈은 정신을 집중하며 레이드의 검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철검으로 보이는 레이드의 검이지만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버티고 있었다.
‘천마무무를 사용해서 한 공격인데. 잘 버티는군.’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는 레이드의 모습에 김창훈은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쉽지 않네.”
그 말에 레이드는 웃으며 말했다.
“좀 더 힘을 내야 할 거야. 여기서 전부라고 하면 정말로 팔 하나 날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레이드가 다시 검을 휘두른다. 아까보다 더 강한 위력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천마신공의 초식들을 하나로 합친, 천마무무의 초식을 사용해 대응하는 김창훈.
레이드의 검과 김창훈의 주먹이 다시 충돌했을 때,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충돌해서 그런지 더욱 광범위하게 주변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김창훈의 표정은 기묘했다.
‘뭔가 뚫었다.’
천마강기로 둘러진 그의 주먹을 뚫고 레이드의 어떤 힘이 그의 몸에 적중하려고 할 때, 천마반탄강기가 그것을 막아냈다.
그것을 확실하게 느낀 김창훈은 자신의 검을 회수하며 뒤로 살짝 물러나는 레이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여전히 멀쩡하였고 레이드의 얼굴에도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역시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안 되나.’
- 지금보다 최소 8배는 더 강해져야 천마강림을 사용하지 않고도 초월자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거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준은 이제 막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가장 약한 놈들을 기준으로 하는 거다.
머리에 울리는 천마의 목소리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탐색전은 여기까지 하지, 레이드.”
“오, 그런가. 그러면 제대로 시작해 볼까? 미리 말하지만 내 검을 함부로 막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내 검은 모든 것을 베어내는 검이니까.”
레이드의 자신 있는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그러면 어디 이것도 베어 봐라. 천마강림.”
김창훈의 몸 내부에서 벌어지는 힘의 압축과 폭발. 그것을 느꼈는지 레이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신중한 얼굴로 검을 휘두른다.
평범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 긋는 단순한 움직임. 하지만 그 움직임을 김창훈은 피하였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김창훈의 뒤에 있던 작은 산이 반으로 갈라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살짝 본 김창훈이 다시 레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하네.”
“물론이지. 그러면 자네도 보여 주게나.”
“그래야지.”
허공을 밞아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가는 김창훈.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레이드를 향해서 천마파천장을 사용하며 손을 뻗었다.
그것을 본 레이드는 김창훈과 같이 받아치기보다는 크게 옆으로 이동하며 피하였는데, 레이드의 등 뒤에 있던 산이 천마파천장으로 인해서 산의 중턱 이상의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 힘을 본 레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도 강하군.”
“물론이지.”
“그러면 자네 말대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지.”
그리고 레이드의 검과 김창훈의 손이 허공에 충돌한다.
* * *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군.”
김창훈과 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자 대지가 울리고 하늘이 흔들린다. 두 사람이 싸우는 곳 근처의 모든 것이 파괴가 되었는데,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산과 강이 사라지고 있었다.
“저것이 초월자들의 싸움이군요.”
에메랄드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초월자들에 대한 것은 이야기만 들었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의 전투를 보면서 왜 거대한 제국과 싸우는 것을 김창훈이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레이드에 대해서 왜 그렇게 귀족들이 무서워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상에 내려 온 두 무신이 서로 싸우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일검에 산이 잘려 나가고 일권에 강이 사라진다. 두 사람이 싸우는 곳에는 거대한 파괴의 흔적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콰아아아앙!!!!
그때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그 힘의 여파가 퍼지며 그들이 있는 곳까지 그 후폭풍이 왔을 때, 에메랄드의 옆에 있던 마법사들이 보호 마법을 사용하여 에메랄드를 보호하였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예, 괜찮아요. 그보다 여기서 저기까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거죠?”
“23㎞입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여파라니…….”
마법을 통해서 두 사람의 싸움을 보고 있었음에도 믿어지지 않았다. 두 인간이 서로에게 휘두르는 검과 발이 충돌하였을 뿐인데도 이런 파괴력을 낸다는 사실이 말이다.
“저것이 초월자들의 싸움입니다, 폐하. 우리 제국의 수호신이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이번 기회에 폐하께서도 깨닫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한 기사의 말에 에메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의 힘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런 레이드와 호각으로 싸우고 있는 김창훈의 존재였다.
“레이드 할아버지는 초월자가 되신 후에 200년을 더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저분은 올해 27살이라고 합니다. 누가 더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
“레이드 님의 기량이 전혀 하락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지만, 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레이드 님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적으로 돌릴 상대가 아닙니다, 폐하. 가능하면 최대한 지금의 친분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기사의 조언에 에메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왕이면 혈연이 가장 확실하겠죠?”
그 말에 기사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폐하, 설마.”
“그냥 생각해 본 것뿐이에요.”
에메랄드는 미혼이다. 그리고 김창훈도 미혼. 에메랄드의 뜻은 자신과 김창훈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만큼 확실한 관계도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의 홍복입니다.”
“그렇겠죠.”
그리고 홀로 생각에 빠진 에메랄드. 그 사이 김창훈과 레이드의 싸움은 서서히 그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 * *
“도대체 그건 뭐지?”
김창훈은 자신의 손에 난 상처를 보며 말했다. 자신의 공격을 뚫고 들어오는 또 하나의 공격. 레이드의 공격에는 그런 숨겨진 공격들이 있었다.
“간단한 잔재주지. 거대한 상자 안에 작은 상자를 담아 두듯이 거대한 공격 안에 작은 공격을 담아 두는 걸세. 거대한 공격이 막힌다면 그때 그 안에 있던 작은 공격이 나아가도록 하는 거지. 제법 괜찮은 잔재주지?”
그 말에 김창훈은 굳은 얼굴로 레이드를 바라보았다. 2개의 각기 다른 공격을 중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격 안에 또 다른 하나의 공격을 담는 것.
누가 봐도 후자가 명백하게 난이도가 훨씬 더 높은 것이었고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직접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보여 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공격 안에 또 다른 하나의 공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4개였지?’
하나의 공격에는 총 3개의 공격이 숨겨져 있었고 그 공격이 하나하나 파쇄가 될 때마다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공격이 튀어나와 김창훈을 동시에 공격했다.
한 번에 하나의 공격만 하는 김창훈과 한 번에 4번의 공격을 하는 레이드. 누가 더 유리한지는 뻔하였다.
- 저 녀석이 말한 그대로 잔재주에 불과하다.
“잔재주라고 하기에는 대단해 보이는데 말이죠.”
- 흥. 저런 잔재주 따위, 절대적인 힘 앞에 무의미하다.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천마신공을 익힌 이후로, 김창훈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가 배운 것들 중 가장 큰 배움은 바로 절대적인 힘 앞에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꺾는다? 그건 서로 힘의 차이가 크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는 그 부드러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사실을 몇 번의 대련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몬스터나 범죄자들과 싸우면서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숫자라도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4개의 공격을 동시에 하던 10개의 공격을 동시에 하던 그 모든 것을 뚫고 적을 부숴 버릴 정도의 힘을 담은 공격을 하면 상대가 몇 개의 공격을 동시에 한다고 해도 다 의미 없는 것이다.
“서로 마지막 한 수를 꺼내도록 하지, 레이드.”
“오, 마지막 한 수인가.”
“그래. 나랑 싸우면서 느꼈을 거다. 내 전투 방식은 그저 힘으로 적을 찍어 누르는 것이다. 기술이니 깨달음이니 그런 것은 없어. 그저 압도적인 힘만 있을 뿐.”
김창훈의 손에 천마기가 압축되어 모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레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압도적인 힘은 그 하나로 충분하지. 그러면 어디 보도록 하지. 자네가 도달한 그 압도적인 힘이란 어떤 것인지.”
레이드는 자신의 검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며 힘을 모은다. 상대가 한 방을 노린 이상 그도 그것을 뛰어넘는 한 방을 준비해야 했다.
“미리 말하지만 피하는 것이 좋을 거야.”
“나야말로. 살짝 위쪽으로 공격을 할 테니, 알아서 적당히 피하도록.”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움직였다. 레이드는 김창훈의 오른손을 향해서 검을 내려쳤고. 김창훈은 레이드의 머리 위쪽을 향해서 오른손을 뻗었다.
김창훈의 손에서 뻗어 나간 어둠은 공간 그 자체를 베어 버리며 다가오는 레이드의 검과 충돌했다. 허공에서 충돌한 두 거대한 힘에 대지가 부서지고 공간이 뒤틀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 힘의 차이는 있었다. 레이드의 공간을 베는 검은 정말로 대단하였으나, 공간 그 자체를 뒤틀어 버릴 정도로 압축된 힘을 가진 김창훈의 전력을 다한 천마대멸겁은 그 이상이었다.
‘졌군.’
레이드는 그 생각을 하며 몸을 아래로 숙였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파괴되며 하늘을 향해서 한 줄기의 어둠이 뻗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