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똥물 뿌리려고 왔다(5)
제국의 다음 황제가 결정되었다. 현 황제가 정식으로 1황녀인 에메랄드 에트린을 차기 황제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2, 3황자들은 제국의 수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로 황자의 작위를 박탈당하고 한적한 곳에서 평생 나오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유배를 당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당연히 그동안 황자들을 지지하던 귀족들은 난리가 났다. 그 둘 중 하나가 황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각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지원을 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사라졌다. 심지어 그동안 자신들에게 절대로 좋은 감정이 없을 1황녀가 황제가 되었다. 즉, 새로운 황제에게 그들은 찍힌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귀족들은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본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여러 가지 선물들을 1황녀와 2황녀에게 바쳤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죠.”
에메랄드는 자신의 앞에 있는 김창훈을 향해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분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껏 저와 제 동생을 무시하고 괴롭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거지. 역시 인간들이 사는 세계는 다 거기서 거기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네.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건데? 귀족들이 마음에 안 드니까 다 쳐내려고?”
“본보기로 몇 명은 쳐낼 겁니다.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어기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다 쳐내지는 않고?”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행정에 구멍이 뚫립니다. 그리고 귀족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적당히 해야겠죠.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부 보상도 좀 주어야 할 거구요.”
담담히 말하는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김창훈 님 덕분에 일이 한결 쉬워졌습니다.”
“나 때문에?”
“예. 문을 막고 있던 귀족들. 기억나십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우토에서 포탈을 막던 놈들?”
“예.”
“그래, 기억나지.”
“그들은 고위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죽어 버리면서 귀족들 사이의 연계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틈을 노려서 일을 처리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렇군.”
“그보다 이곳에 머무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저었다.
“만족스러워. 특히 음식이 좋더군.”
다른 세계의 온갖 별미들을 맛보고 있기에 김창훈으로서는 이 황궁에서 지내는 삶이 썩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쯤이면 자신들의 일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을 거니까.’
제국의 수도에 남아 있던 지구 여러 국가들의 대표들. 그들 또한 지금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고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황자들의 애초에 황제가 되기에 부족한 이들이라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이 황제가 되지 못한 이유는 김창훈이 에메랄드를 이끌고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에메랄드가 망명을 신청했다고 하지만 김창훈이 그걸 그냥 받아주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돌아가면 한바탕 해야겠지.’
그들이 투자한 것은 상당했다. 각종 자원들은 물론, 심지어 헌터들을 직접 보내기까지 했다. 헌터들 중에 사망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이곳에 묶여 있는 것만 해도 지구에서 있는 본국의 피해는 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감수하고 보낸 지원 병력이 쓸모가 없어졌으니, 손해가 아니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좀 더 여러 가지 음식들을 준비하라고 주방에 알려 두도록 할게요. 혹시 원하시는 음식 종류가 있으신가요?”
“고기류로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실 건가요?”
“왜? 빨리 갔으면 좋겠나?”
“아뇨!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단지 김창훈 님도 지구에서 거대한 단체의 수장을 하고 계시니 이렇게 오래 외부에 있어도 되나 싶어서…….”
그 말에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애초에 나는 거의 얼굴마담이야. 대부분의 일은 네가 만나 보았던 그 ‘프로즌’이라는 여자가 다 하고 있지. 내가 나설 일은 그녀의 손에서 해결 안 되는 큰 건들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좀 있으면 날을 잡고 제 아버지가 저에게 황위를 정식으로 선위하실 겁니다. 가능하시면 그때까지 있다가 가실 수 있으신가요?”
“황제 즉위식을 보고 가라는 거군.”
“예. 꼭 봐주셨으면 합니다.”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며칠 후에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예. 아버지도 빠르게 정하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로 절차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무 오래 걸리면 난 그냥 갈 거야. 한 5일 정도만 더 머물다 갈 생각이다.”
“5일은 너무 짧은데……. 그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고 해서…….”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군요.”
아쉽다는 얼굴로 김창훈을 바라보는 에메랄드. 그런 그녀의 시선에 김창훈은 담담히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5일 이상 있을 생각 없다. 네 말대로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두면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가 안 되잖아. 안 그래도 내가 나서서 그자들의 일을 망친 덕분에 지금 화가 나 있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아. 오빠들을 지원한 지구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군요.”
“그래.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었으니 아마 화가 많이 나 있을 거야. 물론 정식으로 나에게 따지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따지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방법은 많으니 아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적당한 때에 돌아가야 해.”
“아쉽네요. 그러면 나중에 제가 정식으로 황위에 오른 후에 시간을 내서 김창훈 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에트린 제국의 황제가 직접 찾아왔다면 김창훈 님에게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한 제국의 황제가 직접 김창훈을 찾아왔다고 한다면 김창훈의 정치적인 입장은 급격하게 상승할 수밖에 없었고 에메랄드는 지금 그것을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김창훈 님이 절 도와준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나머지는 차차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그보다 밖에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들어오시죠.”
그 말에 둘이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며 레이드가 웃으며 들어왔다.
“하하. 너무 티가 났나? 나름 기척을 숨긴다고 숨겼는데 말이야.”
“그런 부분에서는 좀 능력이 있어서요.”
천마기공을 통해서 모든 기운을 흡수할 수 있게 된 김창훈. 그런 그의 부가적으로 좋아진 능력은 바로 탐지 능력이다.
주위에 있는 모든 기운을 느끼고 흡수가 가능하니 아무리 잘 숨어 있다고 해도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기에 천마기공이 성장한 이후로 김창훈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주변에 숨어 있는 자들을 놓친 적이 없었다.
“레이드 할아버지!”
에메랄드가 놀라며 말하자 레이드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잘하고 있더냐? 듣자 하니 귀족들이 난리라고 하던데.”
“예. 정말이지 갑자기 그렇게 일을 벌려 두고 사라지면 어떻게 하시나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어하셨는데요.”
“그 녀석은 고생 좀 해야 해. 애초에 진작에 널 차기 황제로 선정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레이드의 말에 에메랄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하고 제 동생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었으니 더욱 이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레이드 할아버지에게 저와 제 동생을 부탁을 한 거고요. 저도 제 동생도 기회만 있으면 이 황궁을 떠나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 부분이 무르다는 거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하녀의 자식이건 아니건 황제의 직계 자식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어중간하게 컨트롤했으니 그 사단이 난거지. 예나 지금이나 이상한 부분에서 무르다니까.”
그렇게 현 황제에 대한 욕을 한바탕한 후 레이드는 김창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네. 5일 후에 떠난다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두면 곤란하니까.”
“그렇겠지. 자네도 한 세력의 수장이니까. 그래서 그런데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밥만 먹고 갈 건가?”
그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한판 해보자는 거군.”
“초월자가 초월자를 만나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네. 그것도 딱히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만나는 경우는 더더욱 흔하지 않지. 거기다가 서로 자신들이 쌓아 온 업을 부딪칠 수 있는 기회는 정말로 하늘이 준 기회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그런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않나?”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어디까지?”
“음. 적당히 해야겠는데. 그건 너무 싱거울 것 같으니. 죽지 않을 정도로 하는 것은 어떤가?”
“죽지 않을 정도로?”
“손 하나 정도는 날아갈 각오하고 하자는 거지. 서로 나쁘지 않은 조건 아닌가?”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웃자 에메랄드가 급히 말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거예요, 두 분 모두.”
“간단하게 대련을 하자는 거지. 조금 과격해질 수도 있지만.”
레이드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메랄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련을 하자고 하면서 손 하나 없어져도 된다고 하는 대련은 없어요. 서로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대련이라고요.”
“하지만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로 다른 초월자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라서 말이다.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니 어쩔 수 없지. 그냥 있는 힘껏 부딪치는 수밖에. 만일 이 청년이 내 생각보다 약하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초월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죽지는 않을 거다.”
“그렇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고 200년이나 더 살았으니, 팔 한 정도로 끝날 수 있도록 해야지.”
두 사람 모두 자신 있게 말하자 에메랄드는 더욱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로서는 둘 모두 그녀를 구원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둘이 서로를 죽일 각오로 싸우려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적당히 하면 되잖아요! 그,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그 말에 레이드와 김창훈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대련이 아니지. 그냥 단순한 애들 장난이야. 안 그런가?”
“그렇지. 그보다 언제 하는 거지? 지금 당장 하는 건가?”
“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나는 지금 해도 문제없는데.”
“그러면 지금 바로 하지.”
“그러지.”
그렇게 결정이 나자 김창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소는? 이곳에서 하기 힘들 텐데. 적당한 공터로도 부족할 것 같고.”
“우리 애들이 훈련하는 훈련장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지. 아, 혹시 괜찮다면 애들 좀 불러도 되나. 초월자 간의 전투는 그들에게도 나름 도움이 될 텐데.”
“보기도 힘들걸? 근처에 있다가 휘말리면 바로 즉사야.”
“적당히 수준 되는 애들로 부르도록 하지.”
“알아서 해라.”
“고맙네. 그러면 조금 기다리게나. 준비 다 끝나면 다시 올 테니.”
그리고 레이드가 방에서 나가자 김창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