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똥물 뿌리려고 왔다(3)
“오. 멋지네.”
한 제국의 수도답다고 할까? 넓은 도로와 깔끔한 건물들. 서울과 비슷하게 상당한 고층의 건물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확연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건축물이 있었다.
“저게 황궁인가?”
거대한 성을 보며 김창훈이 말하자 파블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저곳이 이 에트린 제국의 황제께서 기거하는 곳. 황궁이야. 그런데 저것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 상황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나?”
파블로의 말에 김창훈은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수천의 기사와 마법사들, 그들의 가장 앞에 있는 몇 명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3명이 있었다.
“저 3명이 그 황자들?”
“그러네.”
유난히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3명의 황자들. 그들을 보며 김창훈은 담담히 말했다.
“당사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이야기가 편하겠군.”
김창훈은 그 말과 함께 에메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1황녀가 대표로 와서 나에게 망명을 신청했다. 망명의 대상은 1황녀와 2황녀. 그리고 그녀들을 따라서 망명을 올 이들이다. 난 그들만 데리고 이곳을 떠나겠다.”
그 말에 3명의 황자들 중 가운데에 있는 황자가 말했다.
“감히 외부의 평민 주제에 황실을 논하다니. 아무리 네가 천한 어미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에메랄드.”
그 말에 에메랄드가 움찔거린다. 그러다가 그녀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제 어머니이고 나아가 이 나라의 황제의 부인이고 당신의 어머니입니다. 그런 분을 천하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천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닥쳐라!!! 감히 그런 천한 년과 날 논하는 거냐!”
그 외침에 에메랄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김창훈은 저 가운데에 있는 황자가 어떤 황자인지 알 수 있었다.
“네가 1황자구나.”
“그렇다. 내가 이 제국의 차기 황제다, 평민.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고통 없이 죽여 주겠다.”
“오만하군. 확실히 오만해. 널 보면 내가 아직 많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아. 천마는 오만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잘 안 되더라고. 태생의 차이인가 싶었는데 널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감히 평민 따위가…….”
1황자가 김창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가서 저 평민을 죽이고 저 천한 년을 내 앞에 데려와라.”
그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왔을 때.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1황자가 의문을 가질 때, 그는 자신의 명령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던 기사들이 땅에 납작 붙은 핏물이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역시 나는 오만하지 않은 편이 더 좋은 것 같아. 너같이 굴었다가는 목숨이 10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 같으니까. 그보다 방금 날 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나?”
김창훈의 말에 1황자는 급히 외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감히 제국의 기사들을 죽인 저 인-”
말을 하던 1황자의 말이 끊어진다. 이번에도 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1황자와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이 납작하게 되어서 땅에 그 흔적만 남는다.
“시끄럽기는.”
1황자의 사망. 그것을 본 다른 두 명의 황자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한 명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또 다른 한 명은 진중한 얼굴로 긴장하며 김창훈을 바라보았는데 그것만 보고도 그 둘이 각각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진중한 얼굴을 한 놈이 2황자. 그리고 저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놈이 3황자로군.’
화가 많다고 파블로가 평가한 2황자. 이 뜻은 다르게 말하면 난폭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3황자의 경우는 무능력 그 자체. 그런 주제에 질투만 한다고 한다. 누가 누구인지, 확연하게 보이는 반응의 차이 덕분에 구분하기도 쉬웠다.
“다시 한번 말하도록 하지. 1, 2황녀는 나에게 망명을 신청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2황녀와 그녀를 따르는 이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 이의 있나?”
그 말에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2, 3황자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3황자는 부들부들 떨더니 말했다.
“데… 데려가도 좋다!”
그 말에 2황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3황자를 바라보았고. 3황자는 그 눈치에 소리치듯이 말했다.
“망명을 신청했잖아! 그리고 저 녀석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러면 그걸로 끝이야! 더 이상 저 두 년은 우리랑 상관없는 인간들이라고! 어서 데리고 꺼져 버려! 너희 둘은 영원히 이 땅에 못 올 거다!”
그 말에 에메랄드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혀를 찼다.
“쓸데없이 겁만 많아서. 1황자가 죽었는데도 한다는 말이 고작 자기 두 여동생을 버린다는 거냐.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싶고? 저런 놈이 황제가 된다고 하니 이 나라도 끝났군.”
대놓고 3황자를 욕하는 김창훈 그런 김창훈의 말에 3황자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1황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봤기 때문이다.
그걸 자신이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2황자는 이 기회에 3황자의 평판을 깎을 수 있다면 손해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다.
“2황자는 화가 많고 난폭하다고 들었는데. 그냥 약자만 괴롭히며 진짜 강자에게는 한마디 못 하는 쓰레기였고. 이 나라 황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라면 이 3명 다 쳐내고 바로 1황녀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을 텐데 말이야.”
김창훈의 말에 2황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당장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것을 참았다. 여기서 화를 내봐야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창훈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그리고 황자들 뒤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나라면 당장 이 나라 뜨겠다. 이 나라 조만간 망할 것 같거든. 황제가 될 만한 놈이 저 둘이라니. 어느 쪽이 황제가 되어도 이 나라에 희망 따윈 없다. 그러니 미리 돈 될 만한 것들 잘 챙기고 떠나라. 그편이 너희들에게 좋을 거다. 저 두 놈 밑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테니까.”
그 말에 기사와 마법사들이 움찔한다. 2, 3황자, 둘 모두 더욱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여전히 김창훈에게 한마디 못 했다.
그 모습을 본 기사와 마법사들의 얼굴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하지만 명색이 차기 황제가 되겠다고 한 이들이 외부의 세력에 보일 만한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쯧. 길이나 비켜라. 2황녀 데리고 떠날 테니까.”
그리고 김창훈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자 쿵 소리와 함께 대지가 울린다. 이에 2, 3황자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그 모습을 본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 죽일 정도로 나는 한가하지 않다. 그러니 안심해라. 안 죽인다. 내가 죽일 급도 안 되고.”
계속해서 2, 3황자에게 모욕을 주는 김창훈. 평소 김창훈의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의아해할 것이다. 그는 이런 모욕을 누군가에게 대놓고 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군가에게 대놓고 모욕을 주고 욕한 적이 있다면 딱 한 번. 국제 헌터 협회의 협회장과 그 간부들을 도발해서 모두 죽이려고 할 때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김창훈이 노리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2, 3황자가 1황자처럼 흥분해서 날뛰는 것. 그러면 저 둘을 죽일 생각이었다.
자신이 지원한 인물이 죽는 것이야말로 갖은 노력이 허무해지게 만들기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에, 자신을 물 먹인 여러 국가들에게 가장 좋은 똥물을 뿌리는 방법은 저 황자들이 모두 죽어서 새로운 인물이 황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놀렸는데, 생각보다 더 쫄았군. 괜히 1황자를 저런 식으로 죽였나?’
천마군림보를 사용한 것을 살짝 후회하며 김창훈은 에메랄드, 파블로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들은 비키지 않고 선 채 길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존심이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길을 비키기에는 제국의 수도를 지킨다는 기사와 마법사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김창훈은 외부인이기 때문이었다.
“호오. 이건 무슨 뜻이지? 싸우자는 건가?”
김창훈의 말에 2황자와 3황자는 급히 말했다.
“모두 물러나라!”
“비키라고! 망명해서 이 나라를 버린 년들이다! 그런 년들이 알아서 떠나겠다는데 그걸 왜 막고 지랄이야!”
2, 3황자의 외침에 그들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넘어 이제는 살짝 분노하며 2, 3황자를 바라보았다. 그 후 놀랍게도 그들은 비키지 않았다.
그러자 2황자와 3황자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자신들의 명령을 저들이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 감히…….”
2황자는 노골적인 살기를 뿌리며 기사와 마법사들을 바라보았고 3황자 또한 화를 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담담히 서서 김창훈의 앞을 막고 있었다.
“자기 휘하에 있는 이들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는 황제라. 너희 둘, 누가 황제가 될지 모르지만 무조건 허수아비 황제 확정이구나. 축하한다. 너희들은 아마 이 제국 역사상 최악의 황제로 기록될 것 같다.”
그 말에 드디어 폭발한 것인지 2황자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으며 외쳤다.
“당장 길을 비켜라! 안 그러면 내가 너희들 모두 죽여 버리겠다!”
“그래! 나도 형님처럼 너희들 전부 죽여 버리기 전에 비켜라!”
두 황자의 말에도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기에 2황자는 곧바로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정말로 죽일 생각으로 휘두른 것이었다. 그것을 본 파블로와 에메랄드가 놀라며 뭐라고 하려고 할 때 한 청년이 나타나 2황자의 검을 막았다.
“쯧쯧. 역시 그릇이 아닌 거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청년. 그 청년이 자신의 검으로 2황자의 검을 막자 2황자는 더욱 분노하며 그 청년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청년은 2황자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부순 후에 말했다.
“이런 놈들 두고 고민해야 하니 리스팔, 그놈도 참 머리 아프겠어. 그러니 마지막까지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지.”
그 말에 2황자는 멈칫했다. 리스팔. 그것은 가벼운 이름이 아니었다.
“설마, 할아버지?”
에메랄드가 놀라며 말하자 청년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에메랄드. 많이 컸네. 그때는 내 허리에도 못 오던 아이가.”
“어떻게 할아버지가…….”
“네 녀석 아빠 때문에 말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 부탁으로 너희 두 자매를 지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킬 생각으로 왔지. 물론 그 전에 나는 우리 제국의 자랑스러운 기사들부터 지켰지만.”
그리고 청년은 2황자를 바라보았다. 청년의 정체를 알아차린 2황자는 당황하며 말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다 봤다. 처음 저 청년이 에메랄드들과 함께 나타났을 때부터 쭉. 아주 가관이더구나. 쯧, 다시 한번 리스팔이 불쌍해지는군. 녀석은 자식 농사가 완전 망했어. 도대체 자식 놈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건지 원.”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김창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