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에르틴 제국(3)
1황녀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군. 그래, 들어나 보지. 참고로 여자나 돈, 권력 같은 거라면 필요 없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내 본래의 세계에서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1황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건은 힘입니다.”
“힘?”
“예.”
“설마 여차할 때 에르틴 제국이 날 지지한다 뭐 이런 시시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필요 없다.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물론 아닙니다. 제가 말한 힘은, 우리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그분의 힘을 한 번 정도 당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 초월자를?”
“예.”
초월자의 힘을 사용한다. 즉 초월자를 한 번 빌려 주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세계에 당신마저 어떻게 하지 못할 위험이 닥쳤을 때, 혹은 당신이 아주 곤란한 일이 빠져 당신조차 어떻게 힘으로 하지 못할 경우. 우리 제국의 수호신, 그분에게 부탁해서 딱 한 번 당신을 도우라고 명령하겠습니다.”
확실히 이건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곧 김창훈의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필요 없다.”
“어째서죠?”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 초월자가 나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 초월자와 싸워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니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라고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말에 1황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무엇을 대가로 제시해야 할까요?”
“없다. 1황녀, 네가 스스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는 확실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없더군. 노력에도 한계가 존재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하지. 그리고 너는 그 무언가가 없고.”
그 말에 1황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겠죠?”
“추할 뿐이지.”
“제 모든 것을 바친다면요? 제 몸은 물론이고 원하신다면 아예 제가 황제가 된 후에 당신에게 황위를 양도하도록 하죠.”
“필요 없다. 나는 지금 있는 이 가디언이라는 조직의 초대 수장이 된 것 자체도 후회하고 있어. 이런 거지같은 상황만 아니었으면 당장 때려 쳤을 거야. 귀찮은 일이 너무 많으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러면 다른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듣고 있다.”
“절 살려 주세요.”
그 말에 김창훈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살려 달라? 누가 널 죽이나?”
“파블로가 하는 말을 다 들었잖아요. 제 위에 있는 오빠들이 누가 황제가 되어도 전 죽어요. 그러니 살려 달라는 겁니다. 그것만 해 주세요. 그 이상 다른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김창훈은 가만히 1황녀를 바라보았다.
“대가는?”
“없습니다.”
“그런데 살려 달라고?”
“예.”
“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황제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면서까지?”
“예, 거기에 추가로 제 여동생도 구해 주셔야 합니다. 여동생이 거기에 남는다면 저도 남을 거니까요.”
그 말에 김창훈은 웃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군.”
“최소한 시도라도 해 봐야 하는 거죠.”
“그건 좋았다. 그 말에도 동의해. 시도를 하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건 멍청한 것이지. 시도를 해 본다면 성사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기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그 가능성 자체가 생기지 않으니까.”
그리고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와 여동생, 둘이 살기만을 원한다면 살려 주지. 그 정도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 줄 수 있다. 우리 세계로 너희 둘을 받아들이면 그만이니까.”
그 말에 1황녀가 놀라며 말했다.
“정말인가요?”
“그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 유능하다면서? 그 유능함을 좀 써야겠어. 우리는 지금 만년 인력 부족이니까. 프로즌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되겠지. 유능하다고 했으니 일 잘하겠지?”
“최선을 결과로 보답하겠어요.”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김창훈이 1황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름은?”
“에메랄드 에트린입니다.”
“에트린이 성이고?”
“예.”
“좋았어. 에메랄드 황녀, 지금부터 넌 나랑 같이 에트린 제국으로 간다.”
“예?”
“여동생, 구해 달라며? 여동생도 여기 함께 왔나? 그러면 안 가도 되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아, 예. 여동생은 제국에 있습니다.”
“그러니 같이 가자고. 나는 그곳의 지리도, 언어도 아무것도 몰라. 대신 함께 가야 할 사람이 필요해. 무엇보다 거기서 좋게 상황을 넘어가기는 힘들 거야. 네 여동생이 너와 함께 다 포기하고 떠난다고 해서 파블로나 너의 말을 들어 보면 그 황자들이 순순히 너희 둘을 놓아 줄 것 같지 않으니까.”
“그렇겠죠. 그러면 거기서 제국의 기사들과 싸우겠다는 겁니까?”
“그래. 안 그래도 나 몰래 일을 벌인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짜증 나서 방관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대로 지켜보는 것도 배알 꼴려서 말이야. 가서 똥물이나 한 번 뿌리고 오려고.”
솔직히 김창훈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에트린 제국의 황위 찬탈에 참가한 국가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합당한 명분이 없기에 그들을 그냥 완전히 방치하고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 것으로 대신 작은 보복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지금 합당한 보복 수단이 주어졌다. 그렇기에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 너도 참 속 좁은 놈이야.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그 말에 천마는 웃으며 말했다.
- 아니, 그래서 마음에 든다. 천마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한 놈들에 대한 보복은 그놈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언제든지 해도 상관없는 법이니까. 그보다 200년을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에서 지낸 초월자라. 만나면 재미있는 싸움을 할 수 있겠군.
“그건 사양하고 싶네요.”
그리고 김창훈은 자신을 살짝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에메랄드와 파블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계약한 화신과 대화를 한 거다. 그렇게 머리 이상한 사람 보듯이 보지 마라.”
“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신적인 존재들과 계약을 나누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요?”
“비슷하지. 그러면 바로 출발하자고.”
“바로요?”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사람은 내가 아닐 텐데?”
“그건 그렇지만. 그, 이곳의 일은.”
에메랄드의 말에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에메랄드와 파블로와 함께 프로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프로즌은 에메랄드와 파블로와 함께 온 김창훈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참전하는 겁니까?”
“아니, 망명이다. 이곳에 있는 1황녀님하고 제국에 있는 2황녀님. 둘 모두 우리 쪽으로 망명 오고 싶다고 하네.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이지.”
“명분은 좋군요.”
“명분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 명분 없는 힘은 그저 폭력일 뿐이지. 나는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프로즌.”
그 말에 프로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련하겠습니까. 그래서 직접 개입을 어디까지 하실 겁니까?”
“말했잖아. 망명이라고. 1, 2황녀들을 이곳으로 데려온다. 그것이 전부. 그녀들을 따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도 받아 주고.”
“아예 작은 나라라도 하나 세울 생각입니까?”
“그것도 좋지. 이곳은 우리의 힘이 아직 제대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잖아. 그렇다고 이 넓은 땅을 그대로 둘 수도 없지. 그렇다면 아예 우리 아군으로 둘 수 있는 세력을 하나 만드는 것도 좋지 않겠어?”
“나라를 건국한다고요?”
에메랄들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가능한 것이 아니야. 나라를 건국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으니까. 그저 간단한 마을을 만드는 정도로 끝나겠지. 어찌 되었든 나는 갔다 올 테니 여기 일은 부탁한다, 프로즌.”
“각 국가에서 난리칠 겁니다.”
“명분이 확실하잖아. 인도주의적 지원이야. 상대가 살고 싶다고 망명하는데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망명은 한국으로 하는 겁니까?”
“그래야지. 일단 내가 가장 손쉽게 손을 쓸 수 있는 국가니까. 미국도 좋기는 한데, 그쪽도 지금 3황자를 지원하느라 정신없으니 넘어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선을 넘는 놈들이 있으면 알지?”
“예,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프로즌의 말에 김창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김창훈은 1년은 지낼 수 있는 생필품과 식량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단단히 챙긴 후에 에메랄드와 파블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면 되는 거지? 말이라도 타고 가면 되나?”
“아니. 이곳에 설치한 공간 이동 마법진이 있다. 그걸 통해서 우토에 있는 우리 제국의 영역까지 단번에 이동할 수 있다.”
“편리해서 좋네. 그러면 그걸로 가자고.”
그리고 파블로와 김창훈, 에메랄드. 이 셋은 공간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들 말고도 공간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려고 하는 지구의 사람들 혹은 에트린 제국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에트린 제국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에메랄드를 보며 모두 당황했다. 1황녀가 갑자기 이곳에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특히 각 황자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갑자기 1황녀가 나타났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황녀가 지금이라도 갑자기 황제의 자리를 노리려고 한다면 가장 강력한 적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은 누구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급히 1황녀에게 다가갔다.
“황녀님!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분명 황궁에서 자중하고 있으라고 하였을 텐데요!”
“이건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고 오신 겁니까?!”
그들의 난리에 1황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김창훈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자자, 조용.”
김창훈의 말에 1황녀를 향해서 말을 하던 이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김창훈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1황녀는 우리에게 망명을 신청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지.”
“망명이라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 망명이지. 1황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온다고 한 거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너희들의 그 황제 쟁탈전에는 아무런 문제없다. 오히려 기뻐해라. 1황녀하고 2황녀, 둘 모두 망명을 할 테니 너희들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2명 모두 사라지는 거라고?”
그 말에 에트린 제국의 사람들은 멍하니 1황녀를 바라보았다. 저게 진실이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이에 에메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대로예요. 나는 망명을 신청하였고, 여기 계신 지구의 대표께서 그 망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당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1, 2황녀님이 동시에 망명시전이라뇨! 우리 제국이 망하기라도 했습니까!”
“제국의 황실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질 겁니다!”
아우성치는 이들을 보며 김창훈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참견하지 말라는 말 못 들었나?”
천마기를 미약하게 담아서 한 그의 말에 모두 다시 입을 다물었다.
“1황녀, 2황녀. 이제 그 둘은 우리 쪽에서 보호한다. 여기에 참견한다면 내가 직접 상대해 주지.”
그러자 모두 조용했다. 그들도 그동안의 교류를 통해서 김창훈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용해지자 김창훈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서 가자고. 네 동생만 바로 데려 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에트린 제국의 영역으로 바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