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에르틴 제국(2)
김창훈의 선언으로 각국의 대표들은 이제 눈치 볼 것 없다는 듯이 마음껏 움직이며 에르틴 제국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에르틴 제국의 차기 황제 후보는 3명. 그 3명은 각기 다른 상황에 있었고 성향도 달랐다. 그런 만큼 그 3명을 밀어주는 국가들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김창훈이 예상했던 그대로, 지구에 있는 여러 국가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에르틴 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물자 조달 같은 것이 아닌, 본격적인 지원을 통해서 에르틴 제국의 차기 황제 후보 3명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누가 더 황제에 자리에 어울리는지를 현 황제에게 열심히 어필하였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김창훈은 그냥 홀로 세리스가 공략한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프리즌이 그를 찾아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SS등급 몬스터라도 나타났어?”
“아니요. 손님이 왔습니다.”
그 말에 김창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 당분간 손님은 안 받는다고 했을 텐데.”
“너무 그러지 말게나. 내가 부탁한 것이니까.”
그리고 프로즌의 뒤에서 나타난 남성을 보며 김창훈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말 못 들었나? 손님은 사절이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절박하네. 그래서 꼭 자네를 만나야 했네.”
“말로 하면 안 된다는 건가?”
“초월자에 대한 문제일세.”
그 말에 김창훈은 프로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프로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저 말이 아니었다면 이자를 데려오지 않았을 겁니다.”
프로즌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했다.
“알았어. 나가서 계속 수고해 줘, 프로즌.”
“예.”
그리고 프로즌이 나가자 김창훈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 파블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한창 황제 자리를 두고 싸우고 바쁠 텐데 갑자기 초월자의 이야기는 왜 들고 온 거지?”
“우리 제국에도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분이 계시네. 그리고 그분이 지금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자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그 말에 김창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에르틴 제국에 초월자가 한 명 있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초월자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초월자가 갑자기 움직인다고 하니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는데 김창훈은 그 원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나 때문에 움직이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그대의 세계에 있는 국가들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다고 해야겠지.”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1황자를 지지하는 지구의 국가들. 그들이 우리 제국에 있는 초월자인 그분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난 후, 1황자를 황제로 만드는 것을 돕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어. 바로 자네를 죽여 달라는 거야. 그 초월자를 움직여서 말이지.”
“…그거 거짓말은 아니겠지?”
“자네가 직접 움직이면 곧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걸 거짓말해서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아. 가지가지 하는군.”
어떤 국가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김창훈은 그다지 신기하지 않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그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것이 한 국가의 정상들이나 그 국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들의 힘이 마구 뻗어나가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바로 김창훈이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되면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
“일단 그분은 기사네. 당연히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분이지. 기사로서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까. 단지 그분의 뜻을 역대 황제들은 최대한 존중했네. 그분의 실력이나 그분이 쌓은 공훈이 있기 때문이야.”
“즉, 사이가 나빠질 것을 각오하면 한두 가지 명령 정도는 내릴 수 있다는 건가?”
“그래. 황실을 배신할 분은 아니야. 그저 자신에게 강제로 명령을 내린 황제를 따르지 않을 뿐이겠지. 그분은 그런 분이야. 그래서 우리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분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을 움직이는 목적이 날 제거하는 거라고?”
“1황자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네. 자신이 황제가 되면 그분을 움직여서 자네를 죽여 주겠다고 약속했어.”
“자신감이 넘치는군. 반대로 그 수호신이란 자가 나에게 죽으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리가 없으니 그런 거야. 그분은 강하네.”
“나도 강해.”
“그분이 더 할 걸세. 그분은 초월의 경지에 오른 후 200년이 넘는 시간을 더 살아 온 분이야. 그동안 절대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지.”
그 말에 김창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초월의 경지에 오르고 난 후에 200년의 수련 시간.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날 것이다. 특히 그는 천재가 아니다.
세리스 또한 초월자들의 가장 큰 무기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재능은 다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느냐가 초월자의 힘을 나누는 잣대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세리스가 오랜 시간을 산 초월자와 싸우는 일은 최대한 피하라고 경고를 해 주었다. 그런데 200년이라고 하면 세리스가 경고한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대였다.
- 재미있어지는군.
그때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저 인간은 네가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그걸 가만히 참고 있을 거냐?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파블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 어디에도 에르틴 제국의 초월자가 진다는 생각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긴 하네요.”
-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지. 천마가 어떤 존재인지. 그러기 위해서 그동안 수련한 거다. 어느 정도 약점도 보완 했으니 이제 그 성과를 봐야지.
“솔직히 그걸 약점을 보완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약점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말이죠.”
- 어쩌겠냐? 네 녀석의 재능이 모자란 것을. 넌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난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재능이 없는 네가 여기까지 온 이유도 그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다. 네가 걸어 온 길은 틀리지 않았다.
천마의 말에 김창훈은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죠. 단지 조금 불안해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 아직도 약하다는 증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후 김창훈은 파블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초월자가 움직인다면 내 말을 전해라. 목숨을 걸고 오라고. 난 그를 죽일 테니까. 그리고 그가 죽으면 새로운 황제 또한 죽을 거다. 추가로 그 관련된 자들 중 몇 명도 같이 죽겠지. 난 후환을 남기지 않거든.”
그 말에 파블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지 말고 자네가 상황을 바꾸는 것은 어떤가?”
“상황을 바꾸라고?”
“그래.”
“그 말은 나보고 1황자를 제외한 나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지지해서 황제로 만들라는 거군.”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그분과 싸우지 않을 방법은 없을 테니까.”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가 지었다.
“파블로, 너는 누굴 지지하지?”
김창훈의 말에 파블로가 움찔거린다.
“3명 중 누군가? 1황자인가? 아니면 2황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3황자인가?”
그 말에 파블로는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1황녀님일세.”
“1황녀라. 내가 알기로 그녀는 스스로 황위를 포기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그분의 힘이 부족해서야. 1황자는 너무 그 성미가 오만하다. 2황자는 너무 난폭해. 3황자는 그야말로 무능력한 주제에 신경질만 낸다. 3명 다 황제의 그릇에 맞지 않아.”
“네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대가 직접 만나 보면 되지 않은가?”
“내가 직접? 굳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러면 자네는 우리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그분과 싸우겠다는 건가? 자네가 죽을 수도 있어!”
“반대로 그 수호신이란 자가 죽을 수도 있지. 아니, 그자가 내 손에 죽게 될 거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난 훨씬 더 강하니까. 그러니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고 가라. 그래도 좋은 정보를 가지고 왔으니 특별히 배려해 이곳에 멋대로 온 것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도록 하지.”
그 말에 파블로는 더 이상 말을 못 했다. 그러더니 돌연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도와주게!”
그 모습에 김창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갑자기 무릎부터 꿇으면 내가 감동이라도 해서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런 싸구려 이야기는 동화에서나 찾아라.”
“자네가 아니면 그분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러면 그 사람의 팔자다. 정말로 죽기 싫으면 스스로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해야지.”
“그분은 정말로 살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하였고 많은 것을 포기했네! 그럼에도 안 돼! 그 황자들은 절대로 1황녀님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이유는?”
“그분이 너무 유능하니까! 그 3명에 비해서 1황녀님의 너무 뛰어나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1황녀님을 차기 황제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럼 간단하군. 황제가 1황녀에게 황위를 넘기라고 해.”
“그렇게 할 경우 나라는 4조각이 날 것이다. 3명의 황자들이 절대로 그 사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귀족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리고 1황녀님만이 홀로 남을 것이다.
“수호신은 어디다 팔아먹나. 1황녀가 황제고, 내전으로 인해서 황제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건 반역이다. 수호신은 이때 나서야겠지.”
“…그분은 제국의 내전에는 힘을 쓰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말이다.”
“과연. 날 죽이는 일은 외부의 일이니 가능하다 이건가?”
“그렇다.”
“그래도 관심 없군. 여전히 흥미 없는 이야기다. 파블로, 나는 다른 세계의 권력 투쟁에 참가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알겠나? 1황녀.”
김창훈의 말에 허공이 일렁이며 붉은 머리카락에 금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흰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알고 계셨군요.”
“저 멍청이는 모르는 것 같지만, 그 정도로 내 감각을 속일 수는 없지.”
여성의 등장에 파블로가 당황하며 말했다.
“황녀님!”
“그만 일어나세요, 파블로.”
“예!”
1황녀의 말에 파블로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파블로를 보며 김창훈이 1황녀에게 말했다.
“말 잘 들었겠지? 난 나서지 않는다.”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분은 강합니다. 그런데도 그분과 싸우겠다는 거군요.”
“난 약하지 않아.”
“물론입니다. 당신 또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니까요. 하지만 같은 초월자들 간의 싸움이라면 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죠?”
1황녀의 말에 김창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강림을 익힌 것이 초월자의 기준이라고 할 때, 초월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김창훈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럼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른 것?”
“예,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 여동생 또한 누군지도 모를 늙은 귀족의 첩으로 팔려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영입하는 다른 조건을 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