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또 다른 초월자(2)
세리스와 김창훈의 거래는 간단했다. 세리스가 김창훈이 온전히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도와주는 대신에, 그는 세리스가 원하는 일 하나를 해 주기로 하였다.
“내가 요구하기는 했지만, 내가 한 요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해야 할 일이라고?”
“제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지만 여기서 좀 더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강자들과의 싸움이라고 천마님이 직접 말하였습니다.”
“강자들과의 전투라. 그다운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알고 있겠지?”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제가 당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그런데도 하겠다고 한 건가?”
“당장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세리스 님이 절 도와준다고 하셨으니, 세리스 님의 도움을 받아서 좀 더 저의 실력이 좋아진다면 그때 할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 초월자가 다른 이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안 할 겁니다. 저라고 해서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기 싫으니까요.”
“그건 누구나 싫어하겠지. 물론 사람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죽여야 할 초월자는 언젠가 너와 반드시 충돌할 인물이니까.”
“저와 반드시 충돌한다고요?”
“내가 말했지? 초월자들은 너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죽여야 한다고 말한 그 초월자가 대표적으로 널 죽이러 올 만한 초월자 중 한 명일 거야. 그는 자신이 초월의 경지에 오른 것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든.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지도 않은 자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 장담하는데, 그는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그를 죽여 달라고 한 겁니까?”
“그럴 리가. 그건 나에게 이득이 안 되지 않나?”
“그러면 왜 죽여 달라고 한 것입니까?”
“그 녀석이 나한테 계속 찝쩍거리니까.”
그 말에 김창훈은 세리스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에 세리스는 당당하게 가슴을 피며 말했다.
“내가 좀 아름답게 생기기는 했지. 그래서 남자들이 너무 붙어. 내가 10살 소녀의 모습으로 다니는 이유이기도 해. 그러면 좀 덜 붙거든. 물론 대신에 더 변태 같은 놈들이 붙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지.”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뭐야? 그러면 내가 못생겼다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정말로 그 이유 하나로 그 초월자를 죽여 달라고 한 겁니까?”
그 말에 세리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니. 당연히 일부는 농담이지. 그 녀석이 나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내 외모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가진 ‘권한’이야.”
“정당성이요?”
“뉘헬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네. 우리가 있는 세계는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로 묶여 있지만 그 안을 보면 총 3개의 세력이 있지. 그리고 그 3개의 세력을 이끄는 이들이 각각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야.”
“세리스 님도 그 하나의 세력을 이끌고 계신가 보군요.”
“아니.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오히려 그 3개의 세력에 모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날 노리는 거야. 나와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는 그 권한의 일부를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야.”
“그걸 위해서 계속 집착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내가 계속 거절하니까 이제는 힘으로라도 강제로 취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문제야. 내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건 나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조금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물건 때문이야.”
“물건이요?”
“강제 명령권 비슷한 거지. 그걸 가지고 있는 이상 나는 그들에게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어. 반대로 말하면 그 물건을 다른 이가 가진다면 그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거지. 그 녀석이 힘으로 취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야. 그 권한을 가진 물건을 가지겠다고 한 거지. 여차하면 날 죽이고 말이야.”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면 왕관 같은 겁니까?”
“그렇지. 내가 가진 그 물건은 그만한 상징성을 가진 물건이야. 그러니 그 녀석이 날 노리는 거지. 그 물건을 강제로라도 취하기 위해서.”
“다른 초월자에게 주는 건 어떻습니까?”
“3개의 세력이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그 물건을 어느 한 사람에게 주는 순간 바로 그 균형은 무너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거야.”
“세리스 님은 제 공격마저 정면에서 받아내셨는데, 그러면 무척 강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직접 처리하는 편이 더 좋지 않습니까?”
“그것이 가능했다면 내가 진작에 하였지. 나는 내 세계의 사람들을 죽일 수 없어. 그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거든. 그것이 내가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된 대가야.”
복잡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김창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리하면 세리스 님은 세리스 님 세계의 왕이 될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고, 그걸 노리는 초월자가 세리스 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세리스 님은 그 초월자를 죽일 수 없다는 거군요.”
“그렇지.”
“다른 초월자들을 이용하는 거는요? 강제 명령권이 있다면서요.”
“다른 2명도 내가 가진 물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거든. 오히려 셋이 손잡고 날 공격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봐야 해.”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참 힘들게 살아오셨네요.”
“그렇지. 어쩔 수 없어. 지금 우리 세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몇 억이 넘는 사람들이 죽을 테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는 고생 좀 해야지. 물론 나도 누린 것도 많아. 그러니 이 정도 고생은 참을 수 있어. 단지 그 한 명은 진짜 너무 노골적이라서 너에게 이런 거래를 제시한 거야.”
“제가 그 초월자를 죽인다면 나머지 두 초월자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당장은 눈앞에 있는 것 하나부터 처리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초월자와 관련된 사안이니 이 하나에 모든 전력을 다 해야 해. 다음 일은 이 일을 처리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세리스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초월자가 저를 먼저 공격하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무래도 생판 모르는 남을 공격해서 죽이기는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그자가 널 공격하면 상관없고?”
“날 공격했다면 그건 적이죠. 적은 망설임 없이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세리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참 특이하네. 그러면 이만 본래 있던 곳으로 슬슬 돌아갈까.”
세리스의 몸이 다시 10살의 소녀의 모습으로 어려졌고. 그 상태로 세리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두 사람의 몸은 다시 김창훈의 오두막집 안으로 이동되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것들을 해 줄 수 있을지는 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올 테니 당분간은 쉬고 있어.”
그리고 세리스가 밖으로 나가자 김창훈은 침대에 누워 말했다.
“다른 초월자들도 세리스 님처럼 강할까요?”
- 오히려 저 여자도 약한 편에 속한다고 봐야지.
“천마님 기준으로 하지 말고요.”
- 내 기준으로 하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아는 다른 초월자들을 모두 감안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저 세리스가 죽여 달라고 부탁한 초월자는 세리스란 여자보다 약하다는 것 같으니 지금의 너라도 이길 수 있겠지.
“그렇겠죠?”
- 그래. 물론 그 여자의 이야기가 단 1도 빠짐없이 모두 다 진실일 때 말이야.
그 말에 김창훈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천마의 말대로 세리스가 한 말이 모두 100%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왜 그녀의 말이 모두 다 진실이라고 생각했는지가 문제였다.
- 상대가 초월자건 무엇이건 간에 인간이라는 점을 잊지 마라. 인간들 중에서는 정말로 좋은 인간들도 있지만 그런 인간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해. 대부분의 인간들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남들 뒤통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놈들 또한 많지.
“그렇죠.”
- 그러니 세리스란 여자가 한 말을 모두 믿지 마라. 뉘헬이라고 했던가? 그 인간을 불러서 물어봐라. 최소한 ‘지식’에 관해서 그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알겠습니다.”
- 그리고 명심해라. 어떤 함정이나 계략이 너를 향해서 펼쳐진다고 해도 결국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 나도 함정에 많이 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 함정을 힘으로 다 파괴하며 나아갔다. 너도 그렇게 하면 된다.
“노력하겠습니다.”
- 초월자와의 전투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다. 세리스란 여자가 오면 그 여자랑 계속 대련을 해라. 힘을 아끼지 마라. 그 여자에게 지금의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를 보여 주면 된다. 나중에 너의 천마신공이 12레벨에 도달한다면 그때 알게 될 그 최후의 한 수. 그것만 숨기면 그 여자가 설령 너에 대해서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녀도 문제없을 거다.
“예.”
- 이것 역시 가장 좋은 점은 상대가 너에게 대해서 알아도 그 모든 것을 다 박살 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문제인데, 너는 그 정도로 강력하지 않으니 문제로군.
“결국 돌고 돌아서 그거네요. 제가 약하다는 것.”
- 그래.
“명색이 지구 최강의 헌터인데 말이죠.”
- 고작 그런 세계에서 최강이 되었다고 해도 의미 없다. 우주는 넓다. 차원은 더 거대하지. 크게 봐야 큰 인물이 되는 거다. 고작 그런 작은 행성 한 곳에서 최강이 되려고 내가 널 과거로 회귀시킨 것이 아니다.
“예.”
- 조만간 지구로 돌아가서 천마기를 보충하도록 해라. 당장 너로서는 천마기의 최대량이라도 더 늘려야 할 테니까.
“지구에서 천마기를 보충하라는 건 그 발전소를 이용하라는 거겠죠?”
- 화산이나 태풍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흡수해도 되지만, 할 수 있겠나?
“아뇨.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알 수 없어서 무섭고요.”
- 그러면 얌전히 그 발전소란 것을 이용해라. 그건 너에게 매우 좋은 영약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 그럼 쉬어라.
“예.”
그리고 김창훈이 눈을 감았을 때. 천마는 김창훈을 바라보던 곳에서 시선을 돌렸다. 천마가 시선을 돌린 그곳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김창훈과 함께 대화를 하던 30대 초반의 모습을 한 세리스가 서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요. 당신이 그 천마. 맞나요?”
“그렇지. 그래서 무슨 목적으로 온 거냐?”
“당신의 후인을 통해서 다 봤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당신의 후인을 더 강해지도록 해 주기 위해서 당신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그 편이 아무래도 더 확실할 테니까요.”
그 말에 천마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려 주지.”
“아무런 의심도 안 하시네요. 저라면 제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당신의 후인에게 그런 거래를 제시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할 것 같은데 말이죠.”
세리스의 말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마는 무적이다. 이는 단순히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적이 된 자들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붙은 문장이지. 나도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다. 이용하고 싶을 만큼 이용해도 상관없다. 이쪽도 이용할 테니까. 단지 선을 넘어서 우리의 눈 밖에 나지 말아야 할 거다. 우리의 적이 된 순간, 너의 삶은 끝날 테니까.”
오만하고 과감하다. 하지만 그것이 천마가 살아 온 삶이었고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세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마가 해 준 이야기를 듣고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사라졌다. 이에 천마는 미소 지은 채 잠든 김창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실패작들과 다르게 넌 천마신공의 마지막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