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세계의 연결 지점, 우토(1)
뉘헬과의 대화는 아주 좋았다. 파블로와 같이 서로 눈치 보며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뉘헬이 알아서 ‘그 지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지식이 부족할 수 있으니 그 지식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않겠네’라고 말하며 적절한 선에서 끊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김창훈은 신나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물을 수 있었고. 뉘헬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창훈은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고, 하루 동안 이야기를 나눈 둘은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쉬는 동안 스스로 명상을 하고 있는 뉘헬을 집 안에 두고 밖으로 나온 김창훈은 아공간에 있는 의자를 적당한 공터에 하나 꺼내어 놓고 앉으며 말했다.
“완전 미쳤는데?”
- 크흐흐. 조금 충격적이었나 보군.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창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금 충격인 정도가 아니라고요. 이건…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이 완전히 깨부숴진 정도네요. 각성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던전도 나타나고 몬스터도 있는 데다 화신까지 나타난 마당에 설마 그 이상의 일이 나타날 거라고 절대로 생각 못 했어요.”
- 본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 그리고 너는 지금 개안을 한 거다. 오히려 기뻐해도 좋지 않을까 싶구나. 네가 한 2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죽었을 테니까.
“차라리 평화롭게 살아서 더 좋을 것 같은데요?”
- 너희 나라 역사를 생각하면 그것도 아닐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요.”
그리고 김창훈은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천마, 뉘헬의 말에 따르면 제가 결국 도달한 곳은 그 ‘초월’이라는 경지입니까?”
- 그렇지. 초월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야. 흔히 말하는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그렇게 쉬워 보이지는 않는데요.”
- 무엇을. 네가 천마신공 12레벨에 도달하면 그 순간 온전한 초월을 이룬 존재가 되는 거다. 간단하지?
“그걸 못 하고 있는데 간단하다고 말하셔도 제가 할 말이 없네요.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그 쉬운 일을 하는 방법 좀 알려 주시죠.”
- 강자랑 싸우라니까?
“그러니까 그 강자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을 뜻하는 겁니까?”
- 아무리 못해도 네가 싸웠던 그 검은색 도마뱀 정도는 되어야겠지. 최소한 상대도 초월에 한 발자국 걸치거나 그 이상으로 나아간 존재여야 한다. 아예 온전하게 초월자가 되었다면 더 좋지. 그런 놈들이랑 싸워서 이기면 분명 얻는 것이 많을 거다.
“그건 천재들의 이야기지. 저 같은 범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같은 범재들은 강자와 싸웠다고 갑자기 성장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네가 익힌 천마신공은 머리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도록 내가 고심 끝에 만든 무공이다.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나머지는 천마신공이 알아서 할 거다.
“정말입니까?”
- 그래.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나에게 있을 것 같나?
“그건 그렇죠. 그러면 도대체 몇 명이랑 싸워야 합니까?”
- 12레벨에 오를 때까지.
“…그냥 계속 싸우다가 깨달음 얻고 경지 상승을 노리라는 것 아닙니까?”
- 그거랑 다르다. 네가 직접 해 보면 알게 될 거다. 너랑 나를 연결시켜 주는 이 특별한 힘이, 알아서 너를 이끌어 줄 테니까.
“그렇습니까.”
그리고 김창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이 바빠지겠죠?”
- 이제부터는 솔직히 정치의 영역이다. 네가 지구에 있을 때 제법 수를 썼던 것 같지만, 그건 말 그대로 범재의 수준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이지. 네가 직접 나서서 다른 세력과 정치를 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가 클 거다. 넌 범재니까.
“그들과의 두뇌 싸움에서 제가 이길 수 없다는 거군요.”
-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너도 알고 있는데 굳이 내가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해야 하나?
“알고 있는 것과 확답 받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러면 누가 대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 모르겠군. 네 회귀 전의 지식까지 참고한다고 해도 딱히 쓸 만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어딘가 하자가 있단 말이지.
“그림 리퍼는 어떻습니까? 연륜도 있고 실력도 있습니다.”
- 그 녀석은 너무 늙었다. 그보다 나는 차라리 프로즌. 그 아이가 좋을 것 같군.
“프로즌이요?”
- 그 아이는 너랑 다르게 머리를 잘 쓰니까. 실력도 좋고. 거기다가 그 아이도 화신과 계약을 했다. 아마 못해도 그 SS등급 면허? 그걸 받을 수 있는 수준은 될 거다.
“프로즌이 화신과 계약을 했다고요?”
- 왜 그리 놀라? 당연한 일이지.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재능도 있는 아이를 화신들이 가만히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 분명 계약을 했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것도 직접 들으니 또 다르네요.”
- 참 다른 것도 많군. 어찌 되었든 넌 멍청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중에 힘만 쓰면 된다.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머리 쓰는 것은 그 아이가 하는 편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알겠습니다.”
- 뉘헬에게 받을 수 있는 지식들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니 나중에 프로즌과 함께 뉘헬을 만나서 프로즌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라고 해라. 그러면 뉘헬이란 그 인간이 알아서 대가를 지불할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 그보다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겠군. 그동안 솔직히 구경하는 재미가 없었단 말이지.
“구경할 재미가 생겨서 좋겠군요. 저는 머리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 흐흐흐. 잘해 봐라. 여차하면 힘으로 다 제압하면 그만이다. 천마는 그런 존재니까. 나도 머리가 쓰기 귀찮을 때는 그냥 힘으로 다 모든 것을 해결했다.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이들과 싸울 필요는 없는 법. 적들은 최대한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법이죠.”
- 알아서 해라. 난 재미있게 구경할 테니.
“종종 조언 좀 주시죠.”
- 보고.
그 말 이후로 더 이상 천마의 말이 들리지 않을 때, 김창훈의 뒤로 프로즌이 나타나 김창훈을 향해서 다가오며 말했다.
“대화 중이셨습니까? 계약하신 화신분과.”
“응. 그렇지. 그보다 파블로의 일은?”
“일단 잘 넘어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그리고 지금 지구에서는 난리입니다. 다른 세계의 인간. 쉽게 말하면 외계인과 만났습니다. 당연히 자신들도 어떻게든 이번 일에 참가하겠다고 모두가 나선 상황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통제를 해야 해. 괜히 여러 국가의 이해득실이 끼어들어 봐야 우리만 골치 아파질 테니까.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가디언이 책임지고 모두 처리한다.”
“그걸 기자들과 각국의 정상들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그리고 내가 그러는 동안 너는 따로 만날 사람이 있다.”
“제가요? 어제 총장님과 함께 왔던 분입니까?”
“그래.”
그리고 김창훈은 프로즌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고 그 안에 조용히 명상 중인 뉘헬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대화 괜찮을까?”
그 밀에 뉘헬은 눈을 뜨며 말했다.
“물론 언제든지 문제없다.”
“내가 한 모든 이야기. 모든 지식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다.”
“물론이다. 어떤 종류의 지식을 원하는가? 내가 아는 지식이라면 최대한 내가 받은 지식의 값어치에 맞게 지불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프로즌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 사람과 대화를 해.”
“예?”
“들었잖아? 필요한 지식을 준다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혹은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다 물어 봐도 괜찮아. 나는 이미 충분히 물어 볼 만큼 물어 봤으니까.”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가디언에 꼭 필요한 것들을 물어 보면 될 거야. 그리고 뉘헬,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또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상관없으니 이 여성에게 알려 주면 고맙겠어. 물론 그에 따른 대가는 내가 준 지식으로 하고. 아니면 새로운 지식을 이 여성에게 구해도 좋아. 이 여성은 나보다 똑똑한 여성이니까.”
“호오. 그런가. 그거 흥미가 생기는군. 자, 앉게나. 여성이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뉘헬의 말에 프로즌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저는 프로즌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나는 뉘헬이라고 하네. 그러면 우리 서로 지식의 교류를 시작하도록 하지.”
그 말에 프로즌이 김창훈을 바라보자 김창훈은 프로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밖의 일은 내가 처리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총장님. 부디 사고치지 마십시오.”
“노력할게.”
그리고 프로즌과 뉘헬을 자신의 집에 두고 김창훈은 작전 사령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부에서 나온 사람과 파블로가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보며 김창훈이 말했다.
“앞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부분은 우리 가디언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정부에서 나온 인물이 당황하며 말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것은 지구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죠. 파블로, 당신도 이제 슬슬 당신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도록 해. 본격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서로 좀 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물론 그래야지. 그러면 다음에 또 보았으면 좋겠군, 김창훈.”
“그래.”
그리고 파블로가 떠나자 김창훈은 정부에서 나온 인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지구로 돌아갑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그 말에 그는 당황했지만 김창훈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헌터.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나설 만큼의 권한이 그에게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던전을 나왔고. 기자들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기자들을 보며 김창훈은 기자들에게 다가갔다. 기자들은 서로 마이크를 들이밀며 정말로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났는지에 대해서 물어봤고 이에 김창훈은 담담히 말했다.
“지금부터 다른 세계와 해야 하는 교류에 대해서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정상분들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5일 안에 모두 한국으로 와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분들은 이 말을 빠르게 속보로 전 세계 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어느 정도 결정이 나면 그때 제가 따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자들에게 커다란 폭탄을 터트린 후 김창훈은 가디언의 본사로 향했다. 전 세계가 김창훈의 발언으로 난리가 났다.
다른 세계. 거의 외계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를 만났다고 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국가의 정상들은 자신들이 직접 최소한의 보좌진만 대동한 상태로 한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제기구들의 수장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들 또한 이번 일에 참가할 권한이 있다고 김창훈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갑자기 전 세계의 정상들이 모인 회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