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화신의 계약자들(2)
쾅!
80m 크기의 거대한 거인이 발을 내딛는다. 그것만으로 도로가 파괴되고 지면이 요동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남성이 혀를 찼다.
“재수도 더럽게 없지. 하필이면 여기서 S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줄이야. 차라리 서울에서 나타나라고!”
- 서울에 있는 그 ‘천마의 후인’ 때문이냐?
머리에 들리는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에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저런 놈 따위 가볍게 정리해 버릴 테니까. 젠장, 아무리 그 사람이라고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는 데 시간 상당히 걸릴 텐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 싸울 생각인가?
“그래야지. 싸우기보다는 버티는 것이 전부겠지만.”
- 버티지도 못할 거다. 아무리 나와 계약을 통해서 네 몸이 좀 더 튼튼해졌다고 하지만, 저 거인을 상대로는 지금의 너는 제대로 버티기도 힘들 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저런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내 일이라고!”
남성이 땅을 박찬다. 박찬 땅이 부서지고 남성은 빠르게 거인, ‘티탄’이라고 불리는 몬스터가 있는 곳을 향해서 나아갔다.
티탄은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는 자그마한 ‘인간’을 발견하고는 손을 움직였다. 가볍게 쳐내서 인간을 처리할 생각을 한 것이었다.
허공을 움직이는 티탄의 손. 그것을 본 남성은 오른손 주먹에 힘을 준다.
“아이언 피스트! 크래셔!”
은색으로 빛나는 남성의 주먹과 티탄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충돌하자 그 여파로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건물들의 유리창이 부서졌다.
그리고 티탄의 손이 힘에 밀려 살짝 뒤로 밀려났고 남성의 경우는 뒤로 날아가며 10층 정도의 상가 건물의 옥상에 겨우겨우 길게 밀려나듯이 착지하였다.
“크으. 역시 안 되나.”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으나 티탄에게는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젠장, 여기 상가 건물 옥상 개판이네.”
그가 상가의 건물에 착지하고 뒤로 밀린 만큼 상가 건물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이 박살 나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중에 꼭 보수할 돈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남성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의 오른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오른손의 상태에 대해서 내가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
“무리했다는 거네.”
- 그렇지.
“그러면 더 좋은 거네.”
그 말에 그와 계약한 화신이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 정확하다! 그래, 무리가 왔다! 이는 곧 뼈와 근육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지! 한 번 더 오른손을 뻗어라! 그것으로 확실하게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회복되었을 때 뼈는 더욱 단단해지고 근육은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겠지!
자신의 손을 밀어낸 인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티탄이 그를 향해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 사람의 몸은 철이다!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강해지지! 물론 정도는 지켜야지. 너무 두들기면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테니까. 하지만 문제없다! 그걸 막기 위해서 너에게 그 스킬을 준 것이니까!
“알고 있다고. 그러면 가 볼까. 전신 활성화.”
남성의 온몸에서 은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상태로 남성은 다시 한번 자세를 낮추고 점프를 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티탄은 남성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올려 그 손을 주먹을 쥐고 그대로 남성이 있는 곳을 향해서 손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간다!”
건물 옥상을 박차며 남성은 전력으로 점프를 한 후 자신에게 내려치는 티탄의 주먹을 향해 또 다시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아이언 피스트! 크래셔!”
아까와 같은 스킬을 사용하며 티탄의 주먹을 받아쳤다. 티탄의 주먹이 위로 조금 솟구치고 동시에 남성의 몸은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하며 아스팔트 도로에 박혔다.
“크으…….”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남성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 내가 준 스킬인 전신 활성화를 통해서 오른손에 가해지는 부담이 전신으로 퍼져서 오른손이 바로 망가지는 것은 막았지만, 역시 충격이 너무 크군. 거기다가 이번에는 진심으로 해서 그런지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이 네 몸에 가해졌다.
화신의 말에 완전히 몸을 일으킨 남성이 말했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 흐하하하! 정확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죽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알고 있어.”
두 번이나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서 그런지 티탄은 이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크아아아!!!”
포효한 티탄이 전력을 다해 남성이 있는 곳을 향해서 주먹을 내려찍자 그것을 본 남성이 이번에는 왼손의 주먹을 쥐었다.
“이거 막으면 끝이겠지?”
- 그럴 거다.
“젠장. 고작 3번이 한계인가.”
그렇게 말하며 남성은 다시 전력을 다해서 점프하며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여 거인의 주먹을 막아낸다.
우드드득!
전신에서 들리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까지 온몸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며 땅에 몸이 박혔다.
“커헉!”
피를 토하는 남성. 하지만 티탄은 또 다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에 아까보다 더욱 분노하며 그 자리에서 점프하였다. 약 50m 정도로 높이 뛰어 오른 티탄이 남성이 있는 곳을 향해서 주먹을 내려찍는 것이 보였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 아니. 시간이 되었다.
화신의 말에 남성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남성의 옆에 나타났다. 그 사람을 본 남성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기 전에 남성의 손에서 작은 검은색의 불꽃이 티탄을 향해서 천천히 던져졌다.
그리고 그 작은 검은색 불꽃이 티탄의 주먹과 닿는 순간. 티탄의 전신으로 검은색의 불꽃이 퍼지더니, 곧 허공에서 피어난 검은색 불꽃이 사라지자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티탄의 몸이 보이지 않았다.
SS등급 몬스터를, 단 한 번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 버릴 수 있는 사람. 전 세계에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김창훈.”
남성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김창훈을 바라보며 말하자 김창훈은 남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 봤습니다. 홀로 잘 버티더군요.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만 언젠가 SS등급 헌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 말에 남성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살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 전 가 보겠습니다. 아직 다른 몬스터들도 있어서요.”
그리고 김창훈의 몸이 사라진다. 압도적인 속도로 움직여서 남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멋지네.”
홀연히 나타나 SS등급 몬스터를 지워 버리고 다시 몬스터들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남성은 그런 생각을 하였다.
- 저게 천마의 후인인가.
“어때? 강하지? 멋지지?”
- 네가 왜 난리냐?
“멋지잖아. 저 나이에 세계 최강이 되었다고. 그리고 거대 세력의 부조리를 혼자 맞서서 싸워서 이겨냈고 그 부조리들을 없애고 새로운 틀을 만들었잖아. 헌터들이라면 모두 저 사람에게 고맙다고 생각할걸? 저 사람이 나서서 한 여러 가지 일들은 결국 여러 헌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었으니까.”
- 그건 이미 너에게 질리도록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놀라워하는 것은 저 녀석이 가진 힘이다.
“아. 그건 확실히 엄청나네. 나도 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SS등급 몬스터랑도 한번 싸워보고 나니 알겠네. 왜 저 사람을 위한 규격 외의 등급을 새로 만들었는지 납득이 가네.”
- 천마가 후인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문은 무성했지. 단지 그 과정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다 죽었다고 알고 있다. 저 녀석은 그 과정을 모두 다 버티고 살아남은 거겠지. 재능이 없다고 했던가?
“어. 하지만 중요해 보이지 않는데. 저 정도 힘이 있다면 격투술 좀 못 하면 어때? 다 찍어 눌러 버리면 되는데.”
- 그렇겠지. 천마의 힘이란 그런 거다. 그 녀석은 언제나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했지. 우리 화신들 사이에서도 그 녀석은 압도적이다.
“너보다 강해?”
- 말할 것도 없지. 전투라면 자신 있는 나지만, 그 녀석은 예외다. 아마 모든 화신들이 마찬가지일 거다. 저 녀석이 화신과 계약했다는 이야기가 없다고 했지?
“어. 아직 발표는 없더라.”
- 아마 천마와 계약했을 거다. 천마의 후인을 다른 화신들이 건들 수는 없을 테니까.
“화신들 중 최강과 인간 최강이 함께한다라. 크으, 멋지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자신 있게 물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무리다.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아. 하지만 그 다음은 될 수 있지. 내 목표이기도 하고.
“약한 말을 하네. 너답지 않아.”
- 그만큼 상대가 말도 안 된다는 거다. 반대로 너는 저 인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나?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해도?
“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도저히 그보다 더 강해진다는 상상이 안 되는데?”
방금도 보았듯이, 그는 홀로 SS등급 몬스터를 가루로 만들었다. 그전에도 SS등급 몬스터를 죽인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완벽하게 가루로 만든 적은 없었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내가 강해지는 것보다 그 사람이 더 빠르게 강해질 것 같아.”
- 그럴 거다. 그 천마가 옆에서 도울 테니까. 아무리 냉정한 그라도 자기의 후인이다. 옆에서 조금은 신경을 써 주겠지.
“그런가.”
멀리서 들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남성은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온몸의 부러진 뼈가 그 사이에 일부 회복되었고 근육들도 같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SS등급 헌터. 일단 그걸 목표로 해야겠네. 최종 목표는 나도 EX등급 헌터가 된다.”
-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가능하다. 그 정도는 만들어 주지.
“흐흐. 그것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남성은 미소 짓는다. 한편 부산으로 와서 던전 게이트를 막아낸 김창훈은 미소 지으며 티탄을 막았던 남성을 떠올렸다.
“철권 박철. 벌써부터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
- 화신이 붙어 있다.
천마의 목소리에 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라면 붙을 만하죠.”
- 확실히 회귀 전의 미래에서는 S등급 헌터였지?
“대한민국의 S등급 헌터들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역시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네요.”
-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그러면 그만 돌아가죠.”
- 아. 그 전에 부산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것들 있다고 하던데 그것들이나 좀 먹고 싶네.
“알았습니다. 그러면 점심 식사만 하고 가죠. 너무 늦게 가면 프로즌이 또 뭐라고 할 겁니다.”
- 그러지.
그리고 김창훈은 부산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난 후에 다시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