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정체기(2)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었다. 그동안 있었던 큰일이라면 바로 일본에서 무리하게 SS등급 몬스터 토벌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김창훈의 발언으로 점점 더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일본 정부는 그런 일본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SS등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고 천명.
그리고 그걸 실행하였다. 물론 혹시 몰라서 미국의 S등급 헌터들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S등급 헌터들도 합류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국에 있는 SS등급 몬스터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일본에 있는 S등급 헌터 한 명 사망과 A등급 헌터 총 121명이 사망했고 B등급 헌터는 854명이 사망했다.
파괴된 전투기나 전차는 백 단위가 되었고 사망한 군인의 수는 천 단위였다.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지만 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건 안 하는 것만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일본에서 만드는 소재들은 얼마든지 대체할 곳이 있기에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은 서로 힘을 합쳐서 일본의 소재들을 다른 기업의 것으로 대체하였고.
그 결과 일본의 기업들만 피해를 입어야 했다. 거기다가 일본은 무리하게 나서서 SS등급 몬스터를 잡으며 S등급 헌터 한 명을 잃고 A, B등급 헌터들 또한 많이 죽었다.
파괴된 전차와 전투기로 인한 재산 피해나 죽은 군인들까지. 일본 정부는 오히려 일본 국민들의 강력한 분노 앞에 몸을 움츠려야 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이 모든 것은 김창훈과 대한민국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자신들의 국토에 있는 SS등급 몬스터를 잡아 주었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김창훈을 보며 소인배라고 욕하였다.
그리고 이 욕을 들은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건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여론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이라고 다를 것 있겠는가? 여기에 대한 김창훈의 답변은 ‘본래 일본은 모든 불행이 한국 탓이라고 하는 국가다. 무시해라.’라는 시크한 답변을 남겨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좋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외에는 딱히 큰일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던전 내에서도 마찬가지. 베이스캠프를 덮치려고 하는 몬스터들을 잡는 것, 그리고 종종 EX등급 몬스터를 보고 온 것이 김창훈이 한 전부였다.
“역시 안 되는 건가.”
3개월 동안 스스로 수련을 통해서 천마신공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익히며 스스로 성장하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천마신공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파헤쳐 보자는 생각을 하며 수련을 했고. 그 수련은 끝이 났다.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은 8개. 그리고 그 초식의 특성도 매우 뚜렷해. 덕분에 활용에 대해서도 너무 다 각자 역할이 확실하지.”
덕분에 초식을 사용할 때 복잡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 몇 가지 추가적인 활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3개월 동안 김창훈이 건진 것은 0. 하나도 없었다.
“내 한계인지, 아니면 이 무공의 한계인지. 아니면 둘 모두의 한계인지 모르겠네.”
김창훈의 생각은 둘 모두다. 천마신공은 애초에 ‘파괴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잡아 두고 있고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몇 가지 특성을 더 넣은 초식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그렇기에 김창훈 같은 재능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익힐 수 있다. 그것이 천마신공의 장점이다.
“역시 나에게 이런 수련은 안 맞는 것 같네.”
그동안 열심히 한 명상 훈련이 쓸모없다는 것을 그간의 시간 낭비로 확실하게 깨달은 김창훈은 던전에서 나가는 것을 결정했다.
더 있어 봐야 시간 낭비고. 차라리 S등급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들이 발견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던전으로 가서 보스 몬스터인 SS등급 몬스터를 잡아 그 힘을 흡수하는 것이 더 좋은 성장 방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더 확실하게 맞는 것 같네. 강한 상대와 끝없이 싸우는 것.”
이것이 천마신공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앉아서 명상이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건 발전소에 가서 전기를 흡수하는 거지만.’
천마가 이 무공을 만들었던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모르지만, 만약 그 시대에도 발전소 같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곳이 있었다면 천마도 아마 그 장소에 머물며 천마기를 늘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김창훈은 지내고 있던 오두막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이 던전의 작전 사령부. 그곳에 가서 김창훈은 자신이 던전에서 나갈 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SS등급 또한 S등급 던전과 같이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서 언제나 최소 1명 이상의 S등급 헌터가 머물러야 하기에 자신을 대신해서 다른 S등급 헌터가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미리 나가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 했다.
김창훈이 던전을 나간다는 사실에 그곳에 있던 이들은 수긍하고 난 후 김창훈 이외의 다른 S등급 헌터가 올 때까지만 있어 달라는 말을 하였고.
김창훈은 이틀을 더 던전에서 머문 후 새로운 S등급 헌터가 왔다는 소식에 던전에서 나갈 준비를 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오셨네요. 저는 검왕이나 마이클 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던전에 온 새로운 S등급 헌터. 박임로를 보며 던전에서 나가기 전에 김창훈이 인사차 들려서 그에게 말하자 박임로가 김창훈을 보며 말했다.
“검왕. 그 아이는 조금 한가하지만 마이클 킴은 지금 정신없이 바쁘다.”
“그분이요? 왜죠?”
“국제 헌터 협회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 자리를 가디언이 새롭게 차지했으니 가디언과 협력하기 위해서 바쁜 것이지. 한국 헌터 협회란 이름 대신에 가디언 한국 지부라고 이름도 바꾸고, 그 녀석도 가디언 한국 지부장이라고 명함까지 바꾸었더구나.”
“거기까지 일이 진행되었군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국제 헌터 협회가 너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은 나도 동의하지만 그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해도 국제 헌터 협회가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구분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지. 국가들로서는 이 기회에 국제 헌터 협회가 가졌던 권력을 최대한 챙기고 싶어 하니.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는 것도 있고.”
“정말로 바쁘겠네요.”
“그렇지. 그러니 내가 온 거다. 그보다 좀 어떻더냐? 그 동안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느냐?”
“아뇨. 전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조급함은 화만 부를 뿐이니까.”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가서 발전소나 들르려고요.”
김창훈의 말에 박임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결국 그걸 선택한 것이냐?”
“예. 제가 익힌 무공의 한계가 의외로 명확하더라고요. 저는 무한한 가능성을 봤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어요. 분명 활용 방법이 많기는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활용법을 모두 찾은 이상 더 이상 할 수련은 없죠. 그러니 이제 제가 할 일은 능력치를 늘리는 일 뿐입니다.”
“흠. 정말로 더 할 것이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냐?”
“예. 확신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김창훈의 말에 박임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나저나 어지간한 양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정전 사태가 날 수도 있겠구나.”
“그 부분이 안 그래도 고민이기는 합니다. 그러니 이건 정부랑 잘 이야기해 봐야죠. 정 안 된다고 하면 배터리라도 대량으로 구매해서 써야죠. 방법이야 많지 않습니까? 단지 돈하고 시간이 문제지.”
“그건 그렇지. 그러면 알아서 잘 해 보거라.”
“예. 그러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인사를 나눈 후 던전을 나온 김창훈은 곧바로 김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형, 던전 밖이야?
“그래. 던전에서 막 나왔다. 야, 나 전기를 다시 흡수해야 하거든.”
- 전기를 갑자기?
“내공 늘리려고.”
- 수련은?
“그건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서. 더 이상 할 것도 없다.”
- 언제는 수련에 끝이 없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는 끝났다고 하냐.
“상황에 따라서 바뀌는 거지, 상황에 따라서. 그러니까 전기 흡수하기 좋은 방법 좀 알아봐 줘.”
- 또 발전소 갈 거야?
“그게 가장 좋기는 한데. 내가 작정하고 전기를 흡수하기 시작하면 알잖아? 발전소에서 생성된 전기를 대부분 내가 흡수해서 일반 가정이나 공장으로 가는 전기가 부족해져 정전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을. 그렇게 되면 일반 시민들에게 민폐잖아. 그러니까 그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알아봐.”
- 다시 저번과 같이 전기 자동차 배터리라도 가져 올까?
“충전은?”
- 음. 그 부분이 문제이기는 한데. 일단 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았어. 내가 따로 회장님하고 이야기해 볼게.
“그래. 결정 나면 연락해라. 나는 강원도에 있는 내 집에 있을 테니까.”
- 응. 알았어. 아, 그리고 형.
“왜?”
- 집에 도착하면 인터넷 좀 봐봐.
“왜? 큰일이라도 났어?”
- 일본에서 벌어진 일 수준의 큰일은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한번 봐봐. 판단은 형이 해야 하니까.
“흠. 알겠다.”
그리고 통화를 종료한 김창훈은 3개월 동안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강원도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김창수의 말대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했다.
인터넷의 신문 기사들의 내용은 자잘했다. 어떤 일을 가지고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어떤 사고가 일어나거나 혹은 간단한 생활 지식이나 어떤 영화가 개봉했다.
뭐 이런 평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잘한 일들이었는데 1개월 전에 벌어진 일은 이런 자잘한 일들과 좀 달랐다.
“이거구나. 내가 확인하라고 한 것이.”
‘국제 헌터 협회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움직이는 범죄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최근 들어서 증가하고 있는 범죄율에 대한 기사였다.
각성자들이 벌이는 범죄율이 대한민국에서도 증가했고,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렇게 범죄율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국제 헌터 협회가 해체되기 시작하며 그들을 잡을 인력이 감소하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국제 헌터 협회의 권위가 사라지며 그 권위에 눌려 있던 이들의 반발심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흠. 확실히 이건 큰일이라고 하면 큰일인데.”
하지만 별것 아니라고 하면 별것 아닌 일이기도 했다. 가디언이 새롭게 자리 잡으면 다 사라질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프로즌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네.”
전 세계의 범죄 증가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프로즌에게 문자를 보낸 후 김창훈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며 자신의 침대에 몸을 눕혔다.
침대에 누운 김창훈은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