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정체기(1)
시간이 흐르고 2024년 6월 29일. 프로즌의 감시가 시작된 지 딱 1년이 되는 날. 프로즌은 김창훈을 감시하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프로즌은 김창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김창훈은 자신의 강한 힘을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알며, 그 힘으로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과격하기에 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스스로 법의 한도 내에서 움직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프로즌이 말한 김창훈이란 사람에 대한 의견이었다. 고작 1년이기에 단정 짓기에는 힘들다고 할 수 있으나 최소한 그녀의 이 발언은 사람들이 김창훈에 대해서 가지는 약간의 불안함을 좀 더 해소시켜 주었다.
쉽게 말해서 정의를 따르려고 하나 그 방식이나 과정이 과격하다는 것이 김창훈에 대한 정의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이나 방식이 과격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때로는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도 많았다.
그리고 감시라는 이름의 비서 생활을 청산한 프로즌은 김창훈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하고 떠났고, 그런 그녀를 보며 김창훈은 그녀 몰래 조용히 그림 리퍼에게 새롭게 만들어질 ‘가디언’에 자신이 만약 초대 수장이 된다면 비서로 프로즌을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프로즌은 정말로 능력이 있는 여성으로서 여러 가지 일 처리를 확실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림 리퍼는 김창훈의 제안을 수락하였고, 이 사실은 둘만의 비밀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프로즌이 떠남으로 인해서 조금 씁쓸해지는 마음은 있었지만 김창훈은 SS등급 던전 안에서 지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정체기라…….”
홀로 나름 수련을 하지만 큰 발전은 없다. 능력치의 변화도, 스킬의 변화도 없다. 말 그대로 모든 발전이 멈춘 것이다.
검성은 예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그건 대한 헌터 학교 다닐 때. 그를 1:1로 가르쳐 준 박임로 또한 이야기하였다.
언젠가 성장이 막히는 구간이 올 거라고. 김창훈은 그럴 때가 올 때마다 천마기를 늘려서 강제로 성장을 이어갔으나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그나마 그동안 노력해서 1이라도 올린 것이 다행인가.”
120이던 천마기 능력치가 121이 되었다. 이것이 던전에서 약 4개월간 지내며 생긴 유일한 변화였다.
“흠. 뭘 해야 하나.”
정체기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며칠 전에 김창훈은 검성에게 하였고 여기에 대한 검성의 답은 간단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매일 하던 수련을 이어가라는 것이었지.’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건 검성이 했던 방식이다. 검성과 김창훈의 성장 방식은 아주 달랐다. 무엇보다 김창훈에게 검성만 한 재능이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천마기를 늘리는 것인데.’
진지하게 원자력 발전소로 가서 핵융합 에너지를 흡수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오두막으로 누군가가 접근했다.
김창훈은 자신의 오두막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고 잠시 후 사람들이 다져 놓은 길을 통해서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상당히 의아해하였다.
“당신이 여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헌터로서 던전에 오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나?”
“아니, 그건 문제가 아닌데……. 여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지 않습니까? 남궁철 선배님. 한한령은 어떻게 하고요?”
김창훈의 선언 이후로 중국, 북한, 일본은 각자 자신들 나름대로 김창훈.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토에 있는 SS등급 몬스터를 잡아 주기 전에는 이 보복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하며 먼저 시작한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당연히 전 세계에서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들은 전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 중국에서는 한한령이라고 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 컨텐츠의 수입을 중단, 반대로 중국 사람이 대한민국으로 가는 여행 또한 제한을 걸어 두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생산한 소재가 북한으로 밀수입되고 있다는 이유로 자국의 소재 수출에 대한 제재를 대한민국에게 가하였다.
북한이야 본래부터 적이고 워낙 힘이 없는 나라이다 보니 딱히 하는 것은 없지만 연일 공식 방송으로 대한민국과 김창훈을 욕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궁철이 대한민국에 왔으니 김창훈이 놀라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한한령이 발동되며 가장 먼저 중국이 취한 조치가 중국 내의 던전들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온 모든 한국 헌터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또한 이 일에 대한 보답으로 대한민국 내에 있는 모든 중국인 헌터들을 추방하였다. 그 다음은 서로 각국에 있는 대한민국, 중국 국적의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 가자 중국에서는 경제 보복 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한국 기업들의 영업을 방해하거나 중국인들의 강력한 불매운동으로 한국 기업들은 피 토하며 반강제로 중국에서 쫓겨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S등급 헌터가 대한민국에 온다? 그것도 던전을 가기 위해서? 당연히 두 국가에서 이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냥 온 거다. 정부 놈들이야 언제나 똑같은 놈들이니 무시했지.”
한한령으로 인한 두 국가의 헌터 왕래 금지는 일단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오고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단지 서로 비자 발급을 안 해 줄 뿐이다. 혹은 입국을 거부하거나 말이다. 그러니 남궁철이 대한민국에 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 입국의 허가를 받았다면 말이다.
“하아. 여전히 막 나가시는 군요.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이 상황에서 무리하며 이곳에 오신 이유가 그냥 한가하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남궁철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나도 여기 오래 있을 수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가지. 정체기 왔다며?”
남궁철의 말에 김창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검성. 그분이 이야기했군요.”
“그래. 걱정 가득하더라. 정체기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헌터들도 많거든. 너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더라고.”
“그러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강제로 성장하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그러기 싫어서 하지 않을 뿐이죠.”
“왜?”
“그건 너무 쉬운 길이니까요. 이번에는 한번 저 자신이 스스로 열심히 수련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스스로 험한 길을 택한 거군.”
“예.”
그 말에 남궁철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결정이다. 때로는 스스로 고생을 할 필요도 있어. 그래야 더 성장할 수 있는 법이거든. 그러면 이곳에 온 김에 오랜만에 대련이나 한번 할까?”
“저랑요?”
“그래. 물론 이제 내가 너를 전혀 이길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하는 수준으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냐?”
남궁철의 제안에 김창훈은 웃으며 말했다.
“저야 좋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좀 답답했거든요.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전혀 분이 안 풀렸는데 상대가 남궁철 선배님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죠.”
“적당히 힘 조절해라. 이제는 내가 너의 공격을 제대로 버티기 힘드니까.”
그리고 남궁철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자, 김창훈은 천마군림보를 한 번 사용하여 허공답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며 다리에 천마뇌절각을 사용해 언제든지 고속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시작할까요?”
“좋지.”
남궁철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 * *
“후우. 힘들어. 나도 나이 들었나 봐.”
“그러면 우리가 젊냐? 당연한 소리를 하지 마.”
검성 박연진의 말에 검황 남궁철은 한숨을 쉬었다.
“아아. 힘들게 구한 검인데 박살 나 버렸다.”
“졌군.”
박연진의 말에 남궁철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더라고. 정말로 그 사이에 이렇게 강해져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처음으로 대련했을 때와 완전히 차원이 달라졌다.”
김창훈과의 대련. 그 결과는 당연히 남궁철의 패배였다. 하지만 그가 납득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패도적인 초식들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차원이 달라졌다. 그 녀석의 공격을 최대한 흘려 봤으나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검을 잡기 힘들 정도로 강한 충격이 왔어.”
“그런가.”
“대련을 한 번 하니까 알게 되더라고. 아,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재앙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심지어 나랑 할 때는 대련이라서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어. 아주 많이 봐주고 했지. 난 장비를 다 착용했지만 그 녀석은 장비 하나 없이 했거든.”
“그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그 정도였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되었더군. 그런데 아직도 더 강해질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이걸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모르겠더라.”
“좋아할 일이 있나?”
“있지. 그 녀석이 강해지는 만큼 내가 설정할 수 있는 한계도 높아지는 거야. 예전엔 나도 언젠가 SS등급 몬스터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목표로 하는 경지였지.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이미지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어.”
“지금은 다르다는 거군.”
“직접 눈으로 봤으니까. 가능하다는 것을. 김창훈의 모습에 나를 투영시키고 그의 손에 내 검을 투영하니까 이미지가 그려지더라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였어.”
“그래서 그걸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곳에 온 거야?”
“덕분에 예정에 없던 던전 공략 일정이 꽉 잡혔지만 그래도 가치는 있었어. 영상으로만 보던 것과 다르게 직접 검으로 부딪치니까 확실하게 알겠더라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말이야.”
“그런가. 그보다 정체기에 대해서는 어때?”
“응? 아,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어. 스스로 잘 헤쳐 나가고 있으니까. 오히려 여유를 부리는 중이더라고. 그 녀석은 성장할 확실한 방법이 있어. 단지 이번에는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진득하게 스스로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거야.”
“발전소의 전기를 에너지로 흡수하지 않겠다는 거네.”
“단순히 내공만 늘리는 것으로는 지금의 경지에서 더 큰 발전은 힘들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겠지. 물론 지금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정체기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어. 여차하면 바로 발전소로 달려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군.”
“크으. 하여튼 한국의 술은 참 좋아. 난 이 톡 쏘는 맛이 좋더라고.”
“그래? 그러면 많이 먹고 가라고. 최근 한한령이니 뭐니로 제대로 먹기도 힘들 텐데.”
“쩝. 그건 그렇지. 이왕 온 김에 잔뜩 사서 가야겠어.”
“내가 따로 사람 붙여 두지.”
“고맙네.”
“친구로서 술 사는 것 정도야. 가볍지.”
그렇게 두 사람은 소주 한 잔을 같이 하며 서로의 검술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그렇게 이틀을 한국에서 머문 남궁철이 한국에서 떠나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