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국제 헌터 협회 vs 김창훈(1)
리퍼들은 만약을 위해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코드네임’으로 활동하는데. ‘프로즌’이라는 리퍼 또한 마찬가지로 이름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한 코드네임으로 활동하는 리퍼였다.
그의 능력은 ‘얼음’과 관련이 깊었다. 온도를 낮춰서 대상을 얼리거나 혹은 얼음 자체를 조종하는 능력으로 얼음에 관련된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약하지도 않아서 8명밖에 없는 S등급 리퍼들 중 한 명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김창훈과 국제 헌터 협회의 관계를 생각할 때, 김창훈이 리퍼 프로즌을 만나자고 한 것은 당연히 미쳤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국제 헌터 협회는 이미 김창훈을 범죄자로 판단하여 리퍼들을 보내서 체포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그런데 그런 범죄자가 스스로 S등급 리퍼와 만나고 싶다고 하니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프로즌은 직접 움직였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김창훈이 이렇게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동시에 분노하였기 때문이었다.
김창훈이 억울한 제약을 당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퍼들을 그런 식으로 제압해 굴욕을 주거나 국제 헌터 협회의 명성에 똥칠을 한 것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었다.
국제 헌터 협회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자 국제 헌터 협회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각성자들의 범죄율 또한 상승했다.
국제 헌터 협회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하고 헌터들 또한 다른 일에 관심이 가지다 보니 각성한 범죄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밖에도 그동안 억눌려 있던 본성을 마음껏 보여주며 날뛰는 헌터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원인이 되는 국제 헌터 간부들도 싫은 프로즌이지만 그것을 가열시킨 김창훈도 싫은 프로즌이었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직접 찾아오라고 하니 프로즌으로서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긴가?”
김창훈이 머무는 호텔. 그곳에 도착한 프로즌의 말에 함께 움직이는 리퍼들 중 한 명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진입한다. 혹시 모르니 언제라도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게 준비하도록.”
“예.”
그리고 프로즌은 자신과 함께 온 리퍼들을 이끌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리퍼들이 대거 오자 호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리퍼들을 보며 수군거렸다.
리퍼들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프로즌은 카운터 앞에 서서 말했다.
“김창훈을 찾으러 왔다.”
이에 직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미리 연락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절 따라오시죠. 그리고, 이것도 꼭 지켜 달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대기하고 있고 혼자 오시라고요.”
그 말에 다른 리퍼들 중 한 명이 프로즌에게 말했다.
“함정일까요?”
“그럴 리가. 그럴 남자라면 이런 곳에 당당하게 지내고 있지 않는다. 국제 헌터 협회 본부로부터 여기까지 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니까.”
막말로 지금 김창훈은 국제 헌터 협회의 바로 코앞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누리면서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알고도 어떻게 하지 못하니 국제 헌터 협회의 이름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범죄자라고 지목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프로즌은 그 말과 함께 직원의 뒤를 따라서 나아가며 말했다.
“모두 대기하고 있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시민들의 피신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예.”
그리고 프로즌은 직원과 함께 김창훈이 머무는 곳에 도착했다. 직원이 노크를 하자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그 문을 열어준 김창훈의 동생은 직원 옆에 서 있는 프로즌을 보며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어색한 영어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프로즌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안으로 들어 온 프로즌은 한쪽에 쌓여 있는 접시들과 그 옆에서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는 김창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김창훈은 프로즌이 오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앉으시죠. 아, 혹시 식사 안 했으면 룸서비스 시켜드릴까요? 원하시는 음식 있나요? 여기 음식 진짜 잘해요.”
그 말에 프로즌은 김창훈에게 다가가 그의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네가 한 일들에 대해서 말하는 거다.”
프로즌의 말에 김창훈은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제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서 항의했을 뿐입니다만?”
“그걸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 항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너라면 다른 방법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일을 이렇게 키운 이유가 뭐지?”
“흠.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대의를 말하면, 국제 헌터 협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낸다고 할까요?”
“썩은 부분을 도려낸다고?”
“예. 앉으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요.”
그 말에 프로즌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근처에 있는 의자를 하나 잡아 당겨서 김창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이야기해라.”
“아까 말한 그대로입니다, 프로즌. 당신도 알잖아요. 국제 헌터 협회는 썩었어요. 특히 위에 있는 간부들은 지금 자신들의 자리 보존과 이익에만 신경 쓰고 있죠. 그들에게 이익을 챙기지 말라고는 안 합니다. 그들도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선을 넘었어요.”
김창훈의 말에 프로즌은 담담히 말했다.
“그 증거라도 찾았나?”
“증거야 찾으면 나오죠. 어디 구린 일을 한두 가지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는 증거가 아니라 그 증거를 바탕으로 그들을 정말로 다 처리할 수 있느냐. 이거 아닌가요?”
“…넌 무엇을 할 생각이지?”
“딱히 저는 영웅 노릇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성격에 맞지도 않고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성격이 썩 좋지 않아요. 범죄를 저지르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을 보면 배알이 꼴린단 말이죠.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 놈들을 쳐내고 싶을 뿐입니다.”
“가능성은?”
프로즌의 말에 김창훈의 동생은 깜짝 놀라며 프로즌을 바라보았다. 프로즌의 말은 지금 김창훈의 일에 자신도 함께하겠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창훈은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100%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처리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S등급 헌터라는 겁니다. 법적으로 그들은 너무나도 명확한 범죄자입니다. 그러니 법적으로 그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죠. 문제는 그들이 S등급 헌터라는 거죠. 강합니다. 너무 강해요.”
“그렇지.”
“그게 문제가 되었는데, 짜잔. 그 S등급 헌터 20명을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20명을 다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는 것을 원합니다.”
김창훈의 말에 프로즌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목적이 그것뿐이라고?”
“겸사겸사 국제 헌터 협회 협회장 한번 해 보고요. 태어나서 그런 엄청난 감투를 써 본 적이 없거든요. 그거 한번 써보고 싶어요. 그래서 현재 있는 구닥다리 규정들도 다 갈아엎어 버리고요.”
“혁명가가 되고 싶다는 거군.”
“그보다는 힘 쎈 미친놈의 투정 정도로 봐 주시면 됩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얽힌 이해관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됩니다.”
“그럴 힘은 있고?”
“보여 드릴까요?”
김창훈의 말에 프로즌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리퍼들 중에서는 현재 국제 헌터 협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나 말고 다른 S등급 리퍼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단지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내부에서 일을 벌이기에는 힘이 들겠죠. 국제 헌터 협회의 간부, 이사, 협회장까지. 모두 한통속이니까요. 거기다가 이들은 증거를 잘 남기지도 않고, 그걸 수사하려고 하면 분명 들키고 사전에 차단당하고요. 맞죠?”
김창훈의 말에 프로즌은 살짝 힘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서도 많은 이들이 국제 헌터 협회의 비리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쉽게 결실을 맺지 못했다. 만약 국제 헌터 협회에서 여론 조작을 하다가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들키지 않았을 거란 평가도 있을 정도로 이들은 철저하였다.
‘미래에서 댓글 조작이 들키고 난 후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지.’
그리고 이 1년이란 시간 동안 국제 헌터 협회 간부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거들을 대부분 소각하였다.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 심할 경우는 국제 헌터 협회 내부 직원마저도 죽였다.
이런 만행이 알려진 것은 수사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나서. 그동안 기회를 보고 있던 리퍼들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자료들을 통합하여 전 세계의 모든 법 기관과 협력해 겨우겨우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전원 사형 혹은 무기징역형에 처해졌고 일부는 그 사실에 반발하여 탈출하려고 하다가 잡혀서 죽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다.
그때부터 범죄자가 되어 버린 다수의 국제 헌터 협회 간부들과 리퍼와 헌터들 간의 대대적인 전쟁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기존의 범죄자들까지 참여하며 미래의 전 세계의 치안은 아주 개판이 되었다.
‘그 일도 피하고 싶네.’
전 세계 치안 1위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도 이 사건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국가라는 점이었으니 다른 국가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법에 의한 처분을 가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다 죽였으면 합니다.”
“죽이겠다고?”
“전원이 S, A등급 헌터들입니다. 그들이 도망쳐서 범죄자가 되면 더 큰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두 죽이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법적 절차라는 것이 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러니 만약 일이 잘되어서 그들이 잡히고, 그들이 도망치려고 하면 그때 다 죽이겠다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그들은 한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장소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제가 더 강합니다. 괜히 여러 곳에 흩어져서 이송하다가 각개격파 당할 바에는 한 곳에 모아두고 처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정말로 가능할까?”
“해 봐야죠. 그리고 저는 안 된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힘으로라도 처리할 겁니다. 어차피 그들은 저를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만만하군.”
“실제로 그들을 전부 제압했으니까요.”
그 말에 프로즌은 잠시 김창훈을 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들의 비리를 모두 폭로할 생각인 건가?”
“예.”
그 말에 프로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른 이들과 연락해 보지. 그리고 너에 대한 처분은 그 다음에 결정하겠다.”
그리고 프로즌이 밖으로 나가자 김창훈은 다시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
“형, 잘 된 거야?”
“영어 공부 아직도 제대 못 했냐?”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당장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봐야지.”
그리고 김창훈은 난리를 피우는 동생을 뒤로하고 식사에 집중하며 그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