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국제 헌터 협회(4)
“가장 먼저 제 위치에 대한 확인. 이것은 현재 S등급 헌터는 24시간 단위로 각 국가에 자신의 위치를 신고해야 합니다. 혹은 누가 봐도 확실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헌터들의 등급이 높을수록 생기는 제약. 그 제약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너무 불안해한다는 사회의 목소리에 헌터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일부 동의를 했다.
그렇기에 B등급 이상의 헌터들은 주기적으로 국가에 자신들의 위치를 신고해야 하는 것이었다.
“제가 시간 단위로 하면 참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민 제약은 그 정도가 아니더군요. 무려 절 24시간 감시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웅성거린다. 아무리 제약을 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24시간 감시는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끝이면 제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절 감시하는 자들이 제압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그들은 저에게 성범죄자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자들이 착용하는 ‘전자팔찌’를 저에게 채우겠다고 합니다. 그걸 사용해 실시간으로 제 위치를 파악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기자들은 이제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러셀도 마찬가지였다. S등급 헌터인 러셀로서는 김창훈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헌터들의 힘에 일반 시민들이 불안해한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S등급 헌터들은 무려 24시간 단위로 자신들의 위치를 국가에 신고하거나 혹은 국가에서 그 위치를 확인합니다. 이것만 해도 인권침해 아닙니까? 그런데 헌터들은 이 부분을 참아 왔습니다. 큰 힘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에 동감했고 우리가 약간 희생해서 시민들이 안심한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창훈의 말에 어느덧 기자들도 빠져들어서 그의 말을 들었다. 그 모습에 러셀은 살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20대 초반.
심지어 학교에서 졸업하자마자 바로 헌터로서의 일에 집중하며 던전 내부에서 지낸 시간이 매우 길었기에 정치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지금 김창훈은 아주 능숙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해 나아가고 있었다. 김창훈 본인의 문제가 아닌 ‘모든 헌터’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능숙하군. 미리 준비라도 했나?’
러셀의 그런 추측은 정확하게 맞았다. 김창훈은 만약 이곳에서의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발언이었다. ‘김창훈’ 개인의 일이 아닌 모든 ‘헌터’들의 일로 일을 끄집어낸다. 그것으로 여론에 호도를 한다.
그는 자신이 힘으로 밀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여론이었다. 여론이 얼마나 자신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범죄자가 되느냐 아니면 헌터 협회에 부당한 피해를 받은 개인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1시간 단위로 제 위치를 신고하라고 했다면 저는 수긍했을 겁니다. 분명 저의 개인적인 인권은 크게 침해가 되지만 제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생각이었습니다만, 제가 무슨 성범죄자도 아닌데 전자팔찌를 착용하고 24시간 감시까지 받아야 합니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말에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누가 들어봐도 너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 김창훈의 이미지는 매우 좋다.
S등급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S등급 던전 브레이크 또한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도록 앞장서서 싸웠다.
재앙이라고 불렸던 SS등급 몬스터들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앞장서서 싸운 젊은 헌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헌터.
S등급 던전을 무리하게 클리어하는 대신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당히 관리만 하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 줄 유일한 헌터.
그것이 지금 김창훈이 가진 이미지다.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그런 영웅을, 범죄자도 아니고 전자팔찌를 착용시켜 24시간 그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아낸다?
아무리 큰 힘에 큰 책임이 따르고 강한 힘을 가진 헌터들의 행동을 일부 제약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모든 기자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저는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참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로 참지 못한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이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다는 김창훈의 말에 기자들은 침을 삼키며 김창훈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나에게 앞으로 던전이나 지구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 현상으로 나타난 몬스터들을 잡으러 갈 때 자신들에게 허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은 김창훈의 등 뒤에서 천마군림보의 무형지기에 힘들게 버티고 있는 국제 헌터 협회의 고위 관부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고 일부는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고 아니라고 외쳤다. 하지만 김창훈은 담담히 말했다.
“아니라고 하다니. 진짜 뻔뻔하군요. 제가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것이 있죠.”
그리고 그는 자신의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핸드폰의 화면은 지금 계속 녹음이 되고 있다는 표시가 나타나고 있었고, 김창훈은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종료한 후에 말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겁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국제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는 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김창훈이 녹음파일을 실행시키자 협회장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그런 김창훈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법을 사용하여 김창훈을 공격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범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피눈물을 흘리며 김창훈의 핸드폰에서 재생되는 음성을 듣기만 해야 했다.
재생이 계속 될수록 기자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들이 듣기에도 지금 헌터 협회에서 내밀고 있는 제약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재생이 되고 난 후 녹음 파일을 정지시킨 김창훈은 품에 핸드폰을 넣으며 말했다.
“이 파일은 차후 대한 그룹을 통해서 전 세계의 모든 언론사에 보내질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아까 녹음의 내용대로. 저들은 저를 자신들의 장기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아니다! 아니라고!!!”
협회장의 외침에 김창훈은 그를 살짝 바라보며 말했다.
“던전에 갈 때, 지구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할 때에 반드시 헌터 협회의 허가를 받을 것.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피해가 큰 지역과 범죄자들의 잡는 것마저도 헌터 협회가 우선해 주는 대로 해야 한다면. 그래도 제가 헌터 협회의 장기말이 아니란 겁니까?”
그 말에 협회장은 다시 한번 힘을 쥐어짜며 말했다.
“그것은 다 인류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협의가 가능한 사항들-”
“거기서 틀렸다는 겁니다. 당신들은 이미 날 이렇게 보고 있다는 거니까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겁니다. 작은 것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큰 것을 지키겠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걸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부족한 겁니다. 왜 당신들의 무능 때문에 우리 헌터들이, 그리고 나아가 이 세계의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아니라고, 큭!”
말을 하던 협회장은 자신의 힘이 살짝 흔들리자 자신을 짓누르는 무형지기를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김창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심하기는. 20명의 S등급 헌터란 작자들이 나 개인이 사용하는 무형지기조차 버티지 못해서 무릎을 꿇는 주제에 그러고 싶습니까? 그러니 제가 당신들을 보고 무능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 말에 기자들은 놀라며 김창훈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저들의 상태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설마 모두 김창훈의 힘에 대항하느라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 제 나라 대한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 이는 권력을 장기간 쥐고 있는 자들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의 국제 헌터 협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김창훈은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헌터 협회의 시작은 각성자들의 보호였습니다. 각 국가에서 강제로 각성자들을 유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각성자들이 뭉친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헌터’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가 되었고 나아가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이 시간 속에서 국제 헌터 협회가 부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은 이상, 저 한 개인을 자신들의 장기말로 부릴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틀린 겁니다. 저들은 우리 헌터들을 그냥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장기말로밖에 보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협회장의 절규에 김창훈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전 세계의 헌터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인권이 약간 침해받더라도 참아 왔습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왜 던전에 들어가서 괴물들과 목숨 걸고 싸웁니까? 우리가 왜 범죄자들과 목숨 걸고 싸우며 그들을 잡아들이는 겁니까? 전부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 이웃들을 위해서 아닙니까!”
그 말에 러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훈의 말대로 ‘헌터’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터 협회에서 S등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SS등급 몬스터를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저의 활동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인류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입니다! SS등급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가장 앞장서서 싸워야 할 헌터가 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절 뒤에 방치하고 자신들이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국제 헌터 협회가 부패하고 썩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외침에 협회장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이미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저 기자들은, 그리고 여론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끝났구나.’
“저는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합니다! 저는 SS등급 헌터가 되지 않겠습니다! 평생 S등급 헌터로서! 누구보다 먼저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앞장서서 싸울 것이고! 범죄와의 싸움에서도 앞장서서 싸우겠습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저도 저만의 욕망이 있고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제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죽어도 없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헌터가 된 것이지 저런 놈들의 뒤나 닦으려고 헌터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기자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김창훈은 살짝 미소 지었다.
‘거의 다 넘어왔다.’
“확실하게 이 자리에서 말하겠습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겁니다. 제가 스스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는 이상,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는 그 무엇이라도 부수고 나아가겠습니다. 설령 그것이 국제 헌터 협회라고 해도! 이상으로 즉석 기자회견은 종료입니다. 남은 것은 저들에게 들으시죠.”
김창훈은 천마군림보를 해제하였다. 그러자 힘들게 버티고 있던 20명의 S등급 헌터들은 숨을 헐떡이거나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만큼 심신의 소모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본 김창훈은 자신이 지내는 호텔을 향해서 움직였고, 몇몇 기자들은 그런 김창훈의 뒤를 쫒아가기도 하며 동시에 또 다른 몇몇 기자들은 멍하니 있는 방 안에 20명의 헌터들을 향해서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밀기도 했다.
2023년 5월 2일. 단 한 명의 헌터가 국제 헌터 협회에 선전포고를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