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미국으로(2)
결과적으로 미국에 가는 것은 김창훈 혼자가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고 가지 않는다고 했고 그의 동생은 매니저로서 김창훈과 함께 가야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쁘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김창훈 본인이 스스로 사양하고 싶기에 차라리 혼자 가기로 했다. 물론 김창훈의 동생은 자신도 이 업무의 지옥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했지만 김창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 그룹 회장에게 조용히 전화를 걸어서 더 굴리라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이좋은 형제 사이였다.
그러니 결국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김창훈 혼자였다. 그러나 김창훈이 움직인다는 것은 상당히 큰일이었다. 그는 분명 혼자 여행을 떠났지만.
그와 함께 움직이는 이들이 문제였다. 아무리 필요 없다고 해도 기자들 때문이라도 김창훈은 공항에서 파견한 보안요원들과 함께 다녀야 했고.
비행기 안에 타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김창훈에게 쏠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1등석에 타고 있는 나름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난 후에 김창훈은 그들에게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사인까지 해주고 난 후에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스튜어디스들과도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고 말이다.
이 일을 하고 난 후에 좋아진 점은 스튜어디스들의 좀 더 극진한 보살핌이 따라와 주었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갈 때는 워낙 거리가 가깝다 보니 그냥 조용히 날아갔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다.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보니 거리가 상당했고,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 안에서 샤워를 하고 비행기 안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경험을 했다.
회귀 전의 나이를 포함하여 약 50년의 세월 동안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은 태어나 처음이기에 이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그렇기에 비행기에 있는 내내 기쁜 마음으로 올 수 있었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는 좀 더 왕성한 환영을 받아야 했다. 그를 직접 맞이하기 위해 헌터 협회에서 손수 차량과 사람들을 LA국제공항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국제 헌터 협회에서 나온 리사라고 합니다.”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중후반의 아름다운 여성의 인사에 김창훈은 같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김창훈입니다. 그런데, 헌터 협회요?”
“예. 미국에서 지내시는 동안은 제가 곁에서 여러 가지로 도와드릴 겁니다.”
“감시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물론 싫으시다면 얼마든지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절하는 걸로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지내실 호텔까지만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리사란 여성의 말에 김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량을 타고 김창훈은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
“4월 15일로 되어 있는데, 미리 오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미국에 온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LA는 더더욱 없고요. 그래서 관광 삼아서 왔습니다. LA는 볼거리가 다양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꼭 해변에 가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365일 내내 날씨가 좋은 LA의 해변은 놀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곳이니까요.”
“참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차 안의 대화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김창훈이 미리 예약해 둔 호텔까지 차는 묵묵히 이동했고 호텔의 앞에 도착하자 김창훈은 차에서 내렸다. 그런 김창훈을 보며 리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이곳으로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국어와 영어 둘 모두 능통하기에 언어 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기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면 4월 15일 날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고 리사는 자신의 명함을 김창훈에게 건네주고 떠났다. 리사가 건넨 명함을 받은 김창훈은 그 명함을 일단 버리지는 않고 자신의 핸드폰 케이스 한곳에 넣어 둔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로비에서부터 몇몇 사람들이 김창훈을 보며 술렁였는데, 그런 소란을 모두 무시한 김창훈은 로비의 직원에게 다가가 능숙하게 영어로 말하였다.
“예약한 사람입니다.”
“예. 예약하던 당시 사용하던 카드를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김창훈이 자신의 카드를 건네자 그것을 받아 기기에 입력한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약이 확인되었습니다. 스위트룸 1인, 성함은 창훈 김.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9771입니다.”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원은 카드 키와 함께 열쇠를 건네주었다.
“짐은 없으신 겁니까?”
“예. 없습니다.”
“그러면 방을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직원이 직접 앞장서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김창훈이 머물 방을 안내해 주었다.
“와. 좋네.”
절로 나오는 감탄사. 그만큼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창문 너머로 펼쳐진 해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이 방은 해변 뷰가 좋은 방입니다. 일몰 시간이나 일출 시간도 좋지만 석양이 질 때의 모습도 아주 좋습니다. 분명히 만족하실 장소가 될 겁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저기 있는 전화기를 통해서 프론트로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직원이 방에서 나가자 김창훈은 침대에 앉았는데, 그 푹신한 감촉에 미소 지었다.
“역시 돈 값을 하는구나.”
그리고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자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만큼 해변에 가까운 곳이었다.
“좋네. 나중에 한국에 가면 부산에 별장 하나 살까? 돈 도 많은데.”
레드 드래곤의 시체 판매로 얻은 돈은 조 단위가 넘었다. 그 모든 돈이 지금 김창훈의 통장에 잠들어 있었다. 딱히 돈을 쓸 곳이 없기에 그저 전부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우우웅!
그때 김창훈의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핸드폰 액정의 번호와 이름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양반은 못 되겠구나. 막 가족들끼리 이곳에 와도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 하아. 거기 뷰 장난 아니지?
“영상 통화 해 줄까?”
- 아니. 더 부러워서 미칠 테니까 패스할게.
“그보다 안 자?”
- 잘 시간이 어디 있어. 망할, 일거리가 끊어지지 않아. 아니, 형이 CF 같은 건 다 안 하고 방송에도 나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그쪽 사람들은 포기를 모르고 계속 제의를 하는 거야? 그렇다고 그냥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버리지 왜?”
-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래? 다 지금은 안 한다고 말하면서 잘 돌려 말해서 거절해야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그때 같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이번에 레드 드래곤으로 번 돈이 얼만데 돈 걱정 하고 있냐.”
- 그게 내 돈이야? 형 돈이지. 형이 광고나 방송, 혹은 던전에 들어가서 활약을 해야 나에게 직접적인 성과금이 떨어진다고. 알아? 그런 의미에서 눈 딱 감고 광고 하나만 하자. 형이 직접 출연할 필요도 없고 형이 직접 싸운 영상에 더빙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
“안 해.”
- 그러면 던전은 어때? 미국에 S등급 던전 많잖아. 그중 하나만 골라서 클리어만 해도 진짜 어마어마한 성과금이.
“안 한다. 휴식을 취하러 미국에 왔는데 무슨 던전이냐, 던전은.”
- 아, 왜! 그 정도는 귀여운 동생을 위해서 해 줄 수 있잖아!
“귀여운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그런 끔찍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냐. 헛소리 말고 끊어라. 부모님에게 잘 도착했다고 문자 넣어야 하니까.”
그리고 김창훈은 핸드폰에서 들리는 동생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통화 종료를 누른 후 창문을 열어 둔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으아. 좋다.”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 그리고 바다 냄새와 푹신한 침대와 시원한 온도까지. 그야말로 휴가라는 느낌이 팍팍 들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죽어라 달렸으니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쉴 때도 되었지.”
지금까지 고생한 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회귀 전의 자신을 죽게 만든 레드 드래곤을 직접 죽인 것에 대한, 오직 자신만이 아는 축하 파티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휴가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단 이렇게 푹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돌아다녀 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TV를 트는 김창훈.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그에게 있어서 언어는 TV를 보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TV를 틀어서 이런저런 채널을 돌리는 도중, 한 채널에서 그는 채널을 멈추어야 했다. 그 채널에서는 놀랍게도 S등급 던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현재 발견된 S등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입니다. 이 보스 몬스터의 생김새를 통해서 미국 정부에서는 ‘케로베로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그 케로베로스와 같이 3개의 머리와 3개의 꼬리를 가진 늑대 형태의 몬스터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SS등급 몬스터의 등장이네.”
3개의 머리와 3개의 꼬리. 몸은 약 40m 정도로 레드 드래곤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레드 드래곤보다 작다는 것이지 실제로 전혀 작은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SS등급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살벌하네.”
저 거대한 몸이 A등급 헌터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헌터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SS등급 몬스터가 ‘재앙’이라고 불리는 거다.
그냥 덩치가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빠르고 강하며 지성도 갖추고 있어, 생각을 하며 움직이는 괴물이기 때문이었다.
- 정부에서는 각 길드에 협력을 요청한 후에 이 SS등급 몬스터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생각이라고 하였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전 세계의 다른 S등급 헌터들과의 공조도 함께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S등급 던전을 클리어한 것 때문에 신경이 좀 쓰이나 보네.”
세계 최강을 자부하며 자랑하는 미국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에서 하지 못한 S등급 던전 클리어를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성공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헌터가?
이건 미국으로서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헌터의 일이 단 한 명의 뛰어난 헌터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각 국가의 기본적인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미국의 전력은 대한민국의 몇십 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성공했다.
‘자존심 강한 미국 헌터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회귀 전에 미국 헌터와 일해 본 적이 있는 김창훈이기에 미국 헌터들의 자존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존심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S등급 던전 클리어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그리고 김창훈은 TV채널을 다시 돌리다가 재미있는 것이 없자, 옛날에 보던 미국 드라마나 다시 보자는 생각을 하며 옛날 미국 드라마를 켜 놓고 자신만의 휴가를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