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포지션
김창훈의 테스트가 끝난 후. 1팀은 앞으로 싸워 나가야 할 방법에 대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것도 참 신기하네.”
이창수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김창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어마어마한 무공을 익히고 있어. 보통 그 정도의 무공이라면 단순하게 습득하는 것조차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지. 하지만 너는 그걸 착실하게 익히고 있어. 즉,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그 말에 김창훈은 한숨을 쉬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보면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보이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잘도 그런 어마어마한 무공을 익히고 있구나.”
“저랑 합이 잘 맞는 것뿐입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냥 시스템으로 받은 지식에서 하라는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되었다. 천마신공은 정말로 익히기 쉬운 무공이다.
다른 무공들이 초식 하나, 구결의 한 단어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뜻을 부여하여 그 무공 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런 과정 끝에 결과를 낸다면 천마신공은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답을 도출한다.
천마신공은 다른 무공들과 다르게 구결의 의미, 초식에 담긴 뜻, 무공 자체에 대한 깨달음 등등이 아예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천마파천장은 하늘을 파괴한다는 장법이란 이름 그대로 그냥 천마기를 손에 모아서 출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구결? 없다. 초식에 담긴 뜻? 없다. 무공 자체에 대한 깨달음? 없다. 아무것도 없다. 매우 단순하며 간결하다. 그렇기에 아무런 재능도 없는 범인인 김창훈이 익히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냥 꾸준히 수련만 하면, 반드시 강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신기하네, 신기해. 하지만 덕분에 신이 양심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갑자기요?”
“아니. 그렇잖아? 20살에 B등급 헌터가 되었고 거기다가 너 연구소도 파괴했잖아. 그거 S등급 헌터라고 해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일이었다고. 연구소의 벽들은 단순한 벽이 아니야. 각종 강화 마법까지 걸려 있는 벽들인데. 그것까지 깡그리 다 지워버렸지. 그런 엄청난 무공을 익히고 있는데 다른 쪽 재능은 완전 꽝이잖아? 신은 공평하다는 거지.”
“꽝은 아니죠. 그래도 1인분은 합니다.”
“네 스킬 빼고.”
“…그래도 1인분은 합니다. 아마도.”
그 말에 이창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어찌 되었든 이걸로 좀 더 확실하게 너란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었네. 그리고 너란 헌터가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도.”
“그렇습니까?”
“응. 너는 우리랑 호흡을 맞춰서 안 돼. 그럴 능력도 안 되고.”
“예? 그러면 저는 어떻게.”
“그냥 너 혼자 해.”
“혼자서요?”
“응. 우리는 거의 10년간 호흡을 맞춰 왔어. 그래서 애초에 처음부터 네가 우리의 호흡을 완벽하게 따라 올 거란 기대는 안 했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지. 난 널 천재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야. 너는 그냥 죽어라 노력한 사람이지.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우리의 호흡을 따라서 맞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야.”
그 말에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너는 우리랑 오래 있지도 않을 거야. 아마 A등급 헌터로 승급 시험을 치를 최소한의 실적을 쌓는다면 바로 승급 시험을 볼 테니까.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지?”
“예. 본격적인 헌터로서의 경험을 쌓는 것은 A등급 헌터가 되어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는 하긴 했습니다.”
“나도 그 말에 찬성이야. 너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야. 단지 아주 특별한 무공을 얻고 너 혼자서 엄청난 노력 끝에 지금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지. 그러니 다른 이들과 호흡이나 합을 맞춘다는 것은 너에게 괜히 시간 낭비밖에 안 될 테니까.”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마 솔로잉 헌터나 프리 포지션 헌터가 되겠지.”
“제가요?”
“응.”
헌터들은 팀을 이루고 포지션을 나눈다. 딜러, 탱커, 버퍼, 힐러.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특이한 포지션이 있는데, 그 포지션이 바로 방금 이창수가 말한 ‘프리’라고 불리는 포지션이다.
이 포지션은 이름 그대로 자유로운 포지션이다. 앞에서 탱커를 해도 되고 뒤에서 딜러를 해도 되고 혹은 힐러를 해도 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이 프리 포지션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다. 흔히 만능이라고 불리는 다재다능한 이들만이 할 수 있으며 매우 뛰어난 실력과 판단력을 가진 헌터들이 하는 포지션이었다.
“물론 네가 엄청난 헌터라서 프리 포지션을 하라는 것이 아니야. 그건 너도 잘 알지?”
“예. 그 정도는 자각하고 있습니다.”
헌터가 프리 포지션을 하는 경우는 2가지다. 하나는 앞에 설명한 것과 같이 엄청난 실력을 가져서 여러 방면으로 활약을 하기 위해서라면,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홀로 다녀야 할 경우다.
이 경우는 전자보다 더욱 흔하지 않은 경우인데. 대부분 자신의 힘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헌터들이다.
즉, 전투 중에 아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이들이었고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아군과 떨어져서 싸우는 것이다.
이창수는 김창훈이 바로 그런 의미에 프리 포지션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가진 그 1초식의 힘은 힘 조절이나 범위 조절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했지?”
“예…….”
천마신공에서 하는 힘 조절은 더욱 강력하게 초식을 사용하는 것이지 약하게 사용하는 것은 없다. 그나마 가장 약하게 초식을 사용하는 것도 초식이 발동되는 최소한의 천마기만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으로 약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그보다 더 약하게 한다면 애초에 초식이 발동도 안 될 것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초식의 공격 범위를 조절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가능했다면 김창훈은 천재라는 이야기였고 동시에 회귀 전에도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어. A등급 헌터라면 그 압박 속에서도 어떻게든 싸워나가겠지만 그건 효율이 좋지 않아. 그 압박을 버티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마나를 소모해야 하니까.”
“1초식을 사용할 생각이라면 아군들에게 그 범위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서 홀로 싸워야 한다는 거네요.”
“아니면 1초식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다른 초식들만 사용해도 문제없는데, 이 경우에는.”
“제 수준이 너무 낮다는 거죠. 거기다가 초식들을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요.”
그 말에 이창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천마신공이 없는 김창훈은 어떻게는 노력을 통해서 올라 온 평범한 D등급 근접격투 헌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면 다른 천마신공의 초식들을 사용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횟수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그가 천마파천장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12회.
A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공격을 12번이나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도중에 천마기를 따로 소모하여 육체를 강화할 경우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10번 정도 사용하면 많이 쓴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나도 처음 본다.”
이창수의 말에 김창훈은 한숨을 쉬었다. 그 또한 자신도 알고 있었다.
“단점을 어떻게든 잘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은 했습니다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저는 반대로 장점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실제로 이 방법이 통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거죠.”
무엇보다 단점을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면 시간만 버린다는 사실을 회귀 전에 15년이 넘는 시간을 낭비하며 철저하게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좋은 선택이다. 너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해. 헌터로서 자신의 단점을 줄이는 것도 분명 좋은 것이지만, 단점을 줄이기 위해서 장점이 어정쩡해진다면 그건 더 최악이지.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탑급 헌터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너도 알지?”
그 말에 김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S등급을 포함한 A등급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단점으로 지적될 약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장점을 계속 더 발전시키면서 단점을 줄이고 있다. 말은 쉽지만 이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렇기에 이들이 최고라고 불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하나하나 해 나가자는 수밖에 없다. 우리랑 할 때 너는 프리 포지션으로 한다. 대신에 힘 조절은 너무 신경 써서 할 필요 없어. 우리가 적절한 거리를 알아서 벌려서 움직일 테니까.”
“결국 이렇게 되네요.”
한숨을 쉬며 말하는 김창훈을 보며 이창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될 거라 생각했나 보네.”
“예. 졸업 시험에서도 선생님들이 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뒤따라오며 영상을 찍은 이유도 제 힘을 버티지 못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도 B등급 헌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이 팀에서 활동하는 것은 조금 힘들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이창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거야 원. 회장님이 왜 널 우리 팀에 보냈는지 이제 좀 알겠다.”
“왜죠?”
“처음에는 이제 막 헌터가 된 애송이를 한 팀으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잘 교육시키라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보낸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었어.”
“그러면…….”
“너 스스로 깨달으라고 보낸 거야. 네가 얼마나 다른 헌터들과 이질적인지.”
“이질적이라고요? 제가요?”
“네가 가진 그 1초식은. 다른 헌터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너무 부적절해. 네가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아니야. 그러니 우리를 통해서 깨달으라는 거지. 앞으로 네가 어떻게 싸우고 움직여야 할지.”
“프리 포지션. 혹은 솔로잉을 하라는 거군요.”
“그래. 하지만 동시에 우리 보고 배우라는 거야. 진짜 헌터들이 던전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진짜 헌터들이 싸우는 방법…….”
“너는 그냥 걷기만 하면 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거든. 네가 더 높은 등급의 헌터가 된다면 다른 헌터들과도 합을 맞춰야 할 순간이 많이 생긴다. 그러니 최소한 다른 헌터들이 싸우는 방식을 보라는 거겠지. 우리가 또 팀으로써 던전을 공략하는 부분에서는 정석이라고 불리고 있거든.”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부터 다른 방식으로 호흡을 맞춰 볼까?”
이창수의 말과 함께 김창훈과 기존 1팀의 새로운 방식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김창훈이 프리 포지션, 1팀은 그런 김창훈을 보조하는 방식의 전혀 색다른 훈련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