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영약과 여름 수련(3)
박임로와 대련을 한 이후로 김창훈은 조용히 자신의 방에서 운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를 둔 주변 상황은 조용히 흘러가지 않았다.
박임로와 대련을 한 것 자체만 해도 화젯거리였으나, 그 대련을 통해서 대련장이 완전히 무너진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대련장은 땅 위에 두께 50㎝의 판을 깔고 그 위에 마법을 통한 강화와 충격흡수를 통해서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대련장의 면적도 좁지 않았다. 가로, 세로 각각 30m로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는데 그런 대련장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김창훈의 공격 단 한 번을 박임로가 막아서 생긴 일이었으니 당연히 화젯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창훈에 대한 소식에 대해서는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이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자신들 사이에 있던 김창훈에 대한 가치를 몇 배로 높여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김창훈에 대한 가치를 높이 상승시킨 이유는 박임로의 인정 때문이었다. S등급 헌터가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면 큰 일이 없는 이상 알아서 잘 성장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박임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였다.
“내가 개입하면 일이 더욱 커지겠지?”
박임로의 질문에 교장실에 있는 빈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던 또 다른 노인이 대답했다.
“말해서 뭘 하나? 대한민국에 S등급 헌터는 딱 4명이야. 그리고 너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불리고 있고. 그런 사람이 나서면 당연히 일이 커질 수밖에 없지.”
“흠.”
“왜? 개입하려고?”
“자네 말대로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을 생각이야. 단지 일단 이야기 정도는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그 아이한테?”
“그 아이는 걱정하지 않아.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 주변 사람들이지. 돈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주변 단속을 할 생각이군.”
“다른 이들은 몰라도 가족들은 챙겨야 하지 않겠나? 괜히 가족들이 이상한 곳과 연결되면 그 아이의 장래가 어두워질 테니까.”
“미래의 S등급 헌터랑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다 어련히 알아서 잘해 주겠지.”
“그건 또 모르는 일이지 않나? 그리고 그 아이가 거기까지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어.”
“이 학교가 처음 만들어지고 지난 30년간. 자네가 직접 나서서 학생을 가르친 적은 지금까지 딱 한 명밖에 없지. 그리고 그 한 명이 S등급 헌터가 되었고. 그런데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까? S등급까지 성장할 수 있는 장래 유망한 유망주는 어떤 기업이라도 어르고 달래서 포섭하지 멍청하게 협박 같은 거 안 해.”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그 말에 노인은 보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보고 갔다 오라고?”
“내가 직접 갈까?”
“아니다. 그냥 내가 가지. 네가 갔다가는 일이 더 커질 테니까. 주소는?”
“핸드폰에 문자 넣어 두겠네.”
“그러지. 그보다 이걸로 끝인가?”
“무엇이?”
“지원 말이야.”
“자네는 내가 무언가를 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그만한 위력을 가진 스킬을 사용한다면 마나가 남아나지 않겠지.”
“내공이지. 무공이니까.”
“그게 그거니 넘어가자고. 어찌 되었든 그 부족한 내공. 어떻게든 채워야 할 것 아닌가?”
“시험을 잘 보면 우리 학교에서 영약을 제공해 주니, 시험을 잘 보면 되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는군.”
“내가 개인적으로 지원하라는 건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단지, 재능을 가진 아이가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고만 해 두지.”
그리고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임로가 말했다.
“지금 바로 가게나. 벌레들이 더 붙기 전에. 학생의 가족들의 보호 또한 이 학교의 교감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야.”
“알고 있어.”
그 말과 함께 노인이 교장실에서 나가자 박임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실 한쪽에 있는 공간이동 마법진을 사용해 어딘가로 이동하였다.
* * *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조용히 수련 중이던 김창훈. 그는 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기숙사 방에 찾아 온 손님을 맞이하며 상당히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방은 괜찮은가? 불편한 것은 없고?”
“예. 그런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화장실도 좋고, 침대도 좋습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은 느리지 않고?”
“예.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 말에 박임로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랑 내기를 좀 하고 싶어서 온 것이네.”
“내기요?”
“그래, 내기. 물론 거절한다고 해서 아무런 불이익은 없을 거야. 내 약속하지.”
“들어보겠습니다.”
“간단한 것이네.”
그리고 박임로는 자신의 품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건 내가 예전에 얻은 영약이지. 무인이 먹는다면 내공 40년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야. 이걸 자네에게 주겠네.”
그 말에 김창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내기를 하시려고 영약을 주신다는 겁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이 학교에서 졸업하기 전까지, 나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면 되네. 물론 나도 반격은 할 거야. 죽지 않을 정도로.”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것이 전부지. 이 내기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 영약을 주겠네.”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요?”
“그래. 대신 내기를 받아들인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 대련을 해야 할 거야.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이지.”
박임로의 말에 김창훈은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 제안을 검성에게도 했습니까?”
“그 아이에게도 했지. 단지, 그 아이에게는 한 달에 한 번이었지.”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기 받아들이겠습니다.”
“쉽게 수락하는군.”
“대한민국 최연소 S등급 헌터가 된 검성과 같은 방식으로 절 수련시켜 주겠다고 하시는 건데, 그걸 거절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영약을 그냥 주는 일이라면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도 일단 지르고 봐야죠.”
그 말에 박임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신 하나 마음에 드는군! 그래. 그러면 내기는 성립된 것으로 알지. 내일 바로 대련을 할 거야.”
“대련장은 파괴되었는데 어디서 하는 겁니까?”
“1학년이 쓰는 대련장은 총 3개네. 그중 이미 자네와 나의 대련에서 파괴된 녀석이 복구가 다 안 되었는데 그걸 사용하도록 하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면 대련장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는 것으로 하지. 그러면 내일 아침 9시에, 그 대련장에서 보세나.”
그리고 박임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에서 나가자 김창훈은 박임로가 두고 간 목함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청아한 향기와 함께 푸른색의 작은 구슬이 있었다.
“후회할 겁니다, 교장 선생님. 이 내기는 무조건 제가 이길 테니까요.”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천마기 능력치 50의 경지. 그곳에 오늘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영약을 먹고 곧바로 천마기공을 운기하는 김창훈이었다.
몸속에 퍼지는 영약의 기운을 느끼며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그의 몸에 천마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9시. 아직 대련장의 복구가 끝나지 않아 잔해만 치워진 땅 위에서 김창훈과 박임로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영약은 잘 소화했나?”
“네, 확실히 좋더군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그 말에 김창훈은 미소 지었다. 회귀하기 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천마기 능력치 50을 돌파하며 천마신공의 3레벨을 달성해 새로운 초식을 얻었다.
거기다가 부가적으로 얻은 천마신공의 위력 강화나, 천마기 축적 속도 상승, 천마기 소모 감소, 회복 속도 증가 등등 여러 가지 다른 효과들도 얻었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드디어 능력치의 총합이 200을 넘었다.’
비록 아슬아슬하지만, 모든 능력치의 총합이 200을 넘으며 C등급 헌터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것이었다.
헌터의 등급 평가에 있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김창훈이 D등급에서 C등급으로 오르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모든 능력치의 총합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 스킬을 사용하면 곧바로 아무것도 못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크게 작용했고 말이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등급을 측정해야 하는데, 김창훈은 너무 극단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단점을 어떻게든 메우려고 했지만, 결국 그것이 틀린 방법이었지.’
만약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더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갔다면 천마신공의 진정한 수련 방법이나 나아갈 길에 대해서 더 빠르게 깨닫고 더 나은 헌터가 되었을 것이다.
그 부분이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 그 아쉬움이 모두 해소되고 있었으니 김창훈으로서는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모두 즐거움이고 행복이었다.
“그러면 시작하지.”
박임로의 손에는 처음부터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나와의 대련에서는 전력을 다해도 괜찮으니 오늘은 자네의 전력을 한번 알아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며 한 발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두 번째 발을 내딛으며 동시에 2중첩. 그리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며 3중첩.
천마군림보의 최대 위력이 발동되자 김창훈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에 맞춰서 땅이 움푹움푹 크게 파였고. 천마군림보의 가장 강한 영향력 안으로 들어 온 박임로는 마나를 끌어 올려 그 힘에 대항하며 말했다.
“이것이 자네의 전력이라면 내기의 승자는 당연히 내가 될 거야. 더 힘을 내보게나!”
“그럴 겁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가는 순간. 검은색의 빛이 반짝임과 동시에 김창훈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졌다. 그 속도에 박임로도 살짝 놀라고 있을 때.
김창훈은 순식간에 박임로의 옆에 나타나서 옆차기를 하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격이었지만 박임로는 방어 마법을 사용하여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김창훈의 발에 담긴 힘은 박임로의 생각 이상으로 강인하였고 박임로가 만든 방어막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자 박임로는 블링크를 사용하여 공간을 이동해 회피하였다.
그 결과 김창훈의 발이 휘둘러진 바로 앞에서부터 부채꼴의 형태로 지면이 완전히 뒤집어지며 그 힘의 범위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건 새로운 초식인가?”
박임로의 말에 김창훈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천마신공 3초식 천마뇌절각. 어떻습니까?”
그 말에 박임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군. 이것이 자네의 최대 전력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천마기가 모두 소진되어 천마군림보가 자동으로 사라진 상태에서 김창훈이 서서 말하자 박임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그러면 여기까지 하지.”
그리고 박임로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김창훈은 복부에서 강한 고통과 함께 그대로 기절했다. 김창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고 기절하여 쓰러진 김창훈의 몸을 받아낸 박임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살벌하군. 위력 하나만 보자면 A등급 헌터도 이길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 단점도 너무 명확해.”
일격필살.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고, 실패하면 역으로 당한다. 이것은 헌터로서 좋은 평가를 줄 수 없었다.
“고쳐 나아가야 할 방향이 워낙 뚜렷하니 앞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될지 알기 편해서 좋긴 하군.”
그리고 김창훈을 어깨에 걸친 상태로 그의 기숙사 방까지 이동해 침대 위에 김창훈을 올려 두고 그의 책상에 있는 공책 하나를 펼쳐서 간단한 메모를 남긴 후에 박임로는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학생을 만났어.”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