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25화
[에슬라의 군세에 가입합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
[…]
[…]
[<에슬라 군단 천인장> 직위를 얻습니다!]
[당신의 악명에 악마들이 두려워합니다!]
[당신의 악명에 악마들이 존경을 보냅니다!]
-허어어억! 아키서스의 노예잖아?!
-대체 여기에는 어째서…!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감히 시선을 던지다니!
“….”
케인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골짜기 NPC들보다 악마들이 날 더 존경하는 것 같은데….’
-아키서스의 노예께서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저희는 위대한 아키서스의 노예님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벌레 같은 존재입니다!
“….”
-아키서스의 노예시여!
-아키서스의 노예시여,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오냐!!”
케인은 또 거기에 넘어갔다.
아 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 * *
“이렇게 사람이 많았어요!?”
파워 워리어의 건설단 소속, 무보는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여기는 대륙이 아니라 마계였던 것이다.
요즘 마계 상황이 안 좋다고 온갖 글들이 올라왔는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여기 진을 치고 있는 걸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지?
“후후. 지금 다들 마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가 오히려 기회지.”
“너 어디 가서 마계에서 이런 거 한다고 말하지 마라. 경쟁자 생긴다.”
다들 대륙 복원 퀘스트에 집중하고 있을 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다른 것에 주목했다.
-지금 마계 지형 새로 만들어지고 퀘스트 초기화됐으면 먼저 가서 선점하는 게 임자 아닌가?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아?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졌다고. 그리고 마계에 쌓은 인맥들이 있잖아.
-기계 에다오르 빌릴 수 있을까?
파워 워리어 길드가 아직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사실 전력만 놓고 보면 파워 워리어도 이제 상당히 정예였다.
꽤 많은 랭커들이 가입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 랭커들을 필두로 파워 워리어의 여러 간부들이 나섰다.
단검단과 저격단은 물론이고 건설단과 요리단까지.
처음에 나왔던 부정적인 의견과 별개로, 파워 워리어는 빠르게 마계를 개척해 나갔다.
[<파워 워리어 개척도시>의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세력이…]
[주민들이 늘어납니다!]
[…]
[…]
[에슬라와의 친밀도가 늘어납니다!]
[평판이…]
[…]
이 정도면 처음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진행 속도!
파워 워리어 랭커, 김필두는 같이하는 파티원들에게 속삭였다.
“저… 저 랭커들은 누구예요? 저렇게 센데 왜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
“저 사람들 랭커 아니에요.”
“랭커가 아니라고요?? 랭커가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김필두 눈에 최상급 거인 악마를 꾸역꾸역 때려잡는 단검단과 저격단은 랭커가 아닐 수가 없었다.
저게 랭커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랭커란 말인가?
“파워 워리어에서 키우는 사람들일걸요. 레벨 1일 거예요.”
“또 농담하시는 거죠 지금? 제가 파워 워리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
“….”
파티원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하도 장난을 많이 친 탓에 김필두가 불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진짠데.’
‘우리가 너무 놀렸나?’
-파워 워리어에 가입하신 걸 환영합니다!
-다들 고마워요.
-아시다시피 파워 워리어에 가입하시면 수입의 절반을 바쳐야 합니다.
-역시….
-…아니, 농담이었습니다!
-농담이었어요!? 바치는 줄 알았는데….
-그걸 누가 바쳐요!? 헛소문인데!
“근데 진짜 레벨 1이에요.”
“에이. 안 믿는다니까요.”
김필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검단과 저격단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새로 들어온 랭커 김필두라고 합니다.”
“앗. 안녕하세요!”
“랭커분이 들어오다니…!”
길드원들은 김필두의 예의 바른 모습에 매우 기뻐했다.
우리 길드가 정말 크긴 컸구나!
저렇게 예의 바르고 멀쩡한 랭커도 들어오고!
“여기 먼저 들어오신 랭커분들인 만큼 제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게 있으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어?”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
김필두가 돌아서서 걸어가자 단검단과 저격단은 황당해했다.
“저 사람 방금 뭐라고 한 거지?”
“그… 그러게.”
* * *
“크하하하! 악마들을 모두 부숴버려라!!”
[마계에서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악마들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악마들이 당신을 증오합니다!]
[몇몇 영역에서 당신에게 현상금이 걸립니다!]
[…]
[…]
[만인장으로 직위가 상승합니다!]
[악마 공작, 에슬라가 당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케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끌려왔을 때와 달리 막상 시작하자 케인은 매우 유능하게 퀘스트를 진행해 나갔다.
태현 밑에서 구르고 구른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 것이다.
-아키서스의 노예시여! 적들의 성벽이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놈들이 마시는 물에 독을 타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게 만들어라!”
-아키서스의 노예시여! 적들이 그래도 버팁니다!
“붙잡은 포로들을 투석기로 쏘아 보내!”
-오오오!
-아키서스의 노예께서 우리를 지휘하신다!!
[악마들의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새 지역의 정복이 완료됩니다!]
[에슬라가 당신에게 갑옷을 선물합니다!]
[…]
철커덕철컥!
케인은 새로 얻은 장비 세트를 걸치고 걸음을 옮겼다.
‘어?’
놀랍게도 저 멀리 플레이어들이 만든 도시가 보였다.
게다가 그중 몇몇 플레이어들은 케인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파워 워리어잖아?!”
“케인 선수십니까 혹시?”
“어. 장비도 바꿨는데 어떻게 알았냐??”
‘머리통이 세 개라서요….’
“케인 선수의 아우라를 누가 못 알아보겠습니까?”
“맞습니다! 케인 선수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다른 사람하고 구별이 됩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말에 케인은 헤벌쭉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다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마계에서 퀘스트 진행 중입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이제까지 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마계가 리셋된 김에 먼저 와서 선점하고 영지도 지어 놓으면, 그 뒤에 오는 플레이어들이 쉬고 머무를 때 어디를 쓰겠는가.
그걸 노리면 아주 짭짤한 장사가 될 것이다.
케인은 그 말에 감탄했다.
‘이 자식들 진짜 머리 좋네.’
그런 좋은 방법이!
“케인 선수는 뭐 하고 계셨습니까?”
“나는 그… 악마 공작한테 부탁받아서 군세 이끌고 있었는데.”
케인은 말하면서도 좀 이상하게 들려서 살짝 주저했다.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케인 선수가 설마 그… 새로 나타난 만인장이었습니까!?”
“어? 내 소문이 너희한테까지 났냐?”
“예! 지금 다른 악마들이 케인 선수한테 현상금 걸었던데요?”
“…그, 그 정도야 뭐.”
“지금 주변 영역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한테도 닥치는 대로 현상금 퀘스트가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진짜 이를 갈고 있나 봐요.”
“우리는 케인 선수를 아니까 그런 퀘스트를 받지 않게 하겠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인 선수.”
“어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케인 선수잖아.”
“하긴. 케인 선수가 그걸 모르고 진행할 분도 아니고 당연히 다 알고 하셨겠지.”
“맞아. 오히려 노리셨을 거라고.”
“죄송합니다, 케인 선수. 건방진 소리를 했네요.”
“아, 아니야.”
케인은 아까보다 축 늘어진 어깨로 돌아섰다.
…괜찮겠지?
‘에, 에이. 암살이 뭐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탁-
“으아아아악 암살이다!!!”
“케, 케인 선수. 죄송합니다. 반가워서 인사드리려고….”
파워 워리어 랭커들이 케인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케인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미안하다. 내가 요즘 습격을 많이 받아서 말이지.”
“아. 괜찮으시면 같이 파티 사냥하지 않겠냐고 하려 했는데….”
“그럴까?”
탁-
또 누군가 케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케인은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래그래. 기다려. 내 인기가….”
-죽어라, 이 타락한 키메라 놈아! 감히 주인님의 군대를 부수다니!
[최상급 악마 암살자들이 당신을 습격합니다!]
“으아악 진짜 암살이잖아!!”
“케인 선수! 도와드리겠습니다!”
[차원문이 열립니다!]
[이름 없는 새로운 악마 공작이 군대를 동원합니다!]
[마계의 차원문이 추가로 열립니다!]
[잊혀진 악마 공작의 잔당이 나타납니다!]
[소환진이…]
[…]
[…]
“…야, 이거 우리끼리는 못 막겠다!”
“케인 선수! 지원 불러오겠습니다!”
“안 돼! 안 돼! 가지 마!! 야! 가지 말라니까!!”
케인은 팔을 필사적으로 휘두르며 파워 워리어 랭커들을 불렀다.
곳곳에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황급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대체 여기에 악마가 왜 이렇게??”
“케인 선수 보고 왔다는데?”
“케인 선수?? 하긴 악마랑 원수졌지.”
“일부러 사냥하려고 부르신 건가 봐.”
“하여간 최상위권 랭커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아.”
“우리가 방해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도와줘!!!”
케인은 즉시 외쳤다.
그 처절한 외침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바로 납득했다.
“…아, 아니구나.”
“도와드리러 가자!!”
* * *
‘마계는 나하고 안 맞는 거 같아….’
대륙으로 돌아온 케인은 온몸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악마들한테 저주를 하도 맞아서 쑤시는 걸 수도 있었다.
괜히 에슬라한테 조언 하나 얻겠다고 퀘스트 받아들였다가 마계에서 진짜 죽을 뻔한 것이다.
‘악명 떨어질 때까지는 마계 가지 말아야지.’
케인은 골짜기 구석에 숨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대륙을 싸돌아다니다가 악마들이 보낸 암살자를 만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 앞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김태현!!”
태현이 멀리서 이다비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케인은 눈을 깜박거렸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엉엉 울었다.
“으헝헝! 접은 줄 알았잖아…!”
“…이게 그렇게 울 일이냐?”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몇 년 안 들어온 줄 알겠다!
“여자친구 생겼다고 판온을 접는다니. 어? 판온에 인생을 걸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안 접어.”
“응?”
“안 접는다고.”
“하지만 저번에는….”
“그렇게 말했지. 물론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집중해서 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접진 않아.”
태현은 이다비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골짜기 주변을 둘러보니 새삼스럽게 이제까지 쌓아 올린 것들이 느껴졌다.
판온 1에서는 접을 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었다. 거의 혼자서 플레이를 했던 만큼 접을 때 아쉬움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태현이 잘못 판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임 안이라고 하더라도 쌓아 올린 시간이나 추억들은 쉽게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태현은 이다비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그래서 케인. 영지 관리 잘하고 있었냐?”
“…캡, 캡슐 밖에 나가서 좀 더 놀고 오지 그래? 역시 판온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지.”
-나는 될놈이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