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24화
케인은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저거 동상 방향이 왜 남쪽이야? 북쪽이 더 좋을 텐데.”
“그야 햇빛이 이쪽으로 들어오니까요…?”
“저 성문 방향도 마음에 안 들어. 깔끔하지가 않잖아.”
“성문 방향을 어떻게 바꿉니까?”
“아! 어쨌든 다 마음에 안 들어! 이 꼴을 봐! 엉망이야!”
‘음. 그냥 미친놈이군.’
처음에는 나름 집중해서 케인의 말을 듣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교환했다.
미친 거구나!
‘역시 김태현 선수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지능이 내려간다는 소문이….’
‘바로 드러나잖아.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지금 골짜기는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끝나고 나온 전리품은 물론이고, 원정대 퀘스트에 참가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골짜기 근처에 새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거기에 고대 제국의 유적까지 올라오고 있었으니, 정말로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새 건물이 생기고 새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왕국 내의 소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케인은 그런 점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연애한다고 게임에 안 들어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죠?”
“되지 않나?”
“닥쳐! 너희들이 뭘 안다고!”
‘미친놈.’
‘미친놈.’
“하지만 케인 선수. 처음에는 좋아하셨잖아요.”
“…내, 내가 언제!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케인은 태현과 이다비가 들어오지 않자 처음에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이게 판온이지! 이게 자유고! 게임은 이렇게 즐겨야 하는 거야!
그러나 이틀 정도 들어오지 않자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야 김태현 왜 안 오냐?? 이번에 퀘스트 떴는데 이거 내가 그냥 처리해도 되나? 아 이거 그냥 진행해도 돼?
-알아서 하시면 되잖습니까?
-시끄러워!
-??
자기 영지 운영부터 시작해서 교단 직업 퀘스트 등등.
물어볼 상대가 없자 케인은 매우 초조해졌다.
그렇다고 태현이나 이다비를 불러서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
-넌 눈치가 없냐 양심이 없냐?
-지금 좋을 때에 그렇게 방해를 하고 싶으십니까??
“하여간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어!”
케인은 씩씩대며 걸어갔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뒤에서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 * *
-앗. 아키서스의 노예께서 오셨군요.
“아키서스의 노예?!”
“우와!! 아키서스의 노예다!”
“애들아! 다 이리 와봐! 아키서스의 노예가 왔어!!!”
“…케인 선수라고 해! 케인 선수라고!”
교단 대신전에 방문하자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그 희귀한 직업 아키서스의 노예를 가진 케인 선수라고!?
…물론 겉으로 들으면 이름이 좀 이상하긴 했다.
“그, 상담 좀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펠마스는 신앙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공적치 포인트가…]
[현재 명성이…]
[현재 교단 내 평판이…]
[……]
[……]
교단 플레이어라면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해 NPC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케인은 포인트를 사용해 도움을 좀 받아볼 생각이었다.
-자. 이리로 오십시오.
“어? 여기서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여긴 이제 소신전입니다. 대신전 건물을 새로 지었거든요.
“…….”
케인은 그제야 건물 뒤에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거대 신전이 새로 생긴 걸 깨달았다.
‘언제 지었냐?!’
[<승천한 아키서스의 만신전>을 목격합니다!]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 압도됩니다. 스탯이 크게…]
[……]
[……]
[……]
골짜기를 비롯해서 나름 대단한 건축물들을 봐왔던 케인이었지만 이건 정말 대단했다.
오스턴 왕국에서 새로 지어지고 있는 신전도시들이나 궁전들도 화려하고 대단했지만, 이건….
단순히 규모나 사치스러움을 떠나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있었다.
-고대 유적을 신도들과 힘을 합쳐서 복원한 결과입니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훌… 훌륭하네요.”
[<승천한 아키서스의 만신전>에 입장합니다.]
[신성 스탯이…]
[……]
[……]
신전 안은 겉보다 더욱더 위엄찼다.
여러 교단의 동상들이 복도 양옆에 늘어서 있는 모습에 케인은 놀라워하다가 문득 의아해했다.
‘어? 근데 다른 교단 동상들도 이렇게 있어도 돼?’
물론 아키서스 교단이 다른 교단 힘 빌려 쓰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했지만 너무 대놓고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나중에 원한 사면 어쩌려고….
‘하긴 뭐 그런 거 신경 안 썼지.’
-자. 무엇이 신경 쓰이십니까?
펠마스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케인은 그 모습이 매우 어색했다.
원래는 돈에 미친놈이었는데 어쩌다가 사람이….
“지금 제가 영지 운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영지에 새로 떠돌이 부족들이 찾아왔거든요. 이 부족들을 받자니 충돌이 일어나고, 거절하자니 악명이 일어날 거 같고….”
-과연.
“그리고 신전을 새로 지으라고 계시가 떨어졌는데 이 신전을 새로 지을 때 평범한 대리석을 써서 만들지 아니면 마력이 깃든 마석을 써서 만들지 고민입니다. 전자는 안정적인데 후자는 불안정하기도 하고….”
-과연.
“제가 그리고 이번에 새로 장비를 바꾸려고 하는데 방어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기동성을 올려볼지 아니면 좀 더 방어력 높게 바꿔볼지….”
-…….
펠마스는 황당해했다.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하지만 교단에서 열심히 헌신하고 있는 아키서스의 노예에게 구박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무엇으로 고민하는지 알겠으니, 대가를 바치시지요.
“여기요.”
케인은 금화 주머니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러자 펠마스가 경악했다.
-신성한 신전에서 무슨 짓이십니까?!
“아, 아니. 이게 아니었…?”
-감히 어떻게! 감히 어떻게!!
[펠마스의 친밀도가…]
“아, 아니! 농담이었습니다!”
[펠마스의 친밀도가 다시 회복됩니다!]
-그랬습니까? 하하. 당연히 신앙심을 바치셔야죠. 기도하십시오.
‘이 자식 옛날이 좋았어.’
케인은 경건하게 기도했다.
[신성 스탯이 소모됩니다!]
[공적치 포인트가…]
-자. 그러면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한테 말입니까?”
-여기 있는 교단의 힘 중 하나지요.
펠마스는 자기가 대답하는 대신, 교단에서 빌리고 있는 신들의 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게 훨씬 더 정확했으니까.
-아키서스를 섬기는 신들이시여!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아니 신들의 힘을 이런 질문에 써도 돼??’
정작 질문 던진 케인도 살짝 당황했다.
너무 막 쓰는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질문에 대답해 줍니다.]
“오… 오오.”
케인은 자세를 바로잡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위대한 카르바노그 님… 잘 부탁드립니다.”
태현한테 카르바노그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 있는 케인은 약간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생각보다 되게 대단한 신!
[카르바노그가 당신의 존경에 만족스러워합니다.]
[카르바노그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쉽네!’
케인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신에게 이렇게 빠르게 사랑받다니.
그것도 카르바노그처럼 대단한 신에게!
“제가 영지를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까요?”
[카르바노그가 지금 영지에 카르바노그 교단의 신전과 동상이 얼마나 있냐고 묻습니다.]
“어… 아마 신전은 한 곳, 동상은 두 개 정도였나 할 겁니다.”
[카르바노그가 신전과 동상의 개수를 늘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카르바노그의 힘이 당신을 도와줄 거라고 말합니다.]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신이 직접 도와준다니!!
“정… 정말 그런 걸로 도와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카르바노그가 별거 아니라고 말합니다.]
* * *
“…제가 아무래도 좀 속은 것 같습니다.”
-하긴 원래 신들이 믿기 힘들고 배신하는 존재긴 하지.
영지 내에서 <악마의 대장간>을 이끄는 사루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은 카르바노그의 신전과 동상을 열심히 지었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기뻐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좋아합니다!]
[카르바노그가 더 해달라고 말합니다!]
한 백 개쯤 짓고 나서야 케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췄다.
-그래서 나한테 온 건가?
“악마들의 지혜를 좀 구하려고… 그 사루온 님은 또 위대한 악마 공작 에슬라를 섬기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현재 영지 내 평판이 매우 높…]
[악명이 높습니다!]
[종족이 키메라입니다. 추가 보너스를…]
[악마 공작 에슬라와 아는…]
-좋아. 주인님에게 한 번 지혜를 요청해 보도록 하지.
사루온은 흔쾌히 수락하고서 차원의 문을 열었다.
[마계의 문이 열립니다!]
[차원의 문을 통과할 경우 마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현재 마계는 굶주린 혼돈과의 싸움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여러 악마 공작들이 쓰러졌고 새로운 악마들이 자신의 강함을 주장하며 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계를 지키던 불꽃이 사라진 탓에 마계의 기후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혹한을 잘못 만날 경우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마계의 악마들이 더욱더 흉폭해집…]
[……]
[……]
“아, 아니. 다시 보니까 조금 나중에 가도 될 것 같….”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어서 따라오게.
[제안을 거절할 경우 사루온의 친밀도가 크게 하락할 수 있습니다!]
[영지 내…]
[……]
‘아오.’
케인은 울며겨자먹기로 차원의 문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 * *
-아키서스의 노예가 찾아오다니!
‘어?’
생각보다 에슬라는 케인을 매우 반갑게 맞이해 줬다.
케인은 살짝 감동했다.
‘굶주린 혼돈하고 같이 싸웠다고 그래도 아는 척을 해주는구나!’
-그렇군. 아키서스의 노예가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드디어 결심을 한 모양이구나!
“어… 뭘 말입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하하하… 바로 마계의 모든 악마들을 죽이는 일이지!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에슬라의 악마 대학살-악마 공작 에슬라 퀘스트>
굶주린 혼돈과의 싸움이 끝났어도 에슬라의 증오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많은 악마 공작들의 후계자들과 새로운 악마 공작 계승자들이 내전을 벌이는 동안, 에슬라는 음흉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
에슬라의 손을 잡고 마계의 악마들을 토벌하라.
그러나 주의하라!
에슬라의 광기 어린 계획이 들통난다면, 사나운 마계의 악마들은 전부 다 에슬라와 동조자들을 죽이려고 할 테니….
보상: ?, ???
-그것 말고 온 이유가 있겠나?
“저, 저는 질문 좀 하려고 온 건데요. 제가 요즘 물어볼 곳이 없어서 현명한 조언을… 영지 통치나 성장 방식이나….”
-아. 물론 답해줄 수 있다.
에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은 살짝 안심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아키서스의 노예. 지금 내 부하들이 출정하는데, 거기에 합류해서 악마들을 좀 죽이고 오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한다면 내 영역에서 가장 영리한 악마들의 지혜를 기꺼이 빌려주도록 하지.
“…….”
케인은 소름이 돋았다.
저 수법을 이미 많이 겪어봐서 알았던 것이다.
-흑흑 던전 돌기 싫어!
-걱정 마라 케인. 오늘은 1층만 깰 거니까.
-정말?!
-물론이지.
-…잠깐. 아까도 그 소리 했었잖아? 지금 5층인데??
-던전 돌다 보면 계획이 바뀔 수도 있지. 움직여. 케인.
일단 발을 담그게 한 다음 도중에 포기하지 못하게 계속 밀어붙이는 교활한 수작!
케인은 도망치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에슬라의 친위대 악마들이 차원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